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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7년의 밤. 한마디로 말하면 완성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사람들이 강추하면서 읽으라고 하고, 읽으려고 하는건 아닌가보다 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손을 놓을 수 없는 이 소설은 숨막히듯 풀어놓고 다시 숨 막히듯 풀어놓는다. 책 뒤페이지에 있는 '뒤돌아보지 않는 힘 있는 문장, 압도적인 서사, 생생한 리얼리티, 그 위에 세워진 묵직하고 매혹적인 세계' 라는 표현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읽고 보니 정말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표지 또한 내용에 정말 걸맞는 느낌. 읽고 보니 더 음산한 느낌이 나는 표지인 것 같지만 말이다. 또한'한 남자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 는 소개 문장이 처음 글을 읽기 시작할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야 그 의미를 모두 파악하고 이해한 나로서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제라는 한 남자는 사이코패스가 되기 직전의 성격과 강박적인 성격을 모두 가진 남자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 소중히 여기는 수준히 사랑이 아니라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아내와 아이는 '자기 것'의 핵이었고 자신이 정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과 통제력을 확인하는 대상, 자신이 주는 것만 받고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주는 존재,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이다. 영제에게 자기세계의 핵심이 손상당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만약 자기 것이 복원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는 상상할 필요가 없다.(p.475)
주인공 중의 한 명 영제를 그의 아내 하영이 제대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 영제의 딸이 살해당했고, 딸이 살해당한 사람이 누군지 알자 어떻게 했을지 뻔할 뻔자였다. 정말 최악의 성격을 가진 이 남자는 딸이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범죄자가 됐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영제의 장인, 즉 하영의 아버지가 얘기하는데, '세령이는 누구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아비가 죽인거나 마찬가지' 라고 말이다. 교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딸과 아내를 폭행하는 사람이 어찌 정상이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또 한명의 주인공 최현수. 그는 야구의 판을 제대로 읽어내는 천재 포수로 유명했으나 아버ㅏ지가 돌아가신 후 왼쪽팔 마비증상인 '용팔이'라는 정신적 장애때문에 야구선수를 끝마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 안개속에서 속도를 내다가 사고를 냈다. 아직 아이가 살아있었지만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는 것을 보고 우발적으로 입을 막았는데 아이에게는 숨이 막혀 질식사를 해버린 것. 그렇게 아이를 호수에 버리고 도망간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길 바랬지만, 그 호수속에는 승환이 있었다.
서원은 현수의 아들로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올가미속에 살아간다. 7년 동안 친적집을 전전긍긍하다가 아저씨(승환)를 만난다. 학교에 적응할 때쯤이 되면 선데이매거진이 날라와 세상으로부터 그를 내몬다. 그게 7년. 승환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물심양면으로 그와 함께 한다. 승환이 그렇게까지 남인 서원에게 한 행동한 이유는 일종의 죄책감과 함께 글을 쓰고픈 욕망의 합심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령이 아빠에게 폭행 당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또는 안한 자신에 대한 모습과 물에 빠지는 걸 봤음에도 침묵했던 죄책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데뷔작으로 끝나는 수명의 작가가 아닌 한번 크게 터뜨리고픈 작가의 욕심이 합쳐졌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최현수라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의젖한 서원이에 대한 정 또한 그를 이끈 마음이었을 것이다.
현수는 마지막까지 최고의 포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현수는 절대로 자신의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평생을 용팔이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야했고, 단 한번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살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살인자의 이름 때문에 아들의 유년기는 지치다못해 스라린 모습이었다. 그래서 현수는 결코 아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길 바랬지만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서원이만큼은 세령이에게서 벗어나길 바랬을 것이다.
이 외에도 문하영이나 강은주라는 두 명의 여자의 힘도 컸다. 문하영은 남편의 입장에서 쓴 한편의 소설같은 이야기와 그녀가 영제에게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그리고 영제를 마지막까지 흔들게 한 인물이니 그 공은 어마어마 했다. 강은주는 대한민국의 악착같은 어머니로서 은주 역시 어머니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남편과 똑같이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자식와 가족을 지키며 사랑같은 것보다 의리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 아줌마였다. 정말 정성스런 두 조연이 아닐 수 없다.
<7년의 밤>을 읽는 처음에는 단 한번의 실수라고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유기한 최현수라는 사람은 참으로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살인을 한 현수가 나쁘긴 하지만 진정으로 죄값을 치러야하는 사람은 영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수에게서 살인마의 모습이 아닌 든든하고 가슴저미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치밀하고도 역동적인 서스펜스. 세령호의 지도까지 넣어 생생함을 더한 이 소설. 읽는 내내 세령호가 생긴 모습, 전망대, 축사, 저지대 마을, 수목원 등등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실제하는 마을처럼 그려졌다. 최근에는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도 상당히 기대가 된다. 원작의 재미를 얼마나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좋은 작품 기대해보고, 정유정씨의 다른 작품 '내 심장을 쏴라'도 조만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