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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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이 드디어 자신과 닮지 않은 남주를 만들어냈다, 《믿음에 대하여》의 가장 큰 성취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개로 쪼개 남주들에 흩뿌린 것에 가깝기는 하다.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 이야기(이젠 그만 보고 싶지만, 어지간히 힘들었나 봄)나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처럼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나 그동안 여러 번 소설에 사용했던 테마들도 여전히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알려지지 못한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 《일차원이 되고 싶어》와 다른 점은 뒤가 아닌 앞을 본다는 것. 그동안의 소설들은 작가의 10대와 20대를 '털고 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지금'과 '앞으로'를 이야기한다. 종종 방문하는 문학 전문 블로그에선 이 소설이 박상영 특유의 유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지만, 오히려 난 그 점이 좋았다. 이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농담하는 이야긴 끝이다, 라는 결기가 느껴졌달까. 애당초 코로나 팬데믹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소설인 만큼 웃기는 이야기는 좀 어렵기도 하고.

다만 이야기를 너무 갈고 닦은 탓인지 마지막 단편인 <믿음에 대하여>는 좀 작위적인 티가 났고, 특히 결말은 아주 뜬금없었던 데다 유교보이로서 용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됴 계속해서 강렬한 이미지로 떠오르는걸 보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던 듯. "믿음에 대하여"라는 제목과도 아주 잘 어울리고.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어로 번역되고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던 덕인지 이번 책은 아예 해외 출간을 염두하고 주제나 문장을 고심한 티가 났다.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단편들을 모아놓고 연작이라 우기는 소설이 적지 않은 요즘, 작가가 A의 눈으로 B를 보고 B의 눈으로 A를 보는 연작소설만의 재미를 제대로 살린 점도 좋았다. 박상영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랬듯, 이번 소설도 가장 매력적인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친구 말처럼 여성 등장인물을 가장 기깔나게 그려내는 남성 작가. 다음 작품은 아예 여성이 주인공이어도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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