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4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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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긴 치마를 입은 넌 나를 어떻게 상상했니. 직업이 교사라 하면 가정이나 국어 가르치시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다소곳하게 바느질내지는 요리께나 할 것 같은 인간으로 자주 오해받아왔다. 현모양처의 모델이라나.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참하다, 착하다는 말이었다.

틀을 깨고 싶다는 생각에 학생들 앞에서는 좀 더 오버했다. ‘나 원래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못하는 인간이야.’ ‘샘이요?!’ 나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지경까지 만들어놓았다.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못하던 시절도 있기는 했다. 몇 번의 알까기를 하고 나니 그런 성향은 먼 옛날 화석 속에 파묻혀버린다. 과격한 말을 참 우아하게도 한다며 반전매력에 끌렸다는 인간이 등장했다. 글쓰기에 몰두한 것도 첫인상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찾은 조용한 반란이었을 지도 모른다.

 

소설오만과 편견19세기 영국 여성의 결혼과 첫인상을 주제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알고 보니 반전남 다아시는 대놓고 오만한 첫인상을 시전한다. 첫인상이 준 편견으로 그를 섣불리 판단했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지혜로운 사리판단으로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결혼은 해피엔딩이다.

소설 속에는 두 주인공 이외에도 세 쌍의 조연 남녀가 각기 다른 이유와 과정을 거쳐 결혼한다. 일부 당사자를 포함한 주변 어른들은 집요할 정도로 결혼에 집착한다. 결혼이 이토록 목맬 일인가.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행동은 시대적 배경을 알면 거부감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사회에서는 결혼이 그토록 목맬 수밖에 없던 수단이었던 거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은 생존과 직결되는 수단으로 비중이 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극히 제한되었다는 점이다. 성인 여성은 생계 수단으로 삼아도 될 만큼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혼을 통해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는 게 앞으로의 삶을 영위하는 최적의 수단이 된다.

둘째,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방법도 녹록치 않게 했던 한사상속제도이다. 소설 속에서 줄기차게 언급되는 이 제도는 많은 등장인물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부모의 재산은 오로지 아들에게만 상속된다. 다음 세대의 상속인을 지정해놓아 몇 대를 내려가도 집안에 재산이 묶인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가까운 친인척 중 서열이 높은 남자에게 유산이 상속된다나.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한사상속이라는 속 터지는 제도에 자립 수단도 빈곤한 처지까지 겹쳐있는 넘사벽 사회이다. 사회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건네면서 현실적으로 다가왔으리라.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주제이기에 치밀하고도 영리한 접근 방식이 필요했을 거라 짐작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는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이 묻어나는 대화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제인 오스틴의 역량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여주인공을 통해 풍자와 직설적인 대화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당당한 여성상의 비전을 제시한다. 분노유발자들이 곳곳에서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도 바로 사이다 엘리자베스가 청량하게 해결해준다. 그녀를 따라가면 이야기의 파도타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엘리자베스의 등장이 고구마가 아닌 사이다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의 합리적인 성격에 있다. 리지는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놓고 판단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성격에 모순이 있음을 인지하는 인물이다. 돈이 목적인 결혼과 분별 있는 결혼의 차이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가 신중함이고 어디서부터 탐욕일까 진지하게 분별하고자 한다. 타고난 합리성으로 그녀는 다아시나 위컴에 대하여 가져왔던 잘못된 편견이 자신의 허영심에 있다고 판단한다.

소설 속에서 허영심은 여러 인물을 통해 오만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며 본질을 드러낸다. 여동생 메리는 오만과 허영심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오만은 스스로의 평가와 관련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우리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바와 더 관련이 있다고. 언니 제인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는 건 우리 자신의 허영심이라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최적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엘리자베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다.

 

합리주의자로 그녀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은 남주인공 다아시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 앞에서 은 없다. 페르소나 너머에 존재하는 날것 그대로의 본성을 꿰뚫는 어마무시한 이성을 장착하고 있다. 그 앞에서 겸손한 척을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겸손이란 종종 그저 의견이 없다는 소리이며 때로는 간접적인 자기 자랑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니까.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보다 모공까지 보인다며 윤두서 자화상 같은 말투를 시전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성격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오만하다는 편견을 불러온다.

다아시의 츤데레는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합당한 이유가 붙는 오만함으로 변모한다. 한결같은 면을 보면 소나무가 떠오른다. 푸르름을 고수하던 그이기에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거침없이 직진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그의 사랑에 색깔을 입힌다면 255,0,0 의 순도 100% 빨강이 어울리리라. 빵빵한 재력은 단지 거들뿐.

 

사람이 변한 건 아니리라. 사람의 성격만큼 고치기 어려운 것도 드물다고 하니까. 타고난 기질이 변하기는 하는 걸까.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변하는 건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과거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편견을 바꾼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사람을 알면 알수록 더 나아진다는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매너가 나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을 바라보니 요즘 유행한다는 MBTI 성격유형검사가 생각난다. 나는 대략 ISFJ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떠올려본다. 엘리자베스는 ESTJ, 다아시와 베넷씨는 ISTJ. 제인은 ISFP, 빙리는 INFP. 리디아, 위컴, 콜린스, 샬럿, 베넷 부인 등 5명은 모두 ENFP. 캐서린 드 버그 부인은 INTJ. 작가가 설정한 성격이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관점과 어긋나기도 할 테지만.

 

몇몇 부부들의 MBTI를 분석해본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외향성과 내향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성향에서는 공통점이 많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본 다음부터는 대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 건가?

제인과 빙리는 둘 다 내향적이고 감각과 직관에서만 차이가 있으며 나머지는 공통점이 많다. 부드럽게 어울리는 커플로 본다.

콜린스와 샬럿, 리디아와 위컴 부부는 모두 한통속. 똑같은 인간들이 끼리끼리 만난 커플이랄까?

베넷씨와 베넷부인은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반대의 성향이다. 맞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다. 물과 기름? 둘 중 누가 더 안쓰러운 상황일까. , 나름 추구하는 방향에 집중하며 따로 또 같이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와중에 저들 중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고고하신 캐서린 부인은 홀로 꼿꼿하시다.

 

인간은 0.3초만으로 상대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판단하며 3초 정도면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도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는 건 배경지식처럼 이미 심어져있는 편견의 역할이 크리라. 어설픈 정보와 결합한 첫인상 역시 편견을 심어놓는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속에서는 편견을 떠올리게 만드는 가슴 아픈 상황이 등장한다. 같은 행동을 해도 전교 1등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다. 꼴등은 사소한 행동조차 매번 혼이 나는 이유가 된다. 현실의 사회에서도 편견이 작용하는 사례가 흔하다.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하네.’얼굴이 못생겼으면 공부라도 잘해야지.’로 뉘앙스가 달라진다. 일반적인 미적 기준에 부합되는 외모의 소유자에게 많은 이들은 관대한 듯하다.

 

휘리릭 1분 듣기로 전체를 판단했다가 가끔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첫인상은 1분 듣기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말아야 할 맛보기 음악처럼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인간이란 존재를 쉽게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인간은 곰국처럼 우려야 깊은 맛을 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좋은 첫인상을 주는 사람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임팩트 있는 첫인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첫 인상이 가져오는 편견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항상 긴장할 필요가 있다. 첫인상을 깨기 위해서는 200배 이상의 강렬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던가. 바라보는 입장을 바꾼다면 200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짧은 머리에 찢청이 나의 첫인상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출근 따위는 없는 인간인양 이 새벽까지 두 눈 부라리며 글을 쓰는 중이다. 언제쯤이면 까도 까도 끝없는 매력의 양파 글이 될까. 지금 이 순간~마법처럼~?♪ㅎㅎ

 

 

몇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원문이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간다. 봐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p382 중간: 오천 파운드의 유산~

p384 중간: 죽은 뒤에는 오십 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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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3-22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력 중에 매력은 역시 반전매력인가 봅니다. 과격한 말을 우아하게 한다는 건 어떤것인지 그려지지가 않는데요? ㅎㅎ 저도 나름 반전 매력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실은 꽤 수다쟁이라서 다들 신기해하거든요. 그러면 반응이 딱 갈리는데, 떠날 사람은 보내주고 남는 사람은 좋아해주고 뭐 그런거죠ㅋㅋㅋ

이 책은 제가 썩 좋아하지 않는 장르와 소재인데 대만족하며 읽었어요. 결혼에 목숨거는 당시 사회배경을 알고 나니 완전 꿀잼 관전하게 되더라고요. 여러가지로 억압되고 억눌려있는 여성들 가운데 마이웨이하는 엘리자베스의 존재감이 참 대단했어요. 그렇다고 막 걸크러쉬를 외치는 것도 아니라서 남녀 독자들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지네요ㅎㅎ

사이다 같은 행동들도 미워할 수가 없는 게 다 분별있는 판단과 행동에서 비롯된 거라 좋더군요. 편견에 빠져버린 본인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구요. 보통은 자존심 상해서 억지주장을 밀어붙이거나 그냥 돌아서거나 하는데. 또, 그 시대의 허영심을 꼬집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저자의 넓은 아량이 느껴져요. 모든 면에서 <설득>보다도 우수하더라는..^^

관점이 바뀌었단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성격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잘 증명해줄 mbti분석이 있네요! 다아시의 오만함을 빙리는 아무렇지 않아했죠. 콜린스의 비호감도 샬럿에겐 문제되지 않았고요. 참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저는 이부분에 대해서 짚신도 다 짝이 있다는 표현을 적었어요. 성향이 같든 다르든 서로의 시각이 일치하는 게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서로의 호감/비호감 신호가 오가는 게 뭐 이렇게 재미있는지...ㅋㅋ

대면일 때는 못느끼다가 비대면일 때에 매력을 발견하기도 하더라고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에서도 매력이 느껴지니까요 ㅎㅎ 저도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정말 끝인 편인데, 이 책을 보고서 반성하게 됩니다... 여튼 이번에도 좋은 독서였어요. 이번 1분기 모임은 전부 대성공이군요 ㅋㅋㅋ다음 선정도서들도 다 좋았으면 합니다^^ 3월 마무리 잘 하세요!!

나비종 2022-03-22 20:52   좋아요 1 | URL
ㅋㅋ 반전매력, 쩔죠~ 이 원리가 적용된 최고의 스킬이 유머잖아요. 사람은 생각지 않은 갑툭튀에 웃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아직은 심히 어설퍼서 좀 더 내공을 쌓아야 하지만 첫인상과 다른 면이 발견되는 캐릭터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ㅎㅎ
<과격한 말을 우아하게 하는 예> 해맑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닥쳐~˝ ˝꺼져~˝ 뭐 이런 거?
저는 평소 과묵한 편입니다. 말보다는 글로 대화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성격이구요.
수다쟁이 물감님도 잘 그려지지는 않습니다.ㅋㅋ 글이 매력적인 사람이 의외로 말을 적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저도 결혼이라는 주제는 비선호 장르인데 이 작품은 경쾌해서 좋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제인 오스틴이 추구한 이상적인 캐릭터 아니었을까요?
맞아요. 막무가내 센언니가 아니라 합리적이라서 매력적이었어요. 순리대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편견을 가졌었음을 인정하는 과정도 깔끔했구요.^^

네! 저도 <설득>보다 좋았어요. 좀 더 명확한 흐름이 느껴져서 상쾌했거든요. 안개 낀 게슴츠레함은 딱 질색이라~ㅎㅎ

갈수록 느껴요. 사람, 참 안 변하는 존재라구요. 특히 본질로 파고들수록 고갱이가 바뀌는 건 드물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MBTI로 나름 분석해봤는데 판단이 애매한 인물도 있었지만 대략 파악해서 사랑의 작대기를 그어보았어요. 등장하는 부부 사이가 더 잘 이해되었다는ㅎㅎ
시각의 일치.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다는 말이 기억나네요.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요.^^

대면일 때보다 비대면일 때가 상대방에게서 더욱 내면에 가까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상대방의 스캔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달까요. 초고속 카메라를 느리게 재생하는 것처럼요.ㅎㅎ
맞아요. 얼굴도 본 적 없고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못한 사람의 글에 끌리는 신비라니요~ 제인 오스틴, 포에버~ㅎㅎ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까 한번 돌아섰던 마음이 가~~~끔은 서서히 모가지를 돌리기도 하더라구요.ㅎㅎ
올레~ 1분기의 성공을 자축합니다~ㅋㅋ 2분기도 열심히 픽업해주세요~ 멋진 고전 헌터로 거듭나소서~ 꽃을 시샘하는 바람의 마수에 걸려들지 마시구요,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