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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집.
난 하루키의 단편보다 장편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김난주씨의 번역이 조금 신경쓰였다. 예를 들자면 '비행기'에서 '그'로 지칭 되던 남자 주인공이 두어번쯤 '그'라는 삼인칭 시점대신 '나'라는 일인칭으로 바뀌는데 그것이 하루키의 의도였을지 김난주의 실수였을지 궁금하다. 김난주씨는 분명 전과가 있기 때문에 미안하게도 의심이 간다. '가노 크레타'에서도 분명 언니 라는 호칭대신 '마루타'라는 언니의 이름을 그냥 써버린 것에서 의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게다가 마지막 작품'잠'에서는 '시시껍절한'이라는 표현이 나왔길래 잘 모르겠는 단어여서 사전을 찾아보았더 그런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내 사전에 그저 수록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그렇게 넘기기엔 역시 조금 거슬린다.
해설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댄스댄스댄스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태엽감는 새를 쓰는 사이에 썼던 작품집으로 그 사이를 잇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가노 크레타의 경우 태엽감는 새에서 꽤 비중있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하루키도 여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단편을 장편으로 바꾼다던가 여러 단편의 이야기를 하나의 장편에 섞는가보다,라고 어렴풋이 추측할 수있었다.
간만에 좀 길게 써 보기로 하자.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 말하겠다.
첫 작품 'TV피플'은 어쩐지 '태엽감는 새'의 첫부분과 비슷한 느낌을 조금 느끼게 되었다. 물론 상당히 팬터지적 요소가(하루키의 많은 작품이 그렇지만)들어가 있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내 부족이다) 아내와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내가 떠난다는 식의 전개와 묘사는 '태엽감는 새'를 연상하게 해 준다. 그리고 아마 '세계의 끝...'에서부터 시작됐으리라고 어렴풋이 추측할만한 '소리를 언어로 바꾸기'는 역시 상당히 재밌었다. 박민규가 그랬듯 소들은 분명 음메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소리로 운다.
다음 작품 '비해기'는 불륜커플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참 연하인 남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행기에 관한 혼잣말을 한다는 것을 주된 모티프로 삼고 있다. 결국 상실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한데 역시 잘 이해하긴 힘든 작품이었다.
'우리시대의 포크로어'는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 아니라면 경험인 척 하고 소설을 쓴 것이다. 작중 화자는 마치 '댄스댄스댄스'에서의 고혼다 상을 연상시키는 고등학교 동창과 교등학교 졸업 후 몇 십년 뒤에 우연히 여행중에 만나, 그의 여자친구와 있던 일을 화자에게 고백적이로 한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이다. 몇 가지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는데 아래에 옮긴다. -우리는 말 그대로 60년대의 아이들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평생에서 가장 상처 입기 쉽고, 가장 미숙하고, 그런 연유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1960년대란 터프하고 와일드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숙명적으로 그에 취해버렸다. 도어즈에서 비틀즈, 밥 딜런까지, BGM도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운전 교습소란 정말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누구라도 좋으니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진다. 특히 운전 교습소에 대한 글은 정말 재밌었다. 운전 교습소는 어느나라든 그리 다르지 않는가 보다.( 특별히 여기에 옮겨 적는 것은 이 책은 빌린 책이라 소장할 수 없기 때문에 맘에 드는 구절을 옮겨 놓는다.) 마지막에 작가는 이 이야기는 아무런 교훈도 없고 그저 우리의 이야기일 뿐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다른 모든 문장을 합친 것보다 이 두세줄의 문장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가노 크레타'는 앞서 말했듯 '태엽감는 새'의 인물 중 하나인 가노 크레타의 원형을 보여준 작품인 듯하다.(기억에 태엽감는 새에서는 가노 구레타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것 같은데 번역의 차이일 듯하다. 크레타는 좀 더 영어 발음에 맞게 번연한 것인 듯하고 구레타는 일본인의 영어 발음에 맞게 번역한 듯하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꽤 생생하게 마음에 남는다.
'좀비'는 꽁트라고 말 할수 있을 정도로 짧았다.(꽁트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난 단편소설이 아닌 짧은 이야기 정도의 의미로 쓴다.) 의외로 굉장히 모범적인 소설의 구도를 지킨 스탠다드한 작품이었다. 하루키가 썼나 싶을 정도로 규격에 맞게, 하지만 창의성 있는 '웰 메이드'한 작품이었다. 스티븐 킹의 영향이 아닐까?
마지막 작품 '잠'은 가장 재미있었다. 잠이 없어진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워 상당히 재미있는 묘사와 전개가 많았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인데 말투는 완벽히 하루키라서 조금은 억지스러운면이 있었다. 마지막의 미성숙한 결말이 특히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