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동안 미뤄뒀던 [논어]와 [공자평전]을 정리했다. 뭐, 마지막에 결국 뒷글을 알라딘이 삼켜버려서 흐지부지하게 됐지만, 어떻게든 정리를 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날 사로잡았다.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양고전사상에 눈돌린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흔히 현실이 어려울 때, 복잡한 현실 상황에서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옛 일, 옛 사람에 의지하고자 하는 심리가 고전을,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내온 세월이 어느덧 앞을 보기 보다는 과거에서 편안함을 찾는 심신의 피곤함으로 쌓인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피로한 것일까?

어느 날 문득 옛 한시, 옛 산문을 보는데 그것이 그리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내 선조들의 삶의 역사를 제대로 무시하고 살았었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한 나의 인식과 지식은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허기감을 느꼈다. 그렇게 시작한 옛 것에 대한 관심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망망대해 속에 겨우 일엽편주 하나 띄웠다가 벌써 무서워 다시 해변가로 돌아가고만 싶은 심정이다. 어찌할꺼나 어찌할꺼나, 나의 능력과 허락된 시간들이 나의 욕심을 메우기에는 턱없다는 것을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벌써 지친 것도 같고.... .@@ 이럴 때는 그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제일 속편한 것인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제 풀에 지치겠지.

몇 권의 책들을 들여다보면서 '공자는 도대체 난세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논어]에도 공자에 대해 '안되는 줄 알면서 가는 사람'이라고 단정한 사람 얘기가 나온다. 공자는 당대 현실 정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상은 도달할 수 없기에 빛나는 것이고 우러러지는 것일지 모른다. 공자와 유가는 바로 그러한 이상체인지 모른다.   

공자 자신이 춘추쟁패 시대에 그러했고, 맹자가 법가, 도가, 묵자, 양주 등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싸워나가던 전국시대에 그러했다. 19세기 서구와 쟁패한 난세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 베트남, 조선에서 유학의 몰락은 처참했고, 일본은 영리하게 재해석을 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하필왈리'라고 반문하며 '자신은 오로지 인의를 말할 뿐'이라는 대의를 밝힌 원문을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는 시부자와 에이이치는 "의로써 이익을 도모한다"고 전유했다.

[공자평전]에는 1988년 중국 TV 정치토론프로그램 <<하상>>에서 나온 말을 소개하고 있다.

"용의 후계자여! 황하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미 우리 조상들에게 다 주었다. 우리 조상은 이미 문명을 창조했으며, 황하는 더 이상 다시 문명을 잉태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창조해야 할 것은 참신한 문명이다. 더 이상 그것이 황하에서 흘러나올 수는 없다. 구문명의 찌꺼기는 이미 황하 강바닥에 쌓여진 진흙처럼 우리 민족의 혈관 속에 쌓여 있다. 그것은 한 차례 큰 물살로 씻어내야 한다. 이 물살은 이미 와 있다. 그것은 바로 공업문명이다. "

씻어내야 할 구문명의 찌쩌기가 무엇을 말함인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인문적 가치, 도덕철학적 가치로서 유학이 여전히 유효할 수도 있으며, 처세와 인생에 대한 지혜를 구하는데 공자사상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

피곤하다. 경제토대와 정치체제의 관계 속에서 유학을 보는 것, 조선에서의 유학,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취향으로서 유학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은 피곤하다.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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