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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분히 샐린저의 '아홉 개의 이야기'같은 느낌을 풍기는 이 단편집을 읽으며 나는 미국 현대소설이란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서너 명의 작가만을 읽고나서 미국 현대 소설 운운하는 것은 우습지만 놀랍도록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작가의 작품은 필연적으로 축적의 독서를 하게 만든다. 이렇다할 네러티브없이 하나의 상황을 글로 옮긴 듯한 소설들은 독자에게 가르침이나 교훈을 준다기보다는 감정의 공명을 주며 위안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카버가 인터뷰에서 남길 바란다고 했던 두 작품 표제작 '대성당'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경우를 보자. 전자의 경우 아내의 오랜 친구라는 시각장애인이 갑작스레 집을 방문한다는 상황을, 후자는 한 부부의 아들이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상황을 부여하고 그 상황을 확장시킴으로써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것은 같은 미국 현대 소설가인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한 바와 같이 플롯으로 쓰는 글이 아닌 상황을 전개하는 작법이다. 플롯과는 다른 이런 글쓰기가 주는 장점은 상대적인 재미의 우월성에 있다. 플롯이라는 일종의 공식에 의해 쓰여지는 글쓰기는 그 틀 덕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반면, 상황을 부여하는 글쓰기의 경우, 조금 더 불친절하지만 그 불친절에 독자는 매력을 느끼고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야기는 더욱 신선히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후자가 상대적으로 더 쓰기 어렵고 그 상황을 독특하게 부여하긴 더 힘들다.
카버는 대성당을 통해 부인의 장님 친구라는 껄끄러운 존재를 만난다는 상황부여를 통해 이해와 공감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너무도 잘 표현해냈다. 카버의 유일성은 결국 이것이 아닐까. 그의 소설들에서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지극히 소소한 삶을 사는 현대인의 일상의 일각의 이미지와, '그 속(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비일상적 일들(비일상적이라지만 정도이상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는 정도의 일들)의 대조와 충돌이 아닐까. 그리고 그 속에서 등장인물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새로운 시각이 그의 비일상적인일에서 받는 충격과 불안에 위안 혹은 공감을 준다. 이로써 카버는 거조하고 마른 현대 인류에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무척 큰 도움이 되는'촉촉함과 따스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