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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가지 죽는 방법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평점 :
가을비 내린 뒤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던 10월 어느무렵에 이 책을 읽었다. 그때 나는 현실적으로도 무척 고민하는 일이 있어서 어떤일이든지 집중하기가 힘든 시기였다. 가슴이 이유없이 답답하고, 나도 모르게 가만히 눈물이 흐르는 날들.
그때 매트 스커더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알콜중독자. 이혼을 했고 알콜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주모임에 나가는 것 이외에는 당장 해야할 일도, 앞으로의 삶의 계획도 불투명한, 수많은 낙오자 중의 하나.
"내 이름은 매트고요, 알콜중독자입니다"
말을 마친 그가 불현듯 운다.
그를 따라 나도 운다.
지독한 절망 앞에서, 스치듯 가까이 선 죽음 앞에서도 결국 희망을 붙잡고 놓지 않은 그가 대견해서, 내 스스로를 절벽 아래로 밀어내리던 절망의 끝자락에서도 희망을 찾으려고 애쓰는 내 삶이 아니 우리들 모두의 삶이 절절하게 다가와서 운다.
추리소설, 범죄소설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손에 잡았던 책인데 읽고 난 지금 내가 보기에 살인이나 범죄라는 소재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돋보이게 하는 딱, 그 정도로만 이용되었을 뿐 이 소설은 결국 인간의 본성과 다양한 생존의 형태에 바치는 생의 찬가다.
- 죽음에 이르는 800만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지하철 자살이 그다지 좋지 않은 방법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지하철에 몸을 던진다..................내 방 서랍에는 32구경 권총이 있다. 호텔 방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간단히 죽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종류의 일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나의 지독한 절망이 생각만큼 절실했던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
그래, 바로 이 문장이야.
우리는 절망이라고 말하지만 말하는 그 순간에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낸다면 희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나서 며칠이 흘렀다. 내가 고민하던 문제는 짐짓 어느정도는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또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고 예측하건대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문제이냐가 달라질 뿐 삶은 이러한 궤도를 되풀이하면서 전개되겠지.
그래도 살아버틸거야, 매트. 당신도 그러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