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책과 영화를 보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오늘 문득 만났다.

 

작가와 얘기를 했고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그뤼오씨와 아주 오래 얘기를 했지요.
영화로 만들겠다고 정한 때가
아직 제가 영화비평가로 활동하던 시기였어요
그때 저는 오렌쉬와 보스트의 각색에
비판적이고 격렬한 태도를 취했죠

그들의 각색은 <육체의 악마>나
<적과 흑>과 같은 소설을 정해
1시간 반짜리 28신을 만들자고 하면
그렇게 만드는 작업이었으니까요


결국 그건 소설을 연극작품으로 만드는 거죠
소설의 요지가 사건에 있다면 괜찮아요
하지만 소설의 요지가 문구와 시적 표현에 담겨 있다면
책을 완전히 바꿔야 해요

<육체의 악마>는 형용할 수 없는 이미지가 많이 담겨 있죠
이런 소설의 각색은 형식측면에서 멜빌과 꼭또가
<앙팡 테리블>에서 시험해 봤던 양식이 좋을거 같아요
일종의 영화로 찍은 소설이라고 할까요
연극 무대 씬이 아니라
대사와 연기가 있는 씬을 넣고
나레이션과 코멘트를...
중간중간에 넣는 거죠.

이 아저씨가 그랬다.
프랑수와 트뢰포다.


트뢰포가 말한 방법만 있는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브로크백마운틴은 이안 감독의 애니프루의 작품에 대한 독후감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그것도 굉장히 길고 지루한.

영화만 본 내 친구는, 여자들이 기구하더만,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영화만들지. 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브로크백 마운틴은 '와이오밍 스토리즈' 라는 와이오밍에 관한 단편들 모음집의 마지막 작품이거든. 영화만 보면 시시하고, 평범하고, 상투적일지도 모르지만, 업다이크가 '세기의 단편'이라고 찬사했던 '벌거숭이 소' 의 첫문장에서부터  '브로크백 마운틴' 의 마지막 문장까지를 읽으면, 그 사이의 단편들이 뭔가 엄청난 폭풍같은 감동으로 화악 밀려온다니깐. 와이오밍이라는 척박한 대자연. 다른 세계.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곳, 혹은 오해했던 곳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그걸 애니 프루는 굉장히 절제되고 섬세한 문장으로 표현해 냈거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장바구니담기


몽마르트에서 손님을 끄는 노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것이 고작 이 정도 수준밖에는 되지 않았다. 악을 부추기고 낭비를 조장하는 취향이 꼭 어린애들 장난 같았다. 갑자기 그는 '방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 무엇인가 유(有)를 무(無)로 만들어버리는 것 말이다. 늦은 밤 시각에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옮겨 다닌다는 것은 하나같이 아주 힘이 드는 일이며, 따라서 동작이 점점 느려지는 특권에 대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17쪽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지금 그 눈물은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는 입이며 눈이며 움직이고 있는 손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멀리 사라졌으며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고, 해가 졌으며, 모든 시간을 견뎌내는 강철의 잿빛 아름다움 말고는 이제 아름다움은 업었다. 심지어 그가 참을 수 있었던 슬픔조차 그의 겨울꿈이 활짝 날개를 펼치던 환상의 나라, 청춘의 나라, 풍요로운 삶의 나라 뒤쪽으로 멀리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오래전에," 그는 말했다. "오래전에 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 이제 그건 사라져버렸어. 없어져 버렸단 말이지. 그런데도 나는 울 수가 없구나. 그것에 대해 마음 쓸 수도 없어. 이제 그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지."-89쪽

도널드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란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기나긴 과정인 탓에 이번의 경험도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101쪽

삼십 대 초반에 이블린의 미모가 아직 망설이듯 머물러 있었다면, 얼마 뒤에는 갑자기 결심한 것처럼 완전히 그녀에게서 떠나가 버렸다. 얼굴에 희미하게 잡혀 있던 주름이 갑자기 깊어지고 급속하게 다리와 엉덩이 그리고 팔에 살이 붙었다.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의 버릇은 이제는 하나의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책을 읽고 있거나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또는 잠을 자고 잇을 때에는 습관적으로 그런 표정이 나타났다. 그녀의 나이가 이제 마흔여섯이 되었던 것이다.

재산이 불어나기보다는 줄어드는 가정이 그러하듯이 그녀와 해럴드도 막연한 적의를 품게 되었다. 마음이 평온할 때 두 사람은 마치 부서진 헌 의자를 바라볼 때처럼 체념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아프면 이블린은 조금 걱정했고 되도록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을 했으며, 실망한 남편과 살아야 한다는 피곤하고 침울한 속에서 명랑해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177쪽

이블린은 한 번 더 하품을 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야. 아아, 젊은 시절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179쪽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213쪽

"자네 주위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말하자면 악(惡)의 분위기라고나 할까."
"걱정과 가난과 잠 못 이룬 밤의 분위기라네." 고든이 조금 도전적인 태도로 대꾸했다-297쪽

사랑이란 부서지기 쉬운 거야.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부서진 파편은 다시 보관할 수 있지. 입술에서 맴돌았던 말,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말, 새로운 사랑의 말, 배워 얻은 달콤한 말은 다음 애인을 위해 소중하게 보관해 둬야 해-33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생일 선물받은 피츠제럴드 단편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기대가 크면, 그 기대가 만족될지라도, 열광은 적다.
열광이 적다고 좋지 않다는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줄기차게 단편을 써냈던 그는 정작 피츠제럴드, 하면 떠오르는 '위대한 개츠비'나 '밤은 부드러워' 같은 장편에서는 흥행에 실패했고, 돈벌이를 위해 끊임없이 써낸 단편이 160여편에 달한다, 그런 그는  ' 늙은 창녀는 이제 남자를 한 번 상대하고 무려 4,000달러를 받는다' 고 자위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츠제랄드의 단편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전형성은 단편들을 읽는 내내 이름만 바뀌는 어여쁘고 매혹적인 여자들과, 야심만만한 남주인공들,
첫페이지에서 마지막페이지까지 계속 상류사회 부자인 사람, 혹은 부자 였다가 인생의 실패를 겪은 사람, 혹은 가난했으나 부자인 사람.

그들 모두는 놓고 싶지 않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지난 한부분을 끊임없이 리플레이 한다.
막상, 꼭 같은 상황, 사람이 나타났을때 환상은 깨지고, 아름다웠다고 믿었던 지난과거의희망( 이상한 말이다. 지난 과거를 미화하며 보물처럼 간직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은 너무나 쉽게 바스라지고, 돌이킬 수 없음에 어느 한 부분이 뻥 뚫린다.

아홉개의 단편들 중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만족스럽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작품 '오월제' 그리고 원서로 읽었던 '부잣집 아이' 의 여운이 길고,  '컷글라스 그릇' 은 거칠지만, 맘에 와닿는 작품. '동경의 대상' 으로만 여겨지는 여자 주인공이 이 작품에서는 깨어지고 바스라질지언정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표지에 있는 호퍼의 그림과 잘 어울리는 단편들이다. 적당히 씁쓸한 외로움.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6-03-24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왜 좋다는 얘기를 이따위로밖에 못하는 걸까.

하루(春) 2006-03-2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말하든 진심은 통하게 돼있어요.

이네파벨 2006-03-2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
 

 

 

 

 

 

유난히도 넘기기 싫던 마지막 두장.
오, 브루터스, 너마저...

허무하기보다,
슬프다기보다,
당황하기보다,
화가나기보다,
짜증나기보다,

책을 탁,소리 나게 덮게 만드는 그 무엇, 그 무엇,
나는 위의 작가들을 사랑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요일의 석간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상큼한 표지의 상큼한 제목의 저자 이름마저 상큼하도다.
열두개의 단편들도 가볍고, 통통 튀며, 그 와중에 대단한건 아니지만 뭔가 찌릿찌릿.

근래 들어 읽은 책중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재미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는건 그만큼 이 단편집이 평범하단 얘기일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작가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짧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발단,전개,절정, 결말이 한회에 끝나줘야 하는 착한 가족드라마.
그렇다고 신파라던가, 오버스럽다던가 그런걸 생각하면 안되고, 잔잔하지만, 찌릿한거. 코끝 찡해지는거. 그런 기분

단편에 들어가기 전 첫머리에 작가는 말한다. ' 조간 사회면과 경제면에는 오늘도 불황가 명퇴란 글자가 산재해 있다. 중잔년들의 자살 기사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신문사가 일요일 정도는 하고 일부러 싣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세상관을 가진 작가가 좋은면들을 보려고 노력하며 쓴 글들은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미래 신문' 마냥 즐겁다.

열두개의 단편에서 여러가지 시도하는데, '카네이션' 에서는 어머니날 저녁에 같은 지하철, 같은 칸에 타게 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라던가, '오우토키의 연인'에서 다자이 오사무에 홀딱 빠져버린 주인공 이야기라던가( 그 재미있는 이야기에, 난 결국 미루던 '인간실격'을 읽었고,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을 세권이나 더 사버렸다구)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 ' 여름캠프' , 열아홉을 회상하는 서른일곱의 이야기 'september 1981' 가 있다. 그리고 가족을 버리고 딴 여자와 도망간 아빠의 암선고를 받은 두 자매 이야기 '쓸쓸하밍 쌓여' 는 섬세하고, 여운이 긴 작품이다. '철봉 하느님' 과 '초밥 주세요' 와 같은 씩씩한 단편들도 있고, '산타클로스 부탁해요' 같은 낭만적인 단편도 있다. '고토를 기다리며'는 빠지지 않는다. 이지메 이야기. '감귤계 아빠'와 '졸업홈런'은 각각 나쁜 딸년, 무정한 아빠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치유 가능하고, 회복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요일 석간이다.


오늘 뉴스에  삼십대 미혼모가 넉달된 아들을 젖병과 쥬스만 넣어 놓고 4년간 방문잠근채 방치했다는 기사가 떴다. 책을 읽으며, 그래, 아직도 희망은 있어라고 밝은 마음이 되었다가도, 애써 외면해도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고야마는 현실은 암담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春) 2006-03-2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도발적이네요. 멋있어요. 시원하고...

하이드 2006-03-2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 후..하는 이미지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