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도올, 김훈을 만나다

 

 

중앙일보(07. 04. 13) 기자 도올, 소설가 김훈 인터뷰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별 희한한 일도 많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나를 가장 많이 인터뷰한 기자가 있다면 김훈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난 기자가 되었고, 김훈은 당대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엊그제 우연히 그가 병자호란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소설, '남한산성'을 탈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의 말을 건네는 중에 기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기자 도올이 소설가 김훈을 인터뷰해 보면 어떨까? 김훈과 나는 대학(고려대)을 같이 다녔다.그는 영문과에서 영시를 외우고 있었고 나는 한시에 탐닉하고 있었다. 1982년 귀국했을 때 우리 사회에서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도 한국일보 기자 김훈이었다.



"암울했지요. 6.25 전쟁의 찌꺼기가 여기저기 남아 있었고, 찢어지게 가난했고, 박정희 군사독재 권력이 태동했고, 베트남에 가서 우리 친구들이 죽어갔고, 더 거대한 지옥이 예비되어 있었던 그 시대에 난 밝은 희망만을 품고 워즈워스, 바이런, 셸리, 키츠를 암송하고 있었죠. 그들의 낭만주의 혁명성 속에는 인간의 희망, 번영, 평등,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어요."

- 난 대학 시절에 이미 영문과 김치규 선생님과 한시를 주고받곤 했는데, 김 선생님은 대단한 영시의 시인이기도 하셨죠.

"김치규 선생님은 주로 고전을 가르치셨고 전 여석기.이호근 선생님께 더 많이 배웠어요. 운에 맞춰 암송하는 숙제가 많았는데 지금도 19세기 낭만주의 시를 대부분 정확히 암송해요. 전 주입식 교육의 위대성을 그때 깨달았어요. 도대체 주입식 교육이 왜 나쁘죠? 디시플린을 안 가르치는 교육을 과연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까?"

- 그때부터 이미 소설 쓰기를 작심했나요?

"'옥스포드영어사전(OED)'을 많이 뒤져야 했기에 주로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난중일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죠. 이은상 선생이 번역한 책이었는데 영시에 비하면 참 딱딱하고 드라이한 한 군인의 단편적 진중일기에 불과한 책이었어요. 그런데 암울한 현실을 끝까지 암울하게 뚫어 나가더군요. 19세기 낭만주의 시들처럼 찬란한 희망에 의지하지 않고 절망을 끝까지 절망으로 버티어내더군요. 그때 난 낭만주의적 희망의 허구성을 깨달았어요. 동시에 모든 이념의 허구성을 같이 버렸어요. 그랬더니 삶이 더 절망스러워지더군요. 그리곤 대학도 졸업 못했죠. 소설을 쓸 엄두도 안 났고요."

- 그런데 한 가닥의 빛도 안 보이는 그 절망감을 어떻게 버티어 냈습니까?

"기자생활로 이럭저럭 뒹굴다가 83년 봄 우연히 '세계의 문학'이라는 잡지에서 온몸이 감전되는 듯한 문장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번역의 중요성을 말하는 매우 단순한 내용의 글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도올 선생님의 글이었어요. 저에게는 그것은 새로운 문체의 발견이었어요. 볼티지가 있는 글이었죠."

-기자로서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좀 쑥스럽군요. 그런데 볼티지라니?

"볼티지가 있어야 감전이 되잖아요. 사유의 깊이와 압축감, 과감한 절제, 그리고 거침없는 포효, 그리고 리듬감 있는 음악성, 그리고 생동하는 그림이 퍼뜩퍼뜩 스쳐 가는 영상미 이런 것들이 혼합되어 전압이 확보되는 것이죠. 왜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소설을 한번 써 보시라고 했잖아요. 전 그때부터 다시 문학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죠."

-김훈과 같은 문호에게 나의 정신세계가 조금이라도 도움되었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칼의 노래'에서 대중이 사랑한 것은 김훈의 절제된 문체일 거예요. 그리고 그 문체가 이순신이라는 한 군인이 치열한 전화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고독한 심리적 내면을 파고들었다는 데 여태까지의 소설이 건드리기 어려웠던 강렬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훈의 문체가 너무 까다롭고 유미론적이고 너무 체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데?

"많은 사람이 내 문장을 수사학적 문장이라고 평하는데 전 오히려 형용사, 부사 없는 글을 쓰고 싶어해요. 주어, 동사의 뼈다귀만으로 된 동편제 같은 글, 서편제의 계면이 빠진 그런 진솔하고 우람찬 우조 같은 글 말이죠. 그런데 주어, 동사조차 수식이라고 까대면 난 죽어야죠. 아니면 선(禪)의 침묵으로 가야죠."

- 역시 영문학도다운 얘기군요.

"영어를 잘해야 한국말도 잘해요. 국제적 감각이 있어야 한국말이 풍요로워지는 것이죠. 김 선생님도 그렇잖아요. 전 우리말의 조사가 싫어요. 우리말에서 토씨를 빼면 나머지를 메우는 개념어, 지시어, 행위어는 대부분 한문이에요. 영어는 '아이 러브 유'하면 토씨 없이도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말은 '가'니 '를'이니 이런 토씨를 쓰지 않으면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죠. 토씨 없으면 신택스가 성립 안 해요. 법전의 우리말을 보세요. '사기는 타인을 기만하여 재물을 편취한 죄'라고 하면 토씨 빼놓고는 다 한자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수백 년 동안 그것을 열심히 쓰지 않은 죄를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셈이죠. 우리말은 아직 개념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토씨만 있는 언어! 참 걸리적거려요. 전 조사의 매개 없이 단어와 단어가 맞부닥쳐 전압을 발생시키는 그런 언어를 쓰고 싶어요."

-김훈은 그런 언어에 집착한 나머지 사회의식이 박약한 자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사회의식? 뭔 말라빠진 사회의식입니까? 그건 노무현이 자유무역협정(FTA)을 한다고 이념적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예요. 진보인 줄 알았더니 보수네? 이따위 얘기들이 모두 개념 규정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개념 규정을 하는 데서 파생하는 오류일 뿐이죠. 진보니 중도니 보수니 이따위 말들이 다 엉터리고, 노무현에게는 애초부터 진보도 보수도 없었던 겁니다. 의미 없는 비연속에다가 일관성을 운운치 말자는 것이죠."

- 도덕적 일관성(moral integrity)이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한 국가의 목표가 도덕일 수는 없습니다. 이익이죠. 이익 추구에 실패하면 부도덕해질 뿐이죠."

- 맹자는 국가의 목표가 도덕적이면 오히려 부강해진다고 말했는데?

"그건 까마득한 이상이죠. 그렇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 그럼 한.미 FTA는 잘한 짓이고 그로 인해 한국민이 잘살게 되리라고 전망하십니까?

"그런 걸 점칠 수 있는 능력은 저에게 없습니다. 단지 우리 사회에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념, 빈부, 교육, 의료, 재산, 기회,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정치적 리더십이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없으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 주고 그들로부터 세금을 더 뜯어내면 되죠."

- 진부한 신자유주의 언어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한다면?

"글쎄요. 전 인간의 바탕은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회적.공동체적 존재라는 전제하에서 주장되고 있는 모든 가치가 개별적 존재 속에서 구현되지 않으면 공허합니다. 전 사실 이런 철학을 도올 선생님의 방대한 저작으로부터 배웠습니다. 동의하시잖아요?"

- 내 사상에도 분명 아나키스틱한 측면이 있지요.

"칸트가 말하는 양심이나 자유의지, 이런 것도 우리 존재의 근원이겠지만 저는 폭력과 악이야말로 세계의 근원적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

- 약육강식에 우리 존재를 내맡기자는 것입니까?

"프랑스혁명, 동학혁명, 볼셰비키혁명이 모두 약육강식에 반대하고 일어났지만 결국 또다시 약육강식에 얽매이는 사회를 만들 뿐이죠. 악에 저항하고 승복하고 또 저항하고, 그런 모순된 꼬라지가 나 김훈의 꼴입니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은 도올의 명언입니다. "

- 그래 소설가가 되어 행복해졌습니까?

"생각보다 책도 좀 팔렸고, 애들이 다 직장 구해 집을 나갔고, 아내는 여행 열심히 다니고, 대부분 집에 홀로 있습니다. 토굴을 지키는 스님같이, '혼자 있음'(Being alone)의 존엄을 즐기고 삽니다. 우리 사회 병리현상의 상당 부분이 혼자 있는 것을 즐기지 못해 생기는 것 같아요. 외롭다는 핑계로 파당을 만들고 추저분한 짓을 하는 것이죠."

- 저런, 부럽소.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하시는구료.

"안 그래요. 선생님은 항상 자신의 성취를 부숴 버리고 다시 시작하시잖아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통쾌감을 주는데."

-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내가 잘 불렀죠. '이제 다시 시작이다. '

"저도 그래요. 항상 초년병, 영원히 신인 작가로 살다 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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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젝과 들뢰즈

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에 관한 '본격적인' 언론 리뷰는 의외로 늦춰지고 있는데, 서울신문에 도서출판b의 기획위원이자 역자이기도 한 이성민씨와의 인터뷰가 게재되었길래 옮겨온다(인터뷰어는 조태성 기자). 지젝의 들뢰즈론 입구에 있는 독자들에겐 참고가 될 만하다. 기사의 검색 타이틀에 오타가 있는 듯하여 그냥 '지젝과 들뢰즈'를 페이퍼의 제목으로 삼는다.  

서울신문(06. 06. 29) “손쉬운 정치적 번역이 아니라 들뢰즈 본연의 철학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가 노마디즘을 비판(서울신문 6월1일자 보도)한 뒤, 들뢰즈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있다.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대표와의 논쟁을 통해 홍 교수는 들뢰즈를 ‘마르크스·엥겔스의 후계자’로 규정한 뒤 그럼에도 ‘탈 영토화’로 상징되는 들뢰즈의 변혁전략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멋들어진 아나키즘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들뢰즈는 이제 폐기돼야 하는가. 이때 <신체없는 기관>이 번역·출간된 것은 적절한 시점으로 보인다.

 

 

 



-저자는 영화판에서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상당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동유럽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그는 들뢰즈 사상의 핵심은 초기의 단독 저술에 담겨 있다면서, 가타리와 함께 쓴 후기 저술(<앙티-외디푸스>, <천개의 고원>)이나 미국식 정치적 번역이 담긴 <제국>(네그리·하트)을 통해 알려진 들뢰즈의 모습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아예 가장 대척점에서 서 있는 헤겔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철학자가 들뢰즈라고 규정한다. 번역을 맡은 이성민 도서출판b 기획위원에게 이번 책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최근 노마디즘 논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들뢰즈 본연의 철학과 그 정치적 번역은 다르다.‘유목주의’나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는 본연의 철학과는 거리가 있다. 홍윤기·이정우 논쟁에서 주목해볼 점은 이정우 대표가 시중의 해석 대신 들뢰즈 본연의 철학으로 되돌아간다는 점이다. 지젝도 후기 들뢰즈적 경향을 ‘손쉬운 정치적 번역’이라 폄하한다.

▶지젝도 들뢰즈적 실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아닌가.
-지젝도 평가하듯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중립적이다. 예컨대 지젝은 “‘제국’에서 다수성(다중·multitude)은 저항의 힘이지만, 스피노자에게는 근본적으로 애매하다.”고 말한다. 저항도 야만적 폭력일 수 있다. 그래서 유목주의자 혹은 자율주의자는 좀 더 ‘따분한’ 이론적 작업을 해야 한다. 동시에 ‘구좌파’,‘독단주의자’,‘원칙주의자’가 들뢰즈를 받아들였으면 한다. 인간 주체가 여전히 집단적으로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들뢰즈와 진정으로 만났을 때, 변화를 위한 작은 공간이 열릴 것이다.

▶결국 들뢰즈가 헤겔을 부활시켰다는 것인데, 이게 들뢰즈의 의도인가.
-궁극적으로 들뢰즈를 ‘다르게’ 읽는다면, 헤겔을 부활시킬 수 있다. 지젝은 헤겔이, 들뢰즈가 견디기에는 너무 가깝다고 한다. 그는 둘이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들뢰즈를 다시 읽는다. 물론 여기에는 헤겔을 재해석하는 지젝의 작업이 깔려 있다. 조만간 지젝의 동료 돌라르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해설서를 낸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이미 우리는 ‘새로운’ 헤겔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들뢰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내가 느끼기에 지젝은 동유럽 지식인임에도 ‘유럽주의자’다. 지젝은 유럽을 사랑하고 유럽의 가치를 높이려 한다.‘낡은 유럽’이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들뢰즈를 받아들일 때 한국적 현실을 고민하는 것은 패배적인 관점이다. 들뢰즈의 보편성을 껴안아야 한다.‘손쉬운 정치적 번역’ 대신 ‘본연의 철학’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과감하게 끌어안아야 한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라고 한다. 역시나 전문이 요약보다는 더 흥미로우며 계발적이다.

▶최근 들뢰즈의 노마디즘 개념에 대한 혼돈이 많습니다. 대개 철학하시는 분들은 어떤 추상적인 관념으로 이해하시는 반면,다른 분야에 계신 분들은 실제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듯 합니다.즉 무조건 대규모의 이동이 일어나야 노마디즘 현상으로 파악한다는 겁니다.단적인 예가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천규석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겠지요.천규석의 문제의식만이 아닌 것이 노마디즘 관련된 토론장에 들렀더니 모든 분들이 천규석의 문제의식과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대체,철학적인 개념을 넘어섰을 때 유목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종 한 철학자의 위대함은,진정으로 새로운 개념을 우리에게 선물한 사실에 있습니다.그 점에서 들뢰즈는 위대한 철학자입니다.들뢰즈와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하나는 들뢰즈 본연의 철학입니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들뢰즈 철학의 정치적 번역들입니다.제 생각에,“유목주의”나 “자율주의” 등은 후자에 속하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이 정치적으로 번역되는 데 스스로 협조한 적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가타리와 협력한 들뢰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리가 그곳에서, 즉 <안티-오이디푸스>나 <천개의 고원>에서 보는 것은 들뢰즈 철학 본연과는,들뢰즈의 독창적인 철학적 성취와는 거리가 있습니다.그것들은 그러한 성취가 정치적으로 번역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가리킵니다.그것도 매우 손쉬운 길을 말입니다.

-유목주의와 관련된 최근의 논쟁에서 이정우 씨는 분명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을 들뢰즈 본연의 철학적 관점으로,예컨대 <의미의 논리>의 들뢰즈의 관점으로 환원시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 이정우 씨가, 비록 들뢰즈 철학의 또 다른 정치적 번역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러한 길을 열기 위한 작은 이론적 틈새를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틈새가 보일 수도 있는 곳에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천규석 씨를 정념적으로 비판하는 곳에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최근에 유행하는 들뢰즈적 개념들의 해석적 경향성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본연의 철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지점에서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천규석 씨와 이정우 씨가 둘다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들뢰즈 본연의 철학과 들뢰즈와 가타리의 협력적 작업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안티-오이디푸스>나 <천개의 고원>이 최근에 한국에서 쟁점이 된 “유목주의”나 아니면 네그리-하트 식의 “다중”과 관련해 내용적으로 전혀 무관할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지젝은 이와 같은 후기의 들뢰즈적 경향을 비판합니다.그것을 손쉬운 정치적 번역이라고 폄하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에 대해 홍윤기는 들뢰즈는 영락없이 맑스와 엥겔스의 후계자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높게 평가해도 구체적인 실천의 효과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젝이 하고 있는 작업이 홍윤기의 주장과 비슷해 보이는데,그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차이가 있다면 어디서 차이가 날까요.

-들뢰즈 사상의 핵심적 측면은 전통적 맑스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는 스피노자의 사상을 현대적인 것으로 재해석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오늘날의 사회를 분석하려고 하는 사람이 무엇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지젝은 들뢰즈의 그러한 공헌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존재의 일의성이나 정서적 강도 같은 개념들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한 개념들입니다. 지젝은 우리가 오늘날 일상생활에서조차 그러한 개념들을 매번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추상적 개념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반지성적 분위기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이러한 개념들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젝의 말처럼 그것들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입니다. 예컨대 지젝은 <신체 없는 기관> 76쪽에서 “‘제국’에서 다수성(다중)은 저항의 힘으로 찬양되는 반면, 스피노자에게서 군중으로서의 다수성 개념은 근본적으로 애매하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적실한 통찰들입니다. 다수성이랑 권력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인 폭력의 폭발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대중들의 이와 같은 “유목적” 특성을 곧바로 정치적으로 긍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우선은 그 지점에서 멈추어서,좀더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유목주의자들이나 자율주의자들은 제 생각에 바로 그렇게 사색을 위해서, “따분하고” 순수한 이론적 작업을 좀더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사유의 근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잠시 멈추어 설 필요가 있습니다.

-들뢰즈의 성취는 우선은 “철학적으로” 흡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아쉬워해야 하는 것은 들뢰즈 사상의 정치적 해석이 다양한 논쟁들과 더불어 풍요로운 가운데, 들뢰즈 본연의 철학적 측면이, 다시 말해서 “현대성 그 자체”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들뢰즈는 현대의 바로 그 철학자입니다. 따라서 저는 맑스주의자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구좌파적 문제의식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라도 들뢰즈를 이론적으로 읽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은 오늘날도 역시 간단한 세미나나 포럼을 마치고 그 유명한 뒤풀이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공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피해갈 수도, 간단히 정치적으로 번역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저 유명한 “포스트모던적” 주체들이 들뢰즈를 받아들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구좌파적인 사람들이,“독단주의자들”이,“원칙주의자들”이 들뢰즈를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사회의 거시적 변화를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들뢰즈와 진정으로 조우할 때, 인간 주체가 여전히 집단적으로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들뢰즈와 진정으로 조우할 때, 그때 진정한 변화를 위한 작은 공간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들뢰즈는 헤겔의 부활을 꿈꾸는 또 다른 헤겔의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까.들뢰즈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은 헤겔을 죽이겠다는데 있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죽이는 액션을 취함으로써 헤겔을 부활시키는 것이었습니까.그렇다면 진정한 의도였을까요 아니면 고려하지 못한 역풍이라고 봐야 할까요.



-흥미로운 물음입니다. 들뢰즈가 결국 그러한 일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헤겔을 부활시킨 것이 지젝이 아니라 들뢰즈일지도 모른다는 물음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변증법을 성찰하게 만드는군요. 시간의 경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어떤 “운명”이나 어떤 “필연성” 같은 것을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궁극적으로 들뢰즈를 “다르게” 읽는 데 성공한다면, 그로써 헤겔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지젝의 말처럼 헤겔은 들뢰즈가 견디기에는 들뢰즈에게 너무 가까운 철학자였습니다. 지젝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그 둘이 가장 가까운, 혹은 거의 차이가 없어지는 지점에서, 들뢰즈를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지젝의 독자적인 공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들뢰즈가 헤겔을 부활시키기 전에 헤겔 그 자신이 재해석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지젝의 몫이었습니다. 라캉도 그것을 해내지는 못했지요.오늘날 라캉주의가 철학과 그 자체를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대학인 류블랴나 대학에서 그들은 그것을 해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지젝의 동료 돌라르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해설한 책을 낸다는 소식이 들립니다(*슬로베니아어로는 이미 출간된 걸로 안다). 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지젝의 작업을 통해서도 우리는 “새로운” 헤겔을 맛볼 수 있습니다(*아래는 류블랴나 대학).



▶감히 추론입니다만은, 들뢰즈를 이런 방식으로 읽는 것은 지젝이 동유럽 지식인이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는 걸까요. 하트가 들뢰즈를 미국식으로 독해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지젝이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서구 선진국의 잣대를 함부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측면,즉 맥락의 차이를 간과해버린 것이 한국에서의 들뢰즈 열풍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인상”만을 가지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경우는 그래야 하겠군요. 그러니 제 말이 그 이상으로 읽히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인상이 “독서”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제가 받은 인상으로,지젝은 “유럽주의자”입니다. 오늘날 진정한 유럽주의자가 서유럽이 아닌 동유럽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여하간 지젝은 유럽의 유산을, 유럽의 문명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정신분석도 유럽에서 탄생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철학을, 라캉과는 달리, 비판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껴안는 것은 그가 유럽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조 기자 님의 말씀처럼, 그는 “서구 선진국의 잣대”를 함부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가 하는 일은 역으로 바로 그것의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는 “낡은 유럽”이 스스로의 가치를 바로 그 유럽적 방식으로 재창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민주주의를 창안했듯이 말입니다. 그는 지성적 영역에서 스스로 그 과제를 떠맡고 있습니다.

-들뢰즈를 우리가 수용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한국적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패배적인 관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들뢰즈 사상의 가장 보편적인 측면을 껴안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들뢰즈 사상의 “철학적” 논의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좀 역설적이게 들리겠지만, 서구 선진국의 잣대를 함부로 끌어들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과감하게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적용”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지젝은 들뢰즈를 해석하는데 있어 알랭 바디우를 지속적으로 인용하고 있는데, 지젝이 알랭 바디우에서 벗어나는 지점은 어디 입니까.아 니면 전적으로 바디우적 해석 위에 서 있다고 봐야 합니까.

-바디우는 라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몇 안 되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디우와 지젝 사이에 공통점이 생기는 것이지요.하지만 지젝의 해석은 바디우에 토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라캉과 헤겔에 토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젝과 바디우의 차이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답변을 드리기 곤란합니다. 저는 바디우의 철학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관통하고 있지 못한 그 무엇에 대해,이 경우라면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라도 어떤 인상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바디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진지한 철학자인 반면, 지젝은 진지하지 않은 것에서도 내기를 걸 줄 압니다(*아래 사진은 지젝과 바디우).



▶도서출판b와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저는 현재 도서출판b에서 기획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직함은 “기획위원”입니다. 제 관심사는 한국에서 진정한 지적인 전통이 “부활”하는 것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이와 관련하여 지적인 담론의 장을 심화시키기 위해 번역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기고를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대학(서울대 영어교육과)에서 언어학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촘스키의 언어학이 유행이었지요.덕분에 저는 언어학과 분석철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당시의 맑스주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졸업을 하면서 맑스주의와 유럽의 철학에 몰두하게 되었지요. 분석철학의 장점은 그것에 매료된 사람으로 하여금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깨닫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제가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에 대한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일정정도 자율주의자인 조정환 씨와 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는 라캉에게 귀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진학하면서,라캉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궁극적인 학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서 말한 지적인 전통의 부활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선생들을 길러내는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라캉이 말하는 “주인담론”의 시대에, 혹은 권위주의의 시대에, 권위자들은 선생을, 즉 가르칠 사람을 키우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더욱 혹독한 도제 시절을 겪게 했지요. 오늘날 이러한 연결고리는 무너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다시 소생시키는 일이라면 바로 그곳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산”이 아닌 “재생산”을 강조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생산은 생산물을 만들어냅니다. 잘 교육받은 교양 있는 학생들을 말입니다. 하지만 재생산은 선생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한 선생들입니다(*역자가 사범대학 출신이란 걸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저는 제가 번역한 책들이 앞으로 선생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제가 번역한 책들이 대철학자를 꿈꾸면서 언제까지나 학생으로 남아 있을 운명인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도서출판b는 출판사를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세미나 공간이 생겼지요. 그곳은 신림동 혹은 난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저는 그곳을 “난곡연구소”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저는 거기서 학생들을 데리고 세미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선생들을 키우는 작업에 헌신할 생각입니다. 라캉주의의 교조적인 모습이 저를 매혹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오래된 진리를 새롭게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06.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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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멍든 눈의 끔찍한 사연

어제 산 한국일보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오늘 아침에야 읽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기사를 아이템 삼아서 페이퍼를 올린다고 해놓고 시간을 못 내다가 겨우 몇 자 적는다(아마도 마무리까지는 며칠 걸릴 것이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남미문학의 두 거장 마르케스와 바르가스 요사가 30년간 서로 앙숙관계였다고 한다. 최근에 이 두 사람이 화해에 이를 것 같다는 것인데, 그런 관계의 빌미가 되었던 30년전 사건(사진)과 그 사연이 기사의 내용이다. 이 '멍든 눈의 끔찍한 사연'은 책으로 출간됐다고 하는데, 국내에도 소개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일단은 '세계의 책'에 올려놓는다.     

한국일보(07. 03. 14) 마르케스와 요사 '30년 동안의 불화' 이제 끝?

<백년동안의 고독>을 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80ㆍ왼쪽 사진)와 노벨문학상 후보로 매년 이름이 오르내리는 <세상종말전쟁>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2ㆍ오른쪽)의 공통점은?

‘남미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현대문학의 거장들’이 ‘알려진’ 답안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정답이 또 있다. ‘30년간 말도 안 한 원수관계’다. 마르케스의 80회 생일을 맞아 절친한 친구였던 두 사람이 등을 돌리게 된 원인을 짐작케 하는 사진들이 최근 공개됐다.



13일 영국 더 타임스에 따르면 멕시코 신문 라 호르나다는 마르케스의 친구 로드리고 마요가 1976년 찍은 두 장의 흑백사진을 최근 공개했는데, 바로 왼쪽 눈 아래 시퍼런 멍이 들고 콧잔등에 상처가 난 젊은 마르케스의 모습이다. 현대문학의 가장 유명한 견원지간의 기원을 밝혀줄 이 사진들의 배후에는 여자문제가 얽혀 있다. 사건은 영화 시사회를 보기 위해 수많은 남미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모였던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롬비아 출신 마르케스와 페루 출신 바르가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살면서 부부끼리도 돈독한 우정을 다졌다. 영화 상영 후 마르케스는 오랜만에 만난 요사가 반가워 반갑게 그를 껴안았지만, 요사는 “바르셀로나에서 내 아내에게 그런 짓을 해놓고 어떻게 감히 나한테 와서 인사를 할 수 있지?”라며 수차례 마르케스의 얼굴을 휘갈겼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마르케스는 코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이틀 후 마요는 마르케스의 시퍼런 눈을 사진으로 찍었다.



절친한 친구사이가 주먹질 하는 관계로 전락한 사연은 이렇다. 두 부부가 바르셀로나에 살 당시 요사는 스웨덴 미녀와 사랑에 빠져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났던 ‘전과’가 있었는데, 그때 요사의 부인에게 위안이 돼 줬던 마르케스 부부가 그녀에게 요사와 이혼하라는 충고를 해줬다는 것이다. 후에 요사는 부인과 화해했고, 그녀가 요사에게 전말을 얘기하면서 그것이 느닷없는 폭력사태의 원인이 됐다는 게 추론이다. 요사의 분노 뒤에는 이혼 권유 이상의 중요한 배신 행위가 있었으리라는 해석도 있다.

30년간 비밀스럽게 간직됐던 사진들이 6일로 80회를 맞은 마르케스의 생일을 기념해 <멍든 눈의 끔찍한 사연>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면서 마르케스와 요사의 ‘30년간의 고독’에도 해빙무드가 감돈다. 요사가 마르케스의 고전 <백년동안의 고독>의 초판 발행 40주년을 기념해 서문을 써주기로 한 것.

그날의 앙금 이후 마르케스는 쿠바 지도자 페델 카스트로와 긴밀한 우정을 키워가면서 좌파 작가의 길을 걸었고, 요사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숭배자가 돼 우파 후보로 페루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30년간 다른 길을 걸으며 반목한 두 문학 거장이 주는 교훈. “남의 부부싸움에는 절대로 참견하지 말라.”(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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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번역투 문장은 왜 나쁜가- 멀고느린구름

요즘 논술 탓에 글쓰기 관련 서적이 넘쳐나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의 부탁으로 쓸만한 글쓰기 참고 서적을 찾아보기 위해 영풍문고를 갔었다. 내가 글쓰기 공부를 할 적만해도 국내작문론 서적으로는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거의 유일했는데, 몇 년만에 수 십 가지로 책이 늘어났더라. 작문론 코너에서 이리저리 책을 살펴 보았다. 거의 비슷비슷한 내용이었다. 개 중에는 바른 문장쓰기와 관련한 책도 여럿 있었는데 재미난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하나 같이 번역투의 문장은 안돼! 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엉? 왜에?

 

  그러게, 왜? 왜 번역투의 문장은 쓰면 안된다는 걸까? 국적없는 표현이라서? 아래 한 문장론 책에서 인용한 것을 먼저 보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낮술마신달님의 블로그에서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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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없는 번역투 표현'란에서 대표적 사례를 부분 옮겨본다.

 

 

 '피동형'은 글심(표현력)을 약하게 한다.

 

 '피동형'은 '사동형'이나 '능동형'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책을 읽히다'(사동형), '책을 읽다'(능동형)

 

 

  ㄱ.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ㄴ. 회의를 보다 즐거운 것으로 하기 위하여, 좋은 제안을 보내 주십시오.

  ㄷ. 새 달 중순경 회의를 가지려 합니다.

  ㄹ.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ㅁ. 오늘 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ㅂ. 더 일찍 제출할 터였는데 미안합니다.

  ㅅ.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시킨 것일까요.

 

이렇게 고쳐야 한다.

 

  ㄱ. 이 책은 젊은이들이 많이 읽고 있습니다.

  ㄴ. 즐거운 회의가 되게끔, 좋은 생각을 보내 주십시오.

  ㄷ. 새 달 중순께 회의하겠습니다.

  ㄹ. 계획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ㅁ. 오늘 중으로 하여야 합니다.

  ㅂ. 더 일찍 내지 못하여 미안합니다.

  ㅅ.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을 행한다', '~을 갖는다'는 쓰지 마라

 

 '을 행한다', '~을 갖는다'는 번역투 말이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나는 우리식 표현으로 고치자.

 

 

 7년간 연구를 행한 끝에 -> 7년간 연구한 끝에

 전문적 조사를 행하고서야 -> 전문적으로 조사해야

 재판이 행해진 뒤에 -> 재판 끝난 뒤에

 

 단독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 단독 회담의 자리에서

 어떠한 관계를 가진 사이인지 -> 어떤 사이인지

 예정대로 입학식을 갖기로 했다. -> 예정대로 입학식을 하기로 했다.

 

 

조심할 번역투

 

'~을 시키다'는 번역투 표현이므로 '~하다'로 바꾸자.

 

 환경을 개선시키다 -> 환경을 개선하다

 회장을 구속시키다 -> 회장을 구속하다

 전투기를 격추시키다 -> 전투기를 격추하다

 계획을 구체화시키다 -> 계획을 구체화하다

 

 '~화하다'는 '~해지다'로, '~화되다'도 번역투이므로 '~이되다'로, '~화되어지다'도 '~화하다'로 바꾸자.

 

 비대화한 도시 -> 비대해진 도시

 폐허화된 평양 -> 폐허가 된 평양

 조직화된 종교 -> 조직화한 종교

 산업화되어진 오늘 -> 산업화한 오늘

 

 

 '~적', '~화', '~성'의 남용

 한자어 접미어 '~적(的)' '~화(化)' '~성(性)'은 모두 추상(抽象)을 나타내는 접미사들이다. 너무 많이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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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소위 '번역투' 문장을 다른 여러 서적에서도 문제 삼고 있다. 글쓴이의 나이가 많으나 젊으나 한 결 같이 그건 안돼! 라고 외친다. 그러나 다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지 한국적이지 않다 라든가, 전통을 무시한다 라든가 하는 궁색한 근거만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문장 혹은 표현에 '국적'이 있다는 생각은 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물론 나라마다 서로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개인이 구사하는 표현이나 문장을 가지고 국적을 들먹이며 규제할까?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첫 번째 주의에서 "피동형은 글심을 약하게 한다" 라고 외치고 있는데, 정말 그런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글심이 약해지는 것은 오히려 '능동형만'을 사용했을 경우의 현상이다. 피동형과 능동형을 함께 사용했을 때 되려 더욱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예를 보자.

 

 

ㅅ-1.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시킨 것일까요.

ㅅ-2.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적을 지키기 위해 피동형(ㅅ-1)을 능동형(ㅅ-2)으로 바꾸어 보면 문장의 늬앙스가 전혀 달라진다. ㅅ-1의 문장에서 그녀는 어떤 외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행위를 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허나 ㅅ-2의 그녀는 스스로 어떤 일을 해버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걘 왜 그랬대? ㅅ-2의 그녀는 왠지 얄미운 그녀이다. 자랑스런 문장의 국적을 지키기 위해 모든 '위기의 그녀'를 '얄미운 그녀'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두 번째 주의, '행한다, 갖는다'를 쓰지 말라고? 이런 무지막지한 폭력이 어디 있는가. 뻔히 있는 표현을 쓰지 말라니. 언어는 기본적으로 풍부할 수록 좋은 것인고, 표현 또한 선택지가 많을 수록 재미난 것이다.

 

예정대로 입학식을 갖기로 했다. -> 예정대로 입학식을 하기로 했다.

 

앞의 문장은 소위 번역투이다. 영어의 have 표현을 우리말로 옮겨 온 것. 자 우리 입학식으로 다양한 말을 만들어 보자.

 

 

입학식을 열다.

입학식을 하다.

입학식을 개최하다.

입학식을 치르다.

입학식을 겪다.

 

 

입학식이라는 주어로 우리는 숱한 다른 형태의 표현들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다 영국에서 물 건너 온 '갖다'라는 표현을 하나 더 붙이는 게 그렇게 몹쓸 짓이란 말인가.

 

 

입학식을 갖다.

 

 

표현이 좋지 않은가? 영어식 표현에는 시적인 것이 많다. '입학식을 갖다'라는 표현 역시 사물이 아닌 것에 사물을 소유한다는 뜻의 '갖다'를 붙임으로서 독특한 늬앙스를 전달한다. 창의적인 언어 사용자라면 더 참신한 표현을 발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입학식을 풀다', '입학식을 맞이하다', '입학식을 잡다', '입학식을 낚다' 등등도 아직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든지 의미의 전달이 가능한 표현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표현 방법은 풍부하면 풍부할 수록 좋다.

 

 

 문장이나 표현의 '국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민족주의자이거나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장,표현의 국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전통이란 과연 어느 시대의 것일까. 아마도 일제시대, 좀 더 길게는 조선시대의 것일 터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을 테니 그 전통이라고 해봐야 끽해야 3~400년 정도이다. 그러나 이 3~400년 동안 우리 한반도의 언어가 단일한 표현 방식으로 균일성을 유지해 왔다고 볼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언어와 요즘의 언어 사이에서 조차도 도드라지는 이질성이 발견되니까. 언어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연한 언어의 자연(스스로 그러함)이다. 언어는 도도히 흐르고 흐르는 강물과 같다. 그것을 인간의 보수적 욕심으로 틀어막아 버리면 물이 고여 썩게 된다.

 

  언어는 흐르고 흘러 저 다른 세계의 강줄기와도 뒤섞이며 넓고 넓은 바다가 되어야 참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 민족의 언어는 참으로 품이 넓은 언어이다. 영국식 표현이든, 일본식 표현이든, 중국식 표현이든 모두 우리의 언어 속에 품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이는 '문장, 표현의 국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우려처럼 재앙인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혜택인 것이다. ~행하다도 쓰고, ~하다도 쓰고, ~시키다도 쓰고, ~갖다도 쓰고,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가지 다양한 국적의 독특한 표현들을 문맥의 상황에 맞게 맛깔나게 쓰면 그만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입학식을 갖도록 하셈!' 이라고 쓴다고 해서 훈민정음이 알파벳이 되지는 않는다.

 

  사족으로 몇 년전에 어떤 국어학자(아마도 민족주의자)가 방송에 나와서 대한민국을 표현할 때 '저희 나라' 라고 하면 안 되고, 꼭 '우리나라' 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덕분에 요즘 어디가서 저희 나라가... 어쩌구 라고 말 시작하려 하면 철썩! 뺨 맞는다. 그런데 이게 참 웃기는 일이다, 웃기는 일. 아니, 나라를 좀 낮추면 어때서 그러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모든 존재에 앞서서 존재하는 최상의 것인가. 옳지 않은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국가가 평화에 대한 신념을 지키는 나라보다 항상 우위에 있는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항상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나라로 대접해주어야만 하는 걸까. 어떠한 경우에도? 언어를 통하여 교묘하게 국가주의를 학습시키려는 계략에 온 국민이 얼씨구나 하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는 건 아닐까. 오호 통재라!

 

 

 

2007. 3/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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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기인 > [퍼온글] [오마이뉴스] 8년 만에 재즈 앨범으로 돌아온 신해철을 만나다

아티스트이든,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대중과의 구별짓기를 통해 자신을 정립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대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신해철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내 귀가 고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신해철의 이번 판은 별로더라... 가수는 노래로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신해철 같은 가수는 계속 이렇게 말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존경스럽다.

 

 

"뮤지션 구박하는데 음악이 먹히겠나
대중이 달라져야 아티스트 시대 온다"
[인터뷰①] 8년 만에 재즈 앨범으로 돌아온 신해철을 만나다
    김작가(zakka) 기자   
8년 만에 솔로 앨범을 낸 가수 신해철과 대중문화평론가 김작가의 만남. 3시간에 걸친 두 사람의 대화를 두 편으로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 주>
▲ 8년 만에 솔로 재즈 앨범을 낸 가수 신해철
ⓒ 싸이렌

한국의 뮤지션, 아니 문화계 종사자 중에서 신해철만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인물은 드물다. 그것은 그의 음악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알다시피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화법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사회 정치적 현안에 대해 언제나 말을 극도로 아끼는 우리 문화계의 풍토를 비춰본다면 그래서 더욱 이슈메이커로서 독보적인 자리에 있는 게 신해철이기도 하다.

그런 신해철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음악계의 도올 김용옥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삼국지의 관우에 비교하기도 한다. 자신의 철학과 가치에 대한 끝없는 자신감, 혹은 거침없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를 드러냄에 있어서 일말의 주저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신해철이 8년 만에 솔로 앨범 < The Songs For The One >을 냈다. 록과 일렉트로니카를 오가며 음악 활동을 해온 그로서는 이례적으로도 재즈를 표방하는 앨범이다. 듣는 이에 따라 새로운 도전으로, 혹은 안전한 선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서울 공덕동에 있는 사이렌 뮤직을 찾아 스물 다섯번째 앨범에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 속내를 들어봤다. 음악뿐 아닌,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도 그는 말발굽소리가 날만큼 거침없이 생각을 내뱉었다.

"재즈란 장르보다 로맨스 먼저 생각해"

- 오랜만의 솔로 앨범이자 첫 재즈 앨범이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무조건 좋다는 팬들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가며 괜찮다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냥 참고 넘어가는데 빨리 때려 부숴라, 나 기다린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즈라는 특정 장르보다는 로맨스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만든 앨범이다."

- 부인에게 바치는 앨범이라고 했다. 정작 부인의 반응은 어떤가.
"와이프한테 주는 앨범으로 되어있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아버지와 나'가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 얘기가 됐듯 이 앨범에서의 'One'도 나한테는 마누라지만 듣는 사람한테는 자신의 'One'이다. 내년에 듣는다 해서 촌스러워질 앨범도 아니고,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에 선물할 수 있는 음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 오리지널 재즈 앨범이라기보다는 이지 리스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의 재즈라기보다는 재즈가 가장 대중에게 친근했던, 뉴올리언즈나 스윙 시절의 대중음악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분명히 이지 리스닝인데, 문제는 우리 대중들이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일단 가요 팬들은 브라스 섹션이 튀어나오면 당황스러워 한다. 가요 팬들에게는 어렵고 재즈 팬들에게는 가벼운, 타깃 없는 앨범이라고 본다."

- 레퍼토리 선정은 어떻게 했나. 특히 최희준의 '하숙생'은 의외의 선곡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회의를 거쳤다. 스탠다드 넘버와 리메이크 대상이 되는 우리 노래 수백 곡 중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만한 노래가 아니면 다 쳐냈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중학교 때도 부르는데 어려움 없었던 노래들로 갔다. '하숙생'의 경우 당시 노래들 중 트로트가 아닌 귀한 곡이어서 들어갔다. 만약 최희준씨가 노래할 때 우리나라 음악계에 재즈가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이렇게 가지 않았을까 한다."

"보컬 녹음하면서 이렇게 재미있었던 건 처음"

- 어느 앨범보다도 보컬리스트로서 역할에 충실한 작품이다. 프로듀서, 편곡, 연주를 다른 사람에게 전부 맡긴 첫 앨범 아닌가. 노래 부를 준비도 많이 했을 텐데.
"서양 사람들 앞에서 쪽 팔리기는 싫었으니 세 번 미리 불러보고 녹음했다. 생전 가장 노래 연습 많이 하고 녹음한 경우다. 원래 나는 레코딩 때 노래 연습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습관적으로 녹음 들어가기 직전에 가사를 쓰기 때문이다. 녹음하기 전에 커피나 녹차 시켜놓고 식기 전에 다 불러버렸으니. 멜로디도 윤곽만 잡아놓고 녹음 직전까지 안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넥스트 라이브 앨범 들어보면 오리지널 레코딩보다 좋다. 일단 연습이 되고 지방을 거친 후 서울 공연에서 녹음을 했기 때문에 원래 앨범보다 라이브 앨범에서 노래를 잘 불렀다. 기형적인 타입이지만 음악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래서 어쩔 수 없다."

▲ 최초 미디 음반을 낸 신해철이지만 '조립식 음반'에 지쳐 '한방 레코딩'을 마음먹었다.
ⓒ 싸이렌
- 밴드의 전면에 서 있는 게 보컬리스트인데 그렇게 무책임해도 되나.(웃음)
"어릴 때부터 보컬은 악기의 하나라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내가 보컬을 하게 된 계기가 가위바위보에서 졌기 때문이다. 우리 때는 기타가 최고고 음악은 하고 싶은데 할 줄 아는 악기가 없는 애가 하는 게 보컬이었다. 그래서 스쿨 밴드 처음 만들 때 보컬하라고 해서 분개했다. 애들 앞에서 기타를 막 치면서 이거 보라고, 우리가 기타가 두 명이지만 내가 리드 기탄데 왜 나보고 보컬하라고 하느냐 그러다가 가위바위보에서 졌다.(웃음)

심지어 '무한궤도' 이후 솔로 앨범 낼 때도 음악은 계속 해야지, 밴드는 계속 해야겠는데 상황은 안 좋지 그래서 전략적 방편으로 노래를 했다. 그러다 보니 보컬에 애정을 가질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프로듀서, 편곡 남한테 다 맡기고 노래만 불러보고 싶었다. 보컬 녹음하면서 재미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 6일 만에 녹음을 끝냈다고 들었다.
"첫날은 파티였으니까 정확히 믹싱까지 포함해서 5일이었다. 한방에 갔다."

- 원 테이크 녹음은 사전 준비도 철저해야 하고 무엇보다 연주자들의 기량이 엄청나게 요구되지 않나.
"인프라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팝도 하고 클래식도 하고, 이런 사람들 끌어 모아서 하는 게 아니라 일년내내 빅밴드만 하는 사람들과 하니까 확실히 차이가 있더라. 노상 밴드를 하는 사람들이니까 리허설 과정에서 이미 밸런스를 맞춰버리고 레코딩에 들어간다. 녹음하다가 가수 컨디션 살펴보면서 '아, 그런 식으로 노래하려고? 야야 우리도 이렇게 가자' 이런 식으로 자기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캐치해서 본 녹음에서 즉각즉각 맞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욕이 나올 정도였다. 선장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아서 한다."

"조립식 음악에 지쳐 '한방 레코딩'으로"

- 원 테이크 녹음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앨범이 어찌 보면 듣는 사람은 편한데 만드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녹음이야 5일 만에 끝났다고 하지만 사전 준비가 그만큼 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이 앨범이 어떤 면에서는 공격적이다. 첫째, 한방 레코딩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몽땅 미디로 찍어서 조립식으로 나오는 요즘 음악들에 나도 지쳤고, 듣는 이들도 지쳤다. 그리고 조립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걸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 나다.(신해철의 솔로 두 번째 앨범 < Myself >는 미디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음반이다...필자주) 디지털 편집의 가능성이나 음악 수준을 상승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매력 때문이었다.

헌데 지금은 조립식이 아니면 나오는 앨범이 없으니까 짜증이 났다. 그리고 음반 시장이 축소되니까 투자, 제작비도 줄어든다. 따라서 미디의 위력 때문이 아니라, 싸게 가기 위해 미디를 사용한다. 그래서 일부러 28인조 밴드를 썼다. 인간이 연주하고,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 완전히 새로운 작업 방식을 통해서 앞으로의 음악에 있어서 자양분이 될만한 게 있었나.
"앞으로는 넥스트 앨범 녹음을 원 테이크로 한 방에 가려고 한다. 물론 넥스트의 경우는 오버더빙없이 한 번에 모든 걸 만들기는 힘들지만 원 테이크를 기본으로 삼아서 가려고 한다. 그리고 조립이나 편집, 기술을 많이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그게 답이라는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연주도 잘해야 하고 곡이 좋아야 하는 거니까. 어쨌든 끝까지 가봐야 뭐든지 알겠더라."

- <모노크롬> <비트켄슈타인> 등의 앨범으로 디지털의 끝까지 가보니까 오히려 아날로그가 답이었다는 얘긴가.
"이제 아날로그, 디지털의 장점을 다 취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잃은 것도 많다. 그래서 공부는 적당히 하라고 후배들에게 그런다. 좋은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언어학자가 되고 싶은지 구별하라고 한다. 기타 치는 친구들에게도 말한다. 검객으로 달빛 자르기를 완성하면 검도 선생이 되는 거다. 만약 칼을 들고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싸움에 뛰어들어라. 즉, 곡을 써야 한다.

내가 그 반대로 갔으니까 나 자신은 할 말은 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얻은 보람은 있다. 록 음악에서 프로듀서란 음악에서의 크리에이션뿐 아니라 사운드를 디자인하고 최종 단계에서 기계를 조작해서 믹싱까지 끝내주는 건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지 않나. 그런 단계까지는 간 것 같다. 스키조의 경우에도 사운드 디자인에서 믹싱까지 내 손으로 끝내줄 수 있었는데. 밴드들은 음악만 만들고 나머지는 다 나한테 맡겨, 그럴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거 하나는 기쁘다."

- 앞으로 뮤지션이 아닌 프로듀서 신해철에 집중해야 하는 건가.
"어쩔 때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최대의 프로듀서일 수 있다. 피터팬 콤플렉스의 경우 간섭하지 않는 게 최선의 프로듀싱이었다. 음악을 하면서 프로듀서도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고, 인디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 자본가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것도 내 할 일이다. 공연장 설립 사업도 계속 추진중이다."

▲ 신해철은 가수로서 뿐 아니라 가요계 이슈메이커로서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싸이렌
"앨범이 사라진다는 건 내겐 사형선고"

- 90년대 정상을 맛봤던 가수들이 더 이상 앨범을 내지 않거나, 앨범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비슷한 세월 활동해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는지.
"나름대로 현명한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다. CD가 사라진다는 걸 결정돼있는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싱글이 아닌 디지털 앨범도 가능하다. 히트곡을 위한 목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앨범 위주의 작가주의적 생각으로 가려는 사람은 끝까지 싸워야지.

CD를 사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날 때까지 CD를 내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앨범이 사라진다는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패배할 게 뻔한 싸움이라도 마지막에 내 목에 칼이 들어와서 땅바닥에 꼬꾸라져야 끝나는 거지, 이미 끝났구나 싶어서 먼저 깃발 내려서는 안된다는 거다."

- 당신의 음악적 도박은 대체로 성공을 거둬왔다. 미디를 도입했고, 잘나가는 솔로 가수에서 밴드로 회귀했고, '도리도리'밖에 모르던 상황에서 테크노 앨범을 냈다. 시대 상황에 한걸음 앞서 왔던 셈이다. 음반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지금, 당신의 결의는 이제 대중들의 판정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 같다. 대중을 믿는 편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대중을 가장 불신한다. 우리나라 대중은 음악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서 면책을 받고 있다. 매스미디어, 뮤지션, 시스템 여러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무도 대중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대중이야말로 모든 사태의 원인이자 책임자다. 아티스트가 반성할 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대중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는 의미다. 뮤지션이 대중을 공격하면 싸가지없는 놈이 되거나 변명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20세기 이후의 대중이란 그 자체가 아티스트의 풀이다. 대중은 미래의 아티스트이기도 하고 최종 소비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중이라고 하는 음악의 토양도 생각해 봐야 한다. MP3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다른 나라 음반 시장도 작살나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가장 먼저 가장 참혹하게 작살났다. 그게 오직 초고속 인터넷 때문일까. 과연 뮤지션의 역량이 떨어져서 음악을 조잡하게 만들기 때문 만일까.

아니다. 돌밭에 모내기했으면 쌀이 안 열리는 게 당연하다. 우리나라 대중은 20세가 넘어서면 급격히 주류에 편입하려 무릎을 꿇으면서 음악 듣는 걸 멸시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좋아했던 아티스트를 쳐다보면서 '한때는…' 이러면서 피식 웃는다. 문화비가 없다면서 울부짖으면서 술값은 항상 있다. 딱, 그 수준밖에 안된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듣던 멜로디가 아니면 안 들으려고 한다. 집요할 정도다. 특이한 멜로디나 특이한 시도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면 작곡가들은 어디서 듣던 멜로디를 죽어라 찾아내야 하는데 확률적으로 나올 수 있는 멜로디가 뻔하니까 표절을 하게 되는 거다. 표절에 도덕적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 왜 대중들은 죽어라고 어디서 듣던 멜로디만 들으려고 할까.

일본 대중음악 차트를 보면 깜짝 놀란다. 톱10 안에 들어있는 노래들을 보면 요상망측한 노래들이 있다. 영국은 멜로디도 리듬도 없는 노래가 넘버 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런가? 자기들이 뻔한 노래만 좋아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다 면책받고 있다."

"팝과 단절되면서 대중도 하향평준화"

- 하지만 예전의 대중은 안 그랬던 것 같다. 넥스트의 2집,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 같은 새로운 음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대중은 언제나 준비되어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90년대 대중과 지금의 대중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처럼 평생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삶의 일정 시기에만 음악을 듣는 토양에서는 10년쯤 시간이 지나가면 대중을 이루는 세대 하나가 완전히 소멸하고 다른 대중층이 와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의 20-30대도 음악을 듣겠지만 그들이 실제 필드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6.10항쟁 이후에 등장한 10대-20대 초반은 음악을 듣는 방식과 세계관이 다른 세대다. 결정적으로 라디오에서 팝의 공급을 끊어버리면서 팝에서 단절되어 귀가 하향평준화돼버린 게 지금의 대중이다. 우리나라 대중의 역사에서 가장 귀가 밑으로 떨어지는 게 지금이다. 이런 풍토에서 음악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지금 라디오가 가장 뒤처져있는 매체라고들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음악 초보자는 2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장르 구분과 명곡에 대한 기초를 배웠다. 해마다 초급반에 입학하는 애들은 다 김기덕으로 들어오고 중급반은 '황인용의 영팝스'로 가서 심장을 때리는 음악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후에 '전영혁의 음악세계'라는 마스터클래스로 넘어갔다. 이런 코스를 거치면서 팝과 가요를 동시에 듣는 세대가 90년대에 탄생한 거다. 팝을 듣던 그들이 왜 우리나라 음악은 그렇게 안되냐고 뮤지션들에게 압력을 가했던 거다.

넥스트가 앨범을 내고 성공할 수 있던 건 '우리나라에도 속주 기타를 칠 줄 아는 애가, 하이톤으로 빽빽 지르는 애가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2집을 낼 때는 '팝에 비해 사운드가 밀리는데 해결해'라는 압력이 있었던 거고. 그래서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불러 와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대중의 힘이다."

- 들을 음악이 없다는 불만도 대중들로부터 끊임없기 제기된다.
"들을 게 없어서 아예 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그런 말 해도 된다. 그건 자기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다운로드 계속 받으면서 그렇게 얘기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일부 네티즌들의 행태는 그런 면에서 비겁하다. MP3와 함께 전멸한 건 아이돌 진영부터가 아니었다. 뮤지션 진영이 먼저 박살이 난 다음에 아이돌로 옮겨간 거다.

그나마 아이돌은 타격을 덜 받는다. 아이돌인 상대방과의 교감을 위해 직접 물건을 구매한다는 행위가 작용을 하니까. 하지만 아티스트 진영의 팬은 음악 내용만 있으면 되지 북클릿, 브로마이드 이런 건 필요 없거든. 소위 마니아들 포함해서 모두가 우리나라 음악에 칼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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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하는 사람들을 구박하는 나라가 어딨나"

- 하지만 아직까지 뮤지션들의 앨범이 나오는 건 그걸 듣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이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앨범 때도 난 그랬다. '아직도 니들이 내 앨범 제작비를 댄다고 생각하냐. 나는 다른 재주 부려서 돈 벌어서 내 돈 퍼부어서 앨범 만든다. 그럼 나한테 말할 자격이 없는 거지'라고 얘기하곤 한다. 나처럼 구르는 재주라도 있는 사람은 좀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갑갑하다.

뮤지션들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갖춰야 한다. 90년대는 그런 예우가 가장 높았던 시기다. 그 음악을 듣는 팬들은 자기 맘에 드는 아티스트들은 팝 아티스트들과 동급으로 대우해줬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 취급을 안 하려고 한다. 말꼬리 잡고 늘어지거나 이상한 얘기 찍찍 해대고. 칭찬은 못 들어도 좋다. 그렇지만 왜 침 뱉고 돌 던지는 거냐는 거지.

그나마 나는 팬덤이 형성되어 있으니 보호막 역할을 해줘서 버티는데. 심지어는 음악한다고 자살까지 해야 하는 형편까지 갔으니까. 다들 죽으려고 한다. 실제 음악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대중들이 그들을 대하는 악독한 태도다. 음악 하는 사람들을 구박하는 나라가 어딨나.

외국에 여행을 가면 놀란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뮤지션이라고 하면 일단 활짝 웃는다. 짐도 안 열어본다. 런던에서 택시를 탔는데 뮤지션이라고 하니까 뒤돌아보면서 '오, 모든 사람이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죠' 이러더라. 우리나라는? 엄마한테 따귀맞는 것부터 시작한다. 풍토가 너무 다른 거다."

- 뮤지션이 예우받았던 90년대는 자기 노래를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이 중심이었다. 심지어 댄스 뮤직도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노이즈 같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기획사 시대가 시작되면서 뮤지션의 자리가 위축됐다는 생각이다. 싱어송라이터를 필두로 한,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이들이 산업의 변방에 있고 기획상품들이 미디어를 다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산업구조가 대중이 음악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단초가 아닐까.
"기획상품이 미디어랑 결합하고, 그게 블록화하면 아티스트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게 순서대로 간다. 라디오가 그 순서를 그대로 보여줬다. 우리나라 라디오가 지위를 잃은 건 뉴미디어 탓도 있겠지만 자기 발을 자기가 찍은 게 더 크다. 라디오가 TV워너비가 되면서 아이돌을 끌어들여 DJ를 시키고 팝송을 끊었다. 그 결과 최약체 미디어로 전락했다. 하지만 외국은 여전히 라디오가 강력한 매체다.

TV 음악프로그램은 오로지 풍선 든 10대들만 대상으로 생각하고 아이돌만 데리고 놀았다. 요즘 어떤가. 음악 프로그램 시청률 안 나오고 망해간다. 하지만 EBS의 스페이스 공감 같은 경우는 어떤가. 그런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갔는데 성과가 나오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장기전략이나 고민없이 유행만 따라 왔다갔다하니까 순서대로 작살이 나고 있다. 아티스트들을 중심축에 뒀을 때 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 다시 아티스트들이 음악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시기가 올까.
"매스미디어가 다시 열리는 시기가 되면 창구가 올 수 있다. 다만, 그저 싱어송라이터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더하여 뭔가가 있어야지. 심지어 서태지도 아이돌 댄스팀이란 형태를 취함으로써 대중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을 뚫었고, 듀스도 본인들이 댄서 아닌가. 넥스트의 경우는 무대에서 벌이는 퍼포먼스의 정도가 백댄서 데리고 나오는 아이돌 댄스팀에 비해 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넥스트가 1집 내고 TV에 한번도 안 나가다가 몇 년 만에 나가게 되니까 PD가 백 댄서를 세우려고 했다. 그룹사운드는 연주 말고는 보여줄 게 없다고 생각한 거다. 그래서 백댄서 세웠다가는 우리 기타에 맞고 코피 터지니까 치우라고 그랬다. 기타를 돌리고 이빨로 물어뜯고 하는 김세황 앞에서 무슨 백댄서가 필요하겠나. 쇼적인 측면과 아티스트는 반비례라 생각하는 인식은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인디 밴드들과 얘기할 때 가끔 그런다. 홍대에서 클럽에 모여있는 관객 300명을 질질 싸게 못 만들면서 TV 앞에 있는 400만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라디오헤드처럼 가만히 있어도 시선을 끌 수 있는 포스가 있던가, 아니면 머틀리 크루처럼 '생쑈'를 하던가. 뭐든지 해야 한다.

차력을 하던 뭘 하던 관객의 눈을 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넥스트는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차력단이었다. 음악만 열심히 하는 걸로 된 게 아니었다. 우리 슬로건이 '연주에 실패한 뮤지션은 용서받아도 액션에 실패한 뮤지션은 용서못한다'였다.(웃음)"

- 솔로시절부터 넥스트, 모노크롬 등 당신의 음악적 여정을 돌이켜보면 초기에는 상업적, 비평적 찬사와 함께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평단의 지지를 그리 못 받았다. 그리고 시장에서도 팬의 외연을 넓히기보다는 기존의 팬층에 머물러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보다는 발언이 더 화제가 되는 상황이다. 뮤지션으로서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평론가들이 좋아할지는 예측이 된다. 하지만 97년부터 더 이상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넥스트를 해산할 때 더 올라갈 곳이 없어서 해산한다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이상의 평가와 판매를 원한 적이 없다. 그 이후부터는 철저히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97년까지의 내가 인기있는 소설가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논문을 썼던 셈이다.

모노크롬은 레코딩 테크놀로지 실험이었고 비트켄슈타인은 미디가 어쿠스틱의 영역을 어디까지 잠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음반 자체의 구조와 예술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거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누굴 위해, 뭣 때문에 그걸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거지. 그런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90년대에 조성되어 있던 분위기 정도는 되어야 거기에 따라갈 텐데 그렇지 않으니 나 좋은 거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특별한 스타가 등장했을 때 팬덤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거꾸로다. 팬덤이 형성된 후 그들이 요구하는 스타가 나온다. 그것도 비슷한 수천의 후보에서 한명이 간택되어 탄생한다. 간발의 차이로 너바나의 업적이 펄잼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시작한 건 너바나였듯 말이다. 디스코가 난리 치고 다른 음악이 전멸할 때가 됐을 때 록이 파티 음악화되면서 LA메탈이 출연했다. 그 임무가 다하자 그 뒤를 이어 너바나가 등장했다. 그렇게 보면 미디를 무기로 등장했던 우리 세대의 등장이나, 서태지의 등장도 대중들의 요구가 상승하기 시작했을 때 튀어나온 거다."

"돈을 아끼려는 순간 뮤지션은 죽는다"

- 시대가 뮤지션을 낳는다는 얘기다. 그렇게 보면 지금은 더 비관적인 상황 아닌가. 음악은 감상의 대상이 아닌 BGM(배경음악)이 됐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비관론은 음악이 세상에 존재한 이래 늘 있어왔다. 언제 뒤집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악은 비주얼 없이 오디오만 존재하는 매체기 때문에 다른 예술과 결합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매체다. 그런 면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화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자꾸 일회적이고 상업적인 매체와 결합해서 그렇지. 깊이 있는 다른 예술과 결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서 핑크 플로이드가 영화 <더 월>이나 콘서트에서 보여준 종합예술과의 결합이 아니었으면 단순한 변칙 블루스 밴드로 끝날 수도 있었을 거다. 단지, 지금 방법을 못 찾고 있을 뿐 결합할 수 있는 매체가 존재하지않는 건 아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여러 토양이 필요하다.

우선 아이돌에 대항하는 아티스트의 축을 이루기 위해서는 콘서트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콘서트에서 아이돌은 라이브를 중심으로 하는 아티스트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거다. 미국에서 스톤 템플 파일럿츠 공연을 2만원이면 봤다. 국내 가수를 보려면 8만원을 내야한다. 당연히 공연 사업이 안되는 거지.

여기서 화살은 정부에게 돌아간다. 콘서트는 최약체 산업이다. 여기서 무슨 세금을 뜯어간단 말인가. 면세 정책도 될까 말까 한데.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건 싸움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총탄이다. 그러나 돈을 벌면 몽땅 음악에 투자할 각오가 돼있는 뮤지션한테조차도 대중들은 돈을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거리의 악사가 없는 이유는 단속도 구속도 아니다. 거리에서 공연해도 사람들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션에게 나가는 돈은 아낄 수 있는 한 아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뮤지션은 죽는다. 이런 상황에서 뮤지션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음악을 하는 것밖에 없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영악해 봐야 소용없다. 제작자들이 영악해져야지. 너무 영악하면 음악 못한다. 그렇다고 너무 띨띨하면 음악할 수 있는 환경을 손에 넣지 못하고. 적당히 띨띨해야 한다.

내 경우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내가 솔로앨범 두 장을 내고 밴드로 전환했을 때 그렇게 안 했으면 오래 못 갔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결과론적인 얘기다. 솔로 두 장이 대박이 터지니까 '이제 회사에서 뭐라고 못하겠지. 자, 하자' 이렇게 된 거다. 사전에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리고 모노크롬을 내고 다시 풀 밴드로 돌아간 것도 '아, 막 두드려야지 이게 뭐냐!'는 욕구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자기 욕구에 충실하고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결론적으로는 가장 영악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신을 잃지 말아야지. 좋은 음악을 만들고 그걸 대중에게 보여주면 반응할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것. 그게 내가 사이렌뮤직을 설립한 이유다. 싱어송라이터이고 사람들이 들을만한 음악을 만들지만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빠져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메이저로 흡수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러다 보면 뭔가 바뀌겠지."

"인디는 수권능력 없는 약체 야당의 난립"

- 사이렌뮤직에도 스키조, 피터팬 콤플렉스 같은 팀들이 있지만 고스트 스테이션을 통해서도 인디 음악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최근 인디 뮤지션들의 흐름이 어떻다고 느껴지는지.
"굳이 인디라 할 것 없는 사람들도 인디로 몰린다. 댄서블하고 상업적 음악을 만들지만 얼굴이 상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댄서블한 음악을 들고 인디 신으로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사노바 뮤지션도 인디다. 디스코 뮤지션도 있다. 외국 같으면 메인스트림에서 놀아야 할 뮤지션들이 다 인디에 머물러 있다. 매스미디어가 철저하게 폐쇄적이기 때문에 여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디가 된다. 인디의 풀이 대단히 다양해진 건 이런 상황에 대한 역설적 결과다.

R&B 아이돌 진영이 더 이상 히트를 내지 못하는 무능한 집권 여당이라면 인디펜던트는 수권 능력이 없는 약체 야당의 난립이라 볼 수 있다.(웃음) 정권교체를 하려면 인디 뮤지션들을 묶어 세력화하고, 콘서트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매스미디어로 뚫고 들어가야지. 제일 문제는 자신감의 결여다.

인디 뮤지션들이 자기 노래를 안 틀어줄 거라 생각해서 방송사에서 음반 심의를 안 받는 경우가 많다. 어떤 노래 괜찮아서 틀어보려 하면 심의가 안 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심의실로 가지고 가서 심의받아서 튼다. 만약 언젠가는 록 스타가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으면 그런 일은 안 생기겠지.

고스트 네이션에 게스트 출연하면 웬만하면 검색어 1위는 한다. 일반 음악 듣던 사람에게는 인디가 너무나 신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라디오 3사에서 아이돌 틀어봐야 아무 메리트 없다는 거 깨닫고 몽땅 인디 음악만 틀면 인디는 순식간에 세력화될 수 있다."

"인디 세력화 필요... 매스미디어도 거부 못해"

- 음악계에 대해 너무 비관적인 얘기만 했다. 새로운 시대가 올 거라는 가능성, 혹은 징후는 느끼지 않나.
"최소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20세기 후반 들어 홈스튜딩 테크놀로지가 보급되면서 대중에게 음악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 넘어왔다. 컴퓨터가 한편으로는 뮤지션을 잡아먹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뮤지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고, 쌓이는 메탄에너지가 결국 지금의 메이저를 밀어낼 거라고 본다.

방송사 PD들도 변했다. 옛날처럼 기세등등한 상황이었다면 스키조나 피터팬 콤플렉스 같은 팀들 TV에서 안 받아 줬을 거다. 우리 회사에서 프로모션할 때도 인디 밴드가 나와서 반응 있었던 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녹화 현장에서 반응이 나온다. 윤도현 러브레터에 피터팬 콤플렉스 나왔을 때 검색어 1위하고 홈페이지는 방문자 폭주로 다운됐다.

그 사람들도 생각을 바꿀 기회가 있어야 한다. 당장 한 주 한 주 시청률이 나와야 프로그램을 계속 할 수 있는 입장이니 모험은 할 수 없어도, 만일 매스미디어에 진출한 인디 뮤지션이 대중의 관심을 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지."

- 하지만 방송국의 턱이 높다. 당신이 갖고 있는 루트와 여타 인디 레이블들이 가진 루트는 차원이 다르다. 인디 레이블 제작자들은 PD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 게 엄연한 현실이다.
"사이렌에 소속된 팀들이 방송 출연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니 사업 방향이 여러 가지다. 우선 여러 곳에서 인디를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거리와 클럽에서 시작해서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각 단계의 길을 건설하려고 한다. 긍극적으로는 그 길이 건설돼도 뮤지션이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하는 일이 벌어져야 하지 않겠나."

- 뮤지션이 방송에서 활동할 때 가장 문제되는 게 립싱크다. 밴드 사운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열악한 방송환경에서 립싱크는 필요악이라는 얘기도 있다.
"립싱크에 대한 편향적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외국은 우리랑 다르다. 분명히 돈을 내고 보는 공연에서 립싱크를 하면 문제가 된다. 콘서트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라이브라는 게 누구나의 상식이니까. 그러니까 법적으로 콘서트에서 립싱크를 할 경우 별도 표시를 하라는 거지 TV에서의 립싱크는 논란이 되지 않는다. 비틀즈,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도어스, 너바나. 다 TV에서는 립싱크했다. 그게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립싱크란 프로덕션 기획 상품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연예인을 구박하기 위한 용도에 불과하다. 진짜 음악을 사랑해서 라이브를 보려면 돈을 내야하는 거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이렇게 기브 앤 테이크 교육이 안 돼 있는지 모르겠다."

- 음반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MP3를 유료로 다운받아도 바보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음악은 공짜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우리나라는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 아닌가. 나는 우리 민족이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보는데, 그들 말을 받아들이자면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얘긴데 그래서 피곤하다.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바보다. 우리나라 인구 중 천만명만 바보면 행복해진다. '우리 애들 영어과외 안 보내고 조기 교육 안시킬 거다. 때 되면 지가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딱 천만명만 되면 우리나라 행복지수 올라간다."

ⓒ 싸이렌
"다시 정치할 생각 없다"

-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의 문제가 된다. 올해가 대선의 해다. 지난 대선 때처럼, 이번에도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할 생각인가.
"생각 없다. 그때도 생각 없다가 갑자기 한 거고 이번에는 갑자기 할 것 같지도 않다. 정치할 거라는 의심을 많이 받고 있어서 이번에 한 번 더 얽힐 생각하면 끔찍해진다. 벌써 다음 대통령를 뽑는 해가 됐는데 지난번에 노무현 진영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현기증 날 정도로 증오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꽤 되니까."

- 얼마 전에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기사를 봤는데 악플이 엄청 나더라.
"조선일보니까. 조선일보 독자들은 신해철을 철천지원수로 알고 있는데 그 신문에 내 기사가 나오니까 밉겠지. 음악 얘기만 했는데 거기서 노빠, 이런 얘기는 대체 왜 나오는거야.(웃음)"

-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에서 명사들을 대상으로 네티즌에게 궁금한 걸 묻는 이벤트를 벌였다. 하고 많은 질문 중 당신은 악플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라. 악플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그 중에서는 악플이 하나의 비판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나.
"단어 자체의 사전적인 의미를 좀 알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적절한 수위 이상을 훨씬 벗어난, 이미 비판의 의미를 상실한 걸 악플이라고 부르지 않나. 단지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얘기를 했다고 악플이라 부르지는 않는단 말이다. 인권을 침해하고 악성루머를 퍼트리는 수준 의 악플을 왜 비판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 악플러가 판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서도 악플이 근본적인 민족성인 발로냐고 했다. 최근 10년 동안 대중이 처음으로 스스로 쪽 팔리다는 걸 깨달은 건 이번 악플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현재 인터넷 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조성된 게 이번이 처음 아닌가. 지금 같은 경우는 인터넷 실명제에 찬성하는 여론이 대세화되는 조짐이 보인다. 하지만 전에는 부정적이었다. 이것만 해도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로 봐야지. 사실 그 자체가 부끄러운 거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서 실명제라는 제도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니 말이다.

우리 국민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고, 우수한 것도 아닌데 자꾸 우수하다고 선전하고 가르치는 게 문제다. 계속 허풍을 떤다. 지금 우리 국민성이 좋을 수가 없다. 생각해봐라.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가 몇 년 됐나. 동족상잔전쟁이 일어난 게 이제 반세기. 찌들대로 찌들고 고생할 대로 고생하고, 사회 이념이라고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이념은 잘 먹고 잘 살자, 하나밖에 없다.

경제 얘기를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정권이나 정부의 치적의 포커스가 경제로만 몰리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이 우리처럼 불행하게 사나.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해리슨 포드가 수명이 정해져 있는 사이보그에게 얘기한다.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어떠냐.' 우리는 그런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낙오와 도태, 끊임없는 경쟁에 대한 공포. 원론적인 얘기지만 인간은 그렇게 해서 행복할 수 없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경제지수에서 결정난다는 것 자체가 무지막지한 착각이다. 선진국 다니면서 느끼는 게 당황스러운 친절을 길거리에서 받았을 때, 우호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거리를 봤을 때다. 우리의 거리는 적대적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이 속에서 어떻게 행복하겠나.

도로교통에서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난다. 차선 변경할 때 보자. 앞차가 아무 이유없이 막는다. 내 차선 막는다고 빨리 가는 게 아닌데도.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가 있나. 무의식적으로 딴 놈이 내 앞으로 오는 게 싫다, 양보하는 게 싫다, 그런 심리가 깔려있는 거다. 런던에 있을 때 운전하고 다녔다. 유럽은 우리와 차선도 반대고 핸들도 반대다. 얼마나 힘들겠나. 그런데 한국보다 편했다. 내가 깜빡이 켜주면 뒤차는 무조건 서주니까."

"한민족 우수성 교육이 배타적 문화 만들어"

- 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됐을까. 개발독재,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였을까.
"박정희, 전두환보다 뿌리가 깊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도 무지막지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토양이 잡혀 있으니까 그 분위기에 올라탈 수 있었던 거지. 이승만이 국부 운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럴 토양이 있었던 것이니 굉장히 오래된 얘기다. 지금만 해도 끊임없이 경쟁심을 부추기지 않나. 아마 내 속에 있는 얘기 다하면 아마 길거리에서 맞아 죽을 것이다.(웃음)"

- 우리가 배타적이라는 건 사실인 것 같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만 봐도 그렇고.
"근본적으로 한민족이 인종차별주의자인 게 한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데서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민족에 대한 존중도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런 인식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친다. 허구한 날 국악의 우수성 운운하는데 미치겠다. 물론 국악 우수하다. 하지만 태국음악, 인도음악, 일본음악 다 우수하긴 마찬가지다.

서양사람들이 국악 공연 보고 기립박수 치고 립서비스 차원에서 '원더풀!' 그러는 건데 생각해보면 그들은 세련된 거지. 듣도 보도 못한 음악에 기립박수 치는 건데. 그걸 보고 국악이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악이라고 하면 미쳐버리지. 지독한 콤플렉스가 지독한 오만으로 표출되는 거다. 꼭 우리 조상이 우수해야 2007년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건가. 하여간 초중고 12년간 선생들한테 남대문의 선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내용을 듣느라 죽는 줄 알았으니까."

- 그런 내용을 제도권 교육에서 군대까지 거치면서 받다 보니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당신의 아이가 크면 제도 교육을 받게 할 건가.
"그건 내가 결정할 게 없다. 아이가 즐거워한다면 시킬 수 있다. 자기 오류를 수정할 기회는 나중에 스스로 찾는 거니까. 나만 해도 남존여비 집안에서 마초, 극우적인 사고방식을 주입받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스무살 때 내가 택한 길은 다른 거였다. 지금도 인터뷰 기사 뜨면 '신해철, 이 노빠! 전라디안!'하면서 난리 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난 오리지널 경상도거든. (웃음) 나 대구 못 간다. 온 집안 친척들이 다 죽이려고 해서."

- 다시 한번 묻자면, 정말 정치할 생각은 없는 건가? (웃음)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정치 안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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