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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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놈이 지각한 날

-강신주의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을 읽고

    

1.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 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 장자 <지락>

 

어렵지 않는 이야기이다. 바닷새에게 술, 궁중음악, , 돼지, 양이라니! 바닷새를 대접하는 방법은 바다로 떠나보내는 것뿐.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인성 교육이 강조된다. 새삼스럽게! 그러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나 공감 능력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공감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난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마음, 나와 다른 마음을 공감하기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타인의 존재 그 자체이다. 바닷새와 사자 만큼씩이나 다른 겉보기보다 훨씬 더 다른 존재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섣부른 공감을 강조하다 보면 타인을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고 판단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기껏 공감해 주었는데 타인이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지난번보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공감은 쉽게 미움으로 폭력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공감하기 전에 진정으로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세상의 평화는 시작된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낳은 내 자식조차도 나에게는 완전한 타인이라는 사실. 부부간을 말할 것도 없다. 평생을 두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봐야 할 대상이 가족이라는 타인들이라는 사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나에게 물고기이며, 바닷새이고, 사자이며, 외계인이라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에서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기 전에 인간과 원숭이의 다름을 만나야 한다.

 

2.

원숭이 키우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원숭이르 키우는 사람은 원숭이가 옳다고 한 것을 따랐을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으로써대립을 조화시키고, ‘자연스러운 가지런함(天鈞)’에 편안해 한다. 이를 일러 양행(兩行)’이라고 한다. - 장자 <재물론>

 

그렇다면 원숭이를 만나면 원숭이가 옳다고 한 것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이 옳다고 한 것을 따르면 되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도 틈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늘 수업을 하기 싫어하고, 밤늦게까지 놀다가 자주 지각을 한다. 그들이 사는 방법을 그냥 두어야 하는 것일까?

 

3.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규칙을 따를 때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나는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 삶에는 우리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많은 규칙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특정한 공동체에 내던져지게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장자는 우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 자체가 내면화된 공동체의 규칙에 근거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것을 유명한 성심(成心)’의 논의로 명료화했다. - 강신주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늘 지각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속해 있는 세상과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은 다르다. 학교라는 곳은 기성세대의 규칙을 아이들에게 훈련시키는 곳이다. 나는 교사이다. 교실에서 나는 물고기와 바닷새와 원숭이와 외계인을 만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와는 다른 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일까? 현재 시간 아침 950. 세 아이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학교는 출석부에 무단지각이라 표시함으로써 그 아이들을 벌준다. 아이들에게는 365 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내가 속한 세상에서는 무단이라고 말한다. 아이들 스스로 기성세대들의 세상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쉽게 상대주의에 빠진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 나도 그르고, 너도 그르다. 모든 존재는 만물의 척도가 된다. 세상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거대한 바다인 줄 알았다가 셀 수도 없이 많은 하나하나의 물방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엄청난 고립감, 외로움을 느낀다. 우주 속에 홀로 떠 있는 기분이 든다.

다시 교실로 돌아온다. 현재 시간 1015. 2교시가 끝난다. 아이들은 아직도 오지 않는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속해 있는 세상과 내 세상은 각각 한 방울의 물방울이다. 각각 홀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각자의 물방울 안에서 각자의 삶을 살면 되는 걸까?

아이들이 2교시가 끝나고, 약간 피곤해 보이지만, 예쁜 얼굴로 나타난다. 두 아이는 어제 한 집에서 잤다. 밤늦게까지 재밌게 놀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17살 남자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 나는 아이들의 세상을 상상하지만, 결코 완전히 상상해 낼 수 없으며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주말도 있는데, 왜 하필 수요일에 같이 늦게까지 놀았을까?

 

4.

모든 순간 우리에게 무한히 많은 지각들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리도록 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물론 영혼에서의 변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무한히 많은 지각들에는 의식이나 반성이 수반되지 않는다. 이런 인상들이 너무 미세하고 많아서 혹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충분히 그 자체로서 구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라이프니츠 <신인간오성론>

 

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해 있을 때 선학들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망각하고, 타자로부터 나오는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라고 권유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유한자이기 때문이다. 유한자는 한계가 있고, 한계 너머에는 바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한자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 뿐이다. 안이나 밖. 안을 향해서 움직일 때 타자는 사라지고, 남도 나와 같겠거니 쉽게 공감하고, 쉽게 이해하고, 쉽게 무관심해진다. 밖을 향할 때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타자가 나를 향해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날개 없이 그들을 향해 날아간다. 우리는 비로소 만나다. 이런 만남이 행복한 결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집안에서 학교에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남은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 타자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타자라는 존재가 나에게 만들어 낸 흔적들이 모이고 모여 드디어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지각한 아이들에게 지각했으니까 남은 시간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한다. 화는 내지 않지만, 욕은 해준다. 아이들은 선선한 얼굴로 잘못했다고, 수업 시간에 잘 하겠다고 대답한다. 점심시간엔 즐겁게 놀고, 서로에게 웃는 얼굴로 욕을 해대면서, 종이 울리자 교과서도 들지 않은 채 수업에 들어간다.

이 아이들과의 만남은 분명히 나에게 흔적을 남겼고, 나를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에게도 나와의 만남을 통해 어떤 흔적들이 남았을까? 그것이 그들의 삶에 작은 힘이 되었을까? 그들에게 잠깐 멈추어 생각할 시간을 주었을까?

 

5.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자네의 말은 쓸모가 없네.” 그러자 장자가 이야기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만 함께 쓸모있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법이네. 땅은 정말로 넓고 큰 것이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사람이 쓸모를 느끼는 것은 단지 자신의 발이 닿고 있는 부분뿐이라네. 그렇다면 발이 닿는 부분만을 남겨두고 그 주변을 황천, 저 깊은 곳까지 파서 없앤다면, 그래도 이 발이 닿고 있는 부분이 쓸모가 있겠는가?” - 장자 <외물>

 

나는 가끔 아이들이 황천, 저 깊은 곳까지 파낸 낭떠러지 위해 서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이 과목은 이래서 하기 싫고, 저 과목은 저래서 필요 없다고 말한다. 취업에 별 쓸모도 없는 만화책은 참으로 열심히 읽지만, 정작 필요한 전공과목은 공부하지 않아 안타깝다. 동아리를 열심히 하지만, 자꾸 무단 지각을 해서 안타깝다. 나는 지금 디디고 서 있는 땅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위태롭게 살지 않으려면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 아이들은 물고기이며 바닷새이고 사자이며 원숭이이고 외계인이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에는 중력이 더 약할지도, 그래서 그 낭떠러지쯤 가볍게 뛰어 넘을 수 있을지도, 아이들은 그 높은 곳에서 재미와 스릴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모른다.

 

2015.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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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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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찾아 읽은 책보다는 우연히 만난 책이 더 흥미롭다. 서가 사이를 걷다가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대출해간 흔적이 없는 책에 내 시선이 머무르고, 제목을 읽고, 꺼내들고, 그리고 대출까지 했는데, 그 책이 깊은 감동은 주었을 때, 마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다.

최근에 내가 만난 새로운 세상은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이다.

 

1. 미셸

소설의 앞부분에 매우 간략한 에필로그가 있는데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이 에필로그가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이 시작되고도 한참 동안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헷갈렸으며, 절반 이상을 읽는 동안에도 이 소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에필로그를 읽고 나서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상할 수 없어서 흥미로웠다.

미셸이 남긴 논문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리학, 양자역학, 분자생물학의 어휘들은 낯설고 생소했으며, 소설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소설 구성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셸의 연구물로 인해 완결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셸의 사색과 분자생물학에서의 연구 결과,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던 인류는 스스로의 존재를 소멸시키고, 새로운 종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니까 말이다.

미셸은 인간 유전자 중 그 어떤 돌연변이도 발생시키지 않는 유전자의 표준 형태를 찾아냈고, 아무리 복잡한 유전 암호도 표준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완전한 수준의 유전자 복제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인간의 유성 생식이 인간을 필멸의 존재로 만드는 것임을 발견한 미셸의 연구는 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인류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의 차이가 없다고 해서 성적 쾌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식기 일부에만 분포했던 감각이 온몸에 분포함으로써 현생 인류가 상상할 수도 없는 극한의 쾌락을 새로운 인류는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와우!) 또한 일란성 쌍둥이가 각자 고유한 삶을 살면서도 서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처럼 결국 모든 인간이 같은 유전자를 공유함으로써 현생 인류의 시기, 질투, 폭력의 역사는 종말을 맞게 된다.

 

2. 브뤼노

브뤼노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기숙사에 버려진다. 힘이 세지도 못했고, 뚱뚱하기까지 했던 브뤼노는 동급생이나 기숙사 선배들의 학대에 무방비였고, 이 때의 상처는 평생 브뤼노를 따라다닌다. 성적 욕구 불만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강박적으로 성에 집착하지만, 그런 브뤼노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크리스티안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소설 속의 세상은 비정하고 혼란스러웠다. 브뤼노가 태어나 처음으로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주었던 크리스티안은 병으로 두 다리가 마미된 채 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고, 휠체어에 앉은 채 스스로 계단을 굴러 자살하고 만다. 브뤼노는 자신이 치료를 받아오던 정신병원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다.

몇 해 전 강남역 주변에서 성형외과들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고층빌딩 전체에 수십 개의 성형외과 간판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사람들이 성형외과에 많이 가긴 가는구나 하고 실감했었다.

늙어간다는 사실이 연륜, 경험, 지혜를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은 꽤 오래된 일인 것 같다. 늙어 간다는 것, 노인이 된다는 것, 아프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아니라 실패, 낙오의 결과물로 치부되며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21세기의 삶에서 돈이 살 수 있는, 또한 사려고 하는 가장 가치 있는 대상은 젊음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자본을 축적하려고 하는 이유도 젊음을 사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온화하게는 젊음이지만, ‘성적 매력이라 달리 쓰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 만나는 10대의 아이들은 모두 젊지만, 그들이 모두 동등한 것은 아니다. ‘성적 매력에 따라 아이들의 서열이 정해지는 것은 아닌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성적 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이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는 잘하는 찌질이로 취급받는 것은 아닌지.

브뤼노의 고통에서 현재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을 시작하고, 헬스를 다니며 근육을 키우고,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수술을 하면서 되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성적인 매력, 사람들은 성적 매력으로 무장하고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마음껏 골라 사랑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욕망은 채워질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이며, 그래서 인간은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다.

 

 

3. 작가 미셸 우엘벡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은 사랑인데, 지금 지구상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가망이 없으니, 새로운 인류가 출현해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이 너무나 현학적이고, 냉소적이고, 진지해서 다 읽고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나서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은 소설 전체가 거대한 농담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진짜로 웃겼고,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보고 싶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이 작가의 다른 책은 지도와 영토였는데, 읽어본 결과 소립자가 훨씬 강렬하고, 독특하고, 지독하며,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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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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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월은 맡은 일 다 끝내기 달로, 8월은 방학한 아이들과 세 끼 밥챙겨먹기 달로 전력투구한 이후 9월은 흥청망청 노는 달로 보내는 중이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보기, 이미 종영된 드라마 몰아서 보기, 하루에 영화 세 편 보기, 가끔은 소설 읽기를 하느라 눈이 빠질 것 같다. (, 물론 지난 추석 연휴는 배터지기 직전까지 먹는 주간으로 보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겠고, 배고픈 줄도 모르겠으나, 문득 아름다운 소설, 영화, 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나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더욱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될까하는 익숙한 자책감이 밀려오지만, 내년에 내가 후회할 일은 공부 안한 것일까, 더 놀지 못한 것일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번 달은 끝까지 놀아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런 결심에도 불구하고 끝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은 소설이 있으니, 그게 비행운이다. 소설집 속의 소설들이 다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물속 골리앗, 하루의 축, 그리고 서른이 강렬하다.

 

서른의 한 대목. 화자인 강수인이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하는 혼잣말, ‘너는 자라서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문장을 보고 난 이후 이 문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보다 더 슬프고 참담한 독백이 있을 수 있을까?

 

강수인은 마치 이런 예감을 실현시키기라도 하듯 옛 남자친구에게 속아 끌려 들어간 다단계 판매 조직에 옛 학원 제자 혜미를 속여 밀어 넣는다. 그 덕분에 수인은 조직에서 벗어 날 수 있었고, 항상 씩씩하고 당찼던 혜미가 잘 이겨내라라 믿어 본다. 그러나 수인은 혜미가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차마 병원을 찾아가지 못하던 수인은 10년 전 고시원에서 함께 공부하며 의지했던 언니로부터 엽서와 선물 꾸러미를 받는다. 언니는 임용고시에 합격했지만, 아직 발령받지 못했다는 소식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수인에게 고마웠다고 한다. 선물 꾸러미 속에는 10년 전 수인이 꼬박꼬박 이름을 적어가며 포인트를 쌓았던 빵집 적립카드, 수인이 그 포인트로 빵을 먹으라며 언니에게 선물했던 카드가 들어 있었다.

수인은 언니에게 답장을 쓴다. 스무살 언니와 헤어진 이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언니가 준 것과 자신이 받은 것은 다를 수도 있다면서 길고긴 편지를 마무리한다.

 

수인이 언니에게서 받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인은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에서 또다른 절망을 보았을까? 자신을 고맙게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위안을 얻었을까? 지금의 자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았던 어리석음을 만났을까? 아니면 고마운 사람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었던 순수함을 보았을까?

 

수인은 아마도 언니에게 답장을 보내고, 혜미를 찾아 갔을 것이다. 찾아 가서 그 다음에 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그 편지를 쓰던 수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살려고 발버둥 칠수록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 내리기만 하는 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혜미에게 사과하고 혜미와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슬퍼하는 것. 그것 밖에 남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참 운 좋게도 스무 살과 서른 살을 통과해 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범위와 대상을 한정할 수 없는 막연한 책임감도 함께 느꼈다. 내가 몰랐다 하더라도,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의 운 좋음은 누군가의 파국을 디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 김애란은 출구가 없는 이들의 절망을 깊이 이해하고 슬퍼한다. 동정이 아닌 공감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내가 세상의 절망에 대처하는 방법은 고작 자동이체로 후원금 내기, 그리고 홀랑 잊고 살기! 그러나 나보다 열 살 어린 작가 김애란은 세상의 절망을 껴안고 함께 앓고 있는 중!!

 

이제 김애란 작가의 신간이 나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사보기로 한다. 세상의 절망을 공감하는 힘을 조금이나마 빌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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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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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달리고 달리고 달린다~’ 이런 노랫말이 들어가는 엄청 정신없고 신나는 음악이 생각났다. 검색해보니, 노라조의 슈퍼맨이였다. 잠깐 가사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전략>

아들아~ 망토는 하고 가야지

아뿔싸~ 어쩐지 허전하더라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는 내 charming point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돌아라 지구 열 두바퀴

<하략>

 

들을 때도 웃겼지만 가사를 적어 놓고 다시 봐도 웃기다. 물론 이 소설의 내용은 이 노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도 그냥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억지로 갖다 붙이면 비슷한 점을 못찾을 것도 없겠다. 인물들이 하는 짓이 어처구니없다. 볼수록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중독성이 있다.

 

소설은 주인공 김혜나, 그의 큰오빠 김철원과 작은오빠 김학원 이들 삼남매의 미친 짓거리들이 중심 소재 되겠다. 주제는 미친 가족들 속에서 미친 사랑으로 살아남기?’ 특히나 큰오빠와 큰 올케의 욕심 사납고 속물적인 행태가 볼 만하다. 억 단위를 넘어서는 금융사고를 늘 치면서도 빨간색 소프트 톱 컨버터블 차를 광속으로 모는 작은오빠의 엽기 행각(내 오빠가 아닐 경우) 정말 귀엽다. 약간의 알콜중독 증세를 보이는 혜나 또한 간단하게 미친 짓을 해치우기는 마찬가지. 그나마 혜나에게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광기를 직시하는 눈이 있기에 주인공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소설은 주말에 웃기려고 작심한 개콘보다 더 재밌지만, 불만은 물론 있다. 김혜나와 혜나의 아름답고 우아한 어머니 김현경 여사 모두 남성 구원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 친부의 상실로 모든 것을 잃고 비로소 현실을 만나게 된 혜나가 의붓아버지를 통해 다시 모든 것을 얻게 된다면 혜나가 만났던 현실이 과연 현실인 걸까? 그것이 오히려 꿈이 아닐까?

 

혜나는 말한다. 돈을 벌어본 경험은 없지만 써본 경험만으로도 이천만원이 무척 큰 돈이라고, 한 달 동안 이천만원을 쓰려면 미친 듯이 놀고 미친 듯이 써야 한다고. (상상은 안 되나)깊이 공감이 된다. 흐흐흐 암, 이천만원은 큰 돈이고 말고.

 

심윤경의 야물게 반짝이는 문장들이 너무 반가웠던 소설이다.

 

2013.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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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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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풍경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 소설은 재미있는가? ‘재미를 국립국어원의 표준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첫 번째 뜻이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소설은 아기자기한 것과도 거리가 멀고, 즐거움과도 거리가 있다.

 

소설은 조행덕의 역마살을 쫓는다. 조행덕의 역마살은 조행덕을 시장판에서 만난 서하 여자가 건네준 서하문자를 시작으로 서하군의 선봉장 주왕례와 위구르 왕족의 여자와 멸망한 위지 왕조의 후예 위지광을 거쳐 둔황의 불경에 가 닿게 만든다.

 

조행덕은 무슨 대단한 의지를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 허무하게 실패한 과거 시험의 끝에서 그저 발길이 닿는 곳으로 운명이 그를 이끄는 데로 따라간다. 그가 있던 사주(둔황)성이 점령당할 것이 뻔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조행덕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흐르는 대로 흘러왔기에 전혀 후회는 없다고 회고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의지에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개입된 적도 없었고,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당한 적도 없었다. 물이 놓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극히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르렀다. (생략) 만약 새로 인생을 시작한다 해도, 지금과 동일한 조건이 주어지는 한, 자신은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삶은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길을, 그것도 가능하면 넓은 길을 뚫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 온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삶, 후회 없는 삶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조행덕이 말하는 의지라 함은 오히려 운명에 가까워보인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거스르지 않고 흘러왔기에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행덕은 재물과 목숨 그리고 권력의 허망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그 지독한 허무의 순간에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대상, 경전을 전쟁의 불길로부터 구할 수 있다면 구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조행덕은 처음으로 덧없음을 거스르고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한 인간이 평생 처음으로 품었던 영원에 대한 꿈 덕에 둔황의 불경이 불에 타지 않고, 10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지구상에 남아 갖가지 이야기를 여전히 만들어 내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시종일관 덤덤한 문체, 아무 것에도 욕심 없는 행덕의 태도, 그리고 행덕이 걸었던 척박한 길이 어우러져 소설을 읽고 난 뒤에도 둔황은 오래 오래 마음에 머무른다.

 

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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