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가 강원도로 떠나셨어요. 좀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토요일 휴가를 내지 못 해서 새벽에 오빠집까지 엄마를 모셔다드리고 거기서부터 오빠랑 새언니, 큰 조카아이와 함께 가셨어요. 한달 예정입니다.
몇달 전부터 엄마가 우울증 증상을 보이셨어요. 식욕이 떨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고 평소에 일상적으로 하던 일들이 끔찍할정도로 하기 싫어지신다 하시더군요. 우울증이라고 병원에 가보자했다가 혼나고-_- 요즘 정신과는 그냥 마음 치료하는 곳이라고 해도 소용없더군요. 엄마가 원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분이셨는데 성격도 예민해지시고 짜증도 느시고. 최근엔 감기끝에 기침이 낫지 않고 두달쯤 계속되자 잠도 못자고 식사도 못 하시고 내가 이래서야 살수 있겠느냐 못살거 같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고민끝에 알라딘의 m님께도 상의를 드렸는데(감사합니다^^) 큰병원에 모시고 가는게 좋겠다 하셔서 기침이며 급격한 식욕감퇴등 검사받아보자고 모대학병원에 모시고 가는데 성공했습니다.(거의 끌고 갔;;) 교수님께서 보시더니 기침은 역류성식도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고 다른 증상들은 역시나 우울증이라 진단하셨어요. 몇가지 검사를 하고 약 처방을 받아왔는데, 엄마는 약 드시는 것도 너무나 싫어하시더군요. (제가 보기엔) 몇개 되지도 않는 알약들이 약에 파묻히는 느낌이 든다 할 정도로요.
지난주 화요일에 대학병원에 문의해보고 검사결과엔 별이상이보이지 않는다는걸 확인했어요. 교수님께서 우울증약은 2주쯤 먹어야 효과있다고 2주 후 예약해주시긴 했는데.. 엄마와 얘기해본 결과 현재 엄마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일이 바로 '집안일' 이라는군요. 이미 청소는 해주시는 분이 있고 식사는 반찬과 국을 사먹는 걸로 했는데도 그걸로 충분치 않았나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집에 있으면 신경이 계속 쓰이신다고. 엄마를 집에서 떠나보내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이시형 박사의 힐리언스선마을?도 알아봤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ㅎㄷㄷ;;) 11월 되어야 방이 빈다고-_- 결국 새언니가 아시는 분이 하시는 곳으로 결정했습니다. 설악산에 있는 곳인데 음식이 맛있어서 인기있다는군요. 비용도 싼편인 듯 하고요.
생각해보면, 엄마에겐 휴가나 방학이 없었어요. 저의집은 완전 옛날사고방식이라 남자는 여자위에 군림하고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어렸을때부터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은 제 가족들을 보아왔기 때문일거에요. 잊히지 않는게, 이렇게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데 나중에 노후가 두렵지 않냐고-_-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의 대답이, 너에게 우리 노후를 기대하지 않는다. 아들이 둘 있는데 딸은 필요없다 였어요. 결국 지금 부모님은 제가 산 집에서 저와 살고 계시네요. 독립하길 원했지만 반대를 무릅쓰지 못했어요. 나도 가족으로 인해 포기한게 크고, 어릴때 나를 너무나 괴롭혔던 경제적인 문제를 다 해결해주고 있는데 모든 것에 화를 내기 시작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어요. 그렇지만 역시, 엄마에게도 방학이 필요했단걸 깨달았어요.
보내놓고 식사는 맞으시나 잠자리는 괜찮으신가 걱정돼서 전화 몇번했더니 왜 자꾸 전화하냐고^^; 집에 관한 일은 일단은 완전히 잊게 해드려야하나봐요. 다시 보고 싶어질때까지.
다른 도시에 살고 있던 남동생녀석이 이곳에 다시 직장을 구해 돌아왔네요. 집이랑 3분 거리에 살고 있는데 주말이면 끼니때마다 밥먹으러 옵니다. 평일에도 저녁먹으러 왔었는데 제가 좀 작작 오라 했다는-_- 결혼은 '아직' 안 하고 싶다는 녀석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의 증상이 시작된것도 같아요. 이녀석은 모르겠지만-_-;
하루 세끼 식사준비는 역시 보통 문제가 아니네요. 어제 저녁이랑 오늘 아침 겨우 두번했지만;;
어쨌든;; 집을 떠나니 그래도 엄마 목소리가 좀 기운 난듯 들려서 다행입니다. 강원도의 힘을 믿어야겠어요. 한달 뒤엔 몸도 맘도 건강히 돌아오시길.
그간 정신이 없어서(흰 머리가 왕창 생겼다는-_-;;) 서재에 못들어왔어요. 여러분들 잘지내셨겠죠? 하여간 건강이 최고예요.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