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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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를 연상시키는 기다란 모자, 애꾸 안경, 쾌감까지 투척했던 괴상한 도둑이 마음을 훔치는가 하면 담배 파이프를 비스듬히 물고 베레모를 쓴 탐정이 맞불을 놓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옛날의 나보다 훨씬 더 자란 아이와 시리즈물로 극장판까지 등장한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았던 기억까지. 추리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모리스 르블랑, 코난 도일, 애거사 크리스티, 아오야마 고쇼에 이르기까지 사건과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은 어린 나에게 동화책처럼 친숙한 장르였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추리 소설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는 안 했다는 표현이 적합하리라. 길이 아니면 가지도 않는 인간처럼 나는 의지를 갖고 그 방면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청난 다작이 놀랍기만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유일하게 사람이 죽지 않는 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 했던가. 대가리보다 큰 다이아몬드나 미술 작품을 순삭하는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의 추리 소설에는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피 질질 흘리며 엎어져 널브러진 장면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음산한 BGM이 귓가에 윙윙 울리는 듯하다. 추리물은 껍데기부터 무서웠다. 책을 들고 다니면 표지에 그려진 거무스름한 데다 얼굴도 없는 인간이 슬금슬금 깨어나 질척질척 들러붙을 것 같았다.

 

살아온 날들보다 귀신 될 날까지가 더 짧을 나이이건만. 으헉! 시뻘건 표지가 불안하다 싶더니 <모래 그릇1>에는 머리, 모가지, 어깨에 총구멍 뻥뻥 뚫린 인간이, <모래 그릇2>에는 열 손가락 다 벌려 유리창에 갖다 대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액션 인간이 있는 거다. 태양을 피하고 싶은 인간에 빙의하여 시뻘건 표지를 피하고 싶었다. 읽다가 덮어둘 때면 회색 바탕의 뒷면이 보이도록 책을 뒤집어놓았다.

이런 노력이 뻘짓이었음은 두 권을 다 클리어하고 나서야 드러난다. 올레! 드디어! 하지만 여전히 무서운 껍데기. 꼬랑내 나는 양말을 최소한의 손가락으로 집다가 스르륵 껍데기의 봉인이 풀린다. 온통 시.... 미적으로 세련되기까지 했다. 한 꺼풀만 벗겨보았으면 간단히 해결되었을걸. 추리 소설을 읽는 마당에 사소한 디테일을 놓쳐버렸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처음 읽는다. 세이초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추리 소설을 접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추리 소설은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라 내용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한 줄 요약을 하면, 증거가 사막의 물처럼 감질나는 살인 사건을 중년의 형사가 열 받지 않고 놀라운 인내심과 집요한 추적으로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으로 재미는 없다. 속도감은 걸어가다 다리 아플 때쯤 자전거를 타는 정도이다. 맛으로 치면 오래 씹는 밥맛 같다. 느려터지고 헛다리 짚는 전개에 밋밋한 맛이 나다가 2권부터는 사건의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살짝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진다. 통쾌한 사이다 결말이나 조마조마한 긴장감은 없지만 생각할 거리는 있다.

 

모든 살인의 동기는 결국 욕망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도 욕망이고, 우발적인 범죄도 중심에는 욕망이 자리한다. 그런 범행의 동기를 어떤 요소와 접목하느냐에 따라 다른 작가와의 차별성이 결정된다. 세이초는 사회적인 테두리에서의 접근을 시도한다. 그는 집합적 무의식에 비판적이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두 군데에서 드러난다.

첫째,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범인의 배경이다. 최초의 살인 사건 이후, 추가로 발생하는 살인은 자신의 민낯을 가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약간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뮈지크 콩크레트의 도입이다. 뮈지크 콩크레트는 2차 세계대전 후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전위 음악이다. 구체음악이라 불리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소리를 녹음한 다음 기계를 통해 변형하여 구성하는 작품으로 음향의 배열에 가까워 대중에게는 생소한 장르이다. ‘대중은 언제나 선구적인 난제에 난처해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에 익숙해지지. 그 순응이 이해로 이끌어주는 거야.(1, p326)’

 

주인공 형사가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경외심을 갖게 한다. 희미한 증거, 증거인 듯 증거 아닌 증거 같은 증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흘려보내지 않고 답답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경찰은 언제나 사건이 일어난 뒤가 아니면 수사권을 발동할 수 없다. 경찰은 범죄예방 차원에서는 완벽히 무력하다. 피해가 생겨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예감만으로는 수사할 수 없다.(2, p84~p85)’ 우연이 겹치는 단서들의 나열이 다소 억지스러워 살짝 거북했지만, 추가로 발생한 살인 사건에 무력함을 느끼는 마음에 공감하며 응원하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추리 소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았다. 피 질질을 피하고 육하원칙으로 정리되는 기사문과 같은 사실에 집중했던 어릴 때와는 달리 범행 동기와 사건 해결 과정에 눈길이 갔다. 삶을 지나온 시간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걸까.

 

내가 해석해본 이 책의 주제는 상처와 욕망이다. 표지를 다시 보니 이토록 적절한 그림이 없어 보인다.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가리고 싶었던 인간이 유리창 너머에 있다. 유리는 차별이라는 총알을 막아내지 못하고 쉽게 깨진다. 그를 적나라하게 비춰 감추고 싶은 이에게는 상처로 작용하는 벽이다.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인간이 도시의 고층 건물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도시를 품고 싶다는 욕망을 연상케 한다.

제목이 품고 있는 의미에 놀란다. 와르르 무너지기 쉬운 모래 그릇. 대략적인 의미는 감이 온다. 하지만 모래의 속성을 생각하니 깊은 의미가 더해진다. 모래는 0.02mm~2mm의 크기의 입자를 말한다. 이보다 크면 자갈, 작으면 실트나 점토라 불린다. 자갈로 그릇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릇은 고령토를 이용해 도자기를 굽듯 미세한 흙으로 형상을 만든 후에 불가마에 구워야 한다. 모래 만든 그릇을 상상해본다. 모래성처럼 형상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불에 구워낼 수는 없다. 단단하지도 못한 것이 단단하게 보이고는 싶고, 불에 구워지는 순응도 하기 싫다. 모래의 입장이라면 상당히 불안한 상황에 처한 욕망덩어리인 거다.

 

대부분의 시작은 사소하다. 마침표가 찍힌 후에 과정을 돌아보면 이토록 사소할 수 없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소함은 말의 뉘앙스와는 달리 결정적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인생이란 사소한 일을 계기로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알 것 같아요.(1, p57)’ 추리 소설에서의 사소함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소한 증거들을 차곡차곡 적립했기에 전체적으로 구슬을 꿰어낼 수 있었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에서는 주인공 박새로이의 운명은 사소한 일을 계기로 확 뒤집힌다. 사소한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아 퇴학을 당하고 감옥을 간다. 이쯤 되면 사소함이라는 말을 들이대기가 민망해진다.

멀리 있는 어떤 이에게 사소한 어떤 것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가까이 있다고 의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점이 화룡점정의 선명한 의미가 되려면 가까이에서 오래 자세히 보아야 한다. 사소함은 거리에 인내심의 농도가 합쳐져야 하는 섬세한 개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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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02-1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줄 요약이 굉장히 제 스타일입니다. 나비종님은 상처와 욕망에 집중하셨네요. 상처를 치유하려는게 아니라 감추기 급급하고, 그릇되다 하더라도 원하는걸 얻기위해 스스로를 버리는 욕망... 겉과 속이 다르면서 내내 고귀한 척하는 누보그룹이 꼴불견이었지만, 과연 이들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수 있을지는 모르겠더라구요. 인간은 누구나 기회가 오면 잡으려 할테니까요. 그것이 까만 속내를 감춰주기까지 한다면 누구라도 흔들리겠죠. 나비종님의 글을 보니 그들을 보던 저의 시선이 살짝 달라지네요!

모래그릇의 뜻도 신선하군요. 작중에서는 이렇다할 언급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거든요 ㅎㅎ 불에 구워낼수 없어 형상을 유지할수 없는 모래의 성질은, 결코 완성품이 될수 없는 그릇된 욕망의 소유자들을 잘 말해주는 것 같네요. 근데 참 책보다 리뷰가 더 재미있는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ㅋ

그건 그렇고 경찰 주인공이 너무 매력없던 작품이었어요. 2권이나 되는데 독자에게 힘을 주지는 못할망정 김만 새게 하는 캐릭터여서 아쉽더라구요. 날카롭고 예리한 감각수사는 소설속에나 존재할뿐, 현실은 전혀 다르다 라는걸 말하고 싶은가 했더랬죠 ㅋㅋㅋ 저와는 달리 주인공에게서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셨다고 하니, 나비종님 또한 인간승리인듯 합니다. 그리고 매번 힘든 고비를 넘기는 나물모임도 그러하네요^^

이제 분권 작품은 최대한 뒤로 미뤄야겠습니다. 역시 매월 모임을 해야 좋은거 같아요ㅎㅎ그래야 나비종님의 글을 하나라도 더 읽을수 있으니깐요~! 다음달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비종 2020-02-11 22:12   좋아요 1 | URL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시는군요, 굉장히~ㅎㅎ 저 역시 누보그룹의 페르소나가 가증스러웠지만 그게 과연 개인만의 문제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인 편견에 스스로를 끼워맞추려다보니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구요.

며칠동안 제목만 생각하며 보내다 에잇! 그냥 제 식으로 해석해보았습니다.^^;
나만 재미없나 싶었는데 참 재미없었다는 느낌을 공유하니 든든하네요. 책보다 댓글이 더 쏙쏙 들어오며 재미있는 건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이런 이유일겁니다.ㅋㅋ

경찰 아저씨, 너무 MSG가 없어서.. 하이쿠 얘기도 나오다 만 응가처럼 어정쩡하고, 쩝. 맞아요. 매력을 못 찾겠더라구요. 담백한 두부류도 아니고 당최 난감한 캐릭터였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두보 그룹의 두 분에게서 제대로 뿜어져 나오더라구요.ㅋㅋ
이렇게 힘든 고비를 넘어주어야 파동처럼 리드미컬한 재미가 있겠죠? 재미있는 다른 책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도 있구요.^^

^^매월 모임이 좋은 거 같긴 하네요~ 물감님의 유쾌한 리뷰도 만나고, 나비종서재의 유일한 댓글러의 친숙한 댓글도 만나고~
다음 달부터는 새학기 시작이라 겁나 바빠질 것 같지만, 그래도 책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려구요. 31일 11시 59분에 간신히 리뷰를 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