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내 오늘은 이렇게 느긋한 오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른바 땡땡이다.
고등학교때 다들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싫어 갖가지 핑계를 생각해서 선생님께 둘러대곤했지만 나는 공부하기 싫고 집에 가고 싶어지면 그냥 일어나 가방을 챙겨서 교실을 떠났다. 그러고도 한번도 혼난 적이 없으니 나는 대단한 신임을 얻고 있었거나, 아니면 운이 좋았던것 같다. 대학교는 그렇게 이유를 말해줘야할 사람도 없었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갑갑했던 것은 그런 땡땡이가 없다는 점이다. 창문으로 바깥 세상이 너무 밝게보이는데, 내가 좋아하는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맴도는데...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저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봐야하는 현실이 못견디게 갑갑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남의 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걸..
하지만 오늘의 땡땡이는 참으로 타당하다. 나는 어제 야근을 했다. 새벽 4시 반까지. 우리 회사는 특성상 야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 세상이 활발하게 돌아가지 않는 시간에 우리 일을 해치워야하니까..(이렇게 말하면 꼭 밤손님같지만..) 이렇게 야간작업을 하고 나면 규정으로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대개 오전근무는 쉬도록 되어있다.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12시. 평상시같으면 점심을 먹고 나서면 딱 오후출근이 되겠지만 내 몸은 경고음을 계속해서 울리고 있다. 머리가 붕붕거리고 코가 맹맹하다. 누워서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내 몸에 충실하기로 했다. 회사에 전화를 해 바쁜 일이 없는 것을 파악한 후...이렇게 커피를 한잔 가득 담아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는 어제 읽었던 책이 펼쳐져있다.. 나는 이 오후를 마음껏 즐기다가 모자를 눌러쓰고 대낮에 대형마트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