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람이 예쁘게 분다,오늘은.
나는,술에 취해 종종 잘 운다.
종종 술을 먹기 때문에 종종 잘 운다.
까닭없이 종종 슬퍼지기 때문에 종종 술을 마신다.
혼자일때가 종종 있어 혼자 종종 술을 마시기 때문에 종종 울기도 한다.
입술을 깨물고 가슴을 치며 난, 종종 잘 운다.
감정이 격해지면 울다 지친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세워 책장으로 간다.
그리고 난 책을 꺼낸다.

전혜린「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개정판의 표지라 무척 서운하다.
유일하게 형관펜과 낙서, 밑줄이 난감할만큼 많이도
표시된 책이다. 책은 그저 에세이라 구태여
첫 장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전혜린의 책은 '더 울기 위해' 펼치는 책 중 하나인데
이상하게도 난 정말 더 울게 된다.
그냥 슬퍼진다, 마구잡이로.

전혜린「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전혜린의 책은 유일하게 두 번 세 번 여러 번 읽는 책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몇 번씩 보거나 읽지
않는데 전혜린은 내게 있어 좀 각별하다.
구원이기도 했으며 실수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다.
「목마른 계절」이라는 문고판으로 처음 마주한 이래로
전혜린을 품고 산지 벌써 8년째다.
마냥 울게 하지만 특별함을 넘어선 '유일함' 이다.

기형도 「기형도 전집」
술에 취해, 필사를 하는 책이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난 허기진 사람마냥 기형도를 찾아 읽는다.
필사는 시가 아닌 부록처럼 들러붙은 산문을 읽으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새겨넣는다.
따로 필사하는 노트가 없어,
서랍 아무곳이나 열면 쨘! 하고 나타나는 편지지에.
기형도는 박인환과 김수영 시인을 생각나게 한다.
나도 이런 봄바람 부는 날엔 꽃나무 아래 서 있거나 앉아 있고 싶다.
저번 주말도 그랬지만 이번 주말도 혼자다.
안주삼아 랭보의 시집을 펼치고 씹어 먹어야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