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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 현대문학북스의 시 3
이홍섭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온통 불교 색채로 범벅된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사찰 한 곳에 다녀 온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잊고 지내던 불교 공부를 한 기분이랄까. 예전 스님 한 분이 지은 시집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시어, 이미지, 비유 상징을 중점으로 시집을 평해야 하는데 도무지 '불교'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으니 막막한 심정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 그 '불교' 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불교라는 학문이(나는 착실한 불교 신자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불교는 내게 종교보다는 학문에 가까웠다.) 선문답 같은 면이 없잖아 있어서 그런 것인지 한참을 되뇌여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이 두 편의 시를 시집의 첫 머리에 둔 이유는 아마 이 시집에서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이 두 편의 시에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화엄경>이란 소설-이라기 보다는 불교 서적이었다-을 읽고 나서 꼭 꿈을 꾸고 난 것 같은 몽롱한 기분이었던 적이 있다. 몽유비원도. 꿈 속에서 놀기를 슬프도록 원한다 라고 나는 해석했다. 그러기에 꿈에서 돌아온 아이가 서럽게 울고 화자 역시 깨어나 혼자인 것을 서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과연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시인은 불가(佛家)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속세(俗世)의 사람도 아니다. 속세에 머무르면서도 늘 생각은 불가에 가있는 사람 같다. 일상을 버리고 불교에 메달리는 것도 아니면서 그의 삶의 지향점은 불도인 것처럼 보인다.
시집에서 다루고 있는 불가의 사람들, 그리고 속인(俗人)의 모습, 시인이 사찰을 오르락 내리며 만난 모든 것들은 참 예쁘다. 예쁘다라는 말 외에 달리 대신할 말이 없다.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베길 절을 하는 시인의 할아버지와 홍련암부처님이 서방 같다고 이야기하는 공양주보살, 캄캄한 산길에서 문둥이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노스님, 깔딱고개를 넘어와 보시를 하고 영감 저녁상 차리러 다시 그 고개를 넘어간 노파, 문둥이 여자를 자기 방에서 보살폈다는 경허선사, 자살 직전 앳된 비구니의 얼굴을 빚었다는 조각가, 시인이 하산하기 전에 발을 씻어드렸다는 노스님, 요양원 앞뜰에서 어부바를 하고 있는 노파. 심배나무, 꾹저구, 살구나무, 열목어, 달맞이꽃, 국화, 벚꽃, 송아지 등. 시인이 시에서 이야기하는 그네들이 아마 시인에게 시를 쓰게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일차적인 따뜻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인의 시각은 연민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두 개의 화두는 끈질기게 시인을 따라다니고 있다. 시인이 가야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긴 밤길 속을 해메는 청맹과니 같다. 한평생을 운수납자로 살아온 스님의 발을 씻어드리고 그 발을 안고 하산하는 시인이 가야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 아니, 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되고 힘이 든다. 피가 돌지 않는 발을 안고 가는 길이란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겠는가.
시인이 몰아치는 눈보라를 향하여 서 있는 이유는 아마 시인이 있는 이 곳이 극락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인이 살고 있는 세상이 극락이어서 극락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되었든, 뒤로 가든 앞으로 가든 이 세상에서는 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적쇠 위에서 인내하며 붉은 열반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