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 2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TV 책을 말한다'(장정일이 사회를 본다기에 찾아 봤다.)에서 청소년기에 읽어야 할 책, 감동을 줬던 책이야기를 하는데 '전태일 평전'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제인에어'''마린을 찾아서' 같은 책들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난 '전태일 평전'을 안 읽었다. 쪽팔리는 짓이다. 대학을 나왔다는 인간이....

*저녁 6시30분 쯤 동네 도서관에 가서 10시까지 읽고, 집에 와서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진짜를 산 사람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글로 읽으니 다르다. 전태일의 수기를 읽고, 삶을 돌아보고, 자료도 찾고 미루어 짐작도 했을 조영래..도 대단하다.
전태일이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냉방에 앉아 밤 늦게까지 쓴 수기, 소설, 청계천피복상가들의 노동 현실을 고발한 글들....그런게 글이 가지는 힘이다. 글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테고.
이 책을 소개한 이가 전태일은 성자다, 라는 말을 다른 시인의 입을 빌려 했는데, 맞다.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인간으로 보기에 그 고통과 슬픔이 감당이 안간다. 그래서 무책임하게(시인은 다른 의미였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성자라고 하는데는....)성자라고 말해버린다. 안 그러면 같은 인간으로 내 모습이 너무 쪽팔려서.

*강풀의 '518'에 대한 만화를 보고,(강풀의 만화는 그림이, 글이 특별히 좋지도 않은데, 읽고 나면 공감이 되고 감동을 준다. '다음'에 연재한 '바보'를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 너무 뻔하고 신파라고 생각하면서, 챙겨보고 눈물도 찔끔나고. 소시민같고, 옆집 총각같은 이 사람이 주는 진정성 때문인가. 어쨌든 '다음'이라는 매체에 그런 발언(만화라기보다는 발언)을 싣는 용기.)'전태일 평전'를 읽고.
일상을 때우면서 살아가다 현실을 잊고, 눈을 돌리고....뭐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어지럽게 들려오는 쇠금속 소리. 짜증 섞인 미싱사들의 언성. 무엇이 현재의 실재인지를 분간 못하면서, 그 속에서 나도 부지런히 그들과 같이 해나갔다.
무의미하게. 내가 아는 방법 그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이외에는 무아지경이다.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도 순서대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될 행동만이 질서정연하게 자동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일의 방관자나 다름없다. 내 육신이 일을 하고,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때까지의 육감과 이 소란스런 분위기가 몇 인치, 몇 푼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 긋고 나라시가 되고, 다 되면 또 재단기계를 잡고 그은 금대로 자르는 것이다. 누가 잘랐을까? 이렇게 생각이 갈 때에는 역시 내가 잘랐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이 생각이 확실해질 때는 퇴근시간이 다 될 때이다.
세면을 하고 외출복으로 바꿔입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오면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고 몇 마디 지껄이다가 드러누으면 그 걸로 하루가 끝나는 거다.
-1967년 3월 일기에서(전태일 평전 130쪽)

*우리는 흔히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줌도 못되는 '소수'의 억압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고 말하며 또 그러한 사례를 수없이 본다. 가끔 영화 같은 데서 수많은 노예들이 채찍에 시달리며 묵묵히 중노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 어째서 저 많은 노예들이 불과 몇몇의 감독자들에게 굴종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왔다. 인간사회가 형성된 이래 이러한 사태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요소들이 사회적 민주화의 장애가 되고 있는 나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특히 들어볼 만한 설명은 억눌리는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조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조직된 소수'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그러나 거기에 앞서서 우리가 이야기하여야 할 것은 바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노예의식'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 노예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하여 주장하고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그들의 조직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며 조만간에 그들은 '조직화된 다수'로서 '조직된 소수'인 억압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마로 민중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민주를 지향하는 사회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봉건시대 이래 잔존해오고 있던 이러한 억압/피억압의 관계를 우리는 불식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아직도 저 '노예의식'의 찌꺼기, 깨어나지 않는 혼미의 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사회적 민주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전태일 평전 133~134쪽)

*아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목소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전태일이 가난하고 못 배운 밑바닥 인간에게 강요되어온 무력감과 열등의식을 완전히 청산해버리고, 자신의 힘과 인간성의 승리를 확신하는 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제 발로 선 것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전태일의 성숙한 모습, 한 각성된 청년노동자가 스스로의 인간적인 책임에 대하여 가지는 강한 자긍을 보는 것이다.
....
목숨을 걸지 않는 '투쟁'은 거짓이다. 그것은 소리치는 양심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달래는 자기 위안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죽음의 문제이며, 죽음의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이다. 비인간의 삶에 미련을 갖는 자는 결코 인간으로서 죽을 수 없고, 따라서 결코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 전태일이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인간의 삶에 대한 온갖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태일 평전 232~233쪽)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나의 나인 그대들.
(2005.5.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놓치지 말자! 이 만화!!!
검은 대륙 - 만화로 세계읽기, 환경
에머슨.몽텔리에.베지앙.트롱댕.블러치&므뉘 지음, 이경아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의 왕>과 같은 시리즈. 고흐도 그랬단다. '결국 자연과 화가는 하나다.'라고. 환경 문제를 다룬 만화들.

산책: 루이 트로댕:프랑스
저번에 어디 도서전가서 싸인 받구 나서 관심이 생긴 작가. 진보적인 시인을 환영하는 라소시아시옹 출판사 창립 멤버 라네. 출판사 소개가 재밌다.
-석도<화어록> 찾아보기.
굉장히 수다스러운 만화. 전형적인 파리지엔느들이 시골에 와서 산책하는 광경인데 그 수다가 전형적인 프랑스 사람 같다. 이 사람 만화는 시끄럽다. 지금까지 본 걸로는. 프랑스 역시 도시/ 시골 분리가 심하구나.

마법의 칼리: 헌트 에머슨: 영국
'기묘한 유머로 고전 각색' 한다기에 이 작품 역시 칼리박사(희미한 기억이지만 그런 제목의 흑백영화를 봤다.)
를 다룬 줄 알았는데, 인도의 파괴신 칼리의 칼리인가 보다. 얼척없고 웃기다.

친애하는 초파리 귀하: 샹탈 몽텔리에
녹색당의 여성 총리 더러운 파리 무리로 6개월 만에 무너지다.

아른하임: 프레데릭 베지앙

라 프레지당트: 블러치와 므뉘
'노르파드칼레 지방 여성 지방장관 마리 크리스틴 블랑댕' 환경을 이슈로 내세운 정치인에 대해 취재한 걸 만화로.
'팔레스타인'처럼 취재한 과정 자체를 만화로 담아낸게 재밌다. (2005.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놓치지 말자! 이 만화!!!
돈의 왕 - 만화로 세계읽기, 돈
보두앵.오트.델 바리오.프뮈르 지음, 이승재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42 04 06 088 198 에드몽 보두앵:프랑스
-저번 형제만화공업사 갔을때 누가 보여준 만화 작가. 이름을 까먹었는데, 책을 펼치니 딱 나오네.
'거칠고도 유연한 붓그림'이라...만화의 범주가 넓구나. 캐테 콜비츠가 그린 사람 얼굴 같다.
제목의 숫자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격인 사회보장번호.
낙오자, 패배자 이야기.

백만장자의 꿈 : 토마스 오트: 스위스
두꺼운 종이를 긁어내는 방식이라...
대사 한 마디 없는데, 분위기 인물이 생생하다. 인물도 디게 많은데,
내용은 엮이고 꼬이는 영화 같다. 돈 가방 하나로 비롯된 사람 욕심. 돈이 불러온 꼬리를 무는 죽음.
요샌 영화에서 이런 내용이 많아서 흔하긴 하지만, 잘 그렸다.

포기: 페데리코 델 바리오: 스페인
돈을 가지고 천사와 악마의 말다툼. 대결도 아니고 천사가 일방적으로 당한다.
암, 상대도 안돼지...

다나에: 프뮈르:프랑스
동방박사의 재림-그림. 수십 마리 포유 동물이 한 놈을 죽어라 고문하는 그림. 고문 당한 동물의 상처에선 끊임없이 금화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제우스는 다나에의 마음을 사기 위해 황금 소나기로 변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한 구절로 미친 짓을 하는 구두쇠 들루씨 이야기.
이 한 권에서 가장 재밌다. (2005.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고, 또 읽고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 - 노래 만드는 사람 백창우의 아이들 노래 이야기
백창우 지음 / 보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 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 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 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정호승, '밥그릇'

*정호승 시집을 본 적이 없다. 백창우 글에서만 본다.
그렇게 한 다리 건너서 맛본 시여서 더 좋다. 아마 시집을 봤으면 발견 못 했을 것 같다.

'마음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억지로 한잠 자고 일어나 방을 치운다. 어지르고 치우고 또 어지르고 또 치우고, 이 뻔하고 뻔한 되돌이표. 내 방이나 내 삶이나 뭐 다른 게 없다. 시도 노래도 삶도 사랑도 맨날 어지르고 또 치우고.
내 마음 하늘이 오늘도 캄캄하다.'
-'띄엄띄엄 쓰는 일기' 에서

*어떤 책은 읽고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금요일 오후여선가. 훑어보겠다고 붙잡은 책을 읽어버리고 계속 이 책만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백창우 노래를 듣고, 시를 보고, 책을 봐야 할 것 같은.
근데, 시간을 보라. 근무 시간 아닌가. 미친게다. 이러면 안된다. 내 맘대로 하라고 월급 받는게 아니다.
근데, 내 맘대로 좀 하면 안되나. 아까 '안녕, 프란체스카' 작가가 한 말이 계속 남는다.
엘리자베스 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거였는데,
<패션감각이 뛰어나 출근길에 빨랫줄에 걸린 옷으로 슥슥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설정도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알고 보면 프란체스카와 오랜 라이벌이다. 그런데 려원이는 정작 치마 입는 것도 화장도 좋아하지 않고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도 불편해 했다. 배우의 감성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친 결과 지금의 엘리자베스는 남성 종족 전체에 대해 거만해져 있는 캐릭터다.> 그 배우를 최대한 보여주는 캐릭터.
작가를 만나면 실장님은 뭐에 관심있고, 뭘 하고 싶은지 묻는다. 나도 본따서 이 일이 하고 싶은 일인지, 관심있는지 물어본다. 예술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역량발휘가 잘 되나. 나도 마찬가지지 뭐. 어쨌든 이 말은 근무 중에 딴짓하는데에 대한 변....
또 하나의 변명을 하자면, 책에 이런 말도 있더라.

'시간은 멈춰 서지 않는다. 어떤 순간도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스무 살에는 스무 살의 노래가 있고 스물아홉 살에는 스물아홉 살의 노래가 있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
(2005. 4. 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 2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