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뜨거워지는 일인가. 직지. 어학사전에서 의미를 찾아볼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관련 자료를 하나 둘 펼쳐볼수록 다가오는 의미가 이토록 묵직해질 줄은. 감동적인 소설이라도 읽은 양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북극 빙하에서 치즈 스틱 닮은 미생물을 발견하고, 우리 은하 너머에서 지구 닮은 행성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과학계가 왜 그리 들썩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무심코 흘려듣던 용어였다. 시험 문제의 단골 메뉴였다. 정식 명칭인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지심체요절은 그리 생소하지 않았다.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 시대에 등장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구나 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지금까지 나는 앞부분이 의미하는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었다. 방점은 금속 활자로 간행한에 찍혀 있었다. 금속 활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을 때라면 금속이든 나무든 무슨 상관이냐 했을 거다.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만을 본 듯, 물 밑에 잠긴 방대한 의미를 모르고 지났을 거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소중한 가치 하나를 마음에 한껏 품게 되었으므로.

 

기록에 대한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도달한다. 물론 그 이전에 동굴 벽에 그려진 요상한 그림들도 존재하지만, 읽을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파피루스나 페르가몬의 양피지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록된 지식은 일부 특권층만이 보유할 수 있었다. 손으로 일일이 베끼는 방식과 종이의 기능을 하는 재료들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판 인쇄술의 발달은 곤충의 탈피처럼 획기적인 도약이었다. 그런데 갈라지고 휘어지는 나무는 보관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한가지 밖에 인쇄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한다. 드디어 등장한 금속활자. 단단한 금속은 오래 보관할 수도 있고 정보의 대량 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더 이상 몇몇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손쉽게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지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금속 활자에는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담겨있다.

 

1455,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금속 활자를 발명했다.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1998년에 발표한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를 바꾼 100대 사건1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내용을 본 순간, 답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200년 이상 앞서 금속 활자에 의한 인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생각나서이다.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78년이나 앞선 1377,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되었다는 직지의 존재이다. 활용 면에서는 구텐베르크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지만, 나는 최초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최초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나는 과학 교사이다. 수업 시간에 과학 관련 시사 뉴스를 소개해주고 학생들의 의견을 발표시킬 때가 있다. 순간적으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학생들이 갑자기 집단으로 겸손해진다. 혹시라도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발표 내용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 후로 발표자의 수가 갑자기 불어난다. 심지어 뒤로 갈수록 발표 내용은 더욱 업그레이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초로 발표한 학생을 주목한다. 최초가 갖는 무게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 무게를 이겨낸 용기는 발표 내용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가열된 물은 100에서 수증기로 변한다. 100는 액체와 기체가 공존하는 온도이다. 지니고 있는 에너지의 양으로 볼 때, 100보다는 200의 물에 더 많은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100에 큰 의미를 둔다. 자유로운 수증기로 출발하는 최초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전자책이 흔한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종이로 된 책을 좋아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새 책이 도착하면 코끝을 바싹 들이대며 킁킁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종이 이전의 나무를 상상하면 책의 내용을 떠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제든 어디서든 틈날 때마다 펼쳐서 그 안에 담긴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책은 경이로운 기록물이다.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사람들마다 느낌은 제각기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느끼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다. 독서 모임을 하고 나면 생각의 나이테가 한 줄씩 늘어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이유를 거슬러 올라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직지를 만난다.

 

지구 최저 온도인 영하 88가 측정된 남극 대륙의 보스토크 기지’ 4km의 두터운 빙하 아래에 있다는 호수. 빙하의 하부가 지열에 의해 녹아 형성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거대한 호수라 한다. 이런 곳에 생명체가 존재할까? 과학자들의 관심 대상은 그 생명체가 곰팡이냐 바이러스냐가 아니라 존재 자체이다. 1960년대에 호수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생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문득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는 직지가 떠오른다.

 

백운화상이 직지를 만든 1372, 그로부터 600년이 흘러 박병선 박사에 의해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직지하권이 세상에 알려진 1972, 발굴조사팀에 의해 직지의 발상지인 청주 흥덕사지가 발견된 1985, 흥덕사지 남쪽에 자리 잡은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직지찾기 전담반에 의해 직지상권 찾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8.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최초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는 찡함이 있다.

조금 조금씩 직지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모습들을 상상한다. 가슴이 뛴다. 점점 뜨거워진다. 의미 있는 존재를 발견한다는 것은 뭉클한 일이다. 그것이 최초의 무엇이라면 더더욱.

 

 

* 2017. 8. J백일장 공모,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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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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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걸까, 무엇을 잃어버렸나를. ‘상실에 관한 7편의 소설을 접하면서 잃어왔던 것들을 생각한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던 것처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출 때마다, 움찔움찔 놀라 어찌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된다. 무의식적으로 덮어왔는지도 모른다. 아린 감정이 소설 속 인물을 향한 건지, 이야기가 끄집어낸 기억 속의 나를 향한 건지 모호하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면 안경에는 뿌연 김이 서린다.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만나는 경계에서도 전선이 형성되면서 비가 내린다. 상실도 마찬가지인걸까. 상실 전의 기억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과의 경계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고통은 경계에 서게 된 이들이 통과해야 할 숙명인 것 같기도 하고.

 

마시다 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면 가끔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것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컵 때문이다. 컵은 경계이다. 안에는 차가운 얼음이, 바깥에는 그보다 따뜻한 공기가 있다. 온도차로 인해 컵 표면에는 점점 물방울이 맺히다 시간이 지나면 주르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이 간혹 컵이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물방울이 차가운 얼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따뜻한 공기 안에 있던 수증기라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범하게 보이는 소설집의 제목 바깥은 여름이라는 한 글자를 주목하는 순간, 의미가 많아진다. 바깥여름이라면, 안과 밖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바깥여름이라 한다면, 시선이 밖으로만 향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 들어가면 시야가 달라진다. 안과 밖을 다 생각하게 된다. 바깥여름이라는 말은 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노볼을 보고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p182)’한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p182)’ 그리고 경계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다가올 상실과 뒤따라오는 고통을 묵묵히 그려낸다.

 

가장 무거운 상실감 중 하나는 죽음에서 비롯되는 그것이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작품 중 <건너편>을 제외한 6편에서는 죽음이 등장한다. 섣불리 접근해서 풀어나가기 어려운 주제이다. <침묵의 미래>에서는 소수언어박물관에서 마지막 언어를 사용하던 이들의 죽음과 남아있는 이들이 안고 있는 상실이, <풍경의 쓸모>에서는 직장에서 상사와의 관계와 아버지로 인해 느끼게 되는 더블폴트, <입동>에서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이후 부모가 겪게 되는 고통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는 학생을 구하려다 죽은 교사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의 아픔이, <건너편>에서는 신뢰와 사랑을 잃어버린 커플의 상실감이,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반려견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아이의 먹먹함이, <가리는 손>에서는 믿고 있던 아들에게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엄마의 철렁함이 담겨있다. 작가가 풀어나가는 죽음 이후의 상실에는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김애란의 글이 지닌 힘일까.

 

종종 그녀의 사유에 감탄한다. ‘해상도 낮은 미소(p151)’라는 문장에서 호흡을 잠시 멈춘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낼까. 상상하기도 어려운 문장들의 조합이 군데군데 보석처럼 박힌 채 빛난다.

문장은 깔끔하고 담백하며 내용은 해양심층수를 마주한 느낌이다. 묵직하고 진한 슬픔에 번번이 압도당한다. 너무 시려 외면하고 싶은데 눈을 떼기 어렵다.

커다란 서예 붓에 먹물을 묻혀 휘두르다보면 마지막 획의 끄트머리에는 안간힘을 쓰고 지나간 붓의 흔적이 남는다. 붓글씨의 삐침처럼 여운이 많이 묻어나는 소설이다. 그 여운은 마음을 묶어 책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처음에는 등장인물을 바라보았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한다. 대부분 아린 맛이 있어 눈시울이 뜨겁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난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이 등장한, 당시 보았던 그 어떤 영화보다 받은 감동이 컸던 작품이다. 애니매이션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쉽지 않은데 영화 중간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잊고 있던 동심과 내게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새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진짜 나를 만날 시간이라는 부제답게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다준 영화이다. ‘슬픔이에 관한 내용이 한동안 기억에 남는다. 온전히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밝은 감정뿐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감정들도 마주해야함을 깨닫는다.

이 책은 슬픔이를 연상시킨다. 상실에 흠뻑 젖은 모습들을 보며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다보니, 내 안의 상실과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슬픔은 충분히 슬퍼한 후에야 극복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실컷 울고 난 후에 느껴지는 말간 개운감에 속이 후련해진다.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그런 건 모두 어디로 가나.(p45)’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내게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던 일들을 떠올린다.

어떤 종류의 상실이 나를 아프게 하는가. 대부분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상실감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한 문장 속에서 답을 찾는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p214)’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p259)’ 곱씹을수록 간절한 질문을 조용히 발음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가고 싶은 곳이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시차만큼 뭉클해진다. 집어던진 모자를 다시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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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9-0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공유한다는 게 이런점이 좋은 것 같아요. 인사이드 아웃을 생각지 못했는데 이렇게 읽으니 영화도, 이 소설집도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나비종 2017-09-02 00:24   좋아요 0 | URL
잘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감성의 파장이 비슷한 분을 알게 된 것 같아서요.^^*
 
토끼의 아리아
곽재식 지음 / 아작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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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그림에 불과했다. 두 팔, 두 다리 활짝 벌리고 맨몸으로 서있는 남성이라니!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시선은 중심으로 모아졌다. 그런데 가장자리로 눈길이 옮겨지면서 살짝 갸우뚱한다. 원과 정사각형은 왜 그린 걸까.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인체 비례도>를 처음 보던 순간의 기억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각종 뼈, 근육, 장기들의 스케치도 있었는데 그것이 매우 정교해서 놀랐다.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그림으로 제시되는 것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린 이가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라는 사실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도대체 화가야, 과학자야?

 

SF를 중심으로 글을 써온 작가라는 소개를 읽기는 했지만,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글들이 펼쳐졌다. 무릇 내게 SF라 함은 우주선에서 뿅뿅 광선 줄기차게 나와 주거나, 매우 커다란 괴 생명체가 드럽고 걸쭉한 침 같은 거 질질 흘리면서 인간이건 동물이건 홀딱 먹어버리거나, 미래나 과거로 이리 저리 옮겨 다니거나, 붕대 풀어 질질 끌고 다니며 바닥 청소하는 미라가 등장하거나, 땅 속 깊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건더기 하나 서로 먼저 찾으려고 용을 쓰는 부류 정도였다. 곽재식의 소설은 이러한 고정관점을 단숨에 없애주었다. 생소하고 신선했다. 의식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겉표지 안쪽에 적힌 저자의 소개만으로 그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했다. 도대체 과학자야, 소설가야? 소설 안에 담긴 과학적인 내용들이 심오했기에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인가 궁금했다. 저자에 대하여 조금 더 찾아보고 나서야 그의 소설이 왜 이토록 전문적인지 이해가 되었다. KAIST와 동대학원을 거쳐 현직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과학자였다.

 

2006년에서 2016년까지 썼던 단편들 중 9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토끼의 아리아>,<흡혈귀의 여러 측면>은 대기업의 언론 플레이, 국가 예산을 연구비로 따내기 위한 연구소 설립 관련 비리, 연구원의 연구비 횡령, 언론에 의해 내몰려지는 약자, 군중심리로 무심코 저지르기 쉬운 폭력 등 과학 분야에서의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다룬다. <숲 속의 컴퓨터>,<4차원 얼굴>,<로봇복지법 위반>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용하게 퇴장하기>는 지구 멸망을 86년 앞둔 인간들의 심리를 다뤘고, <박승휴 망해라>,<빤히 보이는 생각>은 인간의 뇌와 우주적으로 확장되는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읽은 <박흥보 특급>흥보가SF의 기발한 콜라보이다.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부터였나, 요즘은 소설집을 읽을 때 발표 순서대로 읽는다. 각 단편의 끝부분과 저자의 말에서 소설의 발표 시기가 소개되었기에, 시간의 순서대로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읽었다. ‘, 이 때부터는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졌구나.’ 상상하며 읽어가는 묘미가 있었다.

 

작년 11, 요리하는 로봇에 대한 과학 뉴스를 수업 시간에 소개해주었다. 아이들은 동영상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싱크대에 설치된 두 개의 로봇 팔이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끝내는 홍보 영상은 상상과 현실과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 후로 로봇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더니 올해 3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등장한 로봇 바리스타, 실리콘밸리에 등장한 로봇 피자 체인점, 로봇 바텐더에 대한 기사가 등장했다.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내용과 함께 로봇에게도 사람처럼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 뉴스의 요지였다. ! 굉장하다! 의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애완견 대신 강아지 로봇이 등장하는 세상이다. 로봇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급속도로 넓어질 것이다.

올해 초, 웹 소설의 드넓은 세계를 알게 되었다. 요일별로 매일 1030분에 업로드가 되는데, 이게 은근 순정만화 같기도 하고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는 소설은 <모두 너였다>인데 여기에 로봇이 등장한다. 인공지능을 가진 클론과 클론테스터와의 이야기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도무지 다음 편이 상상이 안 되는 작품이다. 곽재식의 소설들이 그랬다.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한 작품을 읽으면 결론이 궁금해서 중간에 호흡을 끊을 수가 없었다.

9편의 작품 중에서는 <로봇복지법 위반>이 가장 인상 깊었고 공감이 갔다. 근래 로봇 관련 과학뉴스를 많이 접하고 그런 내용의 웹 소설에 빠져있기 때문일까.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로봇이 일상화되는 세상, 로봇의 권리,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접점이 존재한다. 인간과 거의 비슷한 로봇,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는 로봇, 그런 로봇들이 폐기되는 과정, 로봇의 할렘 가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작가가 그린 세상이 전혀 황당무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거다. 이제 로봇은 더 이상 상상 속 대상이 아니므로. SF가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을 떠올리면서 만일 이 거장이 소설을 썼더라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상상했다. 이토록 과학적이면서 예술적인 인물은 어떤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릴까 궁금했다. 11을 더해서 2 이상의 효과를 내는 경우를 메디치 효과라고 한다. 화가이면서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이 과학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듯이, 과학자가 쓴 소설은 과학적으로 좀 더 깊이 있고 훨씬 더 넓은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독특한 상상력, 기발한 반전에 유머가 살짝 얹힌 소설. 읽고 상상하고 읽고 상상하다보니 내 상상력도 한결 풍부해진 느낌이다. 상상의 나이테가 넓어졌다. 따뜻해서 세포분열 속도가 빠른 봄과 여름에 나무가 확 자라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p40, 1째줄, 더는 더 철저히 저는 ~

p284, 3번째 단락 5째줄, 어떻게 갖고 어떻게 다를지를 ~ 같고 ~

p328, 밑에서 2째줄, 감각을 방해하기는 일을 ~ 방해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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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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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힘껏 안았다. 등을 두드려주었다. 잘 지내. 쌤 두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중앙 현관에서 배웅을 했는데 아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전학을 왔다가 적응을 못하고 있던 곳으로 다시 간 아이. 곁에 머문 기간이 석 달 남짓 되었을까. 일당백을 했기에 상담일지도 꽤 두툼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담임에 대한 신뢰가 돈독했다는 사실이었다.

 

전학을 결정하기 일주일 전쯤부터 아이의 등교 장소는 위클래스였다. 자체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6,7시간이 되는 일과시간동안 심심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옆자리 국어 쌤 책상 위에 놓인 학교도서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즈음 나도 구입을 했지만 아직 안 읽어본 책이었다. 저 정도 두께면 1주일 동안 천천히 읽을 만하겠다 싶었다. 양해를 구하고 빌린 후 아이에게 건넸다. 짧게나마 독후감도 써보라고 했다.

그 때는 몰랐다. 그 책을 사흘도 안 되어 완독했던 아이의 마음을. 독후감이 왜 편지글 형식이었는지. 왜 내 생각보다 그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본 아이의 표정이 편안해보였던 이유를.

 

읽지도 않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사실 그 아이에게 내가 읽지도 않은 이 책을 건넸던 이유는 매우 일차원적이었다. 두꺼워서, 베스트셀러라서. 살짝 찜찜하기는 했다. 베스트셀러가 모든 사람에게 베스트 북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다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기에 그것이 아이와의 접점이 되는 행운을 바랬다.

 

정작 내가 이 책을 펼친 것은 구입한 지 2년만이었다. 책표지를 보며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456쪽을 단숨에 읽어가는 내내 아이는 나를 따라다녔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직감했다. 그 아이에게 이 책은 틀림없이 행운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당시 아이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유명하지 않은 기획사였지만 여기로 전학 오기 전에 보컬트레이닝을 받은 경험도 있었고, 유명 오디션 예선을 통과한 이력도 있었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오기는 했지만 아이의 시선은 늘 서울 쪽을 향해 있었다. 더듬어보면 상담 내용 중 절반 이상은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과 환경과 사춘기가 맞물려 그렇게 방황을 했나 싶다.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나미야 잡화점에서 삼인조 도둑이 경험하는 특별한 하룻밤은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과거의 나미야 잡화점은 우연찮은 계기로 주인 할아버지가 손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크고 작은 고민들을 해결해주던 공간이다. 30여 년 뒤 얼떨결에 그곳으로 숨어들어간 도둑들은 건물 앞에 있는 우편함 투입구를 통해 과거로부터 온 고민편지를 받게 되고, 이들이 쓴 답장을 건물 뒤편의 우유 배달 상자에 넣으면 과거의 내담자에게 전달된다.

 

그 아이를 연상시키는 책이어서 그런지 내용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처음부터 이라는 한 방향으로 맞춰져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식으로 바라본다면 주인공들은 모두 꿈을 가지고 있다. ‘달토끼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펜싱선수가 되기를, ‘생선 가게 뮤지션은 싱어 송 라이터를, ‘폴 레논은 목각조각가를, ‘길 잃은 강아지는 돈을 많이 벌어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은 잡화점 할아버지가 아닌 도둑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꿈과 삶에서 떠안고 있는 고민들을 해결해나간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p167)’ 나미야 할아버지의 말처럼 결론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답을 찾는다.

 

굳이 옴니버스 식의 관점에서 바라봐도 공통적으로 꿰어지는 연결고리가 있지만, 이 책의 결정적인 매력은 연작 소설을 연상시키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에 있다. 괜히 추리 소설 작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 느낌은 점점 짙어진다. 나미야 할아버지, 세 명의 도둑들, 에피소드 속 등장인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아동복지시설 환광원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결되어있다. 단 한 장면도 허투루 등장하지 않는다. 탄탄하고 촘촘한 구성에 탄성이 나온다. 실에 꿰어 움직이는 목각 인형을 조종하듯이 작가는 모든 동작들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구현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p447)’ 내용과 구성면에서 화룡점정으로 꼽고 싶은 장면이다. 도둑들은 과거와 연결된 공간을 확인할 목적으로 백지 편지를 우편함에 넣는다. 그 편지를 받은 나미야 잡화점 주인은 장문의 답장을 정성껏 써 보낸다. 전율이 이는 발상이다. 어떻게 할아버지와 도둑들을 연결할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타임 슬립이 특별해지는 이유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설정만으로도 감동적인데 답장의 내용 역시 방황하는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코스 요리 끝에 나온 디저트의 맛이 입안에 계속 맴도는 것처럼 마음속 여운이 길다.

 

언뜻 스치는 향기처럼 삶의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 ‘세상 어떤 일이든 도전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 아닙니까.(p130)’ 이 문장이 그 아이를 조금이라도 붙들었을까. 전학 간 후 소식은 끊어졌다. 아이와 주고받던 카카오 톡 창은 1년 반 정도 계속 남아 있다가 올해 초, 메시지를 정리하면서 내가 먼저 나와 버렸다. 원하던 예술 고등학교에 갔으면 지금쯤 고등학교 2학년일 텐데. 그곳에 진학하지 못했더라도 그리 걱정되지는 않는다. 그날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만 같은, 마지막으로 본 아이의 표정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그 아이에게 가져다준 나의 행동은 우연이었을까. 내 삶과 그 아이의 삶과 이 책이 연결된 과정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다양한 삶의 문제가 풀려나가는 과정도 기적이지만, 일상에서 간혹 일어나는 이러한 연결 역시 작은 기적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겉표지에 그려진 달 모양이 이왕이면 보름달이었더라면..^^;

-소설이 시작되는 시간적 배경은 새벽 2시 경, 내용에는 '머리 위쪽 한가운데 둥근 달(p13)'이라는 문장이 있다. 도둑들이 시간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계기도 달의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통상 둥근 달은 보름달을 의미한다. 보름달은 해질 무렵 동쪽에서 떠서 자정 즈음 남쪽에 가장 높이 떠 있다가 새벽에 서쪽으로 진다. 자정으로부터 2시간가량 지나 고도가 다소 낮아졌다고 해도 30도 정도일 것이므로 소설에서 묘사되었듯이 둥글게 그려야 옳다. 

표지에 그려진 달은 왼쪽이 손톱 모양으로 밝은 그믐달이다. 달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빛을 내므로 그림에서 태양은 달의 왼쪽에 있다. 그믐달은 해뜨기 전 새벽, 동쪽에서 뜬 후 해가 뜨면 보이지 않는다. 천구 상에서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므로 낮게 뜬다. 표지에서처럼 고도가 높을 수 없다. 뭐, 과학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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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9-0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청년문화허브입니다.
저희 단체에서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처럼, 실제로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글을 남깁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을 하면 실제로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namiya114@daum.net 여기로 이메일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 할아버지로 손편지를 보내시면 손편지로 답장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들려주세요! 여러분의 나미야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기사 써도 되나요? 어린이 나무생각 문학숲 8
송아주 지음, 현숙희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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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코 입 비율도 안 맞고 뺨이 두상의 대부분을 차지한 데생이었다. 이토록 괴팍한 아그리파라니! 중학교 2학년 미술 시간에 어처구니없는 소묘를 본 순간,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 아이의 평가 결과가 A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내겐 놀라운 사건이었다. 아니, ?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입체로 된 석고상의 모습은 모든 방향에서 제각각이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 언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 방향과 그 순간에는 맞는 그림이겠지만, 부분이 전체의 모습을 반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는 강한 자들의 기록이다. 한 방향에서만 바라본 석고상의 모습이랄까. 약한 이들의 자리에서 바라본 기록은 보기 드물다. 그런 이유로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는 온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언론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언론에 관한 동화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교내 신문 수습기자로 들어가면서 겪는 사건들을 통해 작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을 말한다. 기자가 지녀야 할 자세와 기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여론의 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게 한다.

 

기자는 사건과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이다. 독자는 기자의 관점에서 어떤 사건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므로 기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기자에게는 사건의 본질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진실의 모습에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일단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9일 만에 관람객수 6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나에게 1980년 5월 18일을 처음으로 알려준 영화는 <화려한 휴가>였다. <화려한 휴가>가 내부에서 바라본 5.18이라면, <택시운전사>는 외부에서 바라본 5.18이다. 이 영화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최종 판단은 관객이나 독자의 몫이지만 나는 약자의 입장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한 사람은 목소리를 낼 기회가 약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언론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기회가 적거나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의 눈과 귀와 목소리가 되어야 맞다.

안타깝게도 모든 언론이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밝힌 촛불의 숫자. 경찰 추산의 집계와 집회 주최 측의 집계가 다른 것은 입장 차이라 쳐도 신문사에 따라 천차만별로 보도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고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이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이다.

 

이 동화의 백미는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풀어나가는 데에 있다. 잘못된 회장 선거를 바로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정필의 열정과 편집장 서진의 용기, 공백으로 발행된 신문 1면에 아이들의 의견이 적혀 한 부씩 다시 되돌아오는 장면은 지난겨울 우리가 들었던 촛불과 겹쳐진다.

아빠, 기자에게 가장 큰 힘이 뭔지 알아?”(중략) “바로 독자야.”(p144) 주인공 정필의 깨달음은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 점점이 박혀 타오르는 촛불들은 볼 때마다 뭉클함을 안겨준다. 홀로 주위를 밝히는 촛불도 매력적이지만, 밤하늘에 흐드러진 별들과 같은 촛불의 모임은 언제나 감동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촛불을 든 사람의 심장이 뛰는 것 같아서 내 심장도 덩달아 쿵쿵 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슬그머니 흘러나와 촛불로 빛나는 장면이 연상된다.

언론은 맨 처음 드는 촛불이다. 이미 밝은 곳에서 촛불의 역할은 미미하지만 어두운 장소에서의 촛불은 단 한 개라도 의미가 깊다. 나머지 촛불을 드는 것은 그 언론을 접하는 우리의 몫이다. 함께 밝힌 촛불이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듯이 언론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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