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람이 예쁘게 분다,오늘은.
나는,술에 취해 종종 잘 운다.
종종 술을 먹기 때문에 종종 잘 운다.
까닭없이 종종 슬퍼지기 때문에 종종 술을 마신다.
혼자일때가 종종 있어 혼자 종종 술을 마시기 때문에 종종 울기도 한다.
입술을 깨물고 가슴을 치며 난, 종종 잘 운다.
감정이 격해지면 울다 지친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세워 책장으로 간다.
그리고 난 책을 꺼낸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32/73/cover150/8942220045_1.jpg)
전혜린「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개정판의 표지라 무척 서운하다.
유일하게 형관펜과 낙서, 밑줄이 난감할만큼 많이도
표시된 책이다. 책은 그저 에세이라 구태여
첫 장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전혜린의 책은 '더 울기 위해' 펼치는 책 중 하나인데
이상하게도 난 정말 더 울게 된다.
그냥 슬퍼진다, 마구잡이로.
![](http://image.aladin.co.kr/product/32/73/cover150/8942220053_1.jpg)
전혜린「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전혜린의 책은 유일하게 두 번 세 번 여러 번 읽는 책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몇 번씩 보거나 읽지
않는데 전혜린은 내게 있어 좀 각별하다.
구원이기도 했으며 실수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다.
「목마른 계절」이라는 문고판으로 처음 마주한 이래로
전혜린을 품고 산지 벌써 8년째다.
마냥 울게 하지만 특별함을 넘어선 '유일함' 이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19/1/cover150/8932010609_2.jpg)
기형도 「기형도 전집」
술에 취해, 필사를 하는 책이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난 허기진 사람마냥 기형도를 찾아 읽는다.
필사는 시가 아닌 부록처럼 들러붙은 산문을 읽으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새겨넣는다.
따로 필사하는 노트가 없어,
서랍 아무곳이나 열면 쨘! 하고 나타나는 편지지에.
기형도는 박인환과 김수영 시인을 생각나게 한다.
나도 이런 봄바람 부는 날엔 꽃나무 아래 서 있거나 앉아 있고 싶다.
저번 주말도 그랬지만 이번 주말도 혼자다.
안주삼아 랭보의 시집을 펼치고 씹어 먹어야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