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가장 좋아하는’ 10가지도 아니고 ‘가장 감동받은’ 10가지도 아닙니다. 물론 저 둘에 속하는 것도 여럿 있지만요.
어떤 이유에서든간에 읽으면서 굉장히 강렬히 기억에 남았고, 그래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던 책을 골랐습니다. (즉, 재미있게 읽었어도 두 번은 잘 손이 가지 않는 건 빠졌다는 얘기입죠) 순서는 읽은 순입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앤 시리즈]
아마 제 생애의 첫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어렸을 적부터 [빨간머리 앤]을 무척 좋아했는데, 6학년 땐가 우연히 서점에서 다섯 권으로 된 [앤 시리즈]를 발견했어요. 세로쓰기 책에다가 일본 중역판이라서 이름들도 무척 웃기고(앤 샤아리;에 마리라, 지므스…;;) 집 이름도 ‘유풍장(柳風莊)’ 하는 식으로 모두 한자 이름으로 된 책이지만 책장이 너덜너덜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더랬지요.
얌전하지도 않고, 자기를 놀리는 남자애 머리를 석판으로 후려갈길 줄 아는 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길모퉁이를 돌면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정확한 기억이 아닐 듯;)고 말하며 포기하지 않는 앤이 무척 좋았습니다.
물론 자상하고 믿음직한 동반자로 있어주는 길버트도 마음에 들었지요. 언제나 앤이 하는 일에 지지를 보내며, 얌전한 현모양처로 있기를 강요하지 않는 점에서 백 점짜리 남편이랄까요. 그러고 보면 저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상형(물 건너가긴 했습니다만;)이 별로 변하지 않았군요.

O. 헨리 [O. 헨리 단편집]
마지막에 가서 사람을 화들짝 놀래키는 것이 이 단편집의 매력이죠. 엄청 유명한 “크리스마스 선물” 이나 “마지막 잎새” 보다도 다른 이야기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군요… T_T)
어렸을 때는 그저 그 반전과 캐릭터들이 재미있어서 즐겨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아마 ‘내 맘대로 안 되는 인생’ 에 대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습니다. 돈 없이 겨울을 나 보려고 그렇게나 감옥에 가려고 애쓸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붙잡히더니, 부자가 되어서 한숨 놓은 순간 경찰관에게 끌려가던 그 청년이 가끔 생각납니다.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씩씩한 여자, 포기하지 않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한 건 첫째도, 둘째도 그 이유지요. 마지막에 로체스터와 다시 만나서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이 책을 좋아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남남이 맺어지면 뿌듯해 하면서 남녀가 맺어지면 혀를 차는 것도 차별이 되려나요. 복잡한 심정이네요.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저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 ‘스칼렛’ 이란 인물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이라고 해야할 거예요. 제 눈에는 스칼렛이 지독히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인물로만 보입니다. 멜라니는 비현실적이고, 애쉴리는 옆에 있으면 제가 먼저 속 터져 죽어버릴만큼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인물.
그렇지만 이 긴 책을 그렇게나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던 건 아마도 그 끈질긴 생명력에 나도 모르게 끌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힘들 때 가끔씩 중얼거려 봅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 세 소설은 ‘한국 근대사 시리즈’ 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가장 뒤에 나온 [한강]의 마지막 권을 덮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더군요. 이 길고 긴 시리즈가 이제 끝났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한강]의 끝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에 퍼지는 그 무거움 때문에 나오는 한숨이요.
[태백산맥]은 대학 때 처음 읽었습니다. 한 서클 친구의 책을 친구들이 차례대로 돌려봤지요.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서 집에 가지고 온 책을 하얗게 밤 새워가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 가슴 저미는 느낌도.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PC통신 시절 드나들던 순정만화 소모임에서 사람들이 은영전, 은영전 떠들길래 궁금해서 찾아본 책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은영전이 도착했는데 펴 보니 소설이 아닌 만화여서 경악했더랬죠. 어쩐지 값이 싸다 했지만(3천원) 문고본일 거라고만 생각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바보였습니다. ㅠ_ㅠ
사람들이 열광하는 화려한 출연진들이나 수많은 전투 장면(이건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만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우리나라를 갖다 놓고 쓴 거 아닌가 싶은 장면 같은 것들(스타디움에서 군대가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라든가)이 읽을 때마다 참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양 웬리라는 인물에 끌려서 읽습니다. 소설 자체로는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흠이 많지만요.

구와바라 미즈나 [불꽃의 미라쥬]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차마 말할 수 없게 하는, 제게는 그런 책입니다.

(나머지 세 권은 사정상 생략... ^^;)  

 

 2005/06/12 
'소설 바톤 이어받기' 문답 중에서  '2. 재미있게 읽어 본 소설 10가지'

 

블로거 사이에서 전해지던 문답 중 한 문항만 옮겨 봤습니다.
지금 보니 '소설 10가지'라는 말이 좀 어색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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