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있게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회사를 꼬박꼬박 나가야했고, 주말에는 집에도 다녀왔다. 결국 일주일간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은 선거일과 평일의 퇴근 후 두어시간 정도였다.
계속하여 mp3를 열심히 틀어놓은 결과 Tape2개 분량의 청취교재를 10번정도 반복해서 들었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부분을 특히 많이 듣긴 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귀에 익어서 "이 교재는 이런이런 문장을 담고 있구나" 정도는 파악하게 되었다.
흔히 일본어의 구조는 우리나라 말과 비슷해서 공부하기 쉽다고 한다. Tape을 들으면서도 느낀건 단어나열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우리나라 문장에 일본어 단어를 하나하나 집어넣으면 대충 맞는다는 느낌이다. 어린 시절, 영어를 처음 배울때 그 두서없음에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일본어란 그나마 친숙한 언어인듯 싶다. 특히 '감'이라는 것도 대충 맞는 것에 감탄했다.
오늘 버스를 타며 tape을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웅얼웅얼 따라하고 있었다. 옆에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남자 아이가 앉는 바람에 내가 '공부에 미친 재수생(사실 나는 체격이나 얼굴이나 좀 어설픈 학생같이 생겼다-_-)'처럼 보일까봐 그만두긴 했지만 마침 재밌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방향을 나타낼 때는 '이쪽'은 'こちら', 장소를 나타낼 때의 '여기'는 'ここ'이다. 그리고 그쪽, 거기는 각각 'そちら,そこ' 저쪽, 저기는 'あちら,あそこ' 란다. 우리처럼 ㅇ발음과 쪽 이 동일해서 외우기도 편하다.
책을 보면서 히라가나도 더듬더듬 읽어보고 있는데 꼬불어지는 방향에 따라 문자가 다르니 헷갈려 줄줄 읽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때아니게 말배운 어린아이가 글자만 보면 읽으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주말에 TV를 보다보니 두 가지 프로그램에서 아는 일본어가 나와서 반가웠다.
첫번째는 톰크루즈가 주연한 '라스트 사무라이' - 영화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사무라이 집안에 톰크루즈가 생활하는데 거기 꼬마아이가 일본어를 몇마디 한다. (영화 전체에서는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본건 그냥 영화소개 프로그램이여서..) 알아들은 'みみ' - 귀 라는 단어가 어찌나 반갑던지... 게다가 덤으로 하나 더 대충 들은 단어인 'はし'도 우연히 Tape을 듣다가 '젓가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번째는 연예 소식 전해주는 프로그램에서 일본으로 간 배용준이 무대에서 인사할때 나오던 'はじめましで - 처음 뵙겠습니다' 라는 문장도 익숙했다.
이렇게 공부해서 어느 세월에 초급을 떼련지는 모르지만 언어를 배우는 건 한 나라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언어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며,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몇 년 동안이나 쉴새없이 듣고 말한 끝에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언어를 몇 달만에 공부한다는 건 상당히 어렵기도 하고 잘못된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리가 배우는 양을 조금만 줄이고 그대신 천천히 깊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면 훨씬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양의 정보와 언어, 사고능력을 한꺼번에 습득해야하니 학생들은 그저 순간의 시험에 대비하여 암기하고 써먹는 얕은 공부밖에 할 수 없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서 공부의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급했던 것은 공부만이 아니였다. 어릴 적부터 책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책을 진정으로 읽을 줄은 몰랐었다. 그저 나는 쌓여있는 책을 읽어치우는 것에 만족했고, 글자를 읽고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모든 것은 소화시키는데 그만큼의 시간과 생각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걸 너무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깊게 습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