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같이 앉으면 좋은데.
 
   내 얼굴을 슬쩍, 그리고는 뒤를 한 번 돌아본다.
   버스 안 내 옆자리에 앉은 꼬마의 말이다.
   연신 핸드폰의 DMB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액정을 문지른다.
   내게 자리를 비켜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이건.
   내가 자리를 비켜야지만이 같이 탄 할머니와 황금시간대의
   일일드라마를 핸드폰으로 함께볼 수 있다고,
   자꾸 내 얼굴을 훔치듯 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때 난, 다른 좌석이 비었음에도 꼬마의 행동이 우스워
   모른척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움직이기 귀찮았으며, 내 옆에 선 아저씨가 신문을 펴드는 바람에
   버스 천장에 붙은 불빛을 가려 책을 볼 수 없어 신경질이 났다.
   가방만 살짝 만지작거려도 내리는 줄 알고 나를 쳐다보는
   꼬마의 고개짓에 질려 결국, 비켜주기는 했는데 책 읽을 마음은
   사라진 후였다. 재밌는 책인데, 어서 읽고 싶은데. 

  


   권리의 「암보스 문도스」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읽기 전 부터 읽기 싫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정말이다, 난 에세이가 싫다.
   유일하게 읽은 에세이를 말하자면
   이병률의 「끌림」뿐이다. 어쩌다 읽게 되었다.
   근데, 이 책 특이하다.
   자전적이기도 하고 자아고찰식의 에세이적 소설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재미있고, 무의식적으로
   별 다섯개를 꽝꽝 찍어대고 있다.
   
 

 

 

 

   김도언의 「꺼져라, 비둘기」
 
   신뢰하는 출판사이기도 하지만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작가의 책이기도 하다.
   한 때 좋아했던 남자의 이름과 비슷하기도 해서다.
   신간인데도 불구하고 광고가 전-혀 없지만
   참 괜찮은 책이다. 쉽고, 친절하다.
   이미 읽기는 했지만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책을 받아들고 너무 감격해서 책을 읽는 시선보다
   흥분된 마음들이 먼저 뛰쳐나간 페이지가 수두룩하다.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좋아하는 책이고 좋아하는 작가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최근에 선물 받았다.
   문을 닫는 대여점에서 업어 와 많이 헤진채로
   책장에 꽂혀져 있는데 빳빳한 새책으로 받아드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무지무지 좋다.
   그 어떤 문장도 버리고 싶지 않을만큼
   참, 괜찮은 책이다.
    

 

    

 

   그리고, 무릎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 술 먹고 까불까불 걷다가 넘어졌다.
   버스안에서 노래를 부를만큼 취한 나를 내 예쁜 동생이
   노래방으로 데려다주었다.
   취한 탓에 상처도 아픈 줄 몰랐는데, 구멍난 스타킹을
   벗으니 '헉' 소리가 날 만큼 아프다, 엉엉. 

   이미지 점검 중이라고 사진 올리기가 안되는구나 .. .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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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yours 2011-04-2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오랜만에 신경숙 작가의 책들을 다시 읽었어요.
<기차는->에서는 그녀의 장편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아무도 죽지 않아서 조금은 편한 마음이었던 기억.
 
꺼져라, 비둘기
김도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비둘기떼가 나타나 우리 마을을 점령하고 부터 사람들의 인심은 몰라보게 흉흉해졌다.

어디서건 부리를 부딪히며 먹이 다툼을 하는 비둘기를 닮아 간 것이다.

 

 


 이 소설, 참 친절하다- 라고 생각한 건, 갑작스레 이야기를 끊고 소설의 인물들을 하나 둘 밖으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페이지를 맞닥뜨린 후였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생각치도 못했던 등장인물의 섬세한 소개글을 훑어 본 후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튀어나오길래 등장인물 소개까지 하나 싶었는데 소설의 끝과 마주해보니 그게 아니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작가의 마음도 눈치챘지만 읽는 독자에게 정확하게 이 소설을 쓰는 이유와 읽는 방법을, 전봇대 뒤에 서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새침데기인 척 하며 일러준다. 그래 이 소설, 끝까지 친절하다. 그리고 이러한 친절 역시 작가의 의도란다. 작가의 말에 버젓이 친절한 소설이 쓰고 싶었다는 말에 진작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내 자신이 대견했을만큼 놀라웠으며 기뻣고 탄성까지 내질렀음이다. 비록 작가가 의도한대로 흘러간 내 생각들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 생각과 작가의 의도가 일치했던 적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유유자적 날아다니고 싶을만큼 기쁘다. 에정대로였다면, 2월에 출간이 되었을 책인데 좀 늦은감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김도언 작가의 이 책을 2월 부터 내내 기다려왔다. 그렇다고 내가 김도언이라는 작가를 잘 아는것도 아니다. 좀 솔직해지자면 난 겨우 김도언 작가의 소설집에 실린 단편 하나만을 읽었을뿐이다. 그런데도 왜 기다렸느냐,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이다, 정말. 기다리고 싶었을뿐이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러고 싶었다. 그랬기때문에 누구보다 더 먼저 읽고 싶었고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매일같이 인터넷 서점을 들쑤시며 나와라, 나와라 주문을 걸었으며 결국엔 가장 빠르게 배송이 되는 곳에서 배송비까지 들이며 -인터공원은 신간도 배송비를 받더군- 주문을 했다. 두근 두근, 책을 받아들고는 마냥 웃음만 나왔더랬다.

 

 소설 「꺼져라, 비둘기」는 제목 그대로 비둘기에게 점령당한 특색 없는 소읍인 토담리에 사는, 비둘기를 구워 먹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열여덟 살의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이산이라는 이름의 순박한 소년의 시선에서부터 시작한다. 평화의 상징과도 같은 이 비둘기가 토담리에서는 불행의 상징이자, 이 마을에 '악'을 불러 온 근원이었다. 마을 변두리에 타이어 공장이 들어서면서, 몰려드는 비둘기는 토담리를 병들게 했으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인심과 평화를 쪼아먹는 흉물과도 같은것이었다. 이산의 어머니 역시 이 비둘기로 하여금 목숨을 잃었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했으며 결국, 이 작은 소읍은 비둘기들이 싸지르는 똥으로 범벅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더럽혔다. 유해 동물로 발표 된 비둘기, 그것은 토담리의 중심이었으며 마을의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점이 된다.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똥을 싸지르는 비둘기들로 인해 더럽혀진 옷과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는 세탁소 주인 박씨 아저씨와 목욕탕을 운영하는 주씨 아저씨가 작가가 배치해놓은 소설의 대표적인 '악'이다. 작당하고 비둘기에게 닭 사료를 뿌려대니 살이 찐 비둘기들은 하늘이 아닌 땅을 딛고 사는 동물이라 치부해도 모자라지 않다. 또한, 이산이 불의의 사고로 씨름을 그만두고 아버지와 새엄마가 운영하는 '비둘기네 해장국' 식당에서 일을 거들면서 이상한 알약을 매일같이 건네는 새 엄마 옥미희와 그의 아들 조만세 그리고 한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기도 한 오토바이 상회의 계씨네 형제가 '악'의 표본이다. 이렇게 소설의 악역을 맡은 인물들을 적고 보니 꼭 소설에서 그랬던것처럼 갑작스레 튀어나와 부당하다고 소리를 지를 것 만 같다.

 

 어떠한 사회든, 단체든 그것이 크든 작든 선과 악은 공존한다. 단지 이 사회는 '악'을 발설해도 되는 것과 발설되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나뉠뿐이고 '선'은 적당히 걸러내어진 불편함일 뿐이다. 진실이 불편하다고 생각되기 시작한 건, 위선과 오만과 패악으로 뒤틀려버린 사회의 '발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선'이란 누군가가 '선'의 지반 자체를 흔들거나 알려하지 않는 이상 발각되어지지 않는다.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소멸을 해버리는 것이다. 소설은, 이런것들을 구태여 발설하지 않거나 숨기지 않는데서 집중 할 필요가 있다. 때려 죽일만큼 나쁘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착하게 구성되어진 소설이라는 것, 그것은 시인을 꿈 꾸는 두 번째 화자인 '선'의 역할을 맡은 영민의 시선이 소설에 닿으며 확실해진다. 소설에서의 '선'은 전직 씨름 선수였지만 이산의 어머니인 아내를 잃고 삶의 의지를 잃은 이산의 아버지와 이산의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몸을 의탁해 온 실래씨 그리고 첫 번째 화자였던 이산이 '악'과 대조되는 대표적인 '선'이다. 또한, 비둘기가 들어서고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사나워지면서 손님 없는 한의원을 운영하며 <비둘기 추방을 위한 주민들의 모임>을 이끄는 영만의 부모가 그들이다. 대체로 영만은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인 실래씨에게 시선을 맞춘다. '사랑' 그것은 위대했다, 라고 말해도 무방할만큼 영만은 실래에게, 실래는 또 영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는 것을 증명키라도 하듯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선'은 '악'에게 위협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선' 또한 '악'을 평정하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귀신에 홀린 듯, 극악스럽고 앙칼진 이산의 새엄마, 옥미희를 받아들였던 이산 아버지의 넋 나간 외로움과 공허가 불러 온 '선'의 포효, 그래 그것은 묵묵히 숨을 고르던 '선'의 발각이었다. 소설은, 영만의 어머니가 비둘기를 잡기 위해 만든 그물을 던지며 화자들의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꺼져라, 비둘기」라는 이 소설이, 아주 소설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악'은 떠나고 '선'은 남는다는 것이다. '필요 악'으로라도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악'은 다양한 형태로 '선'을 기만하는 사람들이 잘 지키고 있음이 사실이다. '선'과 '악'의 공존, 그것은 불변이자 진리이며 명백한 사실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회를 드러내놓고 비판하거나 소설과 엮어 대립이라도 시켜보면 좋으련만 지식이 빈약해 더 깊이 들어서지는 못하지만, 소설은 소설다웠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바라고 희망하는 소박하고 단아한 유토피아- 그래, 나는 그저 이 소설만큼이면 충분 할 것 같다. 영롱하게 빛나던 영만의 사랑처럼, 애틋함에 타오르는 사랑을 하며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기대어 나에게 주어진 적절한 삶의 속도로 걸어가고 싶다. 다만, 그것이 한 낮의 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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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5-1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준님 조근조근 말하는 게 좋아서, 내친김에
리뷰 당선된 거 보고 읽었네요.
사실 남의 리뷰 잘 안 읽는 사람 중 한 사람이거든요, 저.
이 책은 여러모로 준님께 좋은 의미로 남는 책 같아요.
전에 어느 페이퍼 보니까 우수 리뷰로 당선 됐다고 한 것 같은데
여기는 아니고 다른덴가 봐요.
근데, 김도언 작가가 이 책을 낸다는 건 어떻게 아시고
그리 애간장을 녹인 걸까요? 수상해요. 알려줘요!ㅎ

June* 2011-05-12 17:38   좋아요 0 | URL
 
 
 있잖아요, 실은.
 별 다섯개는 무리가 있기도 했어요.
 리뷰를 쓰면서 제 리뷰가 이 책의 첫 리뷰가 될 것을 알고 있었고
 첫 리뷰가 되면 작가님 눈에 띄게 될 거라는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일방적인 객기 부린 노출이기도 했어요.
 
 작가님은 트위터에서 알게 되었어요.
 트위터에서 2월에 소설 출간소식을 접하고, 기다리는 중에
 작가님 블로그까지 알게 되었거든요. 종종 새 글이 올라오면 다녀간
 발자국을 찍었어요. 그러다 블로그에서 곧 책이 출간이 된다는
 글을 발견하고는 일등으로 책을 구매하겠다고 덧글을 달았거든요.
 
 저는 약속대로 책을 구매했고 ( 아마도 온라인 서점에선 1등! ) 
 리뷰를 쓰고 (이건 정말 1등!) 기다렸어요. 작가님이 보러 와 주길.
 이틀만에 작가님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셨더군요. 만세를 불렀어요.
 얼굴이 달아오를정도의 기쁨이 온 몸을 감싸안더랬어요, 헤에.
 
 홍대에 다녀갈 일이 있다면, 커피 한 잔 타줄테니
 연락하라며 네이트온 주소까지 알려주시더랬어요.
 마음은 이미 작가님 앞에 앉아 두 손으로 모으고 있었지만
 부끄럽고 낯섬에 여즉, 친구추가도 못했어요.
 
 우연히 김도언이라는 작가의 트위터와 블로그를 알게 된 것이
 행운이었어요. 그것이,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구요.
 
 
 
 
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그러니까 만에 하나

네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면,

그때는 거리낄 것 없이 그 사람 품으로 가거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아, 다행입니다. 에쿠니씨' 했다. 도저히 소설, 그 자체만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전작 「빨간 장화」나 「달콤한 작은 거짓말」과 같은 처참한 여운에 휩싸일까봐 지레 겁부터 먹은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래 그리고 지속적으로 작품을 출간해내는 그녀를 보면서 슬슬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싶었던거다. 간결한, 흩어지는 문체를 써도 너그러이 받아 줄 수 있고 인내하며 읽어 줄 수 있는 작가는 에쿠니씨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가슴 벅차게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이번 작품「소란한 보통날」은 특별했다. 전작들과 비교를 하자면 연애 소설 부근에서 끈덕지게 달라붙다가 허무맹랑하게 시집으로 결혼의 단면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본격적으로 결혼 생활을 주제로 두개의 작품을 출간하기에 이르러 이번 소설은 나아가 '가족' 이라는 코드를 어루만지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에쿠니만이 가진 독특한 짧은 호흡 그리고 흩날리는 감성의 파편들이 삶의 본질과 맹목적인 사랑의 이야기들을 펼쳐내는 것, 그것은 이번 소설의 제목과도 같은 그저 '보통' 혹은 '평범' 함이겠지만 에쿠니의 손끝에 머무는 것들은 늘 그랬듯 '보통'의 것에서 오는 '특별함', 바로 그것이었다.

 

 소설이 탄생시킨 미야자카가의 가족은 무심한 듯 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에 충실한 아버지와 작은 움직임에도 세심함이 엿 보이는 어머니를 주체로 이루어진 단란한 가족이다.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품고 있는 큰 언니인 소요와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둘째 시마코,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인 셋째 고토코와 조용한 듯 하지만 사랑스럽고 어른스러운 막내 아들, 리쓰가 미야자카가의 가족 구성원이다. 소설에서 에쿠니씨가 가장 중요시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진 구성원들이 보호를 받는 방식이다. 맹목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내 편'이라는 무한한 신뢰와 믿음, 그것은 소설의 화자인 고토코와 후카마치 나오토와의 연애에서 불거지는 사랑 따위와는 다른 '가족愛' 이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반려자와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반죽음 당한 상태로 이혼을 감행하는 소요의 짧은 결혼 생활을 받아들이는 미야자카가의 모습이 그러했으며, 매번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가족에게 소개 시키는 둘째 시마코의 사랑을 보듬어주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었다. 또한 학교에서 정학을 받을만큼 타인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리쓰의 취미 생활도 하나의 '문화'로 인정해주는 가족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리쓰의 취미를 단순히 취미 생활로 받아들이지 않는 학교측이 너무했다!- 미야자카가의 가족에게는 어떠한 질서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수칙과도 같다. 가족의 생일때에는 생일 당사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거나, 고등학교 졸업때까지는 아침 메뉴가 시리얼이나 채소로 정해져있는 것 따위의 것이다. 적어도 나는, 에쿠니씨의 소설을 읽을때에는 어느 한 주인공에게 에쿠니씨의 모습을 투영시키는데 이번에는 화자쪽인 고토코와 세심한 엄마 쪽이었다. 화자쪽에 시선을 맞춘 이유는 늘 그랬듯 에쿠니씨가 그려내는 사랑은 잔잔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따스했다. 이것은 고토코와 후카마치 나오토가 그리는 연애에서 볼 수 있는데 평범하면서도 으레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 이것이 에쿠니씨가 전작들에서도 아무렇지않게 무덤덤히 풀어냈던 사랑이기도 하다. 혹은, 그녀가 꿈에 그리는 이상적인 사랑이 그럴지도. 그리고 세심한 엄마 쪽은 현재의 에쿠니씨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에쿠니씨의 모습- 가장 적절했던 에쿠니씨의 모습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철저히 배제한 소설, 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녀들의 잘못된 행보에 어떠한 지적도 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가족애인지 묻는 어떤 분의 리뷰를 보았다. -이건 정말 우연적으로 읽은거지만, 읽고 좀 마음이 상했다.- 우선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타인의 시선에 부닥치는 관계가 아니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라면 그것은 더더욱이나 배제되어질 수 있는 시선이다. 구태여 일본소설이 한국처럼 타인의 일에 떠들기 좋아하는 문화에 맞출 필요는 없다는거다. 소요의 이혼이라던가, 시마코의 동성애, 그리고 성인물로 취급받는 리쓰의 취미생활에 가타부타 이야기하는 건 더더욱이나 아니올시다이다. 미성년자도 아닌 소요의 이혼은 자신의 의지에서 온 결단이고 시마코의 동생애 역시 감히 손가락질 받을 만한 사랑이 아니다. 쉽게 볼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는 묶일 수 없는 에쿠니씨가 배제한 타인의 시선이다. 리쓰의 취미 생활 역시 타인에게는 성인물이겠지만, 인형을 만드는 리쓰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라면, 일종의 프라모델일 뿐인것이다. 어째서 이 모든것이 반사회적인 것이라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일본' 소설이니 '일본' 문화에 맞춰지는게 당연한것인데도 도대체 '일본' 소설을 국내 소설인 마냥 읽으려고 하는건지, 이것은 이 책을 읽는 이의 자세부터가 틀린것이다. 에쿠니씨가 타인의 시선을 배제하고 썼다면, 우리가 배제하며 읽어야 하는 것은 일반적 '보통'의 상식이다. 책이라고 하여 무조건적인 지헤와 배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안목을 넓히려면 차라리 이런 허구 소설말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빠를것이다.

 

 내게는 그저 예쁘기 그지없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공동체 의식에서 어우러지는 개개인의 존중이 그러했고 무엇보다 에쿠니씨가 숨을 불어넣은 소요와 시마코, 고토코, 리쓰의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 다부진 큰 언니 역할을 소화해 낸 소요와 사랑이 전부인 애처로운 시마코와 평범하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고토코 그리고 귀여운 어린 동생 리쓰까지. 좀 더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아쉬웠던만큼 적은 페이지였지만 에쿠니씨의 다음 작품은 분명 다시금 연애소설이 되어지기를 바래본다. 흩날리는 문체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티가 역력했던지라 조금은 답답했던게 사실이다. 그런 간결함이 싫어, 늘상 에쿠니씨에게 야무진 문체로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간결한 문체가 그리워진다. 분명, 가볍게 마음을 휑 - 하니 비워주는 건 단연코 에쿠니 가오리, 이 작가 한 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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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바람이 예쁘게 분다,오늘은.
 
   나는,술에 취해 종종 잘 운다.
   종종 술을 먹기 때문에 종종 잘 운다.   
   까닭없이 종종 슬퍼지기 때문에 종종 술을 마신다.
   혼자일때가 종종 있어 혼자 종종 술을 마시기 때문에 종종 울기도 한다.
   입술을 깨물고 가슴을 치며 난, 종종 잘 운다.
   감정이 격해지면 울다 지친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세워 책장으로 간다.
   그리고 난 책을 꺼낸다.
 

  

 




  

   전혜린「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개정판의 표지라 무척 서운하다.
   유일하게 형관펜과 낙서, 밑줄이 난감할만큼 많이도
   표시된 책이다. 책은 그저 에세이라 구태여
   첫 장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전혜린의 책은 '더 울기 위해' 펼치는 책 중 하나인데
   이상하게도 난 정말 더 울게 된다.
   그냥 슬퍼진다, 마구잡이로.
   


 

 

   전혜린「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전혜린의 책은 유일하게 두 번 세 번 여러 번 읽는 책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몇 번씩 보거나 읽지
   않는데 전혜린은 내게 있어 좀 각별하다.
   구원이기도 했으며 실수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다.
   「목마른 계절」이라는 문고판으로 처음 마주한 이래로
   전혜린을 품고 산지 벌써 8년째다.
   마냥 울게 하지만 특별함을 넘어선 '유일함' 이다.

 

 

 
 

   기형도 「기형도 전집

   술에 취해, 필사를 하는 책이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난 허기진 사람마냥 기형도를 찾아 읽는다.
   필사는 시가 아닌 부록처럼 들러붙은 산문을 읽으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새겨넣는다.
   따로 필사하는 노트가 없어,
   서랍 아무곳이나 열면 쨘! 하고 나타나는 편지지에.
   기형도는 박인환과 김수영 시인을 생각나게 한다.

 
 

 

  


   나도 이런 봄바람 부는 날엔 꽃나무 아래 서 있거나 앉아 있고 싶다.
   저번 주말도 그랬지만 이번 주말도 혼자다.
   안주삼아 랭보의 시집을 펼치고 씹어 먹어야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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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4-2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밝은 책을 읽어요. 울 때는 그렇기도 하겠지만 전혜린은 밝을 때, 기분 좋을 때 읽어도 삶이 너무 스연해서 슬퍼지는 책이잖아요. 또 주말이 오는군요. 시간은 빠른데 삶은 그다지 달라지는 게 없고,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아서 불안해요. 이런저런 일들로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좋은 밤 되세요.^^

June* 2011-04-22 13:53   좋아요 0 | URL
 
 '체질'인걸요.
 오늘 49일이라는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는데 대사중에 이요원이
 그러더라구요. '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그게 막 또, 왈칵했지 뭐예요.
 내가 좀 음습해요. 헤에.
 
 오늘의 서울은 비가 내려요.
 향이 그득히 베어있는 돌미나리에 붉은기가 가득한 고기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예요. 불편한 삶이 ,
 입에 무언가를 넣을때는 가장 편하고 행복해지더라구요.
 
 좋은 주말 되어요.

 
 

stella.K 2011-05-1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이리 간단 명료하게 써도 여운이 남는데,
저는 왜 그렇게 질질거리며 궁상맞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전혜린의 <이 모든 괴로움을...>은 나이들어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18세쯤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 참 속살 떨렸는데...
그런 계집아이가 속살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어요?ㅋㅋ

June* 2011-05-11 11:57   좋아요 0 | URL
 
 나는, 스텔라님에게는 있는 '필력' 이란게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말 이어하기만 하고 있는걸요.
 전혜린을 참 아껴요. 소중하기도 하구요.
 열여덟의 스텔라님이 궁금해요. 열여덟의 저는 ,
 마냥 외로웠거든요 .. .


stella.K 2011-05-11 13:09   좋아요 0 | URL
필력은 무슨...
18세 때 그러셨군요.
저는 혼자인 것이 마냥 좋았던, 아니 적어도
혼자인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때를 살았던 것 같습니다.
혼자있으면 편하긴한데 허전하고, 같이 있으면
즐겁긴한데, 왠지 불편하고 걸리적거리고.
이것이 사람의 실존 아니겠습니까?흐흐

June* 2011-05-1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살이 되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스무살 전의 모든 관계를 끊어내는 거였어요. 철저하게 혼자이기를 자처했고
 이젠 혼자여도 괜찮을거라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 생각은 전혀 틀리지않았어요.
 '시기' 의 만남들만 존재했을 뿐 '유일' 하다거나 '영원' 을 약속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되잖아요. 스무살이 되었으니, 제게 필요하고 각별해질 것은
 오로지 사랑, 그거 하나였어요. 저는 사랑이 전부예요. 여전히.
 
 

stella.K 2011-05-12 11:01   좋아요 0 | URL
시기의 만남이라...
20세 때 준님은 조숙하셨네요.
저는 이제야 알겠던데.
친구는 (오래 전부터)친하게 지내서 친구가 아니라,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 친구더군요.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때가 되면 멀어지고, 떠나더라구요.
만남에 집착하고, 연연해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저 사람도 물 흐르듯,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지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별, 아직도 제겐 익숙치 않는 건데 내 의지완 상관없이
어느새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준님처럼 말씀하시는 분이 계셔서 좋으네요.
마지막 말. 난 상처 받기 싫어 진짜 사랑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우리 친구할까요?ㅋ

June* 2011-05-12 18:02   좋아요 0 | URL
 
 
 나, 내 자신에게 굉장히 약해요.
 타인에게는 강한데 이상하리만치 내 자신에게만은 약해요.
 .. . 이거 결핍이겠지요 ? 그래도 괜찮다면 ,
 
 친구해요, 할래요. 그러고 싶어요.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말 저녁, 술에 취해 부모님댁에 겉옷을 그대로 두고 왔다.
   정신없이 울어버린 탓도 있었겠지만 잔뜩 올라 온 취기에 몸이 따스했으리라.
   몸에 밴 - 익숙한 것들을 좋아하는터라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려면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특히 가방이나 겉옷 따위.
   하여 난, 오늘 겉옷을 입고 오지 못했다.
   바람이 여즉 찬데.
   
   
좋아하는 여자에게 시집을 선물했다.
  

 

  

 

    김행숙의 「타인의 의미」


   내가 시를 잘 모르니 갖고 싶고 읽고 싶은
   시선집이 있다면 일러달라 말했더니 쑥쓰럽다며
   김행숙의 이름을 곱씹는다.
   시인의 이름만으로 책을 고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더라면 번거롭더라도 제목까지 물어볼 걸 그랬다.
   예전처럼 소설을 보내려다, 무작정 보내본다.
   여자가 시를 배우고 있어서 나까지 다 뿌듯하다.

 

  

 

   이제니의 「아마도 아프리카」


   한 권만 보내기엔, 너무 소박한 듯 보여서
   어느분의 서재에서 본 시집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사실 이 분의 서재에서 이제니의 시집을 보고는
   여자가 생각나 마음이 동한 탓인지도 모른다.
   제목, 여자가 분명 좋아하고도 남음이다.
   더불어 그저 훑어보고 말테지만 내 리스트에 담아둔다.
   나는 아직 시를 알기엔, 마음이 진흙탕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시'라는 문학에 관심을 두고 좋아할즈음에, 난.
   지독한 일상에 적응을 못한 채 늦은 밤마다 수면제를 생각하고
   다시금 손목에 칼을 대어보기도 했다.
   흔치 않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책도 글도 아무것도 잡히지도 읽히지도 않았다.
   매일을 술 마시며 지쳐 잠들거나 그렇지않으면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러다 좋아하는 여자의 공간에서 여자가 적어놓은 시를 보고는
   한참을 울다, 갑작스레 속이 뒤틀려 변기통에 고개를 처박고 토악질을 했었다.
   입을 헹구고 좋아하는 여자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늘.
 


   여자의 대답도 늘, 같다.
   나두요. 사랑해요, 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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