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을 교양과목을 고민하고 있을때 친구가 굉장히 재미있는 강좌가 있다고 했다. '심리학 개론' - 모두가 흥미있어하는 분야중의 하나이지만 심리학 개론에서는 엉뚱한 뇌의 구조와 생물학만 열심히 배운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를 따라 강의실에 갔다. 대형강의실에 사람들은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추가 수강신청은 4학년생만 받아들여졌다.
아....내가 4학년인게 참으로 다행이자 불행이었던 한학기였다. 그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더이상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서른이 조금 넘은 젊은 교수님은 사회심리학을 전공하셨고 수업은 뇌의 구조나 생물학은 전혀 나오지 않는 사회심리의 기초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한 학기동안 나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그 강의에 미쳐있었다.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한시간씩 일찍 학교에 갔으며, 교수님이 말씀하시는것은 한자도 빼놓지 않고 적고 이해하고 찾아봤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그다지 공부에 열심인 학생도 아니였고, 특히 대학에 와서는 흥미를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개론'이라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깊은 내용은 하나도 없었지만, 매시간이 지나가는게 안타까웠고 더 배울수 없는게 아쉬웠다. 시험을 두번 보았는데 만점이었다.
마지막 학기에 나는 친구들에게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지만 실제로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내 전공은 산업공학이었고, 더이상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 취직을 결심했지만 그 교수님 연구실이라면 밤을 새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다. 전공도 좋아서 선택한 것이었고, 취직도 쉬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품고 있는 이런 열정이 환상이였음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 나는 심리학에 대해 아는 것이 딱 그 교양과목 하나와 교수님 한분밖에 없지 않았던가. 깊이 들어가면 어떤 내용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 그 깊이 들어가기 전에 배워야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배움 후의 길은 어디인지...결국 낯선 길을 무턱대고 갈 용기가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늘 꿈을 꾼다. 살다가 언젠가는 꼭 그 길에 가까이 가리라.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지만 모든 길은 통한다는 것을 믿기에 기회가 올때 놓치지 않으면 그 길을 가진 못하더라도 가까이에는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마치 연금술사의 크리스털 상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