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에 '에이핑크'가 나왔다. 데뷔 10년차 그룹, 새 앨범을 내면서 서로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난다는 세 명의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 패널들이 왜 울어 왜 눈물이 많아졌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나는 그 감정 무엇인지 너무 잘 알겠는데, 그래서 따라 눈물이 나는데. 그건, 그러니까... 그런데 나는 왜 울지? 어느 포인트에 공감을 했지? 곰곰곰... 문득 작년인가 다큐 보면서 뜬금없이 눈물이 솟았던 때가 떠오른다. 산 속에 지은 집에 여자들이 삼삼오오 요가매트를 들고 모여 테라스에서 요가를 하는 장면이었다. 나 왜 울어? 하면서. 거기에 겹쳐지는 며칠 전 경험. 집회에 다녀온 독서모임멤버 한 분의 이야기를 신나게 듣고 나서 다음번 언젠가의 집회에 멤버들 모두 나가서 신나게 놉시다! 하는데 눈물이 주루룩. 아, 나는 그러니까 여성의 모임, 여성 공동체, 이런 관계를 원해왔구나, 싶은 것이, 그동안 혼자서도 잘놀아요를 시전했던 건 실은 외로움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도대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으면 그저 모여서 요가를 하는 장면에도 울고 같이 으쌰으쌰합시다 하는 말에도 울고 그런단 말인가, 싶은 것이, 아주 그동안의 내가 가여워 미치겠다. 지금 내 안에는 외로움이 그리움이 슬픔이 철철철 넘쳐흐르고 있다는 거지. 그래, 그동안 너무 혼자 있었지. 혼자 내 살을 뜯어먹고 있었지. 입을 꾹 다문 채로.

<연대하는 페미니즘> 책을 집으면서 '연대'라는 글자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들어가는 말을 펼쳐 읽으면서, 처음에는 안 보이던 구절이 다시 새로이 보인다.


"한 개인, 한 집단, 한 세대가 겪는 고통은 서로 비교될 수 없다. 각 개인에게 그것은 그 자체로 쓰라린 아픔이다. 그래서 내 고통이 더 크다고 단정 짓기보다 서로의 고통을 말하고, 공감하며, 함께 싸워가야 한다. 개인의 현실, 관심, 문제에 따라 젠더 의제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각자의 자리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 만들어내는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나는 소망한다. 이러한 집합적 개인주의(collective individualism)의 구현에 이 책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거는 미래를 만든다. 그래서 "역사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 평등한 미래를 소망하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에게도 역사가 필요하다. 페미니스트의 역사 속에는 시·공간을 가로질러 여성들이 살아온 질곡과 고통의 과거가 들어 있다. 또한 이를 뚫고 투쟁해온 여성 주체들의 능동적인 행동도 드러난다. 역사 속 여성의 경험은 시대를 가로질러 전유되기도 하고, 과거의 고통은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기도 하다. 그래서 공유하는 역사는 바로 '연대하는 페미니즘'의 기초가 된다. 가까운 과거의 역사는 더욱 그러하다."

(정현백 <연대하는 페미니즘> 14~15)



"각자의 자리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 만들어내는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나는 소망한다." 여전히 내 안의 뿌리깊은 편견을 떨쳐버리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 문장을 똑같이 소망한다.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내 자아들은 그런 사람이지 못할까 봐 겁을 먹는다. 자기검열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나부터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쉽지 않다. 내 눈은 타인의 시선에 오래 잠식당했고 점점 나빠지고 있었을 것이다. 결심만 반복하는 거 아니냐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매일의 다짐이 나를 만든다.




"...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떄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누구의 언어로 이야기할 것인가가 또 문제가 되는 거예요. 결국 우리는 같은 언어를 찾을 때까지 영원히 같이 못 마주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출발해야 되느냐, 언어도 없고 불안하기도 하잖아요. '이 사람, 나랑 같은 언어를 쓰고 있을까?' '자기한테는 좋은 언어지만 나한테는 좋은 언어일까?' 그리고 시스터후드sisterhood, 자매애라는 것도 일종의 환상일 수 있죠. 우리의 경험이 같으니까 우리는 서로 통할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은 그 사람이 울어서 내가 그 눈물에 동화된 적도 있을 거고, 그 눈물이 나의 어떤 감정을 건드렸던 것일 수도 있어요. 동일하지 않더라도, 그 감정의 순간이 스쳐지나간 것일 수도 있잖아요.

동질성을 통해서 연대를 마련하려고 하는 그 오래된 습관은 어떤 순간 고립주의를 자처하게 될 수 있어요. 말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연대하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될 수도 있어요. 적에 대한 분노를 자꾸 표출하는 거예요. 적에 대한 분노는 서로 다르더라도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되게 강한 힘이 되거든요. 우리는 언어가 다를 수 있지만, 쟤를 싫어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는 거잖아요. 그럴 때 갑자기 연대가 생기죠. '너랑 나랑 말이 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쟤를 싫어하지. 오케이, 그럼 가자'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로드는 그런 방식은 아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시작해야 될까. 겁도 나고 공포도 생기는데, 로드는 바로 그 약함에서 출발을 권유해요.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되고, 나약해지면 안 되고, 감정적이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하는 거예요. 직시한다는 건, 그냥 그 순간에 울 수밖에 없다면 우는 거죠. 운다는 건 사실상 수용하고 인정한다는 거죠. 수용과 인정은 공포를 이겨낸 직면이기도 하고요. 나약하지 말라는 건 '네 약한 꼴 보이지 마', 즉 직면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오랫동안 우리는 공포심을 배웠다는 거죠."

(김은주 <페미니즘 철학 입문> 446~447)




자매애가 환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같은 경험으로 우리를 일반화하지 않기 위하여, 눈물이 나는 것을 그저 공감이라고 치부하지 않기 위하여, 나와 다르다고 배제하지 않기 위하여, 다짐. 먼저 나를 직시하는 일. 만들어진 인연을 배척하지 않는 일. 감사하는 일. <페미니즘 철학 입문>을 꺼내어 석 달에 한번씩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칩거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 분들께 소심하게 인사를 전하며.




+ 오늘 시국토론회(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에서 발언한 분들 멋있다. 패널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생 때의 경험, 중고등학교에서의 성차별을 말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코 찡, 대학생의 결기어린 말에 눈 찌르르, 아 어쩌자고 그렇게 빛나는가요. 초중고 페미니스트라는 말 왜 이렇게 가슴이 벅찬가요. 이제 겨우 입문한 50살 나도 수줍지만 여러분과 이어져 있는 거 맞죠. 이렇게 나 혼자 생각. 분노 속의 감동. "여성 있는 민주주의"!



"여성들의 서로에 대한 돌봄 욕망과 필요는 병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인식해야 우리의 실제 힘을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부장적 세계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 여성들이 이렇게 실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만 모성이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회적 권력이 되는 겁니다.

여성들 사이의 상호 의존은 우리 각자 내가 될 수 있는 자유의 길입니다. 이때 '나'는 여성으로서의 효용 때문에 이용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적인 존재로서의 '나'입니다. 이것은 수동적인 임be과 능동적인 되기being의 차이입니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단순히 관용하겠다는 것은 가장 역겨운 개량주의입니다. 이런 개량주의는 우리 삶에서 차이가 담당하는 창조적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차이는 단순히 관용의 대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됩니다. 차이는 우리의 창의성이 불꽃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극성polarities과도 같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성들이 상호 의존의 필요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는 서로 다른 힘들 사이의 상호 의존 속에서만, 우리는 그 어떤 지점이 없는 곳에서도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자양분, 그리고 이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을 추구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드> -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176~177)




이제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운 적이 거의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예스라고 하면서 우리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른 흑인 여성을 친절, 존경 다정한 마음으로 대하는 법도, 단지 그녀가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짧게나마 긍정의 미소를 띠며 대하는 법도 우리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우리가 어느 부분에서는 서로의 단점에 가까운 존재이기에, 즉 그것이 우리 자신이기에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법을 배운 적도 거의 없다. 다른 흑인 여성을 칭찬하며 그녀의 특별함을 인정해 준 가장 최근은 언제인가? 우리는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는 법을 의식적으로 골똘히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던 흑인 여성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도난당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를 너그럽게 대함으로써 우리 스스로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것을 연습할 수 있다. 우리 안의 포용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에 너그러워짐으로써 서로에게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각자의 마음에 있는 용감하고 멍든 어린 소녀에게 마음을 더 많이 쏟아 줌으로써, 뛰어난 존재가 되려고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품게 되는 기대를 줄임으로써, 서로에게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뿐만 아니라 빛 속에서도 흑인 여성을 사랑할 수 있고, 완벽을 기하려는 그녀의 격정적 마음 상태를 다독여 주며, 그녀가 주의를 기울이는 일을 실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줄 수 있다. 이렇게 한 다음에라야 우리는, 그녀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를, 그녀가 이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미래를 향해 가도록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를 더 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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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2-19 23: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드리 로드의 문장 너무 좋네요. 전 아직 읽기 전이라서 얼른 읽고 싶은데 먼저 책을 준비해야겠네요.


자매애가 환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같은 경험으로 우리를 일반화하지 않기 위하여, 눈물이 나는 것을 그저 공감이라고 치부하지 않기 위하여, 나와 다르다고 배제하지 않기 위하여, 다짐. 먼저 나를 직시하는 일. 만들어진 인연을 배척하지 않는 일. 감사하는 일.

난티나무님 위 문장들도 가슴을 파고들고요. 그 다짐과 다짐의 시간들을 저도 기억하려고 해요.
좋은 사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2-20 08:12   좋아요 2 | URL
책들이 처음 읽을 때와 다시 펼칠 때, 또 다시 볼 때 매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달라요. 그만큼 그때그때 제 생각들도 변화하는 것이리라 생각해요. 그러기를 바라기도 하고요.^^ 어떤 한 가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펼친 책에 그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언니들의 통찰을 마주할 때의 짜릿함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역시 바라고요.

오드리 로드 넘 좋아요. 동일선상에 자리하지는 않지만(동일선상이라는 단어 선택이 좀 주저됩니다만) 어쩌면 아시아 여성인 우리에게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언니’ 중 한 명이 아닐까 싶어요.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을 때도 비슷하게 느꼈는데 오드리 로드의 글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분의 생각을 풀어주시는 김은주선생님 글도 좋고요. <시스터 아웃사이더> 말고 더 많은 글들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단발머리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오드리 로드 어떻게 읽으실지 벌써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