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대의 주가는 최고치를 달리고 있다. 반면, 공대는 '이공계기피현상'의 선두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진학을 놓고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 말씀을 크게 거역했었다(한번도 거역한적이 없었다는건 결코 아니고..'크게' 맞선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부모님은 자식의 의사를 존중해주시는 편이고, 내 고집이 만만치 않음을 아셨기에 그동안 강요할 일도 거역할 일도 별로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완강하신 편이었다. 나는 공대를 고집했고, 부모님은 사범대를 권유하셨다. "허약한 네가 공대로 진학하면 남자들 틈바구니에 끼어 힘드리라"는 것이 부모님의 생각이셨고 나는 앉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최대한의 논리로 부모님을 설득하자 부모님은 그럼 차라리 '의대'로 진학하라고 하셨던것 같다. 남자들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여성의 공간이 확보된 사회로 딸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의대에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몇년이 흘러 지금, 나는 또 생각한다. 고3으로 되돌아가 다시 부모님과 논쟁을 벌이는 그 시점에 선다면 내가 그때와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학교다닐 때도 그랬지만 사회에 나와서 나는 '남자들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종종 느낀다. 남녀차별이 없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커피를 타고 잡일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자들의 세계'에 끼어든 존재일때가 많다. 작업하느라 밤을 새울때, 가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보면 '니가 공대 간다할때 내가 알아봤다. 작업복입고 밤새니까 좋으냐~이 공돌아" 이렇게 놀리시지만 그 말에는 안타까움이 배어나는걸 잘 안다.
지금도 공학은 매력적이다. 요즘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자연과학에도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대우는 형편없다. 과학자, 공학자들의 목소리는 파묻혀 들리지 않으며, 기술은 투자가 없어 허덕인다. 인재들은 의대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마구 흔들리고 있다. 솔직히 공학의 미래가 걱정되는게 아니라 내 미래가 걱정될 뿐이다. 나는 괜히 이 길로 온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난다. 아는 사람들이 의대나 사범대를 전공해 지나치게 잘 살아가고 있는듯 느낄때도 겁난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잘못된 길이었음을 인정해야할까봐.
오늘도 만민이 즐겨한다는 '싸이'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초등학교때 라이벌(?)이었던 친구의 홈피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내 삶을 곱씹으며 적어본다.
하지만..나는 그래도 공돌이 인생이 좋다. 수많은 야간작업에 몸버리고 갑작스러운 장애에 뒤통수 맞아도 나같은 공돌이들때문에 전산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겠어? 아...일하면서 중간중간 쓰니 더욱더 정신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