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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평점 :
김지은 씨가 책을 내려고 했을 때, 출판사들에서 거절했고, 봄알람을 찾아가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책을 만들었다. 책 광고를 하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찾아갔을 때, 모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김지은씨는 무슨 글을 썼어도 잘 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글도 좋다. 김지은씨가 꺼내는 이야기들이 경악과 공감과 분노로 버무린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그렇다.
어떤 책들은 그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이 내게 그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아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친절하게 타임라인과 인터뷰를 중간중간 꽉꽉 채워 두었다. JTBC의 인터뷰도 실시간으로 분노하며 보았고, 그 이후의 뉴스들도 지나치며 보았다. 연대의 뉴스와 광고들도 다 기억난다. 김지은씨의 입장문과 여성의날 전했던 글도 다 이미 읽었었다. 가십들과 2차 가해들도 스쳐 지나갔다.
이 미친 이야기는 한 개인, 김지은씨를 중심으로 펼쳐진 토네이도와 같았다. 뉴스에서 봤던 것들을, 백팔십도 돌려, 그 시야 끝에 앉아 있던 김지은씨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몇 번이나 울었다는 후기를 들었을 때는 그정도까지야.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인용을 하느라 책을 펼칠때마다 몇 번이나 눈물이 나고, 꽉 막힌 마음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개인으로 이해하기 힘든 점이 너무 많았다. 개인들의 삶을 돌봐야 하는 정치인의 일상이 왕으로 군림하며, 이렇게까지나 개인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
수행비서가 하는 일들을 읽으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수트핏을 신경쓰느라 수행비서의 옷이 마술 주머니라도 된냥 안의 모든 것을 끄집어 내고, '안의 기분'에 따라 모든 일이 결정되고 좌우된다는 것에 코웃음이 났다. 안의 부인이 지인에게 줄 고춧가루 열근을 구해 오라고 하고, 모두 함께 식사를 하는데, 빵이 먹고 싶다고 유명 빵집에 보내고, 그런 것들을 수행비서의 사비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내가 혹시 잘못 읽은게 아닌가 할 정도로 심한욕이 나온다. 노동자로서의 김지은씨는, 안의 수행비서 역할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인으로 부리고 있고, 2020년을 평범하게 사는 나는 그게 말이 돼! 화가 나지만, 그렇게 어딘가에서는 그게 법이고 말이 되고 있다는 거다. 거기에 더해, 성폭력 이전에 성추행과 성폭력을 용인하는 여자를 '기쁨조'로 보는 문화가 그 집단에 이미 만연해 있었다.
2차 가해들과 거짓 증언이 난무할 때, 뭔가 있어? 생각했다면, 아니, 그런 분위기의 그런 공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일말의 의구심도 들지 않는다.
김지은씨는 헌신적으로 일했고, 인간관계도 좋았던, 거의 결점이 없는 피해자로 읽혔다.
보통은 그렇지 않다. 김지은씨여서 차기 대선주자라던 안을 끌어내릴 수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자신은 피투성이가 되었을지언정. 그 점이 더 화나고 맘에 들지 않는다.
피해자 김지은을 읽는 것은 힘들었다.
그를 위축되게 만드는 사람들과 돈, 돈과 사람들.
좋아하는 호떡 하나 길거리에서 맘대로 못 먹고, 눈치 보다 결국 체해서 병원에 가고,
돈도 먹을 것도 똑 떨어져서 물만 마시고,
자주 굶었었어서 빵을 선물 받으면, 정말 맛있게 잘 먹어서 선물한 사람이 놀랄 정도였고,
쉼터에 들어가 옷 기부함에서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어서 감사했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옷이 두 개가 되어서 돌려 입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하고,
오랫동안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어느날 모자를 벗은 하루의 잠깐, 너무 시원하고, 행복했다고 말한다.
작은 서점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는 김지은씨.
거센 파도를 넘고 넘어,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김지은씨.
이 책이 그녀에게도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면, 약간이나마 안심이 된다.
나에게 좋은 책이 모두에게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이 책만은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꼭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