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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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읽는 내내,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구절. 그래, 과연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경험했던 몇 번의 죽음은 어떤 의미였는지. 그들 자신에게, 또 나 자신에게.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연민한다. 더러는 그것에 사로잡혀 청소년기에 혹은 그 시기를 벗어나 어떤 형태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매 순간 삶과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죽음'을 다루는 동화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단한 현실에서 단 하나의 의미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일. 우리는 이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통해 가슴저린 성장을 경험했다. 다만, 소중한 사람이 사라진 후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는지가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게 그것과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군데군데 화자가 바뀌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중 3 소녀의 말에서 갑자기 작가가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어색하기도 했지만 감정이 몰아칠 때에는 잘 모르고 넘어갈 정도로 감정 몰입이 좋은 동화였다.

  기대치가 높았던 작품이어서인지 완전히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타인의 죽음'이 아닌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정작 동화는 제목과는 다르게 '타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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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네버랜드 클래식 14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 지음, 메리 쉐퍼드 그림, 우순교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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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유모'란? 상냥하고 다정하고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는 사람? 다분히 '여성스럽다'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렇다면 과연 메리는 '좋은 유모'일까? 이 동화가 처음 나온 시점을 생각해 보면 메리 포핀스는 이 당시의 '좋은 여성상'에서 많이 벗어난 인물이다.

  괴팍하고 멋 부리기 좋아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아이들에게 마구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메리를 좋아한다. 왜? 머리 나쁜 엄마로 대표되는 그 당시의 '여성' '어른'들과 다르게 똑똑하고 아는 게 많고 무엇보다 '판타지'를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판타지'는 곧 '해방'이다. 그리고 '동심'이기도 하다. 어릴 때의 것을 갖고 자라나는 것. 그래서 메리 포핀스는 '어른'도 '어린이'라고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신념 혹은 마음먹은대로 하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모두들 이 유모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작품 속 인물이든, 현실 속 인물이든.

  동화 첫 부분에 뱅크스 씨가 부인에게 '풍족하게 사는 것'과 '아이들 네 명'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부인은 물론 후자를 택한다. 그리고 그녀는 멍청하지만 '착한' 여자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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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8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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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고 마음 먹었던 책이 아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작년, 꽤 괜찮게 읽었던 동화 몇 권이 있는 느낌 좋은 출판사에서 펴낸 청소년 대상 책이라는 정도이다. 책 뒤의 리뷰를 보고 흠칫 놀랐다. 소재는 동성애란다. 놀랄 수 밖에. 대학에 가서야 '여성주의'에 대해 배우고 '게이'와 '바이'에 대해 알았다. 갑작스러운 문화였지만 그것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누군가 커밍 아웃을 해 와도 그 사람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기에 이런 책을 접할 수 있다면 '행운'일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소수자'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 '성적 소수자'이든 '사회적 소수자'이든. 본인이 소수자가 아닌 이상 사회에 던져져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현이처럼 나도, 내가 마지막 시를 쓰는 순간 세상이 변해있길 바랐었고,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면서 더 많이 상처받았고, 길 위에서 길을 찾아 헤맸었다. 나는 소수자가 아니었는데도.

  이 책에서 남성 동성애자가 다소 곱상하고 예쁘장하고 다정하다는, 사회적 통념에 따른다면 여성스럽다는 편견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은 육우당의 이미지를 주인공들에게서 보여줘야 했던 것이니, 잊자. 동화에서는 보기 힘든 툭툭 끊어지는 호흡과 문장, 그리고 문득문득 마음을 관통하는 삶의 고민만으로도 이 작품은 수작이다.

  지하철 역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었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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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1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책입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주문해서 봤을텐데...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문학과지성 시인선 283
조용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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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읽은 게 대학 4학년 때인지 사회 초년생 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내가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무진장 힘든 시기에 읽으려고 시도 했었는데, 반쯤 읽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동안 시인에게 도저히 공감하지도 못해서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치워뒀던 시집. 일을 그만두고 석 달 뒤, 다시 읽기 시작한 이 시집은 전혀 읽기 힘든 시집이 아니었다. 내 상황이 느긋해져서인지도.

  시인의 전작들을 읽지 않았으니 성향을 논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단지 이 시집에서 몇 가지 알 수 있는 점은, 시인이 오래 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영혼을 자연물이나 사물(꽃, 새, 음악, 죽음과 같은)을 통해 끊임없이 재탄생 시킨다는 것, 그래서 시인의 자화상은 삼베옷을 입을 수 밖에없다는 것. 시인에게 있어 죽음은 고독하지만 곧 일상이다.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것이 과연 있을까. 삶과 맞닿아 있는 죽음마저도 온전히 소유할 수 없으니 더욱 쓸쓸하고 외로울 수밖에.

  시인의 담담한 어조와 함께 두 번째 읽었을 때 참 맛깔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죽음 뒤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말처럼 '욕망도 깨달음이 될 수 있을까'(「무덤」中) 그리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더 이상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으니 부리나케 '어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더 이상 시간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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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여자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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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에게 이 책을 소개할 때 '백귀야행'의 소설편, 이라고 말했었다. 이것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이나 '충사'의 초기작에 더 가깝다고.

  작가가 다른 사람들, 즉 '여성'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엮어놓은 듯한 구성인데 그만큼 서로 다른 화법, 게다가 여성적 어조로 쓴 단편들이다. 하지만 역자의 역량부족일까. 해설에서 극찬한 다양한 여성적 어조의 느낌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 소설 특유의 말라말랑, 맛으로 치자면 밍밍한 그런 맛이 강한 소설집이었다. 내가 너무 자극적인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면 헤르만 헤세의 '환상 동화집'이나 '나무 동화'를 떠올리며 이 책을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잠자는 숲'이나 '매화나무'는 굉장히 좋았다. '잠자는 숲'의 안식과도 같은 잠과 '매화나무'의 코 끝 찡하게 하는 인연이. 이 소설집의 분위기도, 이야기도. 잔잔한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충분한 흡입력이 있다면. 오히려 정신없이 빠져드니까. 후반부로 갈수록 흡입력이 높아져서 읽기 편했던 건 사실이다. 다만, 만화를 너무 본 탓인지 '와아- 획기적이다'라고 해설에서 써 놓은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을 뿐.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여성'인 건 작가가 판단컨데 그들이 좀 더 '감성적'이기 때문일까. 화자가 사업가인 동생보다 공상적이어서 환상의 이야기들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으니. 결론은, 좀 더 열린 눈, 열린 세계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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