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팅 아일랜드 일공일삼 50
김려령 지음, 이주미 그림 / 비룡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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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모른 채 파고들며 질문했다. 인공지능로봇이 발달하면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 텐데 그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16세 아이의 시선에서 떠올릴 수 있는 답변이 궁금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생산될 물건을 쓰는 소비자가 될 테니까, 그 사람들이 돈을 못 벌면 소비가 줄어들 테니 결국 공장이 문을 닫게 될 거잖아요. 그러니까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고용해야 할 거예요. 이런 내용으로 천천히 흘러나오던 아이의 답변은 질문이 무색하리만큼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고 있었다. 표현은 서툴렀지만 논리적으로 희망을 말하는 아이의 답변에 뿌듯했다. 그 마음은 오후 내내 주변을 맴돌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세상은 특별한 몇몇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 우리 주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끌어간다는 것을. 특별함과 평범함을 나눈다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간을 누가 어떤 잣대로 특별함과 그렇지 않음을 판단합니까?(p183)’책 속의 문장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아까 들었던 아이의 답변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결말이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던, 미스터리하면서도 모험을 연상시키는 동화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동전의 양면 같다. 500원짜리의 동전은 고고한 학이 날아다니는 앞면이 마음에 들지만, 100원짜리 동전은 언제 맞아도 기분 좋은 점수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뒷면이 마음에 든다. 동전의 어떤 면을 좋아하느냐는 온전히 취향의 차이이다. 확률 1/2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책이다. 마음에 드는 점도 있지만, 어떤 시각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었으니까.

상징성이 크다는 점은 다소 허술하거나 불친절한 구성으로 비춰진다. 쓰레기가 쌓인 산, 하리 마을 아이들의 삶, 사원의 존재, 섬을 소개해준 아빠 회사 직원 등 등장 요소의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생략되어있다. 결과만 제시하고 원인을 감춘 모습이랄까. 따라서 독자는 이야기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유추하면서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 서툰 솜씨로 끓인 김치찌개를 맛본 듯 맛이 충분히 우러나지 않고 겉도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김려령의 이전 작품들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한다면 이것은 충분히 의도된 내용일 것이다. 김치찌개의 맛을 놓고 재료 탓만 할 수 없는 것처럼 책을 해석하는 독자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보인다. 수학처럼 답이 똑 떨어지거나 과학적으로 인과 관계를 치밀하게 증명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내 성향과 맞지는 않는다.

이 책이 드러내는 상징성은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책이 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생각한다면 독자는 여러 방향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동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과 사람들의 존재를 깊숙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몇 시간 만에 후다닥 읽게 되지만, 읽는 데에 걸린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어느새 내용 자체보다 내용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더 깊게 빠졌다. 세 가지 생각을 했다. 특별함과 평범함, 쓰레기 섬, 아이에 관한 것이다.

 

섬의 안과 밖의 사람들은 특별함과 평범함, 대단함과 하찮음이란 개념으로 대비된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의 빛과 그림자처럼 전혀 대조적인 삶을 살아간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경계를 나누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들었던 기사이다. 부유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인접해 있는 임대 아파트 아이들이 아파트 앞을 지나다니는 것을 꺼려해 통학로를 막아 멀리 돌아가게 했다는 내용이다. 특권 의식을 가진 그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임대 아파트의 아이들이 어울리지 못하게 통제까지 한다는 보도내용에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잣대에서는 돈의 소유 정도가 특별함과 하찮음을 판단하는 기준인 듯하다. 그 옛날 최영 장군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던데. 황금은 땅에서 나는 광물이다. 광물은 암석을 구성하는 성분이니 황금은 돌 맞다. 돌멩이 몇 개 더 소유했다고 특별한 인간이 되는가. 정신적 가치의 소유 정도를 기준으로 해도 그들이 특별할까.

시야를 넓혀 지구 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비만으로 인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과 바싹 말라 굶어 죽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로 골치를 썩는데 다른 쪽에서는 음식물 찌꺼기조차 구하지 못해 주린 배를 움켜쥔다. 지구라는 동그란 섬 안에서 동시에 공존하는 모습이다.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쓰레기 산이 상징하는 의미와는 다르지만, 여러 번 언급되는 쓰레기 산을 보면서 실제로도 존재한다는 쓰레기 섬을 떠올린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다는 2개의 섬이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조각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해류에 의해 모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과학 교과서에서는 환경오염 문제를 언급하면서 쓰레기 섬의 몇몇 풍경들을 보여준다. 보는 순간 마음이 덜컹 내려앉던 사진이 있다. 죽은 새의 배를 갈라 뱃속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함께 보여준 사진이다. 새의 위 속에 든 것이 소화되고 남은 물고기나 다른 생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각종 플라스틱과 스타이로폼 같은 것을 잔뜩 먹고 죽은 새. 먹을 것인 줄 알고 먹었다가 영양부족으로 죽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이 생태계의 자연스런 리듬을 깨뜨리고 있다.

 

동화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아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체념하며 살아가던 하리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 강주가 하리 마을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달라져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결국 아이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진다고들 한다. 희망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놓아버릴 수도 없는 삶이다. 이런 세상 안에서조차 아이들은 명쾌하고 과감하다. 작가의 말에서 그려진 세상을 공감하며 바란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 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은 언제쯤 가능할까.

 

우리는 각자 섬을 품고 살아간다. <플로팅 아일랜드>라는 섬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뿌리가 없이 둥둥 떠다니는 부유도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며 사람들 사이의 단절을 얘기했다. 내 안 어딘가에 존재할 나만의 섬은 주변의 섬들과 얼마나 이어져있을까. 책에서 등장하는 섬은 뿌리 없이 떠다니지만, 내게 있을 섬은 지형적인 섬의 존재와 닮았으면 한다. 바닷물을 거대한 빨대로 모두 빨아들인다면 육지와 바다 밑은 한 겹의 땅 껍질인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은 단지 육지와의 사이에 그보다 낮은 바다로 채워져 있는 땅일 뿐, 바다 아래로는 하나로 이어진다.

바람은 공기의 양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불고, 열도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로 이동한다. 자연계에는 양쪽의 상황이 평형을 이룰 때까지 이루어지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섬이 이어진다면, 지금 추운 곳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 처음은 아이에게서 시작될 것이다. 아이는 희망의 섬을 품고 세상을 향해 힘껏 손을 뻗는 용기 있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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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고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심스럽다. 개미 한마리라도 밟을까 살펴 걷는 수행자가 된 기분이다. 도시가 들썩이며 숨을 쉬는 것 같다. 요가라도 하듯 덩달아 숨을 깊숙이 들이마신다. 꽃심 전주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204페이지밖에 안 되는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왠지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글자 한 자, 사진 한 장까지 꼼꼼히 훑으며 전주라는 도시를 알아갔다.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은 착각이었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면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낯설고도 강한 매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전주는 양파 같은 도시였다.

 

전주시 홈페이지에서 e-book을 다운받아 출력했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읽고 싶어서였다. 책 제목의 꽃심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 보기에는 단지 멋진 신조어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의미는 책장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피어났다. 전주정신은 이 책을 매개로 깊은 맛을 냈다. 꽃차에 띄운 꽃인 듯 사르르 살아나다 설렁탕 국물처럼 점점 진하게 우러나더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를 압도했다.

 

전라북도 행정.교육.문화의 중심지. 수학여행 가서 비빔밥 한 번 먹어보고, 한옥 마을 휘리릭 다녀온 게 전부이던 내게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던 모습은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보다도 적었다. 담백한 두부처럼 전주의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한 글을 따라갔다. 마음은 덩달아 '전주'라는 도시를 천천히 걸었다.

 

더불어 함께 사는 대동’, 문화예술을 아끼고 즐기는 풍류’,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는 올곧음’,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만드는 창신’. 꽃심이 담고 있는 네 가지 특질은 전주의 구석구석에서 구현된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같은 마음으로 화합하는 대동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동학농민혁명, 민주화 열사들, 천주교 순교자들, 촛불의 꿈은 대동 세상을 향한다. 판소리, 전주대사습놀이, 태극선, 합죽선, 한지, 완판본은 멋과 여유를 지닌 책 풍류의 정신으로 춤을 춘다.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지켜낸 전주사고, 임란과 호란의 영웅들, 일제강점기에서 자존심을 지킨 한옥과 항일 투쟁은 올바른 뜻을 가지고 의로움을 향하는 올곧음이다. 후백제와 조선 왕조가 이어지는 왕도의 역사, 음식과 풍류와 영화에 불어넣은 새로운 숨결이 창신이다.

우리의 것이 많이 담긴 도시라는 점이 정겹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던 말이 떠오른다. 옛 것과 새 것이 어우러지는 적절한 조화로움은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온전한 고을을 뜻하는 지명대로 전주는 완전히 균형 잡힌 도시이다.

 

내용면에서 인상적이던 부분은 관련 인물과 역사적 장소에 대한 섬세한 서술이었다. 사상가, 목회자, 교육자, 성자, 명창, 서예가, 유학자, 춤꾼, 문학인, 영웅, 투사, 선비, 법조인, 영화인, 화가, 명장 등 수많은 인물들이 전주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터전을 잡으면서 전주의 역사를 만들었다. 구석구석 이들의 존재를 찾아낸 노력은 감동적인 또 하나의 역사로 펼쳐진다.

여행 관련 TV프로그램에서 유럽의 궁전이나 예전 모습이 남아있는 건물을 보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을 생각할 때면 용인 민속촌을 떠올렸다. 책을 읽고 놀랐다. 전주는 우리 고유의 건물과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장소들을 생각 이상으로 많이 품고 있었다. 이제는 전주한옥마을을 제일 먼저 꼽으려한다. 다른 나라와 견주어보아도 결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멋스럽기까지 하다.

장독집, 우물 깊은 집, 문이 많은 집 등 집의 이름에도 정감이 듬뿍 묻어난다. 과학계에서는 흔히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단위를 정한다. 전압의 단위인 V(볼트)나 힘의 단위인 N(뉴턴)은 모두 과학자의 이름을 뜻하는 맨 앞 글자이다. 단위의 형태로 자주 부르며 이들의 업적을 기리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견훤로, 태조로, 최명희길 등 길에 붙은 이름을 보면서 전주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조만간 한옥마을을 가보려 한다.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겉에서 본 한국적인 건축물, 길거리에 늘어선 먹거리, 이번에는 이것만 보고 오지는 않으리라. 전주를 거쳐 간 인물들의 발자취와 우리의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며칠간을 머물게 될 지도 모르겠다.

 

담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구성 방식도 감동적이다. 전체적으로는 시의 운율처럼 느껴지는 형식이다. ‘꽃심이 의미하는 네 가지 특질을 대등하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적절하다. 맛깔난 전주비빔밥을 먹은 듯하다. 나물 본연의 맛이 독특하게 살아나면서도 잘 어우러지듯이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은 책 안에서 고유한 빛을 발한다. ‘꽃심을 중심으로 정성스럽게 입혀진 옷에는 전주만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중간 중간에 시처럼 삽입된 문구들은 소금처럼 녹아들어 문학적인 맛을 낸다.

특히 시선을 끈 부분은 소주제의 첫 페이지이다. 두 가지가 마음에 든다. 첫째, 단어 연상 퀴즈처럼 관련된 낱말들로 그려진 그림이다. ‘꽃심에는 꽃 한 송이가, ‘대동에는 촛불 두 개가, ‘풍류에는 부채를 들고 판소리 하는 명창이, ‘올곧음에는 선비의 모습이, ‘창신에는 호남제일문이 형상화되었다. 이로 인해 그 안에 담긴 단어들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둘째, ‘전주 중학생들이 떠올린 낱말을 적었다는 점이다. 10대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면서 과도기를 지나는 중학생들. 아이들의 꿈틀대는 마음은 전주의 정신과 만나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다음 페이지도 좋았다. 다양한 세대와 각계 각 층의 전주 사람들이 연상한 단어들이 마인드맵처럼 나열되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민들레를 연상시켰다. 꽃의 마음에서 출발해서일까. 연약해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하나의 중심을 향해 힘을 합치는, 바람을 따라 날아가며 온 공간을 가볍게 메우는 홀씨가 생각났다. 나열된 단어들을 하나하나 실로 꿰면서 전주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글을 쓴 사람이 궁금했다. 맨 뒤에 적힌 저자 이름 최기우를 검색했다. 극작가이면서 전주대 겸임 교수이다. 올해 831일 자 전북일보 기사 한 자락에도 작가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2017 대한민국 독서대전 기획 전시의 일환이던 한 권의 책, 마음에 담다의 총괄기획자였다. 전주한옥마을에는 볼거리가 많은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한 권의 책으로만 감히 짐작해보건대, 작가는 전주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전주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문장마다 전주를 아끼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었으니까.

 

묘하다. 소설도, 시도 아닌 책이 이런 뭉클함을 주게 될 줄이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한 수제 퀼트 가방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데 코끝이 시큰했다. 도시가 아닌 전주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한편을 읽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문 공기는 거대한 기단을 형성하면서 그 지역의 온도와 습도를 닮는다. 전주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모르는 사이 전주가 뿜어내는 숨결과 향기가 배어있을 것이다. 책 속의 전주는 전주사람들을 푸근하게 감싸는 꽃이었다. 사람들 역시 꽃심자체였다. 문득 거시기란 말이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책을 읽은 내게도 참 거시기하게 꽃심이 흘러들어왔을까.

 

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자신을 딛고 서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길은 다 안다. 엉거주춤 인지 제자리걸음인지 뒷걸음인지도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주위 환경이 바뀌어도 길은 아득하게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길을 걸으면 옛 정신이 스며든다. 우리가 걸음걸음을 더 똑바로 해야 하는 이유다.(p178)’사진을 설명하는 작은 글씨로 된 이 문장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 읽는 순간 뭉클했다. 소중히 옮겨 적어 사무실 책꽂이 앞에 붙여놓았다. 두고두고 바라보며 음미하고 싶었다.

 

전주의 구석구석을 알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도시명의 유래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얼과 정신이 무언지, 어떤 이들이 이 땅을 밟으면서 살아왔는지, 이곳을 거쳐 간 피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길은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기에 귀 기울이며 제대로 걷고 싶어졌다. 천천히 숨을 쉬며 걷는다. 한 걸음, , 두 걸음, . 길이 내 발바닥을 툭툭 치며 말을 건다. 이봐! 내가 궁금하지 않나? 함께 걸어가려는 내게 도시의 숨결이 조금씩 스며든다.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 2017. 9. K 독후감 경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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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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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니! 앞부분에 실린 소말리아 소녀의 사진에 대한 설명이다. 한 끼를 굶어도 속 쓰림이 못내 괴로워 신경이 날카로워지건만. 소녀의 얼굴과 사진 밑에 있는 작은 글씨를 번갈아 바라본다. 감히 상상할 수도, 공감조차 할 수 없는 먹먹함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날 저녁은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생생하게 떠오른 사진 한 장에 밥알이 까슬까슬했다. 넘기다 사례 들러 켁켁 거리기도 했다. ‘먹는 인간을 읽었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차례를 훑어볼 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한국이라는 소제목만 언뜻 보고 내용을 엉뚱하게 재단해버렸다. 세상의 다양한 음식들을 소개하는 책이구나, 독특한 음식을 소개받으면 혹시 여행갈 일이 있을 때 한 번 먹어보자.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표지를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먹는인간에 대한 책인데, 세상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먹거리가 넘쳐나는데 왜 잿빛 숟가락 하나만 덩그러니 그렸을까. 더 컬러풀하고 입맛 당기는 먹거리가 떠억 하니 표지에 등장해야 맞지 않나. 책을 다 읽고서야 표지가 의미하는 것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숟가락 하나가 상징하는 것은 수많은 삶 속에서 묵직하게 매달려있었다. 그 무게는 생각보다 징하게 나를 잡아당겼다.

 

언젠가부터 습관적으로 먹어왔고, 곁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은 주변의 풍경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p21)’잊고 있었다. ‘먹는인간보다 먹지 못하는인간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메뉴의 선택지를 고르는 5지선다보다 먹느냐 먹지 못하느냐를 선택 당하는 O, X 문제가 훨씬 많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러시아를 지나 한국에 이르기까지 쭉 펼쳐지던 (食)’의 이야기는 음식이라는 포장지 안에 둘러싸인 삶이었고 사람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파는 나라, 사람이 먹는 음식이 짐승이 먹는 먹이와 다를 바 없는 나라, 인육을 먹던 군인, 고양이를 위해 통조림을 만드는 노동자. 방글라데시, 필리핀, 타이, 베트남 등 가난한 아시아의 음식 이야기 앞에서 사람과 동물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콜라를 마시며 해맑게 미소 짓던 북극곰이 다큐멘터리에서 지상 최대의 포식자로 등극하며 반달무늬물범을 잡아 두개골을 이빨로 뽀개는 장면에 전율이 일던 기억이 생생하다. 먹는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므로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먹이사슬의 장면이다. 생태계는 냉정하다. 차별의 실마리가 되는 행위(p118),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꾸역꾸역 위장을 채우는 상황. 독일, 폴란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등 갈등하는 유럽의 이야기에서는 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먹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찰한다. 생태계 이상으로 냉정한 인간계에 화가 난다. 인류가 직면한 식량 문제는 먹거리의 총량이 아니라 적절한 분배의 불균형에서 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데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현실에 속이 상했다.

 

아프리카는 뜨거웠다. ‘먹지 못함이 공기를 호흡하듯 자연스러운 나라, 달리 먹일 게 없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먹일 수밖에 없는 모유는 에이즈를 수직감염 시키는 원인이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우간다의 음식 이야기 앞에서 인류의 기원이 시작되었다는 아프리카를 상상하며 한동안 허탈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박노해, 2007)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다. <세계를 보는 새로운 책 W>(MBC W제작팀, 2008)에서 가장 충격적이던 아이티 공화국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먹을 것이 없어 진흙으로 구운 쿠키를 저렴한 가격으로 사먹는 사람들. 땅속에 있던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꿰매고 있는 사람들, 방사능 수치가 현저하게 높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달리 갈 곳이 없어 다시 돌아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음식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생명들을 담고 있다.

 

한국이 등장한 것은 의외였다. 외국인들에게서 흔히 언급되는 불고기나 김치, 비빔밥 이야기가 아니라 청학동, 재일 한국인 3세인 2군 투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서 음식이야기를 끌어낸 저자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한다. 일본인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같은 국민으로서 무덤덤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가는 곳마다 먹는 인간이 있고, 지금 그 음식을 먹는 데는 넘치도록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먹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둘러싸고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가 펼쳐진다.(p346, 맺음말)’, ‘국가 단위로 사물을 생각하면 안 된다.(p348~349, 문고판 맺음말)’,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아라.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라.(p352, 문고판 맺음말)’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정점을 찍는 장면처럼, 이 책에 적힌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저자의 맺음말이 가장 좋았다. ‘마이크로의 슬픔(p353)’을 보는 섬세함과 낮고 어두운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 숙연해졌다.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보도한 언론을 향해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기타노 다케시가 했다는 외침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이것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다.”(p362)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8억 가까이 된다는 생명을, 8억 개의 삶들을 상상하는 순간 무심코 흘린 밥풀조차 조심스러웠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 가장 인상 깊던 장면은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순간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노랫말은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스러진 수많은 죽음들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15억 명이 비만인 인간들과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하는 8억 명의 인간들이 공존하는 세상. 아이러니와 같은 사실을 되뇌며 영화 속 한 장면과 겹쳐지는 기시감을 느꼈다. 한 번뿐인 삶을 간절하게 붙들고 있는 생명들이 존재하는 세상 안에서는 커피 한 잔을 편안히 마시는 시간조차 미안해지는 일이었다.

 

 

*p245 : 혼돈의맛혼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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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식당 북멘토 가치동화 23
박현숙 지음, 장서영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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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먹고 싶다. 비빔밥에 화룡점정처럼 맨 위에 찍히던 노란 동그라미도 사라지고, 노르스름한 옷을 입은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도 급식 메뉴에서 자취를 감췄다. 나야 반백년 가까이 살았으니 슬금슬금 먹어도 상관없지만, 아이에게 먹이는 것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다보니 덩달아 못 먹게 되었다. 계란찜, 계란프라이, 계란말이, 삶은 계란, 계란 옷 입혀 부치거나 튀기는 무궁무진한 재료들. 몇 안 되는 요리 아이템 중 요직을 차지하던 이 소중한 것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허탈감이라니!

 

음식을 만드는 이의 양심을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말하는 동화이다. ‘제대로 된 맛을 찾아라라는 TV프로그램에서 선정한 17호점 식당 금보 일식’. 하지만 이 식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밀가루와 간장, 된장, 접촉 불량인 냉장고 안에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고기, MSG가 첨가된 우동 국물 소스를 몰래 쓰고 있다. 친구 아빠가 운영하는 이곳이 비양심적인 비밀을 감춘 채 운영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주인공 여진이는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처음으로 접하는 저자의 글이다. 천연재료로 우려낸 따끈따끈한 우동 국물을 마신 것처럼 개운하다.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이 동화가 지닌 장점은 등장인물 중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력에 있다. 비양심적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식당의 주인조차도 감싸 안는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참 좋다.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전개도 신선하다. 중간 중간 소금처럼 살짝 뿌려지는 약간의 유머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면서 나타내려고 하는 주제 의식이 분명하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일식집의 초밥처럼 깔끔한 글이다.

 

어릴 때 가장 맛있게 먹던 음식은 구운 김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반찬 그릇은 분홍색 둥그스름한 김 통이다. 안방에 신문지를 깔고 들기름을 솔로 바른 후 맛소금을 솔솔 뿌리는 것은 우리 형제들의 몫이었다. 우리가 번갈아가며 미션을 수행하면 엄마는 네모난 석쇠를 정성스레 뒤집어가며 연탄불에 김을 구우셨다. 바삭 구워져 살짝 갈색테두리가 생긴 김은 여덟 등분으로 나뉘어 김 통에 담겼다. 아직도 가끔 입맛을 다시면 그 때 먹던 김 맛이 생각난다. 도시락 김이나 8장 들어있는 A4 김이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음식은 어린 내게 그저 허기를 면하는 기능 이외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 습관적으로 하루 세 끼를 먹었다. 엄마가 되어 직접 요리를 하게 된 지금에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가 먹던 김 맛이 왜 그리 특별했는지를, 나의 세 끼에 들어있던 최고의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를. ‘음식의 최고 재료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래요.(p64)’ 나는 엄마의 정성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왔던 거다.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을 만든다. 비슷한 내용의 문장은 많은 책에서 언급된다. 음식의 기능은 에너지를 내고 몸을 구성하고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능을 조절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영양소를 검출하는 내용을 수업에서 가르치면서 습관적으로 말하는 내용이다. 가르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말했는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보니,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 와 닿았다. 아이가 먹는 것이 아이의 몸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흡입할지언정 아이에게는 어떤 재료든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실전은 달랐지만 정말 마음은 그랬다는 얘기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참치 캔이나 비엔나소시지, 베이컨, 도시락 김을 상습적으로 들이밀었고, 원 푸드 반찬을 제공한 적도 많았다.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준 지가 언제였더라. 둘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저녁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준다며 좋아라했던 불량 엄마는 최근의 행동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이리라 다짐한다.

 

계란을 사기가 조심스러워지기 몇 달 전, 계란말이를 하다가 처절하게 캬라멜 빛으로 변한 계란을 탄생시켰다. 음식은 할수록 숙련되기 마련이건만 계란말이는 갈수록 실패를 자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먹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했어.(p187)’ 처음으로 계란말이를 해보았을 때가 언제였더라. 그 때는 처음인데 너무 잘했다며 좋아했는데. 뒤집개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여 조심스레 말았던 기억이 마음 깊은 곳에 있다. 초심을 잃었던 걸까. 책 속에 나온 문장을 보면서 음식을 향했던 초심을 생각한다.

 

살충제 파동이 일었을 때, 계란에 무슨 벌레가 있길 래 살충제를 뿌릴까 의아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자유롭게 몸을 가눌 수 없는 좁아터진 닭장. 그 안에 갇힌 닭들에게 생기는 진드기를 제거하려고 직접 몸에 뿌린다고 했다. 밤에도 알을 낳게 하려고 조명을 계속 켜놓는다고 들었다. 책 속에 등장한 일식집의 비리도, 살충제 계란도 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부른 결과이다. 광우병이 이슈가 되었을 때, 소는 초식 동물인데 왜? 라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의 욕심이 가지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생명을 지닌 존재는 또 다른 생명을 취해 그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란 한 때 또 다른 생명이었던 존재 아닌가. 어찌할 수 없는 먹이사슬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최고의 재료를 담아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던 때를 기억하는 마음이라면, 음식과 관련된 사람들도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일을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초심을 잃지 않고 음식마다 최고의 재료를 담아내리라. 이런 마음이라면 다음에는 노르끼리하고 반들반들한, 예술혼이 담긴 계란말이가 나올 것 같은데, 언제쯤이면 편안하게 뒤집개를 휘두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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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뜨거워지는 일인가. 직지. 어학사전에서 의미를 찾아볼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관련 자료를 하나 둘 펼쳐볼수록 다가오는 의미가 이토록 묵직해질 줄은. 감동적인 소설이라도 읽은 양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북극 빙하에서 치즈 스틱 닮은 미생물을 발견하고, 우리 은하 너머에서 지구 닮은 행성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과학계가 왜 그리 들썩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무심코 흘려듣던 용어였다. 시험 문제의 단골 메뉴였다. 정식 명칭인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지심체요절은 그리 생소하지 않았다.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 시대에 등장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구나 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지금까지 나는 앞부분이 의미하는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었다. 방점은 금속 활자로 간행한에 찍혀 있었다. 금속 활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을 때라면 금속이든 나무든 무슨 상관이냐 했을 거다.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만을 본 듯, 물 밑에 잠긴 방대한 의미를 모르고 지났을 거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소중한 가치 하나를 마음에 한껏 품게 되었으므로.

 

기록에 대한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도달한다. 물론 그 이전에 동굴 벽에 그려진 요상한 그림들도 존재하지만, 읽을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파피루스나 페르가몬의 양피지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록된 지식은 일부 특권층만이 보유할 수 있었다. 손으로 일일이 베끼는 방식과 종이의 기능을 하는 재료들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판 인쇄술의 발달은 곤충의 탈피처럼 획기적인 도약이었다. 그런데 갈라지고 휘어지는 나무는 보관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한가지 밖에 인쇄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한다. 드디어 등장한 금속활자. 단단한 금속은 오래 보관할 수도 있고 정보의 대량 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더 이상 몇몇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손쉽게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지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금속 활자에는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담겨있다.

 

1455,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금속 활자를 발명했다.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1998년에 발표한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를 바꾼 100대 사건1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내용을 본 순간, 답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200년 이상 앞서 금속 활자에 의한 인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생각나서이다.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78년이나 앞선 1377,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되었다는 직지의 존재이다. 활용 면에서는 구텐베르크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지만, 나는 최초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최초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나는 과학 교사이다. 수업 시간에 과학 관련 시사 뉴스를 소개해주고 학생들의 의견을 발표시킬 때가 있다. 순간적으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학생들이 갑자기 집단으로 겸손해진다. 혹시라도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발표 내용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 후로 발표자의 수가 갑자기 불어난다. 심지어 뒤로 갈수록 발표 내용은 더욱 업그레이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초로 발표한 학생을 주목한다. 최초가 갖는 무게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 무게를 이겨낸 용기는 발표 내용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가열된 물은 100에서 수증기로 변한다. 100는 액체와 기체가 공존하는 온도이다. 지니고 있는 에너지의 양으로 볼 때, 100보다는 200의 물에 더 많은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100에 큰 의미를 둔다. 자유로운 수증기로 출발하는 최초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전자책이 흔한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종이로 된 책을 좋아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새 책이 도착하면 코끝을 바싹 들이대며 킁킁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종이 이전의 나무를 상상하면 책의 내용을 떠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제든 어디서든 틈날 때마다 펼쳐서 그 안에 담긴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책은 경이로운 기록물이다.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사람들마다 느낌은 제각기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느끼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다. 독서 모임을 하고 나면 생각의 나이테가 한 줄씩 늘어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이유를 거슬러 올라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직지를 만난다.

 

지구 최저 온도인 영하 88가 측정된 남극 대륙의 보스토크 기지’ 4km의 두터운 빙하 아래에 있다는 호수. 빙하의 하부가 지열에 의해 녹아 형성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거대한 호수라 한다. 이런 곳에 생명체가 존재할까? 과학자들의 관심 대상은 그 생명체가 곰팡이냐 바이러스냐가 아니라 존재 자체이다. 1960년대에 호수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생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문득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는 직지가 떠오른다.

 

백운화상이 직지를 만든 1372, 그로부터 600년이 흘러 박병선 박사에 의해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직지하권이 세상에 알려진 1972, 발굴조사팀에 의해 직지의 발상지인 청주 흥덕사지가 발견된 1985, 흥덕사지 남쪽에 자리 잡은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직지찾기 전담반에 의해 직지상권 찾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8.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최초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는 찡함이 있다.

조금 조금씩 직지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모습들을 상상한다. 가슴이 뛴다. 점점 뜨거워진다. 의미 있는 존재를 발견한다는 것은 뭉클한 일이다. 그것이 최초의 무엇이라면 더더욱.

 

 

* 2017. 8. J백일장 공모,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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