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그림자는 늘 고향 쪽으로 뻗어있고 붓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해 달린다.’M 커피 광고 문구다. 가끔 광고를 보고 싶어서 TV를 넋 놓고 볼 때가 있다. 단 하나의 문장이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시처럼 치열한 문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느낌이 참 좋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물렀던 부분은 큼직한 글씨로 쓰인 ‘책읽기 좋은날’이라는 제목도, 색감 좋은 겉표지의 그림도 아니었다. 희미한 듯 한 구석에 세로로 적힌 문장 한 줄.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 조심스러운 설렘이 느껴지는 문장. 불현듯 CF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이 한 권의 책은 나의 삶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겉표지까지 합치면 400여 페이지가 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짤막한 광고 한 편을 보는 것처럼 3페이지 이내로 구성된 리뷰들은 이런 걱정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서론, 본론, 결론이 나누어져 경직된 글이 아닌, 툭툭 던지듯 쓰인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서 경계를 풀어버린다. 작가의 짧은 경험과 간혹 섞여있는 유머가 중간 중간 피식 웃음을 안겨준다.

소개된 책은 매우 다양하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 많고, 만화부터 소설, 수필, 시, 철학서, 전문서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이 전시되어 있다. 어떤 책은 읽기도 전에 나와 잘 안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또 다른 책은 언젠가 한 번 사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내가 이런 책에 끌리는구나!’책을 통해 나를 다시 읽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강신주, 동녘)은 저자에 반해서 읽고 싶은 책이다. ‘그의 상담에는 가출 아니면 출가밖에 없다’(p99)는 저자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과감한 결단력에 호감이 갔다. 이런 사람이 쓰는 글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물론 ≪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 사계절)을 읽은 적이 있기는 하다. 그때에는 그저 철학을 비교적 쉽게 풀어쓰려하는 사람이려니 했었는데, 새로운 각도에서 저자의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123권의 책 중에 읽어본 책을 헤아려보니 ≪황홀한 글감옥≫(조정래, 시사IN북)(p241) 단 한 권이다.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글쓰기에 관하여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많아서 좋았던. 나의 독서경험이 이 책에서는 1/123 이라는 사실이 슬쩍 민망해지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읽었느냐보다 얼마나 느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스스로를 격려해본다.^^;

 

웃음과 관련된 책이 당겼다. 요즘 내가 지쳐있나 보다. 화장실 유머를 글로 구사한다는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데이비드 세다리스, 웅진지식하우스)도 읽어보고 싶다. ‘남이 처리하지 못한 화장실에서 오해받지 않고 나오는 법’(p162)은 경험한 적이 있는 일이라 정말 답을 알고 싶은 내용이다. ‘나보다 아이큐가 높은 고양이들도 있다. 이 결과 놀란 사람은 나뿐이었다.’(p162~163)는 은근히 생각할수록 키득거리게 하는 문장이다. 일로 쌓인 스트레스가 몇 개의 문장으로 잠시 풀렸다. 작가의 말대로 ‘울적한 날이면 이 책을 뒤적이며 웃는 법을 다시 익힐 수 있.’(p163)을 것만 같다.

또 다른 책인 ≪너한테 꽃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아?≫(데이비드 세다리스, 학고재)는 작가가 붙인 리뷰의 제목이 따뜻해서 끌리는 책이다. ‘평생 웃음은 내가 책임질게(p362)'라는 말은 지금 되뇌어도 따뜻한 난로 같이 든든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다니카와 슌타로, 문학과지성사)은 소개되어있는 시구의 문장이 나를 끌어당긴다. 동명의 시로 추정되는 내용 중 ‘만유인력이란 /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p314)라고 표현된 부분이 인상적이다.‘만유인력’이라는 말의 뜻을 20년 가까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만물에는 있다,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식으로만 풀이를 해 주었을 뿐. 어떻게 만유인력에서 고독의 힘을 연상할 수 있을까? 중력장으로 일그러진 우주 공간을 보고 서로를 원한다는 생각을 하고, 팽창하는 우주를 보고 불안함을 연상한다. 시인의 무한한 상상력이 놀랍다. 오카리나의 선율이 아름다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작사했다고 하니, 나중에 이 노래의 가사도 찾아봐야겠다.

 

역시 광고 카피는 언제나 내게 매력적이다. ≪짜릿하고 따뜻하게≫(이시은, 달)는 ‘일본의 명광고 카피를 소개하며 그에 얽힌 개인사를 풀어낸 에세이집’(p335)이라 한다. 한 번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인상 깊은 광고 카피들도 많은데……. 광고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낸 책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 명의 인터뷰어가 여러 명의 카피라이터를 만나 그 카피에 얽힌 에피소드, 평소 문구를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가,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시간은 언제인가 등 생생한 광고 아이디어의 세계를 알리는 책도 있었으면 한다. 내가 읽은 독서량이 지극히 적으니 이런 책이 이미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이유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저 좋아서 읽는다. 무엇을 위해서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사양한다. ‘해야 하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책 하나쯤은 온전히 도락(道樂)으로 남아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p393) 공감한다. ‘그저 좋아서’라는 말이 그저 좋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 - 랄프 에머슨’(p258) 리뷰가 갖는 매력 중 하나이다. 이미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읽는다면 ‘아! 이 사람은 이 책을 이런 각도에서 보았구나!’공감도 해보고,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리뷰라면 나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리뷰는 원래의 책과 독자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끈이다.

‘책을 읽는 독법에는 정답이 없다. 어디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답이 없듯이 그 책을 어떻게 해석할지에도 답은 없다.’(p394) 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 책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여 리뷰를 쓰는 것처럼 해석은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책은 그 책을 읽는 사람의 것이다.’(p394)

 

≪책읽기 좋은날≫을 통해 나는 나를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새삼 발견할 수 있었으며 요즘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책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두고두고 펼치면서 소개된 책들을 음미하고, 한 권 한 권 찾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다. 그때그때마다 샘솟는 물처럼 새로워지는 나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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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ungho 2012-11-1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앞으로도 더욱 따뜻한 서평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