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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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과정은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마주치는 일이다. 나를 끌어내고 덜어내면서 복잡하게 응어리져 깊이 쌓여있던 고통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글을 쓸 때마다 종종 아픈 이유이다. 리뷰나 시가 완성될 즈음에는 대부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실컷 울고 난 것처럼 후련하다.

독서의 끝은 글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나서는 꾸역꾸역 노트북 앞에 앉는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처럼 퇴근 후의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낸다. 쏟아지는 직장일로 눈이 뻑뻑한 날에도 피곤한 몸을 끌고 커피숍에 가서 글을 쓴다. 노트북을 통해 내가 쓴 글을 객관적으로 마주 보며 나를 다독인다.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늘 마음에 걸렸다. 연애를 글로 배운다는 느낌이랄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머리로 인식하거나 가슴까지는 겨우 도달했으나 발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독후감을 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행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과격한 시위였다. 그런 낯설음이 두려워서 걸음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말이나 글은 행동으로 옮길 때 생명력을 갖건만 대부분 말과 글에서 그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내 글이 더없이 가볍다는 생각이 행동하지 못한 무거움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명력을 가지며 살아있는 책을 만났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이 사람 공부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엮은 책이다. 정신 분석 이론이나 심리학적 치료 기법을 말했다면 실망을 느끼며 그리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 터이다. 이 책은 달랐다. 삶의 현장에서 직접 끌어올린 말은 지하 몇 백 미터에서 올라온 암반수였다. 작가는 거리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 했다.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 탁월한 치유자가 된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작가의 태도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객관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노력까지 열심히 하니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다. 책 속에서 나는 속으로만 고민하던 고구마 같은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액체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뻥 뚫렸다.

 

반복되는 우울함으로 지쳐가던 때가 있었다. 결혼으로 새롭게 맺어진 인간관계 앞에서 한없이 서툴렀던 시기였다.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감당하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식탁 끝에 걸려있는 유리컵처럼 지냈다. 언제 깨질지 모를 불안함이 공기처럼 흘렀다. 내게 가장 추운 장소는 집이었다. 사회에서의 얼굴은 더없이 즐거웠으나 퇴근 후에 체감하는 온도는 낮고 공허했다. 그 온도차가 마음에 균열을 내며 딱딱하고 건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갔다. 길을 가다 갑자기 죽는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전원이 꺼진 채 멀티탭에 연결된 전기기구처럼 어두운 시간의 흐름을 근근이 유지하던 날들이 흘러갔다.

 

20144월의 그날도 시린 나를 견뎌야 했던 하루일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아파했지만 내 마음은 화석처럼 굳어버린 듯 했다. 안쓰러운 마음은 들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TV를 통해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았다. 나는 점점 무감각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행동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모든 일은 하기에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인데 팽목항에도 안산에도 가보지 못했다. 남들 다 달고 다니던 리본도 옷에 매단 적이 없고 핸드폰 뒤에 노란 스티커를 붙여본 적도 없다. 마음에 담긴 차가운 어둠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까지 얼려버린 것 같았다.

 

3년이 지난 후에야 뒷북을 치고 있다. 마음 속 얼음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음을 느끼면서였다. 고등학생이 된 둘째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비 크래커 절반만한 크기의 노란색 금속 열쇠고리가 자동차 키에 매달렸다. 출퇴근 때마다 시동을 걸면서 흔들리는 노란 영혼을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먹먹한 마음으로 한 번도 본적 없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3년이나 지나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차 키에 열쇠고리를 매달고 그들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점점 따뜻한 사람이 되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 한없이 느린 나를 돌아보며 쪼그라들었다. 내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도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작은 행동에 대한 의미를 드디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 그런데 괜찮아.(p70)’ 동생의 죽음을 한참 후에야 받아들였던 형을 상담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괜찮아라는 세 글자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조금 늦게 아파해도 괜찮아, 괜찮아 하며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글이 지닌 힘이었다. 강의 후 이어진 Q&A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만났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고통을 나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떤 방식이든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p114)’이라는 작가의 답변은 소심했던 나를 가만히 토닥였다.

 

올 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겨울의 입김이 남아있던 3월 아침, 패딩에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교문 앞에 서 계시는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을 보았다. 그 모습이 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내 느낌을 시로 지었다. 다음 날 오전, 시를 출력한 종이를 드리러 지킴이실을 찾아갔다. 마침 교내 순찰 중이시라 자리를 비우셨길래 다른 분께 전달을 부탁드렸다.

그분은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내 시를 읽고 우셨다며 살짝 붉어진 눈으로 고운 편지봉투에 담긴 답장을 건네주셨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갈하고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편지지에는 표정에 담겨있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신의 마음을 선생님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피곤함이 싹 가시고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셨다. 학생들을 더욱 잘 보살피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하셨다. 다른 두 분께도 시를 지어 드렸다. 세 분의 지킴이 선생님은 내가 지나가면 멀리서도 반갑게 다가오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소설 <삼총사>에는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구호가 등장한다. 멋진 리듬감을 주는 문구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지닌 문장이다. 19세기의 뒤마도 인간의 개별성이 나타내는 심오한 의미를 깨달았던 것일까. 작가 기타노 다케시는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와 관련해서 이것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다.”라 말하며 개별적 인간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정혜신 역시 한 개인에 집중하며 한 명 한 명을 치유해나간다. 강연의 결론은 모든 인간이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치유의 출발점(p150)’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이런 마음을 안고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결국 최종적인 치유자는 자기 자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으므로. 주변에서는 그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해지지 않을까.

 

나란히 배치된 세 개의 책상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업무적인 일로 지킴이실에 들른 날이었다. 각각의 책상 앞에는 내 시가 적힌 종이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볼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 당신들 마음의 온도를 1정도 높여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시를 드린 마음을 깊이 이해받았다는 생각과 감사한 마음까지 뒤엉켜 교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뭉클했다. 나를 치유하는 역할을 넘어 타인을 향한 글이 의미 있는 발걸음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작가는 문학을 가리켜 인간에 대한 치유적 접근에 적합한 도구(p144)’라고 말했다. 어쩌면 글로도 행동할 수 있겠다 싶었다. 행동하는 글이란 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글이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시린 마음을 녹이고 힘을 얻어 행동할 것이니. 내 글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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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팅 아일랜드 일공일삼 50
김려령 지음, 이주미 그림 / 비룡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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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모른 채 파고들며 질문했다. 인공지능로봇이 발달하면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 텐데 그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16세 아이의 시선에서 떠올릴 수 있는 답변이 궁금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생산될 물건을 쓰는 소비자가 될 테니까, 그 사람들이 돈을 못 벌면 소비가 줄어들 테니 결국 공장이 문을 닫게 될 거잖아요. 그러니까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고용해야 할 거예요. 이런 내용으로 천천히 흘러나오던 아이의 답변은 질문이 무색하리만큼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고 있었다. 표현은 서툴렀지만 논리적으로 희망을 말하는 아이의 답변에 뿌듯했다. 그 마음은 오후 내내 주변을 맴돌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세상은 특별한 몇몇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 우리 주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끌어간다는 것을. 특별함과 평범함을 나눈다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간을 누가 어떤 잣대로 특별함과 그렇지 않음을 판단합니까?(p183)’책 속의 문장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아까 들었던 아이의 답변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결말이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던, 미스터리하면서도 모험을 연상시키는 동화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동전의 양면 같다. 500원짜리의 동전은 고고한 학이 날아다니는 앞면이 마음에 들지만, 100원짜리 동전은 언제 맞아도 기분 좋은 점수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뒷면이 마음에 든다. 동전의 어떤 면을 좋아하느냐는 온전히 취향의 차이이다. 확률 1/2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책이다. 마음에 드는 점도 있지만, 어떤 시각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었으니까.

상징성이 크다는 점은 다소 허술하거나 불친절한 구성으로 비춰진다. 쓰레기가 쌓인 산, 하리 마을 아이들의 삶, 사원의 존재, 섬을 소개해준 아빠 회사 직원 등 등장 요소의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생략되어있다. 결과만 제시하고 원인을 감춘 모습이랄까. 따라서 독자는 이야기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유추하면서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 서툰 솜씨로 끓인 김치찌개를 맛본 듯 맛이 충분히 우러나지 않고 겉도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김려령의 이전 작품들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한다면 이것은 충분히 의도된 내용일 것이다. 김치찌개의 맛을 놓고 재료 탓만 할 수 없는 것처럼 책을 해석하는 독자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보인다. 수학처럼 답이 똑 떨어지거나 과학적으로 인과 관계를 치밀하게 증명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내 성향과 맞지는 않는다.

이 책이 드러내는 상징성은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장점으로도 작용한다. 책이 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생각한다면 독자는 여러 방향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동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과 사람들의 존재를 깊숙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몇 시간 만에 후다닥 읽게 되지만, 읽는 데에 걸린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어느새 내용 자체보다 내용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더 깊게 빠졌다. 세 가지 생각을 했다. 특별함과 평범함, 쓰레기 섬, 아이에 관한 것이다.

 

섬의 안과 밖의 사람들은 특별함과 평범함, 대단함과 하찮음이란 개념으로 대비된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의 빛과 그림자처럼 전혀 대조적인 삶을 살아간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경계를 나누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들었던 기사이다. 부유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인접해 있는 임대 아파트 아이들이 아파트 앞을 지나다니는 것을 꺼려해 통학로를 막아 멀리 돌아가게 했다는 내용이다. 특권 의식을 가진 그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임대 아파트의 아이들이 어울리지 못하게 통제까지 한다는 보도내용에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잣대에서는 돈의 소유 정도가 특별함과 하찮음을 판단하는 기준인 듯하다. 그 옛날 최영 장군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던데. 황금은 땅에서 나는 광물이다. 광물은 암석을 구성하는 성분이니 황금은 돌 맞다. 돌멩이 몇 개 더 소유했다고 특별한 인간이 되는가. 정신적 가치의 소유 정도를 기준으로 해도 그들이 특별할까.

시야를 넓혀 지구 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비만으로 인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과 바싹 말라 굶어 죽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로 골치를 썩는데 다른 쪽에서는 음식물 찌꺼기조차 구하지 못해 주린 배를 움켜쥔다. 지구라는 동그란 섬 안에서 동시에 공존하는 모습이다.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쓰레기 산이 상징하는 의미와는 다르지만, 여러 번 언급되는 쓰레기 산을 보면서 실제로도 존재한다는 쓰레기 섬을 떠올린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다는 2개의 섬이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조각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해류에 의해 모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과학 교과서에서는 환경오염 문제를 언급하면서 쓰레기 섬의 몇몇 풍경들을 보여준다. 보는 순간 마음이 덜컹 내려앉던 사진이 있다. 죽은 새의 배를 갈라 뱃속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함께 보여준 사진이다. 새의 위 속에 든 것이 소화되고 남은 물고기나 다른 생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각종 플라스틱과 스타이로폼 같은 것을 잔뜩 먹고 죽은 새. 먹을 것인 줄 알고 먹었다가 영양부족으로 죽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이 생태계의 자연스런 리듬을 깨뜨리고 있다.

 

동화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아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체념하며 살아가던 하리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 강주가 하리 마을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달라져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결국 아이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진다고들 한다. 희망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놓아버릴 수도 없는 삶이다. 이런 세상 안에서조차 아이들은 명쾌하고 과감하다. 작가의 말에서 그려진 세상을 공감하며 바란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 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은 언제쯤 가능할까.

 

우리는 각자 섬을 품고 살아간다. <플로팅 아일랜드>라는 섬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뿌리가 없이 둥둥 떠다니는 부유도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며 사람들 사이의 단절을 얘기했다. 내 안 어딘가에 존재할 나만의 섬은 주변의 섬들과 얼마나 이어져있을까. 책에서 등장하는 섬은 뿌리 없이 떠다니지만, 내게 있을 섬은 지형적인 섬의 존재와 닮았으면 한다. 바닷물을 거대한 빨대로 모두 빨아들인다면 육지와 바다 밑은 한 겹의 땅 껍질인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은 단지 육지와의 사이에 그보다 낮은 바다로 채워져 있는 땅일 뿐, 바다 아래로는 하나로 이어진다.

바람은 공기의 양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불고, 열도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로 이동한다. 자연계에는 양쪽의 상황이 평형을 이룰 때까지 이루어지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섬이 이어진다면, 지금 추운 곳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 처음은 아이에게서 시작될 것이다. 아이는 희망의 섬을 품고 세상을 향해 힘껏 손을 뻗는 용기 있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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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고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심스럽다. 개미 한마리라도 밟을까 살펴 걷는 수행자가 된 기분이다. 도시가 들썩이며 숨을 쉬는 것 같다. 요가라도 하듯 덩달아 숨을 깊숙이 들이마신다. 꽃심 전주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204페이지밖에 안 되는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왠지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글자 한 자, 사진 한 장까지 꼼꼼히 훑으며 전주라는 도시를 알아갔다.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은 착각이었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면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낯설고도 강한 매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전주는 양파 같은 도시였다.

 

전주시 홈페이지에서 e-book을 다운받아 출력했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읽고 싶어서였다. 책 제목의 꽃심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 보기에는 단지 멋진 신조어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의미는 책장이 넘어가면서 서서히 피어났다. 전주정신은 이 책을 매개로 깊은 맛을 냈다. 꽃차에 띄운 꽃인 듯 사르르 살아나다 설렁탕 국물처럼 점점 진하게 우러나더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를 압도했다.

 

전라북도 행정.교육.문화의 중심지. 수학여행 가서 비빔밥 한 번 먹어보고, 한옥 마을 휘리릭 다녀온 게 전부이던 내게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던 모습은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의 꼭대기보다도 적었다. 담백한 두부처럼 전주의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한 글을 따라갔다. 마음은 덩달아 '전주'라는 도시를 천천히 걸었다.

 

더불어 함께 사는 대동’, 문화예술을 아끼고 즐기는 풍류’, 의로움과 바름을 지키는 올곧음’,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만드는 창신’. 꽃심이 담고 있는 네 가지 특질은 전주의 구석구석에서 구현된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같은 마음으로 화합하는 대동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동학농민혁명, 민주화 열사들, 천주교 순교자들, 촛불의 꿈은 대동 세상을 향한다. 판소리, 전주대사습놀이, 태극선, 합죽선, 한지, 완판본은 멋과 여유를 지닌 책 풍류의 정신으로 춤을 춘다.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지켜낸 전주사고, 임란과 호란의 영웅들, 일제강점기에서 자존심을 지킨 한옥과 항일 투쟁은 올바른 뜻을 가지고 의로움을 향하는 올곧음이다. 후백제와 조선 왕조가 이어지는 왕도의 역사, 음식과 풍류와 영화에 불어넣은 새로운 숨결이 창신이다.

우리의 것이 많이 담긴 도시라는 점이 정겹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던 말이 떠오른다. 옛 것과 새 것이 어우러지는 적절한 조화로움은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온전한 고을을 뜻하는 지명대로 전주는 완전히 균형 잡힌 도시이다.

 

내용면에서 인상적이던 부분은 관련 인물과 역사적 장소에 대한 섬세한 서술이었다. 사상가, 목회자, 교육자, 성자, 명창, 서예가, 유학자, 춤꾼, 문학인, 영웅, 투사, 선비, 법조인, 영화인, 화가, 명장 등 수많은 인물들이 전주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터전을 잡으면서 전주의 역사를 만들었다. 구석구석 이들의 존재를 찾아낸 노력은 감동적인 또 하나의 역사로 펼쳐진다.

여행 관련 TV프로그램에서 유럽의 궁전이나 예전 모습이 남아있는 건물을 보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을 생각할 때면 용인 민속촌을 떠올렸다. 책을 읽고 놀랐다. 전주는 우리 고유의 건물과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장소들을 생각 이상으로 많이 품고 있었다. 이제는 전주한옥마을을 제일 먼저 꼽으려한다. 다른 나라와 견주어보아도 결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멋스럽기까지 하다.

장독집, 우물 깊은 집, 문이 많은 집 등 집의 이름에도 정감이 듬뿍 묻어난다. 과학계에서는 흔히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단위를 정한다. 전압의 단위인 V(볼트)나 힘의 단위인 N(뉴턴)은 모두 과학자의 이름을 뜻하는 맨 앞 글자이다. 단위의 형태로 자주 부르며 이들의 업적을 기리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견훤로, 태조로, 최명희길 등 길에 붙은 이름을 보면서 전주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조만간 한옥마을을 가보려 한다.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겉에서 본 한국적인 건축물, 길거리에 늘어선 먹거리, 이번에는 이것만 보고 오지는 않으리라. 전주를 거쳐 간 인물들의 발자취와 우리의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며칠간을 머물게 될 지도 모르겠다.

 

담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구성 방식도 감동적이다. 전체적으로는 시의 운율처럼 느껴지는 형식이다. ‘꽃심이 의미하는 네 가지 특질을 대등하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적절하다. 맛깔난 전주비빔밥을 먹은 듯하다. 나물 본연의 맛이 독특하게 살아나면서도 잘 어우러지듯이 대동, 풍류, 올곧음, 창신은 책 안에서 고유한 빛을 발한다. ‘꽃심을 중심으로 정성스럽게 입혀진 옷에는 전주만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중간 중간에 시처럼 삽입된 문구들은 소금처럼 녹아들어 문학적인 맛을 낸다.

특히 시선을 끈 부분은 소주제의 첫 페이지이다. 두 가지가 마음에 든다. 첫째, 단어 연상 퀴즈처럼 관련된 낱말들로 그려진 그림이다. ‘꽃심에는 꽃 한 송이가, ‘대동에는 촛불 두 개가, ‘풍류에는 부채를 들고 판소리 하는 명창이, ‘올곧음에는 선비의 모습이, ‘창신에는 호남제일문이 형상화되었다. 이로 인해 그 안에 담긴 단어들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둘째, ‘전주 중학생들이 떠올린 낱말을 적었다는 점이다. 10대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면서 과도기를 지나는 중학생들. 아이들의 꿈틀대는 마음은 전주의 정신과 만나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다음 페이지도 좋았다. 다양한 세대와 각계 각 층의 전주 사람들이 연상한 단어들이 마인드맵처럼 나열되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민들레를 연상시켰다. 꽃의 마음에서 출발해서일까. 연약해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하나의 중심을 향해 힘을 합치는, 바람을 따라 날아가며 온 공간을 가볍게 메우는 홀씨가 생각났다. 나열된 단어들을 하나하나 실로 꿰면서 전주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글을 쓴 사람이 궁금했다. 맨 뒤에 적힌 저자 이름 최기우를 검색했다. 극작가이면서 전주대 겸임 교수이다. 올해 831일 자 전북일보 기사 한 자락에도 작가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2017 대한민국 독서대전 기획 전시의 일환이던 한 권의 책, 마음에 담다의 총괄기획자였다. 전주한옥마을에는 볼거리가 많은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한 권의 책으로만 감히 짐작해보건대, 작가는 전주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전주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문장마다 전주를 아끼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었으니까.

 

묘하다. 소설도, 시도 아닌 책이 이런 뭉클함을 주게 될 줄이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한 수제 퀼트 가방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데 코끝이 시큰했다. 도시가 아닌 전주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한편을 읽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문 공기는 거대한 기단을 형성하면서 그 지역의 온도와 습도를 닮는다. 전주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모르는 사이 전주가 뿜어내는 숨결과 향기가 배어있을 것이다. 책 속의 전주는 전주사람들을 푸근하게 감싸는 꽃이었다. 사람들 역시 꽃심자체였다. 문득 거시기란 말이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책을 읽은 내게도 참 거시기하게 꽃심이 흘러들어왔을까.

 

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자신을 딛고 서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길은 다 안다. 엉거주춤 인지 제자리걸음인지 뒷걸음인지도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주위 환경이 바뀌어도 길은 아득하게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길을 걸으면 옛 정신이 스며든다. 우리가 걸음걸음을 더 똑바로 해야 하는 이유다.(p178)’사진을 설명하는 작은 글씨로 된 이 문장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았다. 읽는 순간 뭉클했다. 소중히 옮겨 적어 사무실 책꽂이 앞에 붙여놓았다. 두고두고 바라보며 음미하고 싶었다.

 

전주의 구석구석을 알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도시명의 유래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얼과 정신이 무언지, 어떤 이들이 이 땅을 밟으면서 살아왔는지, 이곳을 거쳐 간 피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길은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기에 귀 기울이며 제대로 걷고 싶어졌다. 천천히 숨을 쉬며 걷는다. 한 걸음, , 두 걸음, . 길이 내 발바닥을 툭툭 치며 말을 건다. 이봐! 내가 궁금하지 않나? 함께 걸어가려는 내게 도시의 숨결이 조금씩 스며든다.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 2017. 9. K 독후감 경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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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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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니! 앞부분에 실린 소말리아 소녀의 사진에 대한 설명이다. 한 끼를 굶어도 속 쓰림이 못내 괴로워 신경이 날카로워지건만. 소녀의 얼굴과 사진 밑에 있는 작은 글씨를 번갈아 바라본다. 감히 상상할 수도, 공감조차 할 수 없는 먹먹함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날 저녁은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생생하게 떠오른 사진 한 장에 밥알이 까슬까슬했다. 넘기다 사례 들러 켁켁 거리기도 했다. ‘먹는 인간을 읽었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차례를 훑어볼 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한국이라는 소제목만 언뜻 보고 내용을 엉뚱하게 재단해버렸다. 세상의 다양한 음식들을 소개하는 책이구나, 독특한 음식을 소개받으면 혹시 여행갈 일이 있을 때 한 번 먹어보자.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표지를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먹는인간에 대한 책인데, 세상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먹거리가 넘쳐나는데 왜 잿빛 숟가락 하나만 덩그러니 그렸을까. 더 컬러풀하고 입맛 당기는 먹거리가 떠억 하니 표지에 등장해야 맞지 않나. 책을 다 읽고서야 표지가 의미하는 것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숟가락 하나가 상징하는 것은 수많은 삶 속에서 묵직하게 매달려있었다. 그 무게는 생각보다 징하게 나를 잡아당겼다.

 

언젠가부터 습관적으로 먹어왔고, 곁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은 주변의 풍경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p21)’잊고 있었다. ‘먹는인간보다 먹지 못하는인간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메뉴의 선택지를 고르는 5지선다보다 먹느냐 먹지 못하느냐를 선택 당하는 O, X 문제가 훨씬 많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러시아를 지나 한국에 이르기까지 쭉 펼쳐지던 (食)’의 이야기는 음식이라는 포장지 안에 둘러싸인 삶이었고 사람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파는 나라, 사람이 먹는 음식이 짐승이 먹는 먹이와 다를 바 없는 나라, 인육을 먹던 군인, 고양이를 위해 통조림을 만드는 노동자. 방글라데시, 필리핀, 타이, 베트남 등 가난한 아시아의 음식 이야기 앞에서 사람과 동물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콜라를 마시며 해맑게 미소 짓던 북극곰이 다큐멘터리에서 지상 최대의 포식자로 등극하며 반달무늬물범을 잡아 두개골을 이빨로 뽀개는 장면에 전율이 일던 기억이 생생하다. 먹는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므로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먹이사슬의 장면이다. 생태계는 냉정하다. 차별의 실마리가 되는 행위(p118),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꾸역꾸역 위장을 채우는 상황. 독일, 폴란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등 갈등하는 유럽의 이야기에서는 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먹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찰한다. 생태계 이상으로 냉정한 인간계에 화가 난다. 인류가 직면한 식량 문제는 먹거리의 총량이 아니라 적절한 분배의 불균형에서 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데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현실에 속이 상했다.

 

아프리카는 뜨거웠다. ‘먹지 못함이 공기를 호흡하듯 자연스러운 나라, 달리 먹일 게 없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먹일 수밖에 없는 모유는 에이즈를 수직감염 시키는 원인이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우간다의 음식 이야기 앞에서 인류의 기원이 시작되었다는 아프리카를 상상하며 한동안 허탈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박노해, 2007)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다. <세계를 보는 새로운 책 W>(MBC W제작팀, 2008)에서 가장 충격적이던 아이티 공화국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먹을 것이 없어 진흙으로 구운 쿠키를 저렴한 가격으로 사먹는 사람들. 땅속에 있던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꿰매고 있는 사람들, 방사능 수치가 현저하게 높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달리 갈 곳이 없어 다시 돌아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음식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생명들을 담고 있다.

 

한국이 등장한 것은 의외였다. 외국인들에게서 흔히 언급되는 불고기나 김치, 비빔밥 이야기가 아니라 청학동, 재일 한국인 3세인 2군 투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서 음식이야기를 끌어낸 저자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한다. 일본인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같은 국민으로서 무덤덤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가는 곳마다 먹는 인간이 있고, 지금 그 음식을 먹는 데는 넘치도록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먹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둘러싸고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가 펼쳐진다.(p346, 맺음말)’, ‘국가 단위로 사물을 생각하면 안 된다.(p348~349, 문고판 맺음말)’,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아라.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라.(p352, 문고판 맺음말)’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정점을 찍는 장면처럼, 이 책에 적힌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저자의 맺음말이 가장 좋았다. ‘마이크로의 슬픔(p353)’을 보는 섬세함과 낮고 어두운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 숙연해졌다.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보도한 언론을 향해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기타노 다케시가 했다는 외침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이것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다.”(p362)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8억 가까이 된다는 생명을, 8억 개의 삶들을 상상하는 순간 무심코 흘린 밥풀조차 조심스러웠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 가장 인상 깊던 장면은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순간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노랫말은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스러진 수많은 죽음들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15억 명이 비만인 인간들과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하는 8억 명의 인간들이 공존하는 세상. 아이러니와 같은 사실을 되뇌며 영화 속 한 장면과 겹쳐지는 기시감을 느꼈다. 한 번뿐인 삶을 간절하게 붙들고 있는 생명들이 존재하는 세상 안에서는 커피 한 잔을 편안히 마시는 시간조차 미안해지는 일이었다.

 

 

*p245 : 혼돈의맛혼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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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식당 북멘토 가치동화 23
박현숙 지음, 장서영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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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먹고 싶다. 비빔밥에 화룡점정처럼 맨 위에 찍히던 노란 동그라미도 사라지고, 노르스름한 옷을 입은 몬테크리스토 샌드위치도 급식 메뉴에서 자취를 감췄다. 나야 반백년 가까이 살았으니 슬금슬금 먹어도 상관없지만, 아이에게 먹이는 것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다보니 덩달아 못 먹게 되었다. 계란찜, 계란프라이, 계란말이, 삶은 계란, 계란 옷 입혀 부치거나 튀기는 무궁무진한 재료들. 몇 안 되는 요리 아이템 중 요직을 차지하던 이 소중한 것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허탈감이라니!

 

음식을 만드는 이의 양심을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말하는 동화이다. ‘제대로 된 맛을 찾아라라는 TV프로그램에서 선정한 17호점 식당 금보 일식’. 하지만 이 식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밀가루와 간장, 된장, 접촉 불량인 냉장고 안에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고기, MSG가 첨가된 우동 국물 소스를 몰래 쓰고 있다. 친구 아빠가 운영하는 이곳이 비양심적인 비밀을 감춘 채 운영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주인공 여진이는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처음으로 접하는 저자의 글이다. 천연재료로 우려낸 따끈따끈한 우동 국물을 마신 것처럼 개운하다.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이 동화가 지닌 장점은 등장인물 중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력에 있다. 비양심적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식당의 주인조차도 감싸 안는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참 좋다.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전개도 신선하다. 중간 중간 소금처럼 살짝 뿌려지는 약간의 유머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면서 나타내려고 하는 주제 의식이 분명하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일식집의 초밥처럼 깔끔한 글이다.

 

어릴 때 가장 맛있게 먹던 음식은 구운 김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반찬 그릇은 분홍색 둥그스름한 김 통이다. 안방에 신문지를 깔고 들기름을 솔로 바른 후 맛소금을 솔솔 뿌리는 것은 우리 형제들의 몫이었다. 우리가 번갈아가며 미션을 수행하면 엄마는 네모난 석쇠를 정성스레 뒤집어가며 연탄불에 김을 구우셨다. 바삭 구워져 살짝 갈색테두리가 생긴 김은 여덟 등분으로 나뉘어 김 통에 담겼다. 아직도 가끔 입맛을 다시면 그 때 먹던 김 맛이 생각난다. 도시락 김이나 8장 들어있는 A4 김이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음식은 어린 내게 그저 허기를 면하는 기능 이외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 습관적으로 하루 세 끼를 먹었다. 엄마가 되어 직접 요리를 하게 된 지금에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가 먹던 김 맛이 왜 그리 특별했는지를, 나의 세 끼에 들어있던 최고의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를. ‘음식의 최고 재료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래요.(p64)’ 나는 엄마의 정성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왔던 거다.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을 만든다. 비슷한 내용의 문장은 많은 책에서 언급된다. 음식의 기능은 에너지를 내고 몸을 구성하고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능을 조절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영양소를 검출하는 내용을 수업에서 가르치면서 습관적으로 말하는 내용이다. 가르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말했는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보니,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 와 닿았다. 아이가 먹는 것이 아이의 몸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흡입할지언정 아이에게는 어떤 재료든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실전은 달랐지만 정말 마음은 그랬다는 얘기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참치 캔이나 비엔나소시지, 베이컨, 도시락 김을 상습적으로 들이밀었고, 원 푸드 반찬을 제공한 적도 많았다.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준 지가 언제였더라. 둘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저녁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준다며 좋아라했던 불량 엄마는 최근의 행동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이리라 다짐한다.

 

계란을 사기가 조심스러워지기 몇 달 전, 계란말이를 하다가 처절하게 캬라멜 빛으로 변한 계란을 탄생시켰다. 음식은 할수록 숙련되기 마련이건만 계란말이는 갈수록 실패를 자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먹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했어.(p187)’ 처음으로 계란말이를 해보았을 때가 언제였더라. 그 때는 처음인데 너무 잘했다며 좋아했는데. 뒤집개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여 조심스레 말았던 기억이 마음 깊은 곳에 있다. 초심을 잃었던 걸까. 책 속에 나온 문장을 보면서 음식을 향했던 초심을 생각한다.

 

살충제 파동이 일었을 때, 계란에 무슨 벌레가 있길 래 살충제를 뿌릴까 의아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자유롭게 몸을 가눌 수 없는 좁아터진 닭장. 그 안에 갇힌 닭들에게 생기는 진드기를 제거하려고 직접 몸에 뿌린다고 했다. 밤에도 알을 낳게 하려고 조명을 계속 켜놓는다고 들었다. 책 속에 등장한 일식집의 비리도, 살충제 계란도 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부른 결과이다. 광우병이 이슈가 되었을 때, 소는 초식 동물인데 왜? 라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의 욕심이 가지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생명을 지닌 존재는 또 다른 생명을 취해 그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란 한 때 또 다른 생명이었던 존재 아닌가. 어찌할 수 없는 먹이사슬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최고의 재료를 담아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던 때를 기억하는 마음이라면, 음식과 관련된 사람들도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일을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초심을 잃지 않고 음식마다 최고의 재료를 담아내리라. 이런 마음이라면 다음에는 노르끼리하고 반들반들한, 예술혼이 담긴 계란말이가 나올 것 같은데, 언제쯤이면 편안하게 뒤집개를 휘두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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