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늑대처럼 - 세계의 그림책 023 세계의 그림책 23
에릭 바튀 글 그림,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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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고를 때 이상하게도 에릭 바튀의 그림책엔 선뜻 손이 가질 않았었다.
집어 들어 몇 장 넘기며 그림을 훑어보고 내려 놓길 여러 번, 생각해 보니 그의 그림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내가 가진 이런 선입견을 한 방에 깬 그림책이 <하얀 늑대처럼>이다.

힘 없고 단결도 모르는 군중, 자신보다 약하고 작은 자에게는 강하고 자신보다 강하고 힘센 자에게는 짓밟히는 인간의 모습들이 토끼에 비유되었다. 당장은 권력자의 횡포가 떠오르지만 곰곰 생각하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인간, 결국은 자기보다 더 힘센 자에게 잡아먹히는...

온갖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내세워 다른 토끼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흰 토끼. 그는 자신이 토끼 마을의 진정한 지도자이며 권력자라고 믿는다. 색깔과 무늬가 다르다고, 키가 더 작다고, 수염이 짧다고 쫓겨난 토끼들은 이 힘센 토끼를 어쩌지 못한다. 흰 토끼 주변에서 '나는 흰색이라, 키가 커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두 손 부비던 토끼들마저 쫓겨나자 마을에는 달랑 대빵 흰 토끼 한 마리만 남는다.

뭔가 또는 누군가가 더 없나 싶어 마을 꼭대기서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흰 토끼,
자신보다 키도 더 크고 눈도 빨갛고 수염도 더 긴 또다른 흰 토끼를 발견,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남은 건 쓰러진 의자와 손대지 않은 당근 두 개, 끊어진 발자국...

쫓겨났던 토끼들은 작은 몸을 숨긴 덕에 이 모든 걸 다 본 점박이 칼라 토끼 덕분에 다시 마을에 모일 수 있었다. 혼란의 일 년을 마무리하며 모두 가진 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봄'을 기다린다. 공동체 사회에서의 나눔과 평등, 희망의 내재, 이런 메시지들이 읽힌다.

토끼들의 힘을 한데 모아 독재자 행세를 하려는 녀석을 몰아내지 못 한 것이 좀 아쉽지만, 약육강식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겠는가 싶다.(혹은 유럽 역사의 한 장면일 수도.)

이러한 주제가 빨강과 검정을 주조색으로 한 거친 질감의 그림으로 더 돋보인다.
이거 내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을 잘못 생각했구나, 그림책을 덮고 이마를 탁, 친다.
역시 그림책은 일단 펼쳐서 끝까지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 눈에 확 들지 않는 그림이라 해서 제쳐 둘 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어른이 보아야 할 그림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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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5-1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이런 책이 있었네요? 내용은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지만 ..우린 프랑스 동화는 자주 못 접하는 것 같아요.(나만 그런가??)
그리고 저도 동감해요. 어른들이 보아야 할 그림책이 너무 많아요.

난티나무 2005-05-1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진주님? 어른들에게 그림책을 마구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유럽 그림책이 영어권보다는 적은 것 같아요..ㅎㅎㅎ
제가 도서관서 빌려보는 책 중 한국에 없다 싶은 것 자주 소개하려 하는데 게을러서리...--;; 그리고 책을 사진 찍어 올리려니 저작권과 상관 없나 싶은 걱정도 들구요.. 그래도 조금씩 올리도록 노력할게요~!!^^

진주 2005-05-1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진찍어 올리는 건-작가나 출판사에서는 오히려 권고할 걸요? 그 사진 때문에 동기유발이 될 수 있잖아요^^

히피드림~ 2005-06-0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화는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되돌아 볼 기회를 줍니다. 님의 리뷰만 읽어도 참 좋은 책이라는 게 느껴지네요.
특히 님의 마지막 문장, 왜 그렇게 다 큰 어른들이 그림동화에 집착(?)하는지 새삼 깨닫게 만드네요.

난티나무 2005-06-08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무조건 이쁘고 가벼운 주제의 어린이책보다 사회를 보여주는 묵직한 어린이책이 더 좋아요. 읽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