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지즈코, <불혹의 페미니즘>
'불혹'을 글자 그대로의 '불혹'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중의 의미로 독자들을 낚은 사례의 하나가 아닐까. 일본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일본의 40년 페미니즘 역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과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좀 버거웠다. 처음 읽은 우에노 지즈코의 책이라, <나의 행복한 페미니즘 공부법>에서 묘사되는 지즈코 선생님의 날카롭고 속시원한 문장들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앞부분 밑줄 긋고 나서 뒷부분에는 옮겨놓고 싶은 구절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구절들은 속 시원하지 않나?
"정론은 시시하다. 말해봤자 소득 없이 끝나기 때문이다. 성차별은 악이다. 매춘은 나쁘다. 그렇다. 그래서, 뭐?
정론을 아무리 떠들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정론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고, 정론으로 인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론대로만 된다면 세상에 힘들 게 없을 것이다. 정론이 시시한 까닭은, 정론으로 왜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와 오만함에 있다. " (전자책 8% 지점)
"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됐습니다, 당신들 앞에는 여성해방에 앞서 자기해방이라는 큰 과제가 놓여있습니다. 부지런히 '맨리브'부터 하십시오"라고 대답해왔다. " (전자책 29% 지점)
('자기해방'. 진심 와닿는 단어였다. 남성의 자기해방. 부디.)
일본에서의 페미니즘 운동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엿보면서 우리 나라 페미니즘 운동과 역사 이야기를 역시나 잘 모르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괜찮다. 이것저것 읽다 보면 길들이 만나 합쳐질 것이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불혹의 페미니즘>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읽겠냐고 묻는다면, 절레절레.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