장정일의 독서일기 1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1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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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번 책 읽는 게 이런식이라면 독서따윈 하지 않겠다. 오로지 고통과 인내로 점철된 이번 독서는 정말 끔찍하다. 라고 말하는 건 좀 과장이었을런지 몰라도 아무튼 힘들게 읽었다.

독서일기라는 제목답게 작가 장정일의 독서후 감상문을 모아 놓은 것인데 내가 읽은 책은 고작 2-3권이어서 창피하기도 했다만 이런 가식적인 말은 그냥 넘어가자. 아무튼 아직 못 본책이 태반인데 그래도 흥미가 가는 책이 몇 권 있었기도 했지만, 무슨 주의 운운, 어려운 단어가 마구 튀어나오고 다른 이론서까지 나올때는 거의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읽어도 읽는 게 아닌 이런 독서는 차라리 인터넷을 하는 게 나을정도로 무의미했다. 하지만 장정일 본인의 일 나올때와 재미있는 책을 조금 쉽게 소개해 놓은 부분은 꽤나 좋았다. 독서일기 다음 권들은 내가 읽은 책이 좀 있다면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비판성과 문체따위는 나에게 참 많은 영향을 주긴 했다.

내가 쓰는 독후감도 타인에게 그렇게 읽힐 것이라 생각하니 조회수가 낮은 이유도 대충 예상이 된다. 바라는 건 자신이 읽은 책의 독후감만을 보라는 것이다. 자신과의 견해차이따위를 비교하는 것 이외에는 정말로 지루한 일일 테니 말이다.

+만화에 대한 무시는 작가의 성격과 관련이 있지만 편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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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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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끔찍했다. 200페이지 정도였다면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을 테지만 정말 징그럽고, 힘들고, 짜증이 나는 독서였다. 계속 이런식이라면 독서따위는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

롤리타 컴플렉스라는 말이 나온 책인데 정확히 하자면 님펙 컴플렉스 라고 해야 옳지 않았을까 싶다. 전 세계의 사람은 마찬가지였나 보다. 책을 읽기보다 제목을 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 말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롤리타 예찬론+험버트의 애정으로 덕지덕지 발라져있다. 사람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450페이지에 걸쳐 하고 있다. 다만 롤리타에 대한 예찬만큼은 아름답다.

사람은 사람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내 생각이 다시금 견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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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02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어요 일단 책이 무지하게 길고요, 사람을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저도 그렇게 결론내렸어요
 
상속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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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를 읽자마자 집어들었는데 그간 얼마나 '즐거운'독서에 목이 말라 있었는지 읽는 문장문장이 감동이었다. 좋은 문장을 찾았지만 옯겨적진 않는다.

문학과 많이 비교되는 다른 예술들은 꽤 많다. 문학의 역사는 길고, 스토리텔링이라는 장르적 유사성때문에 영화, 만화 혹은 연극등과 문학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영화와 연극만을 놓고 봤을때를 생각해 보자. 배우는 연기를 한다. 소설가도 인물들을 연기하게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아주 대단한 사람 일지라도)여러 사람의 몫을 해 내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이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한 명일지라도 그 배우는 각 배역에 맞추어 한 명씩이므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와는 조금씩 다른 인물들이 생겨버린다. 영화의 인물은 그래서 모두 제각각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이와 반대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한 사람이 여러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소설의 모든 인물은 소설가 한 사람의 분신일 수밖에 없다. 말투를 다르게 해서 마치 다른 사람인 양 입체성을 줄 수는 있겠지만 본질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소설가는 타인을 관찰한다. 타인의 속내를 알아야(불가능하지만)여러 캐릭터에 입체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 박민규는 스스로가 사람이 없었다면 소설은 쓰지 않았을 거라 했다.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잔뜩 한 건 은희경의 소설은 철저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해 끝나기 때문이다. 단편집인 이 책의 모든 수록작품은 절대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수준도 고르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인 '아내의 상자'가 제일 뛰어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나머지 작품 전부도 뛰어난 작품이었다. 문체의 경쾌함도 작품을 빠르게 읽게 만들어 준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역시, 은희경의 작가의 말도 굉장히 좋았다. 은희경의 읽지않은 나머지 작품들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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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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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집.

난 하루키의 단편보다 장편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김난주씨의 번역이 조금 신경쓰였다. 예를 들자면 '비행기'에서 '그'로 지칭 되던 남자 주인공이 두어번쯤 '그'라는 삼인칭 시점대신 '나'라는 일인칭으로 바뀌는데 그것이 하루키의 의도였을지 김난주의 실수였을지 궁금하다. 김난주씨는 분명 전과가 있기 때문에 미안하게도 의심이 간다. '가노 크레타'에서도 분명 언니 라는 호칭대신 '마루타'라는 언니의 이름을 그냥 써버린 것에서 의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게다가 마지막 작품'잠'에서는 '시시껍절한'이라는 표현이 나왔길래 잘 모르겠는 단어여서 사전을 찾아보았더 그런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내 사전에 그저 수록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그렇게 넘기기엔 역시 조금 거슬린다.

해설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댄스댄스댄스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태엽감는 새를 쓰는 사이에 썼던 작품집으로 그 사이를 잇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가노 크레타의 경우 태엽감는 새에서 꽤 비중있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하루키도 여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단편을 장편으로 바꾼다던가 여러 단편의 이야기를 하나의 장편에 섞는가보다,라고 어렴풋이 추측할 수있었다.

간만에 좀 길게 써 보기로 하자.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 말하겠다.

첫 작품 'TV피플'은 어쩐지 '태엽감는 새'의 첫부분과 비슷한 느낌을 조금 느끼게 되었다. 물론 상당히 팬터지적 요소가(하루키의 많은 작품이 그렇지만)들어가 있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내 부족이다) 아내와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내가 떠난다는 식의 전개와 묘사는 '태엽감는 새'를 연상하게 해 준다. 그리고 아마 '세계의 끝...'에서부터 시작됐으리라고 어렴풋이 추측할만한 '소리를 언어로 바꾸기'는 역시 상당히 재밌었다. 박민규가 그랬듯 소들은 분명 음메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소리로 운다.

다음 작품 '비해기'는 불륜커플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참 연하인 남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행기에 관한 혼잣말을 한다는 것을 주된 모티프로 삼고 있다. 결국 상실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한데 역시 잘 이해하긴 힘든 작품이었다.

'우리시대의 포크로어'는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 아니라면 경험인 척 하고 소설을 쓴 것이다. 작중 화자는 마치 '댄스댄스댄스'에서의 고혼다 상을 연상시키는 고등학교 동창과 교등학교 졸업 후 몇 십년 뒤에 우연히 여행중에 만나, 그의 여자친구와 있던 일을 화자에게 고백적이로 한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이다. 몇 가지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는데 아래에 옮긴다.
-우리는 말 그대로 60년대의 아이들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평생에서 가장 상처 입기 쉽고, 가장 미숙하고, 그런 연유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1960년대란 터프하고 와일드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숙명적으로 그에 취해버렸다. 도어즈에서 비틀즈, 밥 딜런까지, BGM도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운전 교습소란 정말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누구라도 좋으니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진다.
특히 운전 교습소에 대한 글은 정말 재밌었다. 운전 교습소는 어느나라든 그리 다르지 않는가 보다.( 특별히 여기에 옮겨 적는 것은 이 책은 빌린 책이라 소장할 수 없기 때문에 맘에 드는 구절을 옮겨 놓는다.)
마지막에 작가는 이 이야기는 아무런 교훈도 없고 그저 우리의 이야기일 뿐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다른 모든 문장을 합친 것보다 이 두세줄의 문장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가노 크레타'는 앞서 말했듯 '태엽감는 새'의 인물 중 하나인 가노 크레타의 원형을 보여준 작품인 듯하다.(기억에 태엽감는 새에서는 가노 구레타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것 같은데 번역의 차이일 듯하다. 크레타는 좀 더 영어 발음에 맞게 번연한 것인 듯하고 구레타는 일본인의 영어 발음에 맞게 번역한 듯하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꽤 생생하게 마음에 남는다.

'좀비'는 꽁트라고 말 할수 있을 정도로 짧았다.(꽁트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난 단편소설이 아닌 짧은 이야기 정도의 의미로 쓴다.) 의외로 굉장히 모범적인 소설의 구도를 지킨 스탠다드한 작품이었다. 하루키가 썼나 싶을 정도로 규격에 맞게, 하지만 창의성 있는 '웰 메이드'한 작품이었다. 스티븐 킹의 영향이 아닐까?

마지막 작품 '잠'은 가장 재미있었다. 잠이 없어진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워 상당히 재미있는 묘사와 전개가 많았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인데 말투는 완벽히 하루키라서 조금은 억지스러운면이 있었다.
마지막의 미성숙한 결말이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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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현대문학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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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소설이 있다. 정말 쓰면 안되는 나쁜말로 싸구려 감상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류의 소설이다. 작가의 자의식만 가득해서 인물들은 일상에서는 쓰지도 않을 어려운 말들만 잔뜩 써대고 그런 헛소리마저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공들이 잔뜩 등장해서 젊은 시절을 잃어버린다는 식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 그런 소설 말이다. 예술도 결국은 사람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그런 소설들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이 소설도 약간 그런 기운이 있다. 하지만 은희경은 조금 다르게 풀어간다. 몽환적인 분위기는 참 좋다. 후반부는 약간 하루키를 연상시킨다. 뭐, 결국 좋았다는 이야기. 하지만 100%좋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은희경은 내 정신의 연인이 되었다. 나이가 열살이하로 차이나고 은희경씨가 결혼도 안했다면 대쉬해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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