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환경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적 환경에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도 일으키지 않고,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침대 옆에 있는 책부터 펴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꼭 내게 읽어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책을 정리한 글을 써서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남편과 나의 책 취향은 꽤 다른 편인데, 내가 남편의 관심 분야에 무관심한 것과는 달리, 남편은 내 관심 분야에도 관심을 놓치지 않고 괜찮은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꼭 선물로 사서 준다. 간혹 내가 남편 분야에 관심을 보이면, 남편은 입문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책까지 차근차근 선물해준다. 자부한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책 친구를 나는 가지고 있다."
첫 페이지를 읽으며 좌절한다. 거실은 물론 방 한 칸 전체를 도서관처럼 꾸몄다는 글쓴이의 집도 부러운데 그 다음 구절은 더 부럽다. 책 친구. 눈을 뜨자마자 책부터 펼치는 사람.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사는 남자가 떠올랐고, 미워졌고, 그러다가 나는? 에 생각에 미치자 그만 부끄러웠다. 나는 옆지기의 관심 분야에 무관심하다. 눈을 뜨면 스맛폰부터 집어든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기도 하지만 옆지기에게 읽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써서 읽히기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가끔 읽으면 좋겠는 책을 추천하고 사주곤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읽히는 일은 어렵다. 내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내가 먼저 책의 좋은 구절을 읽어주고 내가 먼저.......... 이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러나. 그러나. 나도 하지 않고 옆지기도 하지 않으니 피차 공평한 일인가? 우리는 그러니까, 책 친구는 될 수 없는 거지, 앞으로도.
서너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 이 책에서 또다른 부러움과 좌절을 맛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