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위한 인문학
강수돌 지음 / 이상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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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만 되면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푸른 하늘, 눈부신 햇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벚꽃이라도 살랑살랑 흩날리는 날이면, 하아.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 뛰쳐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곤 느끼곤 했다. 오전에만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능률도 팍팍 오를 텐데. 주변 동료들도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환해진다며 같이 맞장구를 치다가 합창을 하듯 한숨을 푸욱 쉬곤 했다.

꼭 해야 하는 되는 공부는 오전에만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자유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오후가 있는 삶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오후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좋은 강의를 듣거나 좋은 책도 읽고, 사회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음악 등 취미생활도 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죠. 저녁에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차 한 잔 마시며 인생을 음미하면서 하루를 뒤돌아보고, 매일 존재의 기쁨을 누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죠.‘(p120)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풍경, 커다란 강 저편에 있는 유토피아처럼 느껴지던 문장. 한편으로는 불가능한 꿈이라 여겨져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 현실에서 어떻게?

 

어정쩡하게 물컹거리는 젤리처럼 흔들리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몰려드는 무력감. ‘노동, 시스템, 현실, 교육, 경제, 혁명, 대안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책들을 읽을 때마다 내 앞에는 커다란 강이 가로놓이곤 했다. 강 건너까지 가고 싶기는 한데 헤엄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된 나는 나아가지도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주춤주춤 눈치만 보고 있다.

책을 통해 그려지는 삶은 적나라하게 선명하다. 쌀쌀한 바람에 흩날리는 눈처럼 직접 보고 체감할 수 있는 현실이다.‘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떻게 해야 하는데?’비슷한 주제의 책을 읽고 참여한 모임에서, 저자들의 강연에서 한 번씩은 오가던 말. 고민의 자리에서 어떤 이는 딱히 답이 주어지지 않는 답답함을 말하고, 다른 이는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서 구호를 외쳐야함을 주장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서 구호를 외칠 용기가 없던 나는 가만히 침묵하곤 했다. 방관은 중립이 아니라 강자에 동조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그런 모습이 싫었기에 처음에 이 책은 썩 내키지 않는 짐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저자의 글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문체라는 점이다. 수학적인 명쾌함이 있고 논리적이다. 어떤 주제의 글이든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첫째, 둘째,...’이다. 문장이 늘어지지 않고, 난해하지 않다. 적절한 비유를 들어 조목조목 서술하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400여 페이지의 무게감이 수필을 읽듯 가벼워진다.

전국에서 행한 인문학 강의를 녹취하여 정리한 책이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교육과 일에 대한 고찰, 먹거리와 에너지 문제, 협동조합과 공동체의 정신,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 저자의 삶 등이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서술되어 있다.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어 강연을 듣는 듯 생생하다. 13개의 강의 주제나 세부적으로 붙여진 소제목만을 읽어도 중요한 내용이 파악된다. 역사교과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점정리를 잘해주는, 눈높이를 하급 레벨에 맞추어 수업하는 친절한 선생님이다. 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글쓴이의 행동이라 생각하는데, 마지막 강연에 기술된 지행합일의 삶은 그의 글에 묵직한 설득력을 가져다준다.

 

토닥토닥 다독이는 듯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따뜻함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굳이 무서워하는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치지 않아도, 나만의 작은 징검다리를 놓으며 강을 건너는 방법도 있음을 알려준다.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이들과 돌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의지하며 다리를 놓다보면 어느새 강 건너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게 되었다.

인생은 결코 결과나 높이가 아니라 과정과 느낌입니다.’(p10)

그동안 너무 멀고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살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행복한가 스스로 질문하고, 주변에 손을 내밀어 조금씩 함께 찾아가면 되는 것을.

 

원래 유토피아(utopia)는 그 어디에도 없는 아주 이상적인 세상입니다. 이걸 영어로 표현하면 No-where라고 해요. 그런데 발상의 전환을 해서 띄어쓰기를 다시 해보세요. Now-here, 지금 여기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발상의 전환만 잘하면 바로 지금 여기가 곧 이상향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p232)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니 마음속에 작은 희망이 고개를 내민다. 어쩌면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오늘 설거지는 내일로 미뤄도 되지만, 절대로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마시길 바랍니다.’(p189, 402)

오늘 설거지를 내일로 미뤘다. 그리고, 이 글을 썼다.

그래, 이 책의 리뷰를 아주 잘 쓰는 거야. 사람들이 궁금해져서 이 책을 마구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거지. 그러면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될 거고, 나처럼 희망을 가지게 될 거고,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다보면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며 이 문장을 쓰기까지 잠시 뿌듯해하기까지 했지만. 내가 쓴 글을 다시 거슬러 읽어보니, ‘나만 행복해하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 아무래도...

<마션>의 첫 문장이 생각나는 순간, 나는 마음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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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15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시간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한 시간도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밥 먹고 쪽잠 자고 나면 한 시간 금방 다 지나갑니다.

나비종 2016-01-15 16:53   좋아요 0 | URL
쪽잠ㅠ 꿈같은 일입니다ㅎㅎ 정말 가끔 날좋은 오후에는 뛰쳐나가 소풍이라도 가고 싶은데, 그러다가 쭈욱 집에서 쉬게 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