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 강정인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본 우리 안의 서구중심주의 책세상 루트 3
강정인 외 지음 / 책세상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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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우리반이었던 한 아이가 생각난다.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여자 아이. 수업 시간엔 그림처럼 반듯하게 앉아서 수업을 듣던 아이. 하도 조용해서 존재감이 없던 아이,  나중에서야 걔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냐고 선생님들이 한 번씩 물어보던 아이.

  한 학년이 다 끝나고, 겨울 방학이 다가올 즈음, 그 아이는 심한 마음의 열병을 앓았다.  유학을 보내달라고 심하게 조른다는 그 아이 엄마의 조심스런 전화를 받았다.  그 애를 앉혀 놓고 오랜 시간 얘기를 했었다.

  ' 해리포터 시리즈를 너무 좋아한다, 여름 방학에 영국으로 어학 연수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여유롭게, 인간적으로 또 때론 치열하게 살아가는 또래의 영국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 난 왜 이런 곳에서 태어났는지 부모님조차 원망스럽다. 영어공부 죽어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내 존재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 곳으로 유학가고 싶다. 그 곳에서 살고 싶다. '며 울먹였다.

  '유학은 더 자라서 가도 늦지 않다. 너 하나의 유학을 위해 너희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요구다.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생각해라. 그렇게 말하는 네가 우리 에 대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고 있느냐? 더 안 다음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네 힘으로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머릿 속도 상당히 어지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생각들이 비단 어떤 특별한 아이의 고민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잘 하는 대로, 또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아이들의 머리 속에 하나의 이상향으로 서구의 어떤 나라. 어떤 교육제도가 저마다 하나씩 자리잡고 있고, 그런 이상에 한참 못미치는 아이들의 현실이 우리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지치게 하고, 열등감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 생각, 내 의식의 저 밑바닥에도 또한 이런 서구 중심주의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맙소사!

  책 중에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현실에서 거북이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북이는 어째서 경주를 하자는 토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는가 혹은 거절하지 못했는가의 문제라는 것. 거북이는 그 제안을 거절하거나. 아니면 경주 종목에 수영을 넣어야 게임이 공정해진다는 것. 그동안 서구는 우리에게 늘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만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구에게 자발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공정히 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게임 자체의 부당함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자기파괴적인 열등감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고민하던 그 녀석의 탈출구는 풍물반이라는 동아리 활동이었다. 자신의 정체감을 찾으려는 그 아이의 눈물과 실천이 참 고마웠다. 아직 희망은 있다. 서구 중심주의라는 심각한 정신병은 우리 사회의 난치병이지만 불치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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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ang 2005-04-25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입니다. 책의 취지를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일화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그 아이는 저의 옛날 시절 모습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