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이다. 아니 진즉 눈치챘어야 했다. 시행착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어쩌겠는가,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법. 모든 것을 알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그렇지. 무슨 말이냐 하면, 옆지기가 거다 러너의 <가부장제의 창조>를 들고 갔다는 말이다. <가부장제의 창조>라니, 그 어려운 책을?(나만 어렵나 ㅠㅠ) 페미니즘 책이 대체로 처음인 지금?


처음 책상에 책들을 쌓아놓았던 작년 봄을 기억한다. 책을 오랫동안 사지 못했던 터라 그 책들이 무엇이든 한꺼번에 사서, 돈과 시간을 들여 받아서, 책상에 쌓아놓을 수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쌓은 채로 두고 즐겼다. 읽기도 전에 뿌듯한 마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나는 그랬지만 옆지기는 책탑을 보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목이 모두 후덜덜한 페미니즘 책이었다.(사실 지금 보면 그리 '쎈'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예를 들면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같은 책 제목들. 여기서 괴물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남편'이 아니다. 그러나 처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쉽게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ㅎㅎ 아무튼 책들을 본 옆지기는 페미니즘이다! 와 함께 겁나는데! 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나중에 내가 이혼하자고 하는 거 아닐까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니 그러면 뭔가 켕기는 게 있기는 한가 보지?!)


책들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불확실한 생각과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아나가면서 괴로워졌다. 이미 괴로웠는데 더 괴로워! 나만 괴로울 수 없어!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불만이 쌓이고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를 갉아먹는 짓이니까. 내가 깨어나는 만큼 그도 깨어나야 했다. 공동체를 유지하든 하지 않든 지금 중요한 건 '깨달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너도 알아야 겠어. 그래야 그동안의 삶이 너에게도 보일 테니까. 세상이 보일 테니까. 각성. 만약 그게 되지 않는다면, 그 땐 어쩔 수 없겠지.


사모으는 책들 중 쉬워 보이는 혹은 부담스럽지 않은 책들을 골라 건넸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책도 공감이 비교적 쉽지 않을까 했다. 의외. 내가 건네는 족족 책들은 다시 돌아왔다. 평소 매사에 비판적이며 어느 정도 냉소를 장착하고 있는 옆지기에게 책들은 거부당했다. 거부. 그는 '남성'이라는 존재를 거부당한다고 느낀 것이다. 너희는 큰 잘못을 저질렀어, 오래전부터 너희는 사악하게 여자들을 짓밟았지, 그런 적 없다고? 그럴 리가, 너의 존재 자체가 이미 특권인 거야, 이미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깊이 가담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듯한 책들을 견디지 못했다. 오케이. 접수. 검색하다 알게 된 책을 주문해달라길래 얼씨구나 하고 샀다. 그 두 권 중 한 권 역시 거부를 당했고 한 권은 아직 읽기 전이다. 스스로 읽어보겠다고 그 나름 노력해 고른 책이었는데 아쉬웠다. 한동안 책을 권하지 않았다. 초기에 <악어 프로젝트> 같은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때에 느꼈던 '가까운 거리'는 평소의 거리로 혹은 더 멀리 벌어졌다. 나는 계속 읽었고 어찌됐든 앞으로 나아갔으나 그는 제자리에서 고민만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이 그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옹호 발언 아니고 실제로 그렇다. 가끔 처절하게 밑으로 가라앉았고 싸움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토론을 나와 격하게 했으며 그 나름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다만 철저히 '혼자서' 고민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함께 읽자고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과정에서 말하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껏 그것을 외면하고 살았던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꼭 말로 해야 알아? 응, 꼭 말로 해야 알아. 말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이 한 문장이 다양한 사람들의 상황에 전부 적용되지는 않을 수 있겠으나 가족 공동체 안에서만 생각해 볼 때는 확실히 그렇다. 말이 없어지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동안의 습관을 부수고 싶었다. 더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의 기분을 살피는 오래된 나의 습성은 아무리 의식적으로 떨쳐내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말이 필요하다. 대화, 일방적이지 않은. 그러기 위해 매개체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책이었으면 했다. 함께 보는 미디어 프로그램이나 영화 같은 것들도 물론 매개체가 된다. 이 매개체를 통한 대화가 실전이라면 책을 매개체로 한 대화는 이론에 대한 것이다. 이론을 바탕으로 한 토론을 통해 생활로 나아갈 수 있다. 옆지기에게 필요한 책은 그런 이론서가 아니었을까. 이유를 찾아가는, 역사를 되짚어보는, 혼란 속에서 잣대를 세워줄 탄탄한 이론서. 솔직히 뭔가 증거와 숫자를 엄청나게 들이대야만 그제야 믿을까 말까 하는 남자들의 속성 때문이라고 후려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얼마간 사실이기도 하고. 어쨌든지간에 <제2의 성> 부분을 읽을 때도 그랬고 <가부장제의 창조> 앞부분을 읽고 읽을 의지가 생긴다는 것도 그렇고, 그의 취향(?) 혹은 선호도(?)를 존중하기로 한다. 어려운 책들을 함께 읽을 동지가 한 명 더 생겼다. 나는 지금 <제2의 성> 2권을 들어갈 참인데, 같이 읽는 건 어떠냐고 제안할 참이다. '현대 여성의 삶'이야. 기혼여성에서부터 매춘부와 첩을 거쳐 노년기 여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흥미롭지 않겠니? 그 다음에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어 역사를 다진 후에 우에노 지즈코나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으면 좋겠구나. 마리아 미즈 책 아직 없는데. 책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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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03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저는 부딪치는걸 싫어해서 혼자 읽는 편이예요
이 책 왜 읽어?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고 노코멘트,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서로 교집합이 없는 부분은 토론 안해요^^
공감하는 얘기 하는것도 시간이 없는데,,, 그렇다고 그런 책을 읽는 제 생각을 모르는 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
둘다 감정소모를 싫어하는 편 ^^

난티나무 2021-10-04 05:03   좋아요 2 | URL
그러시군요. 저는 교집합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생각해보면 대화같은 대화, 솔직한 대화를 못(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