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울컥했다. 요즘은 왜 이리 울컥하는 순간이 많은 지. 세상을 향한 감정의 가닥이 강아지풀처럼 섬세해진 기분이다. 한 줄의 문장에도, 한 마디 말에도, 손바닥의 마주침에도 코끝이 찡해진다. 아까 오전만 해도 나를 멈춰 세우고 손 크기를 비교해보곤 제 손이 더 크다며 좋아라하는 여학생에 울컥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 손답지 않게 습진에 걸린 듯 군데군데 허물이 벗겨진 건조함을 맞대는 순간 갑자기 찡해지는 거다. 이 책이 그랬다. 책 속에 있는 두 문장이 팽팽하던 마음의 줄을 튕겼다. 그렇게 생긴 진동은 오랜 여운으로 마음을 흔들었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합니다.(p9)’서문의 말미에 있는 문장이다.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나 갱년기인가 봐.’라 말한다.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있는 말이다. 눈도 쉽게 피로해지고, 날밤을 세워도 끄떡없던 체력이 점점 떨어진다. 자꾸 뭔가 잊어버리고, 완벽함을 자랑하던 일처리에 간혹 허술한 구멍이 뚫리는, 뭐 대략 이런 증상들이다. 그래서 가끔 울적했다. 내년이면 오십의 나이에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와 같은 부류의 생각이 한가득 일 때, 이 문장을 만났다. 저자를 향해 되묻는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한가요? 얼굴조차 모르는, 앞으로 만날 일도 거의 없을 것 같은 사람이지만, 물론이죠! 라며 따뜻한 목소리로 답해줄 것만 같다.

 

두 번째로 나를 흔들던 문장은 그냥에 관한 것이다. ‘그냥 걸었다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듯하다.(p33)’순간이동으로 그 때, 그 날, 그 순간으로 날아간다. 꽤 오래전에 그저 좋은 사람이 있었다. 온종일 생각나고, 나도 모르게 시선이 머물던 사람.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것은 몇 번의 심호흡 끝에 겨우 나온 몸짓이었다. 만나면 늘 조심스럽던, 거슬러 올라가면 설렘으로 가슴 뛰는 사람이었다. 넘쳐나는 마음을 담고 있기 버거웠던 어느 토요일, 그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뭐라고 보낼까. 문장을 고르고, 단어를 정제하고, 1시간을 고민한 끝에 드디어 전송버튼을 누른다. “그냥..” “뭐예요ㅎㅎ그가 피식 웃으며 몇 문장을 더한 가벼운 답문을 보내왔다. 그는 아마도 이 두 글자와 말미에 이어진 두 개의 점이 지니고 있던 무게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을 매달고 있는 그냥이란 말은 그래서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단어이다.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p34)’라는 말의 깊이를 알기에 이 책의 나머지 90%를 읽기도 전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말과 글과 행에 관한 에세이다. 말은 마음에 새기는 것(p10)’, 글은 지지 않는 꽃(p11)’, 행은 살아 있다는 증거(p12)’라는 부재로 일상의 경험이나 단상을 어원과 유래를 섞어가며 산책하듯 서술했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p8)’란 말처럼 그의 언어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p18)’란 말에서는 토닥토닥 아픈 배를 문질러주는 엄마의 까슬까슬한 손길이 연상된다.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니, 내가 아팠던 만큼 상대방의 아픔에 좀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말이리라. 가끔씩 찾아오던 아픔의 순간을 더듬어본다. 아팠던 만큼 사람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글을 쓸 수 있겠지. 겪어온 모든 일들이 꼭 필요한 것 이었겠다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스티비 원더의‘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가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p306)’가볍게 흥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생경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별 감정 없이 흘려듣던 노래였는데, 왜 눈물이 핑 도는 걸까. 우연히 마주친 일화가 떠올라서일까.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했던 그는 사랑하는 딸과 아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성공한다 해도 15분 정도밖에 보지 못하는 수술을 감행했다 한다. 안타깝게도 수술은 실패로 끝났지만 딸아이를 위해서 눈이 보이는 척을 했다나. 안 보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다. 언젠가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공연 장면에서 멋으로 쓰고 나온 줄 알았던 선글라스의 진실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의 음악에서는 밝은 에너지가 풍겨 나온다. ‘향기의 매력은 퍼짐에 있다.(p293)’더니. 더없이 행복한 향기가 퍼져 나오는 것만 같다.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삶의 굴곡이 담겨있을까. 삶의 배경을 알고 듣는 노래는 더한 깊이로 마음을 울린다.

 

글쓰기는 그림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공통분모는 그리움이다.(p116)’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며 시를 쓰거나 독후감을 쓰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담겨있기도, 감정이 담겨있기도, 내가 담겨있기도 했다. 그것이 그리움이었나. 어떤 그리움은 따뜻했고, 뜨거웠고, 아팠다. 또 다른 그리움은 무지개로 빛났고, 무채색으로 가라앉았다. 부드럽고, 투박하고, 뾰족한 그리움도 있었다.

저자는 언어의 온도를 얘기했지만, 언어에는 색깔도 있고, 감촉도 있고, 향기도 있다. 언어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자극이다. 나의 언어는 다른 이에게 어떤 감각으로 느껴질까. 내 삶의 장면과 겹쳐진 글이 다중노출사진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더해져서 공명을 일으킨다면 좋겠다. 나의 그리움이 다른 이의 그리움과 겹쳐지는 순간이 온다면 마음이 한결 따뜻해질 것 같기에.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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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경험이라도 글로 기록해두면 좋아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가 사진 찍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쓴 글을 읽으면 부끄러워요. 마치 어린 시절 제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는 것처럼 느껴져요. ^^

나비종 2017-06-01 13: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글로 기록해두면 당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재현되거든요. 사진 찍는 행위와 같다는 말씀, 적절한 비유이십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읽으면 풋사과 맛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닌데, 당시에는 어찌나 진지 모드였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