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살다 - 낯선 청춘의 행복한 재즈 듣기
최규용 지음 / 음악세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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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의 역사를 비전공자가 접한 기분이랄까?

가을이면 찾게 된다는 곡을 말하는데, 조금이라도 알고 있어야 ! 역시 가을 분위기지. ! 난 이 곡에서 겨울이 연상되는데…….’라 나름 공감을 하지, 당최 무슨 곡인지조차 모르는 문외한에게는 단지 글자만을 읽기 위한 책에 불과했다.

그림이었다면 심오한 깊이를 이해하든 말든 그냥 느껴지는 대로 감상하면 그만이겠지만, 이건 차라리 책에서 음악이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하다못해 감질 나는 1분 듣기라도. 황정은의계속해보겠습니다에 있었던 NFC칩처럼 더 책앱을 다운받아 들으면 음악이 띠리리링 나오는 상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래, 이건 독서보다는 공부에 가까웠다. 지난 토론 모임에서 아무도 이 책의 발제를 지원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던 거다. 무릇 사람들이 피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거늘 뭔 배짱으로 아무도 선택안하니 제가 할께요!”라 호기롭게 손을 들었는지. 내 발등을 찍을 일이다.

 

 

첫 장부터 고난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네이버 통합 검색에서 일일이 노래 제목이나 가수 이름을 찾아가며 전곡을 들었더랬다. 그러다 이 방법으로 읽다가는 몇 달이 걸리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악을 소개하는 책을 음악을 듣지 않고 읽는다는 건 미술 작품을 보지도 않고 작품 해설서를 읽는 셈이 아닌가.

절충안을 택했다. ‘네이버 뮤직으로 가서 ‘1분 듣기를 하기로. 그것조차 걸리는 시간은 만만치 않았다. 책을 읽기 전, 50장의 앨범에 실린 가수 이름을 목록에서 훑어보았을 때, 들어본 적이라도 있는 가수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몇 분을 지나 겨우 첫 장을 넘긴 내게 두 번째 고개가 다가왔다. ‘! .. 스타일, .. 재즈, .. 활동…….’내게 필요한 것은 네이버 뮤직외에도 네이버 백과사전내지는 국어사전이었다. 학교 다닐 때에도 이정도로 공부는 안한 것 같은데, 국어책에서 낱말 밑에 뜻을 적듯이 처음 들어보는 재즈 용어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알같이 메모했다.

 

후아! 3주 정도 걸렸다. 제목대로 내내 재즈와 살았다.

재즈에 대한 취향을 얘기한다면 역시 난 재즈 스타일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확실하게 내 음악적 취향을 파악하게 되었다. 나는 심장 쿵쾅거리는 드럼 소리에 가슴이 뛰는 마이너풍의 락이나 발라드를 좋아한다. 뿡뿡거리는 관악기나 끈적이는 피아노는 영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내팽개치기는 어려운, 가느다랗고 강한 끈을 잡는 느낌을 준다.

 

책을 읽는 중간에 손서은의 컬러 보이를 읽었다. 재즈를 색깔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1분 듣기로 살짝 발끝만 담궜지만, 내가 좋아하는 풍의 재즈에서 느껴지는 색은 회색이다.

삶이 만들어준 목소리(p66)’라 표현된 빌리 홀리데이의 < I´m A Fool To Want You >를 들었을 때 연상되었던 색. 삶의 어둡고 처절한 면이 투영된 이 곡은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잠시 숨이 멈춰질 정도로 강렬하다. 이전에 들어보았던 곡이지만, 이어폰을 꽂고 바로 머리 뒤편에서의 울림을 들었을 때의 묵직한 목소리는 새로운 분위기로 다가와 먹먹한 느낌조차 안겨준다.

니나 시몬의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는 처음 들어보았는데 목소리에 매료된 곡이다. 콘트랄토라는 여성 알토가 존재한다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톤을 알게 해주었다.

 

2곡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 외에는 존 콜트레인과 조니 하트만의 < They Say It´s Wonderful >, 줄리 런던의 < Fly Me To The Moon >, 솔레다드 브라보의 목소리로 예전에 들어보았던 < Hasta Siempre >, 베리 메닐로우의 < When October Goes >를 비교적 편안하게 감상했다.

 

어두운 재즈가 회색이라면 대부분의 재즈에서는 보라색 분위기가 연상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신비한 색깔처럼 빨랐다 느려지고, 반복되는 듯 하다 가도 미묘한 변화가 느껴진다. ‘영원한 현재라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p131)’라 말한 저자처럼 재즈는 독특한 스타일과 속도를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을 연상케 한다.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겉표지 안쪽에서 재즈를 가리켜 말한 최소한의 악기로 최소한의 음을 사용한 음악’. 자연의 법칙을 닮았다. 최소한의 경로를 선택해서 나아가는 빛이나 흐르는 물처럼.

중간 중간 삽입되어있는 그림들도 재즈 풍과 어울린다. 정적인 듯 순간 멈춤을 하거나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투영된 민낯의 분위기가 있다.

솔직히 재미는 없었지만 글을 이끌어가는 서정적인 감상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재즈 매니아들에게는 바이블 같은 책일 수 있겠구나 싶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심지어 재생이 허락되지 않은 안개 낀 곡을 접할 때마다 중간에 몇 번 씩이나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은 있었지만. 5개 중 2개만 체크하려다 음악에 대한 저자의 진실 된 감정은 이리 무식한 독자에 의해 저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별 4개로 체크를 했다. 1개를 살짝 남겨둔 이유는 역시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 취향은 아니기에.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그다지 큰 재미없이 흘러가는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지하철에서 잠시 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p147)’책을 읽는 동안 잠시 낯선 곳에 내려 이방인이 되었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람이 자기 삶의 마지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중략)...그래서 마지막에 자신을 대표하는 무엇 하나 정도는 남기게 되지 않을까?(p424)’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한 재즈 가수들을 보면서 왠지 짠한 기분을 느낀다. 감히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서도 아니고 가슴을 탁 막히게 하는 뭔가가 그 안에 투영되어있기에.

나의 삶을 생각해본다. 나를 대표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삶 자체를 토해냈던 목소리와 연주들처럼 나만의 독특한 삶을 이끌어낼 수 있는 주인이 되고 싶다. 고기 집을 다녀오면 냉면만 먹고 나온 사람에게도 냄새가 배듯이 조금이나마 재즈의 향기가 배어들었나보다.

 

참 이상한 일이다. 퉁탕거리고 뿡빵대는 소리가 분명 듣기 힘겨웠는데, 왜 나는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를 반복해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사소한 사족 : p84의 오타. 밑에서 4번째 줄, 정상적지정상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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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어 2015-01-0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비종 2015-01-03 00:05   좋아요 0 | URL
^^; 너무 모르는 분야라 읽기 힘겨웠습니다. .(부제: 개고생담 내지는 내가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