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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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님 당황하셨다. 앞뒤맥락도 없고 당최 뒤죽박죽이다. 대놓고 체계 없음에 화도 나지 않았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가 아니라 , 이런 소설도 있구나.’였다. 정신분열증적인 방식으로 다룬 소설이라는 작가의 설명은 매우 적절했다. 정신이 분열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의 소설은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적군과 아군, 낮과 밤, 여기와 저기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뜬금없이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을 따라 과거로 갔다 현재를 찍었다 미래로 쑤욱! 미국에서 독일로 공간이동까지 하며 갑툭튀 외계인이 주인공을 픽업하여 동물원으로 옮긴다. 반전소설이라기에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르면서 폐허가 된 전쟁터를 느리게 보여주는 장면을 막연히 떠올렸다. 장엄한 다큐멘터리스러움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종횡무진에 적응이 되었는지 이때쯤이면 타임 슬립 할 타이밍인데 하며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5도살장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1945213일부터 15일까지 영미 연합군이 독일 작센 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을 대상으로 행했던 대규모 공중 폭격을 고발한 소설이다. 5도살장은 당시 포로들이 수용되었던 도살장 건물로 드레스덴에 위치한다. 작가 커트 보니것은 23세에 독일군 포로로 잡혔다가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겪었으며 소설의 상당 부분은 그의 실제 경험이 투영된 사건이다.

23년 동안 마음에 담아온 경험의 무게는 얼마 만큼일까.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면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에 되도록 빨리 새기려 했거나 이도 아니면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1945년의 사건을 23년이나 흐른 뒤에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빌어먹을 빌리라 중얼거리며 허겁지겁 주인공을 따라가기 바빴다. 마지막 해설 부분까지 읽고 나서야 소설에 묘사된 장면이 다큐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읽는 방식을 달리했다. 주제를 전쟁과 시간, 두 부류로 나누어 관련된 부분만을 독립적으로 읽어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읽어보니 책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전쟁 관련 내용만 군데군데 발췌하니 맥락이 이어졌다. 드레스덴 폭격과 관련된 기승전결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쟁과 대규모 폭격에 대한 묘사가 생생한 이미지로 그려졌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 이들이 포로로 잡히는 과정, 참전 군인들의 생활, 그들 사이의 심리전, 도살장으로 끌려들어가는 장면, 대규모 폭격에의 노출, 고기를 보관하는 장소에 숨었기에 다행히 살아남은 일, 폐허가 된 도시의 묘사, 전쟁 내내 잘 살아남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서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삶의 아이러니, 시체들을 처리하다 화염방사기로 화장하게 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도살장 포로들의 생활은 장소의 정체성과 닮아있었다. 짐승에 가깝게 취급되던 그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둘째,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등장하는 부분만을 따로 읽으며 시간의 의미를 돌아보았다.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하리라는 것. 시간의 흐름을 한꺼번에 아우르며 과거에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은 과거의 불행한 기억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해준다. 작가는 외계인을 통해 인생의 행복한 시간에 집중하라고, 불행한 순간은 무시하라고, 그러면 영원한 시간이 그냥 흐르지 않고 그곳에서 멈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저 순간을 찾아다니며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면, 멋진 순간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고맙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차원을 바라보는 인식의 폭이 넓어지는 듯했다. 시간이 언급될 때마다 덩달아 책장 넘기기를 멈추고 과거의 짧은 장면들을 떠올렸다. 작가의 문장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다만 책의 뒤표지에 나와 있는 블랙유머, 웃음, 한없이 유쾌한, 눈물겹고도 흥겨운이라는 선전 문구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외국 정서의 차이가 이렇게나 큰 건지, 유머라고 손뼉칠만한 부분을 단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었다. 피식거리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아 대체 어떤 문장을 유머라 부르는 걸까 오히려 궁금해졌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향한 작가의 돌직구는 날카로웠다. 감탄스러운 멘트가 여러 군데 눈에 들어왔다.

첫째, 이 소설이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파한 문장이다. 저자는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라 말한다.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다면서 마지막 부분에는 새만 빼면이라는 문장을 적는다. 뒤에 나오는 지지배배뱃?이라는 멘트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조롱하는 어투로 읽혀진다.

둘째, 작가는 이 소설을 쓴 이유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빌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드레스덴에 있었다고 외친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그냥 댁이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이미 지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차마 믿고 싶지 않아 소설처럼 느껴지는 잔혹한 다큐라면 더더군다나. 몇 년 전부터 4월 중순이면 노란색 리본이 우리 심장 안에서 더욱 뜨거워지는 것처럼.

셋째, 폭격을 한 사람들을 로봇으로 비유한 장면이다. 로봇이 폭탄 투하를 맡았다며, 로봇에게는 양심이 없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하게 해줄 회로도 없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넷째, 히로시마 원폭의 두 배 가까운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왜 그걸 그렇게 오래 비밀로 했어야 했냐는 질문이 대놓고 등장한다. 작가는 작중 인물을 통해 말한다. 동정심 많은 척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게 그리 멋진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던 거라고.

다섯째, 현대 사회에서 소설의 기능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이다. 완전히 흰색인 방에 약간 색을 칠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몰랐던 사건을 알려주었다. TV속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거리감을 느껴왔던 전쟁이나 학살의 의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여섯째, 폭격 후의 드레스덴에 대한 묘사이다. ‘시체 광산달 표면이란 두 단어의 등장으로 이 상황에 대한 설명에는 더해질 말이 없었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면 폭격 후의 드레스덴을 촬영한 사진이 전부 흑백으로 등장한다. 폐허를 달 표면으로 묘사한 작가의 표현에 소름이 돋는다. 도시 전체 건물의 90%가 파괴된 현장. 인공의 달인 듯 거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광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달 인간은 전혀 없어야 했다라 표현한 작가의 문장이 날카롭다.

일곱째,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실체와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이다. 실제로 전쟁에는 소년병들이 많았다는 점, 평범하고 유약해 보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약자의 입장에서 전쟁을 묘사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전쟁을 떠올릴 때면 이를 주도하는 지휘자나 무기를 사용하는 자의 시선에서 출발을 해왔다. 그들과 반대편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달랐다.

 

처음 들어본 도시 명, 드레스덴. 어느 나라에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던 도시였다. 이 책에 대한 독서의 시작은 이 생소한 도시 이름을 검색해보는 데서 출발했다. 소설 초반에는 관련된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건가 궁금해서, 중반에는 묘사되는 장면들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하려고, 후반에는 피해 규모와 관련된 숫자가 믿기지 않아서, 다 읽은 후에는 인터넷 기록을 여러 군데 뒤져가면서 소설 속 장면과 다시 연결을 지었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드레스덴을 검색했다. 작가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드레스덴 폭격을 알리는 데 있다면 적어도 내게는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드레스덴은 비무장도시였다. 드레스덴 폭격은 융단이 깔리듯 이루어졌다 해서 융단폭격이라 불린다고 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고 한다. 1,249대의 폭격기가 동원되었고 3,900톤의 고폭탄과 소이탄이 투하되었다고 한다. 화재를 일으키는 능력이 뛰어나고 소화가 쉽지 않다는 소이탄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공식적인 사망자 수가 25,000명이라는 자료도 있고, 100,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자료도 있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135,000명이라고 기록한다. 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인터넷 자료마다 달라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왠지 소설 속 자료에 믿음이 간다. 3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무기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향했다는 점에 소름이 끼친다.

 

직접 겪은 일로부터 거리를 두며 관조적인 태도로 묘사한다는 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이 책에서 106번이나 등장하는 뭐 그런 거지는 대부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문장이 기술된 후에 따라붙는다. 충격적이거나 잔인하거나 어이없거나 허무한 죽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음에 관한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사실을 수시로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문장이다. 왜 나죠? 라는 질문에 외계인은 답한다. 호박 속에 갇힌 무당벌레처럼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것이며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다고.

깊은 밤, 불을 끄고 핸드폰 속에 담긴 드레스덴을 주르륵 더듬는다. 이제 자야겠다. 열을 내며 일하던 핸드폰을 잠재우니 순간적으로 순도 100%의 어둠에 휩싸인다. 암전. 잠시 후 어둠에 적응한 눈이 사물의 희미한 윤곽을 그려낸다. 작가가 목격했던 드레스덴의 풍경도 이와 비슷했을까. 적막한 시간과 공간의 냄새 말이다. 어두운 마음속에서 기억을 끌어올리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다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하는 용기를 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와 같이 무지한 독자는 이 소설로 인해 전쟁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으니까.

경험한 일을 통해 스스로의 소명을 찾아내기까지 그토록 오랜 기간이 필요했으리라. 책 안에서 두 번이나 언급된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을 천천히 읽어본다.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소설 속 주인공이 그랬듯이 작가는 폭격을 외면하지 않고 과감하게 시간을 거슬러 불타는 드레스덴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23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는 드레스덴 폭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을 품었고, 이를 소설화하는 용기를 냄으로써 독자들의 인식을 바꿔주었다. 작가의 23년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안겨준 시간이었다.

소설 초반에 언급되었던 소금 기둥이 떠오른다. 기어이 뒤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성경 속 롯의 부인의 심정을 작가는 이해했던 걸까. 완벽하게 암전되었던 세상에서 어쩌면 트라우마로 새겨졌을 일을 굳이 꺼내어든 작가의 마음은 기어이가 아니라 기꺼이에 가까웠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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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9-2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나비종님처럼 전쟁과 시간을 나눠서 읽어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네요ㅠㅠ 그냥 쭉 읽기에는 꽤나 고생스러운 책이었어요. 저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평들을 정말 많이 참고했거든요. 날카로운 분석력을 가진 서평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랐습니다... 나비종님도 그 중 하나입니다 ㅎㅎㅎ

아무래도 메인 사건은 드레스덴 폭격이니까 그 사건에 집중해보자 했는데 집중이 잘 안되더군요. 내용이 후반에 나오기도 하고 분량도 짜서 그런지, 독자가 확대 해석/분석을 해야하는 작품 같아요. 전시 속에서는 생존을 천운이라 볼 수가 없고, 죽음을 운명이라 볼 수도 없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누가 죽을 때마다 그런거지 하며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빌리 본인도 살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나 합니다. 역시 전쟁소설은 생명하고 가장 가까운 장르라고 생각되네요.

저는 전쟁보다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시간을 보는 관점이 더 재밌었어요. 3차원에 사는 인간은 시간이 흘러가지만 4차원에 사는 외계인은 시간이 늘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말하니까요. 멈춰있는 시간속에 인간의 기억들이 자유로이 드나든다는 점에서 지구인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말한 걸까요? 작품 내내 간접적으로 운명과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시간의 자유의지와는 별개인걸까 싶네요. 어렵습니다 ... ㅋㅋㅋㅋ

전쟁/대학살에 대해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라지만 저자는 살아남았고, 이런 책까지 써낸 것을 보면 보니것이 자신의 생각과 모순됨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말도 하면 안됐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기에 이 책을 ‘지지배배뱃?‘ 같은 새 울음소리에 불과하다는 말로 대체하지 않았나 싶어요. 말씀하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풍자하는 표현도 맞는 듯 합니다... 정말 날카로운 작가에요^^;;

나비종님의 리뷰를 보니 이 책의 의도를 알겠어요. 라인홀트의 기도문 내용이었네요. 바꿀 수 있는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대하는 태도. 지나간 일들은 바꿀 수 없으나 남겨진 이들의 인식은 바꿀 수가 있죠. 그 용기를 내준 작가에게 존경을 표하게 됩니다. 이래서 혼자 하는 독서보다 같이 하는 독서가 더 좋아요 ㅎㅎㅎㅎ 개인적으로 너무 바쁜 달이어서 독서를 많이 못했는데 이렇게 연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남은 9월 잘 보내세요^^

나비종 2021-09-22 23:54   좋아요 1 | URL
저도 편안하게 읽기 어려웠어요. 전쟁을 다루는 소설이 마음 편하게 읽힐 리는 없겠지만 ‘소설‘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재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흥미롭기를 기대했거든요. 횡설수설 뒤죽박죽인 게 제 스타일은 아니었음.ㅋㅋ
제게 날카로운 분석력이라니요! 대체 어디를 보고?^^;;

드레스덴 폭격은 확실히 배경 지식이 필요한 사건이었어요.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어요. 찾은 거 다시 찾아서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그랬거든요.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인지하고서야 작가의 서술이 이해가 되더군요.
전시 속에서의 생존에 대한 물감님의 해석에 공감합니다. ‘뭐 그런거지‘와 곁들여서 읽다보니 생존과 죽음은 랜덤으로 선택되는 우연에 가까운 일인가 싶더라구요.

시간을 보는 관점이 이미지로 상상되었어요. 눈앞에 펼쳐진 공간들을 바라보며 내가 가고 싶은 장소로 이동하는 것처럼 시간도 그렇게 된다는 거잖아요. 원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그 시간대로 종횡무진하며 갈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했어요.
어차피 맛은 정해져있으니 31가지 중 골라먹는 재미를 찾으라는 거 아닐까요?ㅋㅋ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가 보니것이 자신의 생각과 모순됨을 보여준다는 물감님의 견해에는 다른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래 모두가~‘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생각을 나타낸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거기에 반기를 든거구요. 너희들의 시커먼 속내를 다 알고 있는 나는 이렇게 지저귈테닷!!ㅎㅎ

제 나름대로의 해석은 그랬어요. 작가가 23년 동안 깨닫고 찾은 답이 라인홀트의 기도문에 있다구요.^^
소설의 내용은 드럽게 재미없었지만
1. 드레스덴 폭격을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커밍아웃 시킨 점과
2. 외계인을 도입하여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과 시간을 연결지어 자신의 의지를 어필했다는 점에서
별 한 개를 더 추가하여 4개를 주었어요.^^;

저도 같이 하는 독서가 좋습니다. 책보다 리뷰가 더 기다려진달까요.ㅋㅋㅋ 자발적인 약속이 지닌 견인력으로 고전의 세계로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시간들이 바쁜 일상 사이에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9월 마무리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