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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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 - 노래 만드는 사람 백창우의 아이들 노래 이야기
백창우 지음 / 보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 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 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 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정호승, '밥그릇'
*정호승 시집을 본 적이 없다. 백창우 글에서만 본다.
그렇게 한 다리 건너서 맛본 시여서 더 좋다. 아마 시집을 봤으면 발견 못 했을 것 같다.
'마음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억지로 한잠 자고 일어나 방을 치운다. 어지르고 치우고 또 어지르고 또 치우고, 이 뻔하고 뻔한 되돌이표. 내 방이나 내 삶이나 뭐 다른 게 없다. 시도 노래도 삶도 사랑도 맨날 어지르고 또 치우고.
내 마음 하늘이 오늘도 캄캄하다.'
-'띄엄띄엄 쓰는 일기' 에서
*어떤 책은 읽고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금요일 오후여선가. 훑어보겠다고 붙잡은 책을 읽어버리고 계속 이 책만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백창우 노래를 듣고, 시를 보고, 책을 봐야 할 것 같은.
근데, 시간을 보라. 근무 시간 아닌가. 미친게다. 이러면 안된다. 내 맘대로 하라고 월급 받는게 아니다.
근데, 내 맘대로 좀 하면 안되나. 아까 '안녕, 프란체스카' 작가가 한 말이 계속 남는다.
엘리자베스 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거였는데,
<패션감각이 뛰어나 출근길에 빨랫줄에 걸린 옷으로 슥슥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설정도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알고 보면 프란체스카와 오랜 라이벌이다. 그런데 려원이는 정작 치마 입는 것도 화장도 좋아하지 않고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도 불편해 했다. 배우의 감성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친 결과 지금의 엘리자베스는 남성 종족 전체에 대해 거만해져 있는 캐릭터다.> 그 배우를 최대한 보여주는 캐릭터.
작가를 만나면 실장님은 뭐에 관심있고, 뭘 하고 싶은지 묻는다. 나도 본따서 이 일이 하고 싶은 일인지, 관심있는지 물어본다. 예술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역량발휘가 잘 되나. 나도 마찬가지지 뭐. 어쨌든 이 말은 근무 중에 딴짓하는데에 대한 변....
또 하나의 변명을 하자면, 책에 이런 말도 있더라.
'시간은 멈춰 서지 않는다. 어떤 순간도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스무 살에는 스무 살의 노래가 있고 스물아홉 살에는 스물아홉 살의 노래가 있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
(2005.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