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점점 좁아지는 신문지, 발뒤꿈치를 들며 발끝이라도 삐져나올까 조바심을 내던 기억. 신문지 게임이다. 옆 사람과 서로 의지하다보면 어느덧 친밀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체온을 공유하는 숨 가쁜 시간은 긴장감과 따뜻함이 중첩되는 묘한 느낌으로 남는다.

로봇 시대를 다양한 각도로 고찰하는 저자를 따라가며 예전에 했던 게임을 떠올린다. 앞으로 체감하게 될 로봇 이야기들이 다가올수록 접혀지는 신문지 위에 올라선 듯 마음이 쪼그라든다. 두렵다. 이런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네이버캐스트에서 전차 문제사고 실험을 보고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다수를 살리느냐 소수를 살리느냐. 어쩔 수 없는 선택지라면 당연히 다수 쪽일 것이다. 하지만 소수가 자식이나 형제라면? 여전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로봇이나 기계의 모든 행동은 알고리즘으로 작동된다. 미래에 무인자동차를 타고 가다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인다면 어찌해야할까. 입력된 알고리즘이 나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융통성 없는 사람을 보면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냐며 답답해하는 경우가 있다. 곰곰 생각하면 완벽함을 자랑하는 기계야말로 바로 이런 존재 아닌가. 다양한 상황을 예견하고 적절한 판단에 의해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알고리즘 설계자들에 대한 깊이 있는 윤리 교육이 절실한 이유이다.

 

8년 전, 가족들과의 중국 여행에서 자유 시간이 주어진 첫 날, 중국어를 몰라 햄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도대체 뭐를 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던 거리에서 그나마 눈에 띤 간판이었다. 의도치 않게 매운 햄버거가 나와 속이 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동 번역 시대이다. 메뉴 사진을 찍으면 관련 자료가 쏟아져 나오기까지 한다. 의사소통이 더 이상 여행을 망설이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기계를 매개로 한다면 현지인과의 대화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대화는 말하는 이의 의도와 앞뒤 맥락이 핵심이다. 외뇌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알맹이 빠진 겉핥기식의 대화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화라 표현하기 애매한 수준의 사실 전달만 될 것이다. 대화다운 대화를 원한다면, 역시나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개방형 온라인 강의가 넘치는 사회에서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위키피디아로 대표되는 집단지성은 이미 유용성을 증명했다. 대학의 가치를 생각해보며 기계를 매개로 하는 SNS공간을 떠올린다.

언제부터인가 전화보다 카카오 톡 대화가 편해졌다. 음성을 듣거나 직접 만나면 오히려 어색하다. 편안하게 카카오 톡을 주고받던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온라인상의 많은 관계는 쉽고도 허탈하다. 순식간에 맺어지고 한순간에 끊어진다. 실제보다 부풀려져서 인식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온라인의 놀라운 파급력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사실은 2차원적인 화면이 감정의 모든 것을 전달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울림을 간과할 수 없다. 공기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3차원적인 에너지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대학에서의 지식 교류의 가치도 이런 맥락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중학교 과학 교사이다. 교사는 미래에 사라질 직업리스트 중 꽤 상위권에 링크된다. 적막한 수업 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종종 자문한다. EBS와 무슨 차이가 있나 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전해지던 희열이 두드러지게 줄었다.

진지한 질문이 오가는 순간은 간혹 교과 관련 직업을 말할 때이다. 아이들에게도 장차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하는 문제는 중대한 고민이다. 프랑스의 요리하는 로봇, 로봇 바텐더, 샌프란시스코의 로봇 바리스타, 실리콘밸리의 피자 만드는 로봇, 강아지 로봇에 이르기까지 로봇은 빠른 속도로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로봇에게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이다. 다가올 세상을 예측하여 직업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지만 어떤 직업이 적당할지 묻는다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직업의 영역에서 로봇의 비중이 점점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현명한 답을 발견한다. 직업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2~3개 혹은 그 이상의 직업을 갖게 될 아이들에게 적절한 답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의 드넓은 세계에 입문하고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손가락 아래로 펼쳐지는 온라인의 세상은 MSG처럼 나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완벽한 세팅 사진을 업로드하기 전까지 숟가락을 드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과 몇 시간을 훌쩍 보내는 일이 예사였다. 1년 이상을 그렇게 살다 겨우 빠져나왔다.

스마트폰 검색에 대한 조절 의지는 자주 힘없이 무너진다. 네이버 앱에서 과학뉴스를 훑어보다 연예 탭으로 무대가 옮겨지면 자제력은 날아가는 시간과 함께 금세 증발한다. 스마트폰에 끌려 다니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로봇 시대를 생각한다. 기계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지 않도록 강한 의지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가사 노동의 많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다양한 영역에 본격적으로 로봇이 등장하면 여유의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다. 예전에는 놀 줄을 몰랐다. 여가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일하기 위해 여가를 보낸 적이 많았다. 이제는 진정한 여가를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책 읽는 시간을 점점 일상화하며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 중이다.

 

요즘 즐겨보는 웹 소설 <모두 너였다>에서는 감정을 가진 클론이 등장한다. 과연 이런 인공지능이 가능할까 싶기는 한데, 미래에는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이 책의 저자도 관계의 심리학을 말한다. 저자가 던지는 물음에 꽤 많은 시간을 고민한다. 결론을 단정 짓기 어렵다. 로봇의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하면서 원하는 감정만을 누리는 관계를 진정한 관계라 할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 위안을 받고 나면 더 많은 공허함이 밀려들지 않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스마트폰에 과하게 의지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내 대신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던 스마트폰의 충전을 잊었을 때 머릿속도 덩달아 방전되었다. 부모님의 핸드폰 번호조차 가물가물했을 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집 전화만 있던 학창시절에는 꽤 많은 전화번호를 기억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번호가 손에 꼽힌다.

저자는 풍부한 기억이 풍요로운 삶이라 말한다. 인간은 망각과 선택적 기억을 통해 자신만의 기억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알수록 놀라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로봇과 기계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와 전망을 접하면서 인간이란 참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수많은 SF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정말로 올까. 저자가 건네는 말은 불안한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인간은 미래만큼이나 불확실하고 자주 결핍되는 존재이지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질문, 감정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그건 로봇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허점투성이의 결점이 미래를 극복하고 로봇에게 지배당하지 않을 힘이 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안도한다.

의기소침해하는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던 친구의 따뜻한 손이 생각난다. 비슷한 온도의 물건을 만졌을 때의 온기와는 달랐던. 딱히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느낌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36.5도의 열을 가진 로봇이 만들어진다 한들 친구의 손을 통해 내게로 전해지던 찡함을 구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내게도 있을 36.5도의 힘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진 지금,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불완전한 36.5도가 지닌 힘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 2017.10. G독후감 공모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10-27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 선생님이 시를 쓰셨다니... 나비종님을 다시 봤습니다. ^^

나비종 2017-10-27 14:40   좋아요 0 | URL
전공을 잘못 선택한 바른 예일 수도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