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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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흥창역 일대에 대한 흥미로운 지리지이자, 한국판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 역시 한국에 몇 안 되는 "영국식 보수" 장강명 작가님. 보수가 "근대화"를 외치고 진보가 "전통"을 옹호하는 나라 한국에서 무척이나 독특하고 인상적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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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온 서양인, 조선과 마주치다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29
손성욱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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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2년 가까이 연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건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오히려 글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덜해서(=고분고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80% 정도 전달할 수 있으면 됐지 뭐, 정도의 생각이랄까.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좋은 글을 알아보는 눈은 퍽 밝다고 자신한다. 좋은 글은 아주 거칠게 말해 둘로 나뉜다. 내가 죽을 만큼 노력하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타일의 차이니까. 그럼에도 더 눈여겨보는 글은 내가 따라할 수 없는 글이다. 써놓고 보니 역시 난 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손성욱의 글은 후자다. 그는 아주 단정하고 담백한 단문으로도 흥미진진하며 밀도높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난 그의 교양서도 교양서지만 전문서평이나 논문을 굉장히 좋아한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재밌는 칼럼이나 교양서를 쓰는 연구자도 논문은 딱딱하고 어려운걸 넘어, 그냥 읽기 어렵게 쓰는 경우가 많다. 반면 손성욱은 아주 전문적인 주제를 아주 평이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촘촘하게 풀어나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왕위안총의 《중화제국 다시 만들기》에 대한 그의 서평인데, 감히 서평의 이데아같은 글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에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로 나온 손성욱의《베이징에 온 서양인, 조선과 마주치다》(이하 《베이징》)도 담백하고 촘촘한,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다. 제목과는 약간 다르게 이 책의 큰 줄기는 "서구(+러시아)의 중국 탐문기"다. 마지막 4장을 제외하면 조선은 서구가 중국에 대한 앎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곁다리로 등장하는데, 이 점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이 결코 그 자체로 서구와 대면할 수 없었다는, 언제나 중국이라는 매개를 거쳐야 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니, 애초에 중국과는 다른 조선 "그 자체"가 존재했을까?

《베이징》은 재밌는 이야기책인 동시에 흥미로운 삽화집이기도 하다. 손성욱은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중국 풍경이나 미국인 펌펠리가 작성한 일본 에조치(홋카이도) 지질도, 조선인을 담은 최초의 사진 등 굉장히 다양한 시각자료를 보여준다. 당시 서구가 쌓아가던 동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결코 문자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이런 다양한, 그리고 쉽게 보기 어려운 시각자료 가운데 내가 가장 '꽂힌' 건 사무엘 윌리엄스가 제작하고 1847년 미국 뉴욕에서 앳우드가 출판한 중국 지도다. 중국과 일본은 오늘날 지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자세하고 정확하지만, 한반도는 실제 지형과 다르게 그려져 있다. 비단 윌리엄스 지도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 제작된 많은 지도가 이러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19세기 조선은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편입되었습니다"라는 '교과서적 설명'이 큰 틀에서는 맞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뜯어고칠 것이냐... 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니 할 말이 없지만, 애초에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 조공책봉질서"가 지극히 근대적인 관점에 따라 재구성된 만큼 오히려 당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달까.

가령 어떤 사람들은 임오군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간섭한 걸 두고 '전통적' 조공책봉 관계를 무시하는, 서구 식민주의적 처사라며 분개한다. 하지만 이 책에도 나와있듯 19세기 조선은 "인신무외교"를 내세우며 통상을 요구하는 서양 함선의 요구를 물리쳤다. 신미양요 이후에는 미국에 명을 내려 더 이상 조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청 황제에게 부탁했다. '진짜' 전통은 이들의 기대와 달랐던 셈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임오군란 이후 청의 조선개입을 "식민주의"라며 비판하는 이들이 준거로 삼은 "전통"은 사실 유길준의 양절체제 정도의, 지극히 근대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19세기 조청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그것은 '전통적(=수구적)'이었나 '근대적'이었나. 아니면 그러한 이항대립 자체가 잘못되었나. 손성욱은 이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는 한중관계 일반에 대한 여러 선행 연구를 꼼꼼하게 정리해온 동시에, 19세기 조청관계의 실상 역시 구체적으로 파악해 왔다. 나는 그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두꺼운 학술서를 내주길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

한중관계는 비단 한국과 특정 국가A의 관계가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휙휙 바뀔 정도로, 중국은 한국에 매우 중요한 타자다. 아니, 사실 중국이 한국에 타자였는지 아닌지조차 매우 민감한 문제다. 그중에서도 19세기 조청관계는 한반도가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에 편입된 시기인 만큼, 나머지 시대에 비길 수 없는 중요성을 갖고 있다. 손성욱이 한중관계, 나아가 한국사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퍼즐조각인 19세기 조청관계를 꼭 맞춰주길 독자로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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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재수사 1~2 - 전2권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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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나왔다, 혹은 갈고 닦았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다. "나 여기까지 생각했어, 이만큼이나 할 수 있어"란 티를 팍팍 내는데, 그게 전혀 거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감격스러운 작품. 누군가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 완성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은 언제나 즐겁고 벅찬다.

장강명 작가의 《재수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그런 감격스런 작품이다. 사실 작품을 읽기 전까진 걱정이 앞섰다. 그는 자신의 작가 인생에서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큰 의의를 남길 작품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퍽 오래 전부터 여러 지면에서 해왔지만, 정작 결과물이 나올 기미는 통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 나온 뒤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에 비친 책은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느껴졌고, 장강명의 현실감 넘치는 묘사와 발군의 취재력은 좋아하지만 주제의식은 다소 공허하다 느끼는 나로서는 이번 작품이 전형적인 사변소설은 아닐까 우려스러웠다. 다소 건방지지만, 장강명이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있을 이번 소설이 실패해 그가 다시는 펜을 잡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장강명의 팬으로서 그의 글을 더는 읽지 못한다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니까.

하지만 이런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남들보다 늦게 택배가 도착해 오후 8시 쯤 첫 페이지를 넘긴 뒤 새벽 3시가 넘은 방금 전까지 앉은 자리에서 침을 꼴깍꼴깍 넘겨가며 두 권 합쳐 800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을 다 읽었다. 이런 게 진짜 "페이지 터너"구나... 앞으로 《재수사》 미만 "페이지 터너"라 부르기 금지. 이 책을 읽고 제 코로나 후유증이 (일시적으로) 나았어요.

소설은 22년만에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메인 스토리와 살인자의 일지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읽기 전까진 아주 걱정했던 구조였는데 장강명 특유의 관념론이랄까, 형이상학을 한 쪽에 몰아주니 오히려 몰입감이 훨씬 높아진다. 그렇다고 양자가 물과 기름 같다거나 겉돌지도 않고, 아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작가가 군데군데 심어놓은 복선과 암시, 상징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달까. 작가가 "나 이만큼이나 신경 썼어, 이만큼이나 글을 다듬었어"라고 자랑하는 티가 팍팍 나는데 그게 전혀 밉지 않다.

무엇보다 《재수사》는 내가 지금껏 읽은 장강명의 소설 중 (나는 기사를 뺀 그의 글 대부분을 읽었다고 자부한다) 가장 주제의식이 살아있다. 장강명은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공허와 불안이라 진단했고, 그 기원을 정교하고 설득력있게 풀어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장강명의 소설은 《표백》인데, 이 소설에선 다소 피상적이고 설익었다 느껴졌던 문제의식을 《재수사》는 훨씬 묵직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다. 솔직히 말해 《표백》이 68혁명 이후 유럽이나 일본에서 나올 법한, 다시 말해 2010년대 초반의 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었다면 《재수사》는 지극히 2022년의 한국답달까.

《재수사》2권에는 "초판으로 만나 반갑습니다. 저에게는 무척 각별한 책이네요. 어떻게 읽어주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부디 즐거운 독서이기를..." 이라 쓰인 장강명 작가의 싸인이 (아마도 인쇄된 것이겠지만) 적혀 있다. 몇 년 간 써온 여러 글들을 통해 그 각별함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했고, 그래서 더 걱정이 컸다. 오늘날 한국 출판시장은 작가의 각별함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진 않는 곳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재수사》를 각별히 읽었고, 다른 독자들 역시 그러리라 확신한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 책을 통해 장강명은 삶의 의미를 멋지게 증명했다. 이런 작품 하나 남길 수 있으면 삶은 의미있다 할 수 있지, 암.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라면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이뤄진 여러 언론사의 인터뷰인데, 하나같이 책이 가진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다들 책 안/못읽으신듯... 그러니 제발 기사 말고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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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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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이 드디어 자신과 닮지 않은 남주를 만들어냈다, 《믿음에 대하여》의 가장 큰 성취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개로 쪼개 남주들에 흩뿌린 것에 가깝기는 하다.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 이야기(이젠 그만 보고 싶지만, 어지간히 힘들었나 봄)나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처럼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나 그동안 여러 번 소설에 사용했던 테마들도 여전히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알려지지 못한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 《일차원이 되고 싶어》와 다른 점은 뒤가 아닌 앞을 본다는 것. 그동안의 소설들은 작가의 10대와 20대를 '털고 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지금'과 '앞으로'를 이야기한다. 종종 방문하는 문학 전문 블로그에선 이 소설이 박상영 특유의 유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지만, 오히려 난 그 점이 좋았다. 이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농담하는 이야긴 끝이다, 라는 결기가 느껴졌달까. 애당초 코로나 팬데믹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소설인 만큼 웃기는 이야기는 좀 어렵기도 하고.

다만 이야기를 너무 갈고 닦은 탓인지 마지막 단편인 <믿음에 대하여>는 좀 작위적인 티가 났고, 특히 결말은 아주 뜬금없었던 데다 유교보이로서 용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됴 계속해서 강렬한 이미지로 떠오르는걸 보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던 듯. "믿음에 대하여"라는 제목과도 아주 잘 어울리고.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어로 번역되고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던 덕인지 이번 책은 아예 해외 출간을 염두하고 주제나 문장을 고심한 티가 났다.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단편들을 모아놓고 연작이라 우기는 소설이 적지 않은 요즘, 작가가 A의 눈으로 B를 보고 B의 눈으로 A를 보는 연작소설만의 재미를 제대로 살린 점도 좋았다. 박상영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랬듯, 이번 소설도 가장 매력적인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친구 말처럼 여성 등장인물을 가장 기깔나게 그려내는 남성 작가. 다음 작품은 아예 여성이 주인공이어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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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당신 - 오랫동안 자기답게 살아온 사람들
김종철 지음 / 사이드웨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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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종철 선배의 인터뷰가 제일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 한창 한겨레21창간특집 인터뷰를 준비할 때였다. 그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혹은 과제를 위한 인터뷰는 여러 번 해봤어도 이런 공식적이고도 중요한 지면에 글을 싣는 건 처음이었다. 준비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무엇보다 어찌어찌 인터뷰를 마친들 이걸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혼자 속만 끓이느니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겠다싶어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담당자, 구둘래 기자님께 카톡을 보냈다. 언제나처럼 짧고 굵게, 딱 한 줄로 답장이 왔다. “김종철 선배의 인터뷰를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지난달을 끝으로 한겨레를 정년퇴임한 김종철의 인터뷰는 따뜻하고 웅숭깊은 내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 변희수 하사나 독립연구자 정태인 인터뷰는 SNS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김종철의 인터뷰를 배운다고 따라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함에 정태인 인터뷰를 한글파일로 인쇄해 밑줄까지 쳐가며 공부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강명관 인터뷰는 인터뷰어의 에고가 덕지덕지 묻어난, ‘인터뷰라기보다는 비평에 가까운 글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나온 김종철의 인터뷰 모음집 각별한 당신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종철의 인터뷰는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다. 그를 제외하곤 누구도 이런 인터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독특한,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타인을 읽어낸다. 아니, 어쩌면 읽어낸다는 표현조차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김종철의 인터뷰는 읽음보다는 받아들임의 과정이며, 그렇기에 결코 읽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경이감과 복잡함을 동시에 안긴다.

 

(야매) 글쟁이로서 내가 가진 강점은 소위 야마를 잘 잡는다는 것이다. 글이든 사람이든 가만히 읽거나 듣다보면 이게 어떤 이야긴지 대충 감이 온다. 이렇게 잡은 야마를 얼개로 본문을 해체-재구성해 날렵하고 요령 있게 정리하는 것. 문장이 유려하지도, 어휘가 풍부하지도, 사유가 단단하지도 않은 내가 연재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호의와 배려 덕분이겠지만) 바로 이 야마 잡는 능력 덕분일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야마를 잡는게 아니라 야마에 잡힐때 일어난다. 미리 구상해둔 얼개에서 벗어나는 사실이나 발언이 튀어나오면 억지로 욱여넣으려 들거나, 아예 모른 척 넘어가버리기도 한다. 내가 잡은 야마에 내가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지난 번 강명관 인터뷰를 공유하며 딱딱 떨어지는 명쾌함보다는 복잡함과 머뭇거림을 더 많이 담고 싶었노라 적었지만, 이 복잡함과 머뭇거림조차 잘 짜인 기획의 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던 건 그래서다. 기획된 애매함이라니, 그건 그냥 형용모순이 아닐까.

 

반면 김종철의 인터뷰엔 야마란 게 없다. 그는 그저 가만히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씩 정말로 궁금해 보이는 점만을 질문할 뿐이다. 인터뷰 어디에도 김종철의 에고가 드러난 대목은 찾을 수 없다. 기자 생활 34년에 한겨레에서 정치부장에 선임기자, 신문부문장까지 지낸 김종철이 야마를 잡을 줄 몰라서 안 잡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참은 것이다.

 

김종철이 야마를 못 잡은 게 아니라 안 잡았다는 건 그의 촘촘한 취재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겨레21전 편집장이자 현 콘텐츠총괄인 정은주에 따르면, 김종철은 역사학과 출신답게 (이 얘길 들었을 때 역사학도로서 정말 찔렸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 인터뷰이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꼼꼼히 읽고 정리한다고 한다. 실제로 김종철은 56년 만에 부당한 판결의 재심을 신청한 최말자를 인터뷰하며 사건 발생 24년 뒤인 1988, 최말자와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여성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찾아낼 정도로 취재에 열심이다.

 

보통 이 정도로 촘촘하게 취재를 하면 인물에 대한 어떤 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연히 여기에 맞춰 인물을 그려내고픈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올 법도 한데, 김종철은 그러지 않는다. 대신 그는 묵묵히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김종철과 마주앉은 사람들은 모두 말이 많아진다.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애초에 수다스런 사람만 인터뷰어로 점찍었나 싶을 정도다. 물론 이는 되게 깊이 묻네요. 이렇게까지 심층적인 인터뷰는 처음 해봤어요.”(p.219.)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자세한 김종철의 질문 덕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김종철은 꼼꼼히 읽고, 가만히 듣고, 깊이 물음으로써 한 인물을 통째로, 오롯이 전해준다. 그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온다는 일의 어마어마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인터뷰이도, 그리고 어쩌면 인터뷰어도 의도하지 않았을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고 변희수, 신순애, 이준원, 임현정, 강수돌, 최말자, 달시 파켓, 김수억, 이동현, 김정남, 정재민, 김선희, 김덕수, 심재명·이은, 조영학, 윤선애, 이병곤, 송경동, 홍순관, 정태인.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인생도 다 다르지만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기다움을 지켜온 스무 사람의 인터뷰가 각별하게 읽히는 건 그래서다.

 

누군가를 잘 읽어주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내가 가진 무수한 욕심들 중 그나마 덜 숭하고, 어쩌면 조금은 이로울 수도 있는 바람이다. 그런 내게 각별한 당신은 어쩌면 지금껏 야마를 이야기로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움을 안긴다. 다시 정현종의 시를 빌리자면, 환대란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바람처럼 더듬어보는 일이다. 그러한 환대로서의 인터뷰를 너무나 따뜻하게 보여준 이 책 앞에서 나는 과연 야마 없이 누군가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사람이 온다는 어마어마한 일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되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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