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존재하던 사람이 사라지는 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일.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어떤 이의 죽음이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일.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처음 친지의 죽음을 접한 건 20대 후반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큰집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살아생전 몇 번 뵙지도 못했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더더욱 없는 할아버지, 나는 죽음이라는 걸 실감하지도 못하고 관이 나갈 때 울며 뒤따르는 고모들을 보며 꿋꿋이 서있었다. 너는 어째 눈물 한 방울 흘리지를 않니. 나오지 않는 눈물을 어떻게 억지로 흘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 후 시집에서 몇 번 장례식을 봤다. 내 할아버지의 죽음에도 울지 않던 내가, 얼굴도 잘 모르는 남의 집 식구의 죽음에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그 눈물은 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날 그 집의 분위기와 말들 때문이었던 듯.
가끔 생각한다. 사라지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나는 엄마가 사라지면 슬플까. 나는 아빠가 사라지면 울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건데 그래도 괜찮냐고 묻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 거지, 하고 돌아서 어쩌면 코가 시큰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방인>의 레몽이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던 것을 이해한다. 각자의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이 더 필요하다.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껏 죽음이라는 걸 멀리서 바라본 경험밖에 없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 그 사이 누군가들은 점점이 사라졌지만, 나에게까지 연락이 올 일은 드물었고 연락이 오더라도 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만약 내가 보부아르처럼, 죽어가는 누군가를,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면, 그때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그래서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누워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이제는 여기저기서 부고가 날아들 나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겁이 나서 부모님과 통화할 때 하나마나 한 말을 내뱉는다. 아프지 말아라. 아픈 사람도 고생이지만 옆에 있는 사람도 고생이다. 씁쓸한 것은 이런 소리를 내 엄마한테는 하는데 아빠나 시집 어른들한테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자식의, 주로 딸의 보살핌과 병간호를 당연히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보부아르는 이런 씁쓸함을 초월했다. 어머니와 화해(또는 용서)를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미움과 증오와 상처를 제껴두고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또한 자기와의 타협이 아닌가. 이기적인 나는 이렇게 삐딱하다.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럴 수만 있다면 '편안한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남는 사람들이 덜 힘들게,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덜 힘들게, 그렇게 편안한 죽음을 바라는 것이 잘못일까. 죽음 앞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은, 주고받은 상처들은, 이해되고 용서될 수 있는가. 그러니 결국 죽음이라는 것도 관계의 일부분인 것이다. 보부아르의 자리에 서보고 그의 엄마 자리에 서보고, 수많은 상상을 펼쳐보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건'을 만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까. 울지 않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