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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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인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에서는 흑백 사진 속 풍경과 비슷할 거라 한다. 전색맹은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명암만을 감각한다. 이 세상 누군가는 잿빛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색맹 중 가장 흔하다는 적록색맹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가까이 있을 때 두 색은 모두 회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미술이나 운전 관련 직업 선택에 제한을 받을 뿐이야.” 수업을 하며 나는 말했다. 다만 불편한 거라며 이해한다는 듯 오만한 말을 뱉어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인간의 감정을 무려 48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48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희로애락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 이 책의 주인공 윤재가 지닌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아몬드를 닮은 뇌 속 편도체가 발달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전두엽 이상으로 생긴다는 사이코패스는 들어봤어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존재는 생소했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의사 요한>의 주인공 요한은 ‘CIPA’라는 병에 걸린 인물이다. ‘CIPA’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각증이다. 뜨거움도 차가움도 그 어떤 고통에도 그의 몸은 반응하지 못한다. 몸에 칼을 대고 수술을 하는 순간조차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주사바늘에도 벌벌 떠는 나는 그런 질병을 품고 사는 이의 마음을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통각을 느끼지 못해 몸을 피하지 않으니 위험하겠다, 그러니 불안하겠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즈음 이 책을 읽었다.

아프지 않으면 좋지 않나. 1차적으로 드는 생각이지만 무통각증 환자에게는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생명에 위협을 가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그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외부자극이 와도 감각하지 못해 피하지 않으니 위태로운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아픈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구나. 아파야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으니.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지. 별개라 생각해왔다. 공통적인 속성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드라마와 이 책을 통해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병이 든다는 것은 몸이 말을 하는 거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슬픔이나 괴로움과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마음이 말을 하는 것이리라. 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라고. 몸이 느끼는 감각, 마음이 느끼는 감정에는 통증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아프다, 아프다며 몸이 통증으로 말하고, 아프다, 아프다며 마음이 통증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통증이란 언어와 같은 의미인걸까.

 

삶이 힘들 때마다 믿지도 않는 신을 종종 원망했다.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어렵냐며 투덜댔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p81)’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문장이다. 이 책 속에는 다르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p65)’ 평범함이 그토록 도달하기 어려운 가치라면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준도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p9)’라는 문장을 음미해보면, 존재하는 많은 대상들이 마찬가지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윤재의 삶에 뛰어든 곤이는 흔히 말하는 평범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이다.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폭력을 행사하고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고 어른들에게 반항한다. 학급에 한두 명씩은 있는, 전형적으로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는 친구이다.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때렸던 곤이를 착한 친구라 여기는 윤재의 모습은 교사로서의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다. 지난 학기에 수업 진행을 방해하며 나를 화나게 했던 몇몇 아이가 떠오른다. 나는 편견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걸까. 단지 다를 뿐인데 틀린 거라 규정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을까. 모든 아이들을 저마다 다른 들꽃으로 여기며 예뻐했던 20대의 나도 있었는데. 부끄럽다. 언제부터 편견의 벽이 이토록 두꺼운 더께가 되었나.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녀들을 그저 바라만보는 윤재의 모습은 아수라장이 된 주변 사람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 장면에서 나는 주인공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더욱 시선이 갔다. 곤이에게 씌워진 누명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반응도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윤재의 덤덤한 내레이션은 소위 방관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p218)’ 촌철살인의 뾰족함을 품은 문장이다. 이 문장 앞에 오래 머무르며 종종 방관자의 영역으로 들어갔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윤재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크다 말할 수 있을까. 판단하기 어렵다.

이 책을 20대에 읽었다면 참 독특한 병도 있다며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50대에 읽은 이 책은 깊숙이 스며들어 나를 흔들었다. 주인공 윤재와 친구 곤이의 세상과 현실에서 내 앞에 마주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상처 입은 아이들의 언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이런 마음인 것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마음인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런 표정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야 그런 표정을 짓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비교적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사람마다 감각의 역치가 다르므로 고통을 느끼는 정도 역시 다를 것이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오만한 시각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첫 발령을 받고 이듬해인가 상담했던 아이가 생각난다. 엄마가 절 미워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대요. 큰딸이었다. 먹먹하게 울먹이던 아이에게 나는 어쭙잖은 조언을 했다. 무늬만 현란한 교과서적인 상담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20대의 나는 꽤 멋진 말을 해주었다 자만하며 우쭐했다. 얼마나 무모한 오만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지금이라면 조금 더 조심스러운 공감으로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었을 텐데.

적록색맹을 단지 불편하리라 생각했던 마음도 오만이었다. 1차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로 인해 달라질 세상의 풍경과의 싸움, 찬란한 256색상환을 바라보는 것을 평범하다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과의 싸움,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부여잡고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와의 싸움에 던져진 마음을 배재한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감히 상상할 수 없어 이해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제는 그가 틀린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라며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한 것과 동등한 시선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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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8-2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생각했던건 사람은 모두 다른데 정상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였어요. 직장에서도 업무의 로직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과, 직원간에 원활한 소통을 더 높게 보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못하지만 사실 둘다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정답의 기준으로 살아가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제 생각과 판단을 무조건 옳다고 여기려 하지 않게되었어요. 제모습도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을테니까요^^;

나비종 2019-08-21 18:56   좋아요 1 | URL
‘다르다‘란 말이 자주 나오는 만큼 저 역시 다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후감을 쓰고 개학이 되어 교실에 들어가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전형적인 곤이의 모습과 놀랍도록 싱크로율 100%인 아이들이 각 반에 있거든요. 그 아이들로부터 받아왔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달까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을 함부로 단정짓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행동인지 깨달아지더라구요. 제 자신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라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점을 상대의 매력으로 여기기로 했어요. 그런 면에서 저도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을 터이니 물감님처럼 매력적인 인간으로 등극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