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멀리 뛰기 - 이병률 대화집
이병률.윤동희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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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나왔다. 오랫동안 안 풀리던 수학 문제를 갑자기 해결한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 구입한사피엔스를 수용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워서 집어든 책이었다. <북노마드> 출판사의 대표 윤동희가 묻고, 작가 이병률이 답한 내용의 책이다. , 여행, 글을 쓴다는 것, 책을 만드는 것, 결혼, 관계, 사랑 등에 대한 생각들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후루룩 펼쳐보니 간간이 사진도 끼어있고 작가와의 대화집이라 부담감도 없을 것 같았다. 선택의 결과는 옳았다.

 

이성한테만 국한된 게 아니라 그냥 나하고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하고 함께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것.(p42)’

당신에게 맘에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시간을 기꺼이 내주겠다 의 의미겠죠.(p260)’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와 시간의 의미를 음미해본다. 내 시간을 기꺼이 내준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고, 삶에서 공통분모를 만드는 일이며, 비슷한 기억을 지니게 된다는 의미겠지.

 

그 사람한테서 느끼는 피로감이 제일 그 사람을 안 보게 하는 일이지요.(p45)’

난 그게 싫더라구요. 서로에게 쉬워지는 느낌이죠.(p207)’

퇴근 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했는데, 이제 생각하니 마음이 피곤했던 거였구나 싶다.

싫었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고 멀어졌던 사람도 생각났다. ‘서로에게 쉬...는 느낌’ . 그래! 이거였어! 끝내 풀지 못한 채 덮어버린 문제의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좋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p56)’

느낌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 행복합니다.(p113)’

이런 말은 듣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도 싶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친구를 만드세요.(p262)’

40대 후반이 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선이 선명해진다. 주변에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굳이 억지로 만나고 싶지는 않기에. 그래서인지 인간관계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듯하다. 간혹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섣불리 용기를 내기가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젊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상대가 나를 부담스러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조심스럽다.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면 20대 후반 정도인데. 직장에서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는 그 이상 차이가 나는 사람들도 좋아해주기는 하지만(, 결코 착각이 아니어야 해^^;) 스스로 어색할 때가 있다. 이 문장을 읽으니까 용기를 내서 손을 내밀고 싶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을 정확히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이 답답했는데, 한 가지 해결방법을 알았다.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들을 훑어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사람. 나는 사람에게서 상처받았으면서도 사람이 고팠던 거구나.

질문을 읽고, 작가의 답변을 읽고, 나만의 답변을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지금은 사람에 시선이 가 있지만, 또 다시 읽을 다른 날은 여행이 눈에 들어올 수도, ‘시와 글과 책이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겠다. 읽는 사람의 마음이나 상황에 따라 책의 빛깔이 달라지니 책은 카멜레온인가.

 

질문은 결국 그 사람이 누군지를 말해주는 것 같아요.(p65)’

수업 시간에도 교사의 질문 방식에 따라 학생들의 답변은 180도 달라진다. 또한, 알아야 질문한다고 알지 못하면 질문조차 어렵다. 작가의 답변을 보면서 윤동희가 던진 질문들을 되짚어본다. 내 성향으로는 작가보다 질문자와 더 코드가 맞을 것 같다. 사유가 깊고 시선이 가는 사람이다. 음악과 미술을 좋아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섬세한 편집 체계가 눈에 들어왔다. 띄어쓰기, 단어 관계없이 단락의 구분만 하는 보통의 책들과는 달리 단어 단위로 줄 바꿈이 되어있어 오른쪽 여백이 들쑥날쑥하지만 가독성이 매우 좋다.

중간 중간 다른 색지에 커다란 글자로 적힌 문장들도 본문과 겹치지 않아서 좋다. 본문에 나온 내용 중 편집자가 강조하는 문장들을 한 페이지를 이용해서 다시 커다랗게 적는 책이 많다. 마음이 강아지풀처럼 예민해져 있을 때에는 이런 것조차 은근히 거슬릴 때가 있었다. 편집자의 의도를 강요당하는 것 같고, 아까 본 문장을 또 적어놓는 것이 지면의 낭비라는 생각에. 커다란 글자가 색다른 지면에 떠억 있는 것에도 편집자의 의도가 들어있지만, 본문과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 산뜻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페이지는 맺음말이 적힌 p273이다. 편집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문장은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괜히 뭉클했다.

나중에 제가 유명해지면 인터뷰해주시겠어요? 그가 원하지도 않을 내 시간을 기꺼이 내드리고 싶었다.ㅋㅋ

 

글을 쓰는 건 사는 것하고 똑같아서 안으로 멀리뛰기 같은 걸 수도 있어요.(p165)’

책 제목 안으로 멀리뛰기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다보니 마음을 한 바퀴 돌고 나온 느낌이다. 내 안을 돌아, 내 밖을 지나 주변을 바라보고,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안으로 얼마나 멀리 뛰었을까.

표지 안쪽을 다시 한 번 들춰본다. ‘가슴 두근거리는 좋은 일만/ 2016 여름/ 이병률’ . 진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아 가슴이 뛴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요’. 뒷장까지 사인펜 자국이 배어나온 진짜 사인본이다. 더욱 뿌듯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또 한 번 가슴이 뛴다.

 

희뿌연 안개가 낀 마음속을 맨발로 걸어가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었다. 슬픈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닌 날들이 나비 날개인 듯 조용히 접혔다 펼쳐지며 흘러갔다. 책이란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 아닐까. 마음에 담긴 문장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걸 보면. 이병률 작가가 표현한 대로 사람이 기타하고도 같다’(p43), 책 안에 있는 문장들은 마음의 기타 줄을 울려주는 손가락일지도.

사람을 흔히 책에 비유한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면을 보고 느끼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다른 깊이로 읽히기도 하니까. 두 권의 책을 읽은 기분이다. ‘이병률윤동희라는 책을. 전문용어로 일타쌍피’ ? 아니, ‘일타삼피가 더 적절하겠다. 두 사람 뿐 아니라 내 자신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다ㅠㅠ

p193 : 차마 돌아보기도 시간을 살았던 것 같은데

*눈에 띄었다.

p203 : 낯선 침대 위에 부른 바람』→ ~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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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생 때 저보다 나이 어린 동생들과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저를 어려워해요. 그렇다 보니 저보다 나이 많은 형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40, 50 되면 형님들은 안 계실테고... 나이 어린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나비종 2016-08-29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님들을 너무 일찍 보내드리는 거 아닙니까?ㅋㅋ
20대 때에는 저도 나이 어린 친구들과는 소통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제는 20대 후반에서 30대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편해지고 있습니다. 50, 60대 이상은 불편하더라구요. 입장을 바꾸면 젊은 친구들이 제게 혹시 불편함을 느낄까 다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요.
편안한 소통은 아무래도 공통된 관심사의 싱크로율에 의해 좌우되겠죠. 그래서 북플 안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위 아 더 북패밀리라며 주장하고 싶습니다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