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뜨거워지는 일인가. 「직지」. 어학사전에서 의미를 찾아볼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관련 자료를 하나 둘 펼쳐볼수록 다가오는 의미가 이토록 묵직해질 줄은. 감동적인 소설이라도 읽은 양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북극 빙하에서 치즈 스틱 닮은 미생물을 발견하고, 우리 은하 너머에서 지구 닮은 행성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과학계가 왜 그리 들썩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무심코 흘려듣던 용어였다. 시험 문제의 단골 메뉴였다. 정식 명칭인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지심체요절」은 그리 생소하지 않았다.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 시대에 등장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구나 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지금까지 나는 앞부분이 의미하는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었다. 방점은 ‘금속 활자로 간행한’에 찍혀 있었다. 금속 활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을 때라면 금속이든 나무든 무슨 상관이냐 했을 거다.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만을 본 듯, 물 밑에 잠긴 방대한 의미를 모르고 지났을 거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소중한 가치 하나를 마음에 한껏 품게 되었으므로.
기록에 대한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도달한다. 물론 그 이전에 동굴 벽에 그려진 요상한 그림들도 존재하지만, 읽을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파피루스나 페르가몬의 양피지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록된 지식은 일부 특권층만이 보유할 수 있었다. 손으로 일일이 베끼는 방식과 종이의 기능을 하는 재료들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판 인쇄술의 발달은 곤충의 탈피처럼 획기적인 도약이었다. 그런데 갈라지고 휘어지는 나무는 보관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한가지 밖에 인쇄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한다. 드디어 등장한 금속활자. 단단한 금속은 오래 보관할 수도 있고 정보의 대량 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더 이상 몇몇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손쉽게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지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금속 활자에는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담겨있다.
1455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금속 활자를 발명했다.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가 1998년에 발표한‘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를 바꾼 100대 사건’ 중 1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내용을 본 순간, 답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200년 이상 앞서 금속 활자에 의한 인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생각나서이다.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78년이나 앞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되었다는 「직지」의 존재이다. 활용 면에서는 구텐베르크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지만, 나는 ‘최초’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최초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나는 과학 교사이다. 수업 시간에 과학 관련 시사 뉴스를 소개해주고 학생들의 의견을 발표시킬 때가 있다. 순간적으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학생들이 갑자기 집단으로 겸손해진다. 혹시라도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발표 내용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 후로 발표자의 수가 갑자기 불어난다. 심지어 뒤로 갈수록 발표 내용은 더욱 업그레이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초로 발표한 학생을 주목한다. 최초가 갖는 무게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 무게를 이겨낸 용기는 발표 내용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가열된 물은 100℃에서 수증기로 변한다. 100℃는 액체와 기체가 공존하는 온도이다. 지니고 있는 에너지의 양으로 볼 때, 100℃보다는 200℃의 물에 더 많은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100℃에 큰 의미를 둔다. 자유로운 수증기로 출발하는 최초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전자책이 흔한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종이로 된 책을 좋아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새 책이 도착하면 코끝을 바싹 들이대며 킁킁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종이 이전의 나무를 상상하면 책의 내용을 떠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제든 어디서든 틈날 때마다 펼쳐서 그 안에 담긴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책은 경이로운 기록물이다.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사람들마다 느낌은 제각기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느끼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다. 독서 모임을 하고 나면 생각의 나이테가 한 줄씩 늘어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이유를 거슬러 올라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직지」를 만난다.
지구 최저 온도인 영하 88℃가 측정된 남극 대륙의 ‘보스토크 기지’ 4km의 두터운 빙하 아래에 있다는 호수. 빙하의 하부가 지열에 의해 녹아 형성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거대한 호수라 한다. 이런 곳에 생명체가 존재할까? 과학자들의 관심 대상은 그 생명체가 곰팡이냐 바이러스냐가 아니라 존재 자체이다. 1960년대에 호수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생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문득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는 「직지」가 떠오른다.
백운화상이 「직지」를 만든 1372년, 그로부터 600년이 흘러 박병선 박사에 의해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직지」하권이 세상에 알려진 1972년, 발굴조사팀에 의해 「직지」의 발상지인 청주 흥덕사지가 발견된 1985년, 흥덕사지 남쪽에 자리 잡은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직지」찾기 전담반에 의해 「직지」상권 찾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8년.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최초’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는 찡함이 있다.
조금 조금씩 「직지」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모습들을 상상한다. 가슴이 뛴다. 점점 뜨거워진다. 의미 있는 존재를 발견한다는 것은 뭉클한 일이다. 그것이 ‘최초’의 무엇이라면 더더욱.
* 2017. 8. J백일장 공모, 최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