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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딸 - 제3세계 소년 소녀의 희망을 보다 - 인도 편 ㅣ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13
글로리아 웰런 지음, 엄혜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4월
평점 :
중학생 여자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의 소개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과 중등인 우리 아들들에게 일부러 여자가 주인공인 책들을 자주 권한답니다. 삼국지나 초한지, 역사 책, 인물전 등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은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찾아 읽잖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초원의 집이나 말괄량이 삐삐, 빨강머리 앤 같은 책들도 아주 좋아하며 잘 보았답니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제가 먼저 생각을 정리할 겸 여기다 리뷰를 남겨 봅니다. 벌써 아영 엄마 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께서 리뷰를 남기셨고, 특히 아영 엄마님께서 사회적 관습과 성차별 문제에 대해 아이들과 토론해 보면 좋을 거라는 좋은 말씀을 남겨 주셨기에 저는 관습으로 인해 인간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관습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 통하는 고리타분하고 별 중요치 않은 이야기일 것 같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관습은 '일정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습관화되어 온 질서나 규칙'(동아 새국어사전, 1995)으로, 현행 민법에서도 관습법이 성문법에 우선할 정도로 관습의 힘은 생각보다 무섭답니다.
이 책의 배경인 인도는 세계 몇 위 안에 들 정도로 넓은 땅을 소유한 나라로, 첨단 IT 기술 산업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카스트 제도[사람의 계급을 신분에 따라 나눈 것으로, 브라만(사제 등 신에게 제사지내는 신분) - 크샤트리아(귀족, 무사, 통치자)- 바이샤(상인, 농민, 수공업자 등) - 수드라(노예 등 일꾼) - 불가촉천민(그림자조차 밟아선 안될 낮은 신분)] 등 인간 차별의 지배계급 구조가 공존하는 특이한 나라입니다. 결혼도 같은 계급끼리만 할 수 있는 등, 오늘날 문명화된 나라들에서는 모두 없어진 인간 차별의 지배 계급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물론,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여자들은 학교 공부도 배우지 못하며 조혼과 다우리(지참금), 사띠(남편이 죽으면 산 채로 동시에 화장되는 것) 등 불평등한 악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관습에 의한 고통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콜리 역시 열 세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됩니다. 그렇게 한 결혼이 행복하게 이어진다면 다행이겠지만, 결혼식장에서 본 남편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병색이 짙은 폐결핵 말기 환자로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시누이와 같은 방을 쓰게 됩니다. 콜리의 친정은 브라만 계급이지만 넉넉지 않은 살림이라 겨우겨우 지참금을 마련했는데, 시부모님은 그 돈을 아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갠지스 강에 데려갈 경비로 쓰려고 결혼을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리의 남편인 하리는 갠지스 강에 간 다음 날 상태가 악화되어 죽고 맙니다.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은 여자를 재수 없는 여자로 취급당하고 친정 가문에 먹칠을 한다는 인식 때문에 콜리는 친정에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콜리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시부모들인데도 그 시어머니는 오히려 콜리를 더욱 구박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콜리는 시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워 타고르의 시집을 읽으며 언젠가 새처럼 새로운 땅으로 날아가리라 마음 먹습니다. 그러나 친자매처럼 지내던 시누이 찬드라가 시집을 가고, 글을 가르쳐 주시던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시어머니에게마저 과부의 도시에 버림 받은 콜리는 절망의 바닥에 떨어집니다. 희망의 끈을 놓치기 직전에 콜리는 운 좋게도 릭샤꾼 라지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과부들의 재생을 돕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며 자신의 특기인 퀼트 자수를 놓는 일을 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어느 날, 콜리는 총각인 라지의 청혼을 받고, 라지가 시골에 마련한 농토가 딸린 집에서 자수 일을 하며 살게 되는 행복한 새 삶을 얻게 됩니다.
책 속에서 과부인 콜리는 총각과 결혼하게 되지만, 인도에서 실제로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또 책 속에서 콜리는 해피 엔딩을 맞게 되지만, 어린 소녀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마땅히 존중받으며 자라야 할 아이가 4년 동안 겪은 이야기치고는 너무 가혹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인도 소녀들이 남편과 가족에게 노예처럼 대접 받으며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잘못된 관습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도 당사자인 인도인들은 그 관습을 당연시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불가촉천민들까지도......
한 사회에 관습이 자리하기까지는 몇 백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됩니다. 그 관습이 잘못된 것이라 뿌리를 뽑는다 해도 역시 그에 맞먹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관습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요? 가장 빠른 방법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에 뿌리 내린 잘못된 관습이 하루 빨리 뿌리뽑혀지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