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 난 책읽기가 좋아
아놀드 로벨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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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
개구리와 두꺼비의 단순하고도 앞일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특히 계획표를 짜고 그에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 씨앗을 뿌리고 언제 싹이 나올까 안달하는 모습, 먹고 싶은 과자 앞에서 자꾸 손이 나가는 모습 등이 재미있었다.
책 분량은 적지 않으나 글씨가 크고 짤막한 글 여러 개로 되어 있어서 처음 혼자 읽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도 알맞다.

아쉬운 점>
줄거리 위주의 책에 길들여져서일까? 내가 읽기에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그렇지만도 않은 듯. 초등 2학년 딸내미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개구리와 두꺼비의 행동을 마냥 재미있어 한다. 

2002/03/26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솔직한 느낌은 '이게 뭐가 재미있을까?'였다. 
그러니 위의 느낌글만으로 별점을 매긴다면 별 세 개 정도?

그러나 5년쯤 지나서 다시 읽었을 떄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 책을 재미없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 

지금은?
강력 추천, 별 다섯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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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ant 2011-10-15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도연 외국동화분과 발제
 
산적의 딸 로냐
린드그렌 지음, 김라합 옮김 / 일과놀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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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달에 걸쳐 분과 사람들과 함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을 읽어나갔다. 린드그렌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유독 내 마음을 끌었던 책은 《산적의 딸 로냐》였다. 이 책 속에는 '로냐'라는 매력적인 아이와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와 많은 생각거리들이 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들을 옮겨본다.


로냐라는 아이

로냐는 내가 어렸을 때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주인공들- 초록지붕 집에 사는 앤이나 소설가의 꿈을 꾸는 죠우-이나 린드그렌의 유명한 주인공 '삐삐'와는 또다른 매력을 지닌 아이다. 아이다움과 어른스러움, 활달함과 침착함을 함께 지닌 아이. 이것은 로냐만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른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의 숨은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로냐가 자리하고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사뭇 다르지만, 그 아이의 모습은 거짓으로 느껴지지도, 너무나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수리 마녀가 날아다니고 회색 난쟁이가 불쑥 튀어나오는 배경을 빼고 사람만 보면 옆집 아이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린드그렌이 책 속에 그려낸 아이들을 보노라면 '정말 아이답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 아이들 속을 잘 알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로냐 또한 그렇다. 친구를 사귀기 전까지는 마티스의 성이나 숲 속에서도 혼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지만, 비르크와 만난 뒤에 그리움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다.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 비르크와 사소한 것 때문에 다투고 속상해 하고, 그리고는 곧 후회하고 다시 친해진다. 언제나 올바르다고 믿던 부모의 다른 모습을 알고나서는 반항하고 집을 나오지만 바깥에서는 집을 그리워하고 눈물짓는 아이다. 우리가 언제나 아이들에게서 보는 그 모습을 로냐에게서도 본다.

밝고 씩씩하고 생각할 줄 아는 아이 로냐가 나는 정말 좋다.


여자와 남자

로냐의 아빠 마티스와 그를 따르는 열두 명의 남자들은 다른 어떤 무리보다도 '남자답다'는 말이 어울릴 '산적'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던 산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힘으로 보르카 무리를 이기고 싶어하고 큰소리 치기 일쑤인 마티스지만 자기 감정을 밖으로 나타내는데 인색하지 않고 (이렇게 툭 하면 흥분하고 여러 번 눈물 흘리는 아빠는 책 속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 딸아이의 일에 대해서는 잔걱정도 많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에 비해 엄마 로비스는 다정하고 꼼꼼하지만 큰 일이 닥쳤을 때는 침착하고 담이 크다. 로냐에 대해서도 마티스보다 한 발짝 더 뒤에 물러서서 지켜볼 줄 아는 엄마다.

슬픔에 겨워 울부짖는 마티스, 시끄러운 산적들에게는 고함을 치지만 슬퍼하는 마티스를 안아서 달래주는 씩씩한 로비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여자가…' 또는 '남자가…'라는 덫은 우리네 삶 여기저기에 놓여있다. 그런 생각에 대한 통쾌한 한 방이었달까. 이런 모습이 그려져도 어색하지 않은 건,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린드그렌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여자들의 자리가 높은 스웨덴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자식과 부모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한다. 마티스와 보르카는 숲을 호령하는 무지막지한 산적이지만 자식 일에는 한없이 마음 약해지고,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자식을 보고 심란해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다.

그러나 로냐가 자라서 처음으로 숲에 나갈 때 마티스와 로비스가 어떤 말을 하면서 보내는지, 마티스에게 반발해서 집을 나간 로냐를 로비스가 어떻게 기다려 주는지, 이런 것들을 보면서 올바른 부모의 자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이제 집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자신의 틀에만 가둬놓지 않고 지켜 봐줄 줄 아는 부모가 그들이기 때문이다.

"수리 마녀들과 회색 난장이, 그리고 보르카네 산적들을 조심해라."
"어떻게 생긴 게 수리 마녀고 회색 난장이인지, 누가 보르카네 산적인지 어떻게 알 수 있죠?"
"너는 이미 그걸 알고 있다."
"숲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죠?"
"곧게 난 오솔길을 찾도록 해라."
"강물에 빠지면 어떻게 하죠?"
"헤엄을 쳐라."
"…또 조심해야 할 일이 있나요?"
"다 됐다. 이제 차차 하나씩 하나씩 터득하게 될 게다. 자, 가거라!" (1권 22-24쪽에서 부분 발췌)

… 굴 앞의 넙적 바위에서는 로비스가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 딸 로냐야, 머리가 젖었구나! 헤엄쳤니?"
로비스가 물었습니다.
(중략)
로냐는 엄마 곁에 앉아,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습니다. 산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들릴락 말락 조용히 흐느꼈습니다.
"내가 왜 왔는지 알지?"
로비스가 이렇게 말하자 로냐는 흐느끼며 웅얼거렸습니다.
(중략)
"엄마, 만일 엄마가 저라면, 그리고 엄마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않을 정도로 무정한 아빠를 가졌다면, 그런 아빠에게 돌아가겠어요? 아빠가 찾아오거나 집으로 돌아오라고 사정을 하지 않아도요?"
로비스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니, 나 같으면 돌아가지 않을 게다. 아빠가 나에게 사정을 해야지, 암, 그래야지!"
(중략)
환한 아침이 되어서야 로냐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때 이미 로비스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로비스가 놓고 간 회색 스카프만 덩그마니 놓여 있었습니다. 로비스는 로냐가 잠든 사이에 그걸로 로냐를 덮어 주었던 것입니다. (2권 89-95쪽에서 부분 발췌)

마티스는 숲으로 간 로냐가 마주치게 될 위험을 조목조목 짚어주지만 결코 앞서 나가거나 부모가 다 해결해 주려 하지는 않는다. 로비스 또한 집을 나간 로냐를 섣불리 달래려 들거나 억지로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다. 얘기를 들어주고 잠자는 사이에 덮어준 스카프로 딸에 대한 사랑을 말없이 전해줄 뿐이다.

나라면 이들처럼 너 혼자 바깥 세상에 나가서 겪어보고 깨닫거라 하면서 열두 살 아이를 쉽게 세상에 내보낼 수 있을까. 로냐가 살던 때나 지금이나 바깥 세상은 언제나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도 말이다. 어렵지만 용기를 내는 일도 부모가 할 일이다.


그리고…

책 속에서 그려지는 숲 속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 하다. 나란 사람은 등산과는 거리가 멀기에 '숲'이란 말을 들으면 고작해야 동네 뒷산이나 수목원 속의 모습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로냐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숲과 강과 그 속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머리 속에서만 만들면 절대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 린드그렌 그 자신이 직접 겪어보고 쓴 글일 거라는 믿음이 든다.


줄거리만 꿰뚫고 나면 더 이상 볼 게 없는 책 말고 여러 갈래로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책이 좋은 책이라 했던가. 《산적의 딸 로냐》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내게 '좋은 책'으로 남을 것이다. 로냐가 되어서, 로비스와 마티스가 되어서, 비르크가 되어서, 때로는 산적 떼가 되어서 그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읽어보려 한다. 

 

200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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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ant 2011-09-2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도연 회보 '책 이야기'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0
필리퍼 피어스 글, 앤터니 메이틀런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가 필요한 아이

벤은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싶어하는 남자아이다. 식구들은 많고 집은 비좁으며 벤이 사는 도시 런던 또한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것을 알기에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울 수는 없다'고 하는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벤은 개를 키우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식구는 많지만 누나 둘, 남동생 둘 사이에서 외톨박이로 남아있는 벤. 그에게 '개를 가지고 싶다'는 건 단순히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친구를 가지고 싶다는 바램이다.

생일날 개를 선물로 주겠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철썩 같이 믿던 벤 앞에 도착한 것은 개 한 마리를 수놓은 그림뿐이다. 낙심한 벤은 어느 날부터인가 눈을 감으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개와 만나게 된다. 그림 속의 개 이름을 따서 '치키티토'라고 부르며 벤은 점점 그 개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공상도 지나치면 병이 되는 법. 점차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일을 귀찮아하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벤을 다들 이상하게 생각한다. 급기야는 길 한복판에서 눈을 감고 머리 속에 떠 오른 개를 쫓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현실 세계보다 머리 속에 펼쳐지는 자기만의 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버린 벤의 모습에서 요새 늘어간다는 사이버 중독증 환자가 떠올랐다고 하면 우스울까?

벤의 집은 옆에 넓은 공원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벤은 할아버지 댁에 새로 태어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울 수 있게 된다. 꿈에 부풀어 강아지를 데리러 간 벤 앞에 나타난 것은 벤이 머리 속에 몇 날 며칠이나 그리고 또 그리던 '치키티토'-너무 작아서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개-가 아닌, 덩치 커다란 개 한 마리. 실망한 아이는 개를 쫓아버리려 한다.

하지만 누군가와-설령 그것이 개라 할지라도- 친구가 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기가 만들어 낸 '이상형'만을 제일로 여기고 그것과 꼭 맞는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면 도대체 누구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후에 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벤이 브라운(새로 키우게 된 개)을 다시 소리쳐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한 뼘 더 마음의 키가 자란 벤이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외로움을 조금쯤 덜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서.


식구들의 수더분한 사는 얘기

벤의 이야기와 더불어 식구들 얘기가 퍽이나 재미있었다. 영국을 배경으로 한 글이지만 별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고 할까?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힘겨워하기도 하는 아빠, 두 딸을 품안에서 떠나보내고 마음이 허전해 하는 엄마, 결혼을 앞두고 온통 신경이 거기에만 쏠려있는 메이, 이제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어하는 딜리스, 개구쟁이 폴과 프랭키의 모습은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인 듯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 조금은 어눌한 할아버지와 몸이 자유스럽지 못한 지금까지도 깔끔하게 집안 살림을 하고 싶어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보는 사람들 모습 그대로이다.


마음 속에 남는 한 마디

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한다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을 갖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228쪽)

애타게 바라는 건 이루어지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 다음에는 그것에 만족하며 사는 법을 또 배워야죠. (222쪽)

뭔가 서로 어긋나는 저 두 가지 얘기. 하지만 곰곰이 새겨보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느껴진다. '최선책'(올바른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이나 '1등'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 '차선책'이나 '2등' 또한 그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는 거.

학교 다닐 때 많이 듣던 말 중에 "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뭐든지 내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일 앞에 서면 내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다시 한 번 해 보면 될 거라고 위안하던 때가 있다.

그러나 사는 게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커 가면서 해 봐도 안 되는 게 있더라는 걸 하나씩 깨달아가면서 느꼈던 그 씁쓸한 기분이란.

어느 쪽이 더 옳은 것일까. 그래도 아이들에게만은 "하면 된다"고 꿈(!)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의 간절함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어야 하는 것일까. 

 

200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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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ant 2011-08-1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도연 외국동화분과 발제글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가장 좋아하는’ 10가지도 아니고 ‘가장 감동받은’ 10가지도 아닙니다. 물론 저 둘에 속하는 것도 여럿 있지만요.
어떤 이유에서든간에 읽으면서 굉장히 강렬히 기억에 남았고, 그래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던 책을 골랐습니다. (즉, 재미있게 읽었어도 두 번은 잘 손이 가지 않는 건 빠졌다는 얘기입죠) 순서는 읽은 순입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앤 시리즈]
아마 제 생애의 첫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어렸을 적부터 [빨간머리 앤]을 무척 좋아했는데, 6학년 땐가 우연히 서점에서 다섯 권으로 된 [앤 시리즈]를 발견했어요. 세로쓰기 책에다가 일본 중역판이라서 이름들도 무척 웃기고(앤 샤아리;에 마리라, 지므스…;;) 집 이름도 ‘유풍장(柳風莊)’ 하는 식으로 모두 한자 이름으로 된 책이지만 책장이 너덜너덜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더랬지요.
얌전하지도 않고, 자기를 놀리는 남자애 머리를 석판으로 후려갈길 줄 아는 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길모퉁이를 돌면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정확한 기억이 아닐 듯;)고 말하며 포기하지 않는 앤이 무척 좋았습니다.
물론 자상하고 믿음직한 동반자로 있어주는 길버트도 마음에 들었지요. 언제나 앤이 하는 일에 지지를 보내며, 얌전한 현모양처로 있기를 강요하지 않는 점에서 백 점짜리 남편이랄까요. 그러고 보면 저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상형(물 건너가긴 했습니다만;)이 별로 변하지 않았군요.

O. 헨리 [O. 헨리 단편집]
마지막에 가서 사람을 화들짝 놀래키는 것이 이 단편집의 매력이죠. 엄청 유명한 “크리스마스 선물” 이나 “마지막 잎새” 보다도 다른 이야기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군요… T_T)
어렸을 때는 그저 그 반전과 캐릭터들이 재미있어서 즐겨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아마 ‘내 맘대로 안 되는 인생’ 에 대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습니다. 돈 없이 겨울을 나 보려고 그렇게나 감옥에 가려고 애쓸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붙잡히더니, 부자가 되어서 한숨 놓은 순간 경찰관에게 끌려가던 그 청년이 가끔 생각납니다.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씩씩한 여자, 포기하지 않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한 건 첫째도, 둘째도 그 이유지요. 마지막에 로체스터와 다시 만나서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이 책을 좋아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남남이 맺어지면 뿌듯해 하면서 남녀가 맺어지면 혀를 차는 것도 차별이 되려나요. 복잡한 심정이네요.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저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 ‘스칼렛’ 이란 인물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이라고 해야할 거예요. 제 눈에는 스칼렛이 지독히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인물로만 보입니다. 멜라니는 비현실적이고, 애쉴리는 옆에 있으면 제가 먼저 속 터져 죽어버릴만큼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인물.
그렇지만 이 긴 책을 그렇게나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던 건 아마도 그 끈질긴 생명력에 나도 모르게 끌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힘들 때 가끔씩 중얼거려 봅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 세 소설은 ‘한국 근대사 시리즈’ 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가장 뒤에 나온 [한강]의 마지막 권을 덮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더군요. 이 길고 긴 시리즈가 이제 끝났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한강]의 끝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에 퍼지는 그 무거움 때문에 나오는 한숨이요.
[태백산맥]은 대학 때 처음 읽었습니다. 한 서클 친구의 책을 친구들이 차례대로 돌려봤지요.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서 집에 가지고 온 책을 하얗게 밤 새워가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 가슴 저미는 느낌도.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PC통신 시절 드나들던 순정만화 소모임에서 사람들이 은영전, 은영전 떠들길래 궁금해서 찾아본 책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은영전이 도착했는데 펴 보니 소설이 아닌 만화여서 경악했더랬죠. 어쩐지 값이 싸다 했지만(3천원) 문고본일 거라고만 생각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바보였습니다. ㅠ_ㅠ
사람들이 열광하는 화려한 출연진들이나 수많은 전투 장면(이건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만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우리나라를 갖다 놓고 쓴 거 아닌가 싶은 장면 같은 것들(스타디움에서 군대가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라든가)이 읽을 때마다 참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양 웬리라는 인물에 끌려서 읽습니다. 소설 자체로는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흠이 많지만요.

구와바라 미즈나 [불꽃의 미라쥬]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차마 말할 수 없게 하는, 제게는 그런 책입니다.

(나머지 세 권은 사정상 생략... ^^;)  

 

 2005/06/12 
'소설 바톤 이어받기' 문답 중에서  '2. 재미있게 읽어 본 소설 10가지'

 

블로거 사이에서 전해지던 문답 중 한 문항만 옮겨 봤습니다.
지금 보니 '소설 10가지'라는 말이 좀 어색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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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 7년만에 하는 이사라 그 동안 집안 곳곳에 쳐 박아 놓았던 물건을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하느라 한동안 무척 바빴다.

포장 이사를 하기로 했으니 짐 꾸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이삿날이 가까워지니 다른 살림 걱정은 하나도 안 되고 내 재산목록 1호인 책에만 신경이 쓰인다. 짐 싸고 푸느라 어수선할 텐데 그 틈에 없어지면 어쩌지, 아저씨들이 막 다뤄서 책이 상하면 어쩌지 하는. 결국 책은 모두 내가 싸야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동네 슈퍼마켓에 부탁해서 사과 상자 열 댓개를 얻어와서 책을 꾸리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 9년 동안 늘어난 건 아이 짐과 책과 먼지 밖에 없나보다. 결혼할 때 샀던 책장 두 개는 오래 전에 꽉 차서 언제부턴가 옷장 속에, 식탁 위에, 책상 위에, 그리고도 남는 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아놓기 시작했다. 매일 보던 거라 그리 많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한데 다 모아보니 만만치가 않다. 사과 상자 열 개를 꽉꽉 채운 다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여전히 책장 두 개는 가득 차 있다. 지치기도 하고 슬슬 귀찮기도 해서 생각 끝에 일단 '귀중서'-만화책, 동화책, 사 놓고 아직 안 읽은 책들-는 잘 싸놨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옮겨주려니 하고 이사를 했다.

이사하는 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저씨들은 나머지 책들도 꼼꼼하게 잘 꾸려서 옮겨주셨고, 무거운 책 상자도 불평 하나 없이 날라주셨다. (책을 가득 채운 사과 상자 하나는 30킬로가 넘었다!) 대신 나보고 다음에 이사할 때는 책이 스무 상자라고 꼭 미리 얘기하란다.

이사 와서 딴 짐들 대충 정리가 끝나고 책장 두 개를 더 사서, 지난 식목일 날, 드디어 책 정리에 들어갔다. 어차피 다 내 책이기 때문에 식구들은 방에 들어오지 말라 하고 혼자 낑낑대고 있으니까 남편은 옆에서 대충 정리하라고 성화다. 하지만 난 예전에 겪어 봐서 안다. 처음에 제대로 정리를 안 해 놓으면 이 게으른 성격에 여차하면 이사 나갈 때나 다시 손을 대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걸. 그러니 나름대로 생각해서 정리를 하느라고 결국 밤늦게까지 그러고 있었다.

정리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서 방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을 쳐다보고 있으니 도서관에 들어온 듯 얼마나 뿌듯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오래 전에 사서 읽고 또 읽어 구질구질 손때가 묻은 책은 분명히 내 책이란 생각이 드는데, 요즘 몇 년 동안 정말 '사재기'만 해 놓고 겉장이 빳빳한 채로 나란히 줄 서 있는 책은 왜 그리 낯선지.

예전에 보면 가끔씩 거실에 유리문 달린 책장을 들여놓고, 금박으로 제목이 찍힌 전집을, 그것도 번호 맞춰서 주르륵 꽂아놓는 집이 꼭 있다. 그걸 보면서 책이 장식품이냐고 비웃곤 했는데, 아직 내 손이 닿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많이 들어찬 내 책장과 그 사람들 책장이랑 다른 게 뭐지?

책을 새로 사면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리는 게 너무 아쉬워서 끝의 몇 장을 남기고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어보고 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 표지랑 책등이 닳아지도록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한 달에 책 한두 권을 사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용돈을 아쉬워하면서 빨리 돈 벌어서 맘대로 책을 사고 싶어하던 때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그림책을 샀다가 어느새 내가 먼저 어린이 책의 재미에 빠져들어서 다른 책들 제쳐놓고 그림책,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어린이 책 공부를 시작한 건데.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인데도,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때부터 책은 왠지 재미없고 부담스러워졌다. 이 책 저 책 늘어놓고 읽어야 한다고 조바심만 내면서 정작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마는 날이 부지기수.

휴우… 그럼 지금의 나한테 책은 숙제일 뿐인가? 그것도 아니면 사서 늘어놓는 걸 즐기는 사치품? 이 좋은 봄날, 책과 다시 친구하고 싶은데. 

 

2001/04/13
어도연 회보 '회원글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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