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립된 생활을 한다. 몇 년 전까지는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 있어 고립까지는 아니었는데 모두 이사를 가고 난 후 친구들의 왕래가 끊겼다. 프랑스인 친구를 사귀는 것을 절대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인 친구는 없다. 시골일수록 이방인을 배척하는 문화가 짙어서 10년 이상을 산 마을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산다. 

지금보다 더 철이 없던 30대 초반에는 여기 알라딘에 미주알고주알 페이퍼를 쓰며 이웃님들의 위로를 받았다. 추억을 돌아보라는 오래전 페이퍼들이 뜨면 새삼 그때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분들이 생각나 가슴이 따뜻해지고 한없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알라딘을 떠나있던 동안에는 또다른 인터넷 세상에서 놀았다. 책은 못 읽었지만 거기에도 따뜻한 사람들은 있었다. 말을 나누었고 한국에 들어가면 아주 드물게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연락이 끊어졌다. 많은 부분 내 탓이라 생각한다. 성격 어디 가질 않지. 어떤 공통점을 발견해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는 거의 모든 인연을 쳐내면서 살았던 듯하다.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두고 절대 먼저 넘어가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 나를 알아보고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오는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되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소극적인. 


책을 읽으며, 인터넷에서만 친구를 (그나마) 만들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여성에게 협력적 자아란 어떤 의미인가" "여성들 간 관계의 재배열" "자기 정의(self definition)의 부재" 같은 구절들이 가슴을 툭 툭. 이주민들의 "가장 큰 공포는 낯선 곳에서 외롭게 죽을 수 있다는 것" 은 바로 내 이야기. 질병과 의사와 병원이 두려운, 작은 눈의 아시아 여성. 난 여기에서 죽고 싶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여 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껏 멀리 할 수 있어 다행이었던 관계들이 나를 옥죌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엘 갈 수 있다. 여기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불러모아 음식을 나눠먹고 수다를 떨 수 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손짓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단지 언어 하나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과는 하지 못하고(안 하고) 산다 생각하니 한없이 내가 초라해진다. 핑계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 또한 나다. 단순히 언어 때문이라 퉁 치기엔 원인이 더 복잡한 것 아닌가 또 합리화. 무서울 것이 없어야 하는데 겁이 너무 많다. 그것이 언어에 대한 두려움인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인지 모르겠다. 둘 다인 것 같다. 





어젯밤에 이렇게 적어놓고 새날이 밝았다. 김현미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어느 순간 눈물이 났고, 그런 와중에 힘이 없고 소극적이고 겁이 많은 나에 대한 원망이 조금은 사라졌다. 고립된 생활 속에서 나는 그래도 쓰러지지 않았다. 자주 아팠지만 병들지 않았다. 우울했지만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나를 칭찬하기로 한다. 

언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나도 그 이후의 나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를 도와주었던 분들,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 분들, 비록 얼굴도 모르고 인터넷상에서만 만나는 분들이지만, 그럼에도 모두에게 고맙다. 내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버팀목의 많은 부분이다. 주변에서 찾을 수 없는 친구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고 연결될 수 있음에 다시 감사하기로. 직접 만나지 못하는 제약과 한계가 얼마간은 장점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것 말고는 나에게 연결고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나를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그러다보면, 어쩌면, 이곳에서도 한걸음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얼굴에 철판을 까는 용기를 조금은 내어볼 수 있을지도, 몰라. 이제는 선을 끊는 사람에서 잇는 사람으로. 제발. 



"일상생활에서 너무 지치고 내가 현재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계속 망각이 일어나잖아요. 내 자존감을 충족하지 못하고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을 때, 삶의 균형을 맞춰가려면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의례화된 형태의 사회적인 관계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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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12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이 글 너무 좋아요~♡
공감되는 부분도 너무 많고요. 저는 외동이라 그런지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더 많아요. 대신 혼자인 시간은 오롯이 나를 들여다볼 여유를 주기도 하니 진정한 관계를 위해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해요. 이렇게 온라인에서의 만남도 이곳에서 참 특별하게 생각하게 됐고요. 그런 면에서 좋은 글로 마음을 나누어주시는 난티나무님 항상 응원하고 있고 저도 오늘 칭찬드립니다~🤗

난티나무 2021-09-13 17:37   좋아요 1 | URL
부끄러운데 공감해주셔서 늠 감사해요 미미님. 좋은 말씀도~
흑흑 울고 싶다...^^;;;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더 많아요‘ 이거 저도 그래요. 그래서 사람의 성격을 소극적이다 적극적이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하고요.
여기는 오늘 아침 해가 좋습니다. 미미님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시기를~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