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1
아기 타다시 지음, 오키모토 슈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얼음처럼 섬세한 리델 글라스에...
로 시작하는 '신의 물방울'을 드디어 읽게 되는건가!

첫페이지에 시음용으로 와인을 따르는 장면에서는 '에게...' 하는 마음.
와인 만화라더니, 기본적인 매너.를 첫페이지.에 다루는 정도야?

첫페이지에 나오는 잔이 리델의 소믈리에 버건디 글래스.라는데 있어서, 그정도는 당연하지. 라고 할까, 오호, 제법인걸.이라고 할까, 잠시 고민

로마네꽁띠와 리쉬부르.가 첫에피소드에 나오는건 지극히 일본만화 스럽다.는 생각.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미야비.가 리쉬브르를 내놓으면서 디켄팅도 안하고 실망하는 장면은 킨자키 시즈쿠.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하더라도 좀 어설프단 생각이다.

신의 물방울에서 가장 거슬리는 장면은 디켄팅 장면인데,
디켄팅에 대한 환상과 오버가 강하다.
뭐랄까, 본토에서 훈련받은 고수.가 아니어서일지는 몰라도, 디켄팅에 대한 과신.은 이 만화의 가장 만화적인 점이 아닌가 싶다.

세계적인 와인평론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맥주회사에 들어가 와인.이라곤 입에도 대보지 않은 킨자키 시즈쿠.가 와인 사업부에 들어가게 되고,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유언으로 와인 평론계의 왕자라는 토미네 잇세와 12사도 와인과 그 정점의 '신의 물방울'와인을 찾는 대결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흥미진진!

시즈쿠.는 사실 알게 모르게 아버지로부터 아주 어렸을적부터 와인.을 맛보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을 하드트레이닝 받은 플러스 절대미각, 절대후각의 천재.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실은 천재.인 시즈쿠와 토미네 잇세의 대결. 이제부터 시작이다.

독자는 와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시즈쿠와 함께, 이제 이 붉은 핏빛의 와인의 세계에 퐁당 빠질 준비가 되고도 남는다. 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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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10-0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디켄팅은 귀찮아서도 병디켄팅 이상은 못하겠다. 잔 씻기도 귀찮아 죽겠는데, 그눔의 디켄터는 어떻게 씻으라는거야.!

에이프릴 2006-10-0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낄낄. 제말이.
아 .. 새로산 디켄터가 어디있더라 ...?
(그래도 있으면 뭘하나 싶어유 ㅠ.ㅠ 디켄팅할만한 끝내주는 와인이 없는걸;;)
오늘 베라왕 샴페인 글라스 질렀어유 -ㅅ-a (단순히 이뻐보여서;)
무튼 도착하면 돔페리뇽 딸예정 으하하

하이드 2006-10-03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뭐야! 사진을 보여달라! 보여달라!

에이프릴 2006-10-0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가 은으로 되어있는것뿐; ^^a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질러버렸어요 -ㅅ-


하이드 2006-10-03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세트로 샀어?

에이프릴 2006-10-0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세트로^^
사놓고보니 왜샀나 싶기도하고 .. 두고두고 써야지하고 생각도 들고 하하핫;;
그래도 레드와인보다는 샴페인을 더 자주마시니까 ^^ 자주쓰면되지 하는생각. 히히
쇼핑자제기간이라고 마음먹고있었는데 마음대로 안되는게 쇼퍼홀릭? 끙..
와인잔이나 샴페인잔 예쁜거보면 막사고싶고, 친구들 좋은날에 선물해주고싶은데
택배로 배송해주기엔 위험부담이 너무크요-

하이드 2006-10-0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말에 샤또 마고 빈티지별로 시음회 있는데, 25마원 -_-a
갈까 생각중. 아무래도 샴페인은 잘 안 마시게 되고, 주구장창 사는건 레드와인 ^^
것도 잔 종류별로 한개!씩만 있어서, 어디 들고나가지도 못한다니깐;;
잔 선물하는거 진짜 좋지.

에이프릴 2006-10-0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 샤또 마고. 이름만 들어봤어요 ^^a
저같은 소시민은 시음할 기회가 별로없음이예요 히힛.
25만원 ...;; 그래도 빈티지별로 다 맛볼수있잖아요 !
다녀와서 후기남겨주세요 히히.
저도 다른 잔들은 종류별로 한개씩만있어요 -ㅂ-
리델꺼 소믈리에 시리즈는 비싸다고 생각해서 비늄시리즈로 샀는데요 ~
아 ... 하고싶은거 다하고 맛난거 다먹고 살으려면 진짜 열심히 일해야지!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와튼스쿨
니콜 리지웨이 지음, 이정은 옮김 / 지식나무(뜨인돌)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원제는 the running of the bulls
와튼스쿨에 대한 이야기이니, 뭐, 그닥 틀리거나 이상한 제목은 아니지만,
내놓고 보기에는 쪽팔린다. (너무 적나라하잖아)

그러나, 책의 내용은 더 적나라하다.
벌써 몇년째 경영대학1위부분을 놓치지 않는, 펜실베니아 대학의 경영대학, 와튼스쿨.
'와튼생들은 플라톤의 철학을 배우러 온 게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돈의 철학입니다. 따라서 교양과목은 자연스럽게 제외되죠. 우리는 지성인이 되기보다는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요'라는 쉬미카의 말처럼, 와튼스쿨은 대놓고 대학은 학문을 닦는 곳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기업의 훌륭한 장기말이 되는가를 배우는 곳임을 얘기한다.

회사들어가기 전에 대학시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순수하고(?) 암것도 모르던 시절,
3년 일하고 MBA따고 연봉 여섯자리, 어쩌구 하는 허황된 생각이 얼마나 허황되었던가를
직장생활 7여년만에( 아, 왠지, 7년..이란 햇수가 괴롭다) 깨닫게 된다.

이렇게 스물 시작부터 다르게, 오로지 한가지 목표-  여섯자리 연봉.으로 시.작.해서 일곱자리 연봉 혹은 아마도 그 이상의 연봉으로 조기은퇴하기. -만을 바라보고, 모든 사생활을 버리고, 몸을 극으로 극으로 몰아가는데, 나처럼 날라리날라리 사는 애가, 어떻게 감히. 여섯자리 연봉을 바라겠는가.

오늘 받은 따끈따끈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10월호의 카툰이다.
"그래, 이게 직장에서 자살행위라는건 알아.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집에도 가줘야지."

와튼스쿨1학년에서 4학년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틀림없이
그들의 생활은 미친듯한 스케쥴로 돌아간다.
3학년 여름방학때 투자은행에 인턴으로 일하면서 주 140시간을 일하는 제시카( 그녀만의 일은 아니고, 모든 투자은행의 노예들 i.e. 애널리스트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번이나 계산해봤다. 주말도 주일도 없이 하루에 20시간? 나머지 네시간에 먹고자고씻고싸고를 다 해야하는거? (보통의 경우는 80-120시간이라고 하는데, 그래봤자 주말,주일없이 미친듯이 일하는건 오십보소백보) 그런 제시카는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가장 투자은행에 맞는 인물이다. "제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순간은 충분히 일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녀는 특출난 외모때문에 오는 편견을 이기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며, 학점도 그 공부벌레들 사이에서도 상위1%에 드는 완벽주의자이다.

시간당으로 보면 맥도널드 임금에도 못미치는건 새끼의사뿐만은 아니었나보다. 그들의 엘리트의식. 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겠다.

책에는 비슷비슷한 공부벌레 투자은행원워나비 벌레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노선을 걷거나 튕겨나가 자기의 길을 찾는 여러 군상들이 나온다.

날라리날라리 직장생활하는 내가 보기엔,- 예전에는 그래도 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세상임을 알겠다. - 그래도 젊었을때 사서고생 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게다. 라고 무책임하고 성의없으며 얄밉기 그지없는 결론 날리며, 리뷰를 마친다.

이 책 읽고 한동안 내 시계는 24시간인데, 그네들 시간은 48시간인 것 같아서, 불안초조했다.는것 인정.
그렇게 살아서 연봉여섯자리 일곱자리 받는다면, 그것 역시 열라부럽고 열등감 느껴진다는 것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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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무언가 계속 '백야행'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아직 '백야행'을 보지 않은 독자라면, '백야행'을 먼저 보기를.
정작 작가는 이 책은 '백야행'의 후속이 아니라고 했다지만, 옮긴이도 말했듯이
독자는 '웃기시네, 후속 맞잖어' 하는 마음.

'백야행' 이 내가 좋아하는 코넬 울리치의 상복의 랑데부같은 불멸의 로맨스 추리소설. 이어서, 그나마 점수를 주었다면, 이 작품 '환야'는 글쎄다. '백야행'에서 거역할 수 없는, 남자를 미치게 하는 눈빛과 그러나 동시에 아픈 과거를 간직했던 그녀.의 모습으로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다면,

'환야'에서 그녀는 제목이 백야에서 환야로 바뀐것 만큼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야행'의 독자라면, 그녀 주위의 알면서, 모르면서 끝까지 그녀를 놓지 못하는  남자들처럼 그녀에 대한 한가닥 ( 이번엔 정말 아주 얇은 한가닥) 믿음과 연민.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작가는 별로지만, 작가가 만든 이 여자 주인공 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딜레마를 가져다 주었고, 그녀.는 나쁘지 않아. 사실은 그녀도 그를 사랑할꺼야. 요염하게 웃어도, 사실은 속으로 마음 찢어지고 있을 꺼야. 라는 상상을 해보는거다.  아니면, 그것이 그녀의 사랑하는 방식. 그걸 알면서 괴로워하건, 그걸 모르고 당했다.고 하건, 그녀로 인해 기쁨 얻었으면 된 거 아냐. 하는 억지라도 써보던가.

이 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에서 으레히 등장하는 반전도, '그녀'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당연한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니, 팜므파탈소설.이란 장르가 있다면, 이 책은 추리소설칸에서 빼서 그 쪽 칸에 꽂아 두어야 할 것만 같다.

정작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리뷰가 되어 버렸다. 이 모든 이야기와 대도박은 '고베 대지진'에서 시작된다.

*백야행에 이어서, 환야에 등장하는 집요한 가토 형사도 정말 내가 지금까지 읽은 중 가장 비호감. 인 캐릭터다. 이 가토 형사.는 심지어 변태같어! 재수없어재수없어.

** 이렇게 카리스마 있는 여주인공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는 여자를 모른다! 라고 생각한다.

***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작에서처럼 계속 이렇게 독자들을 가르치려고 든다면, (149쪽, 191쪽) 난 진짜 짜증낼꺼야.  이것이 똑같이 사회 문제를 다루어도 미야베 미유키식 접근이 세련되고 오래가는 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금새 후져지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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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30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 바꾸셨군요! 하긴, 지킬과 영원한 짝이죠^^

blowup 2006-09-3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행을 먼저 읽은 사람들은 확실히 그녀를 미워하기만은 힘들다고 하더군요.
애처럽다구요.
근데, 왜 작가는 연작처럼 읽히도록 장치를 다 해놓고,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는 걸까요?
따로 또 같이, 처럼 읽히길 바란 걸까요. 연결해서 읽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되,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요.
환야에서 백야로 걸어들어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전출처 : 뉴튼의 사과님의 "엄청나게 지루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산만한"

시각적으로 독특하고, ( 사진이 삽입된 것이 신기한건 아니지만, 마지막의 사진들은 꽤나 감동적이었어요) 2차대전과 9.11의 현재,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겹침을 따라가는 것이 혼란스러웠다는건 인정해요. 하지만, 결말로 가면서, 그 모든 것들의 이면이 보이게 되는 것은 얼마나 멋졌는데요. ^^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보면 지루하고, 그 이름 똑같은 대대손손들에 식겁하게 되지만, 마지막 열장으로 그 소설은 '소설이란 장르의 존재이유' 가 되지 않았을까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의 나열이 몹시도 짜증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숨쉬는 시간에 이런 작가가 있어줘서 정말 운이 좋다. 라고 생각했어요. 개인 취향이 있는 것이니, 다만, 반만 읽고 접으셨다면, 끝까지 읽어보시면 어떤 감상하실지 궁금합니다. 마르께스까지 가져다 붙였으니, 제가 너무 큰 장담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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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도대체 누가 찰리 채플린을 모독하는가?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마빡이" 코너를 봤다. 제3회째인가, 딱 한 번 본 것만으로 그 코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코너는 "박준형 표" 비아냥 개그에 "옥동자 표" 혐오 개그를 뒤범벅한 것이 분명해 보이니, 적어도 여기서 말하려는 찰리 채플린과의 비교를 위해서는 그 한 번의 시청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TV도 없는 내가 굳이 "마빡이" 코너를 봐야 했던 이유는 이 코너가 "뜨고" 나서 인터넷 뉴스에 "슬랩스틱의 부활"이니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킨다"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좀 의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무리 옥동자가 뛰어난 "연기"를 했다손 치더라도 설마 채플린에 버금가랴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옥동자라는 친구, (물론 본명은 따로 있지만, 그 캐릭터 이름으로 더 유명하니, 여기서는 옥동자로 통일) 분명히 성대묘사 쪽에 있어서는 탁월한 면이 없지 않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친애하는~ 온곡~ 초등학교~ " 어쩌구 하는 그의 어린 시절 교장선생 훈화말씀 흉내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나로선 성대묘사를 제외한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고, 특히 그가 그 "잘난 얼굴"을 들이밀며 혐오감에 바탕한 헛웃음을 유도할 때에는 정말이지 짜증이 팍팍 솟구친다. 그는 물론 잘 생긴 얼굴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얼굴을 바탕으로 하여 웃음을 자아내려면 어디까지나 "못 생긴 사람이 잘 생긴 척" 하는 아이러니에 근거를 두어야지, 처음부터 끝까지 "못 생긴 얼굴"을 무작정 화면에 들이밀고 자학하듯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이러니는 가능하다. 그러나 자학은 곤란하다. 옥동자의 한계이자 문제는 아이러니와 자학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말로 지나치게 말초적, 노골적이 되어가는 오늘날 코미디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물론 옥동자의 얼굴을 "못 생겼다"거나 "혐오스럽다"고 표현하자면, 그 부인에게 크나큰 모욕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얼굴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히 TV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고의적으로 "망가트린" 얼굴에 가깝기 때문이다. 옥동자도 가만히 있을 때는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클로즈업으로 잡힐 때의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거나, 입을 헤 벌리고 바보처럼 웃음을 짓거나 하는 "억지" 얼굴이다. 따라서 그런 얼굴은 "못 생겼다"거나 "혐오스럽다"고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나 다른 시청자들이 편견을 가져서가 아니라, 옥동자 자신이 그런 얼굴을 의도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생각엔 그게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말빨 개그"가 주류인 오늘날에는 마빡이처럼 "신체 개그"가 마치 "슬랩스틱"의 대명사인 것처럼 오해된다는 것이다. 물론 슬랩스틱, 쉽게 말해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코미디가 최대한 몸을 사용하는 연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정한 슬랩스틱은 마빡이가 펼치는 "자학" 개그와는 다르다. 나아가 옥동자는 채플린에 버금갈 수조차 없고 채플린에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채플린도 최대한 몸을 사용하는 코미디를 한다. 그의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맞고, 때리고, 구르는 등의 액션의 연속이다. 하지만 채플린의 코미디에서는 마빡이처럼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때리거나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억지 웃음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없다. 채플린의 코미디에 나오는 슬랩스틱은 고도로 계산된, 철저하게 의도된 연기다. 채플린 자신만 해도 코미디언이기 이전에 춤과 음악에 능숙한 만능 연예인이었다. 따라서 그가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연기는 그 부드러운 동작만 보면 거의 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채플린의 진정한 계승자는 (적어도 우리 주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쪽으로는) 마빡이나 다른 "혐오성" 주무기를 사용하는 코미디언보다는 오히려 성룡이라고 할 수 있다. 쿵푸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성룡의 슬랩스틱은 채플린보다는 한층 과격하고 드라마틱한 면이 강조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철저히 계산된 춤 동작에 가깝다. 성룡 자신도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연기를 자주 참조하고, 또한 종종 "차용"한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코미디에서 가장 채플린과 비슷한 슬랩스틱을 한 사람은 일단 심형래가 아닐까 싶다. 심형래는 바보 연기로 유명하고 늘 "맞는" 역할을 맡았음, 또한 갖가지 유행어를 남겨 이른바 "말빨 개그"의 선구자로 인식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코미디 연기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슬랩스틱이었다고 본다. 즉 바보(심형래)와 똑똑이(임하룡)이라는 두 가지 대립항을 주연으로 삼거나, 바보(심형래)와 정상인(그 외의 여러 조연들)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그 가운데서 바보의 우둔함을 강조하는 식이다. 결코 바보가 그 자체로 바보스러움을 나타내는 경우는 없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똑같은 상황에서 혼자서만 별난 짓을 하기 때문에 바보스러운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심형래와는 약간 종류가 다르지만, 신체를 최대한 활용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김병만의 "액션 개그"도 채플린과 비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무술과 운동에 능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수시로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지만 그 동작은 하나하나 계산되었기 때문에 웃음 못지 않게 감탄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옥동자는 왜 웃기는 걸까? 일단은 그 혐오스러운 얼굴 때문에 웃기는 것이다. 가령 마빡이 이전에 옥동자가 나섰던 또 하나의 "혐오 개그"인 "사랑의 가족"을 보자. 지극히 못 생긴 두 사람에다가 박준형 (역시 미남은 아니다) 세 사람이 최대한 각자의 우스꽝스런 얼굴을 강조해 주는 표정과 분장으로 클로즈업 된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들의 "외모"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고, 그 와중에 자신들조차도 서로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키득거리고, 웃음을 참기 위해 얼굴이 새빨개지는 모습이 더더욱 우스움과 안쓰러움을 자아내며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습긴 우습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긍정적인 웃음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웃음이다. 속 시원한 웃음이라기보다는 안쓰러운 웃음이다. 정말 재미있어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웃지 않을 수 없어 웃는 웃음이다. 내 생각에는 이른바 "박준형 표" 개그가 다 그런 식이다. "우비 삼남매"를 비롯해서 박준형이 다양한 코너에서 시도하는 개그는 십중팔구 우상파괴적인 개그이고, 패러디 개그이다. "마빡이"를 박준형 표 개그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은, 옥동자나 다른 출연자들이 그야말로 "단순무식"한 마빡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 박준형은 그걸 보며 좋아하는 시청자들이나 관객을 그야말로 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힘이 빠져 헉헉대는 마빡이를 향해 "야, 담당 피디가 너 이걸로 추석특집 한 시간짜리 준비하래"라고 비아냥대는 것이나, 혹은 마빡이가 "TV에 나오는 건 5분이지만, 이거 찍을 때는 10분더 넘게 이짓 한단 말이야!" 하고 투덜대는 것 모두가 기존의 코미디/개그/방송 등등에 대한 과격한 야유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준형 표" 개그는 사실 지금까지의 방송사상 가장 특이하고 전복적인 개그인 동시에, 그 자체의 웃음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패러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독창성이 약한 개그이기도 하다. 옥동자의 개그에 대해서는 그의 주특기인 "성대묘사" 말고는 언뜻 생각나는 것이 없다. 보통 그의 "주무기"는 얼굴이지만, 사실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훌륭한 무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선배격인 정부미, 배영만, 한무, 이주일을 보라. 처음에는 충격을 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청자들이 그 외모에 익숙해지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이주일의 경우, 말년에 이르러 사업가로 성공하고 중절모에 수염까지 기르고 안경을 쓰고 나오면서부터는 그야말로 "멋진 노신사"로 인식되었음을 보라.) 사실 나는 이주일 이후로부터 죽 이어진 "외모"로 승부하는 코미디야말로 "이주일의 저주"라고 본다. 물론 이주일은 TV 시대의 첫 수퍼스타인 동시에, 악극단 시대의 마지막 수퍼스타이기도 한 과도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주일 이후에 코미디의 주류가 "연기"보다는 "외모"로 확 기울었음은 사실이다. 사실 그 이전에만 해도 (그리고 이주일이 나오고도 한동안은) 코미디의 중심은 "아이러니"였다. 어떤 정상적인 상황을 전제한 다음에 곧이어 삐딱한 상황을 보여주며, 그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프로그램은 아예 "코믹 드라마"에 가까웠고, 그 핵심 역시 "오해"로부터 비롯된 아이러니라는 전통적인 희극의 핵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외모와 연기력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아서, 내 경우에는 블랑카란 이름으로 나온 코미디언에 대해 많이 기대를 했지만, 소재 고갈인지 아니면 중소기업 사장들의 항의 때문인지 나중에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를 거의 "원시인" 취급하는 수준으로 떨어져서 그만큼 크게 실망했다. 아무리 오해와 압력이 있더라도, 그 캐릭터를 잘만 살려서 보다 풍자적인 기세로 밀어붙였다면 꽤나 공감이 갔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적어도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결코 줄어들진 않을 것 아닌가.)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 나오는 마빡이의 연기는 자학이지 결코 슬랩스틱이 아니다. 그리고 옥동자는 감히 채플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거야말로 "채플린에 대한 모독"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옥동자가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채플린을 몰라서" 그런 것일 뿐이다. 채플린의 영화를 단 한 편이라도 똑똑히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식의 무식한 발언은 하지 못할 것이다. <키드>나 <시티 라이트>를 보라. <독재자>나 <모던 타임스>를 보라. 아니면 채플린이 떠돌이 분장을 지우고 맨 얼굴로 출연한 <뉴욕의 왕>이나 <무슈 베르두>를 보라. 과연 그 어디서 옥동자와 같은 혐오 개그,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자기 신체를 학대하면서 관객의 억지 웃음을 자아낸단 말인가? 채플린은 단순히 코미디언이 아니라, 위대한 배우이며 영화감독이다. 반면 옥동자는 기껏해야 혐오스럽게 생긴 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실력 없는 개그맨에 불과하다. 그러니 뭘 모르는 사람들이여, 제발 옥동자의 개그를 평가한답시고 멀쩡한 채플린까지 바보로 만들지 말라. 그거야말로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행위이니까.

 

*** 한편으로는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같은 "슬랩스틱"을 무조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영화 <베니와 준>에서 자니 뎁이 보여준 연기를 한 번 보라고 해주고 싶다. 이 영화에서 자니 뎁은 버스터 키튼의 광팬 (맨 첫 장면에서부터 기차에서 키튼의 전기를 읽고 있다) 으로 등장해서, 곳곳에서 채플린과 키튼의 연기를 모방(가령 줄리언 무어가 일하는 식당에서 포크에 롤빵을 찍어 다리를 만들어 춤추는 장면은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에 나오는 장면의 모방이다.)하고 있는데, 최소한 이것을 보고 "뛰어난 연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채플린과 키튼의 연기가 뛰어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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