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도대체 누가 찰리 채플린을 모독하는가?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마빡이" 코너를 봤다. 제3회째인가, 딱 한 번 본 것만으로 그 코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코너는 "박준형 표" 비아냥 개그에 "옥동자 표" 혐오 개그를 뒤범벅한 것이 분명해 보이니, 적어도 여기서 말하려는 찰리 채플린과의 비교를 위해서는 그 한 번의 시청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TV도 없는 내가 굳이 "마빡이" 코너를 봐야 했던 이유는 이 코너가 "뜨고" 나서 인터넷 뉴스에 "슬랩스틱의 부활"이니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킨다"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좀 의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무리 옥동자가 뛰어난 "연기"를 했다손 치더라도 설마 채플린에 버금가랴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옥동자라는 친구, (물론 본명은 따로 있지만, 그 캐릭터 이름으로 더 유명하니, 여기서는 옥동자로 통일) 분명히 성대묘사 쪽에 있어서는 탁월한 면이 없지 않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친애하는~ 온곡~ 초등학교~ " 어쩌구 하는 그의 어린 시절 교장선생 훈화말씀 흉내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나로선 성대묘사를 제외한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고, 특히 그가 그 "잘난 얼굴"을 들이밀며 혐오감에 바탕한 헛웃음을 유도할 때에는 정말이지 짜증이 팍팍 솟구친다. 그는 물론 잘 생긴 얼굴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얼굴을 바탕으로 하여 웃음을 자아내려면 어디까지나 "못 생긴 사람이 잘 생긴 척" 하는 아이러니에 근거를 두어야지, 처음부터 끝까지 "못 생긴 얼굴"을 무작정 화면에 들이밀고 자학하듯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이러니는 가능하다. 그러나 자학은 곤란하다. 옥동자의 한계이자 문제는 아이러니와 자학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말로 지나치게 말초적, 노골적이 되어가는 오늘날 코미디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물론 옥동자의 얼굴을 "못 생겼다"거나 "혐오스럽다"고 표현하자면, 그 부인에게 크나큰 모욕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얼굴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히 TV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고의적으로 "망가트린" 얼굴에 가깝기 때문이다. 옥동자도 가만히 있을 때는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클로즈업으로 잡힐 때의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거나, 입을 헤 벌리고 바보처럼 웃음을 짓거나 하는 "억지" 얼굴이다. 따라서 그런 얼굴은 "못 생겼다"거나 "혐오스럽다"고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나 다른 시청자들이 편견을 가져서가 아니라, 옥동자 자신이 그런 얼굴을 의도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생각엔 그게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말빨 개그"가 주류인 오늘날에는 마빡이처럼 "신체 개그"가 마치 "슬랩스틱"의 대명사인 것처럼 오해된다는 것이다. 물론 슬랩스틱, 쉽게 말해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코미디가 최대한 몸을 사용하는 연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정한 슬랩스틱은 마빡이가 펼치는 "자학" 개그와는 다르다. 나아가 옥동자는 채플린에 버금갈 수조차 없고 채플린에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채플린도 최대한 몸을 사용하는 코미디를 한다. 그의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맞고, 때리고, 구르는 등의 액션의 연속이다. 하지만 채플린의 코미디에서는 마빡이처럼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때리거나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억지 웃음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없다. 채플린의 코미디에 나오는 슬랩스틱은 고도로 계산된, 철저하게 의도된 연기다. 채플린 자신만 해도 코미디언이기 이전에 춤과 음악에 능숙한 만능 연예인이었다. 따라서 그가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연기는 그 부드러운 동작만 보면 거의 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채플린의 진정한 계승자는 (적어도 우리 주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쪽으로는) 마빡이나 다른 "혐오성" 주무기를 사용하는 코미디언보다는 오히려 성룡이라고 할 수 있다. 쿵푸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성룡의 슬랩스틱은 채플린보다는 한층 과격하고 드라마틱한 면이 강조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철저히 계산된 춤 동작에 가깝다. 성룡 자신도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연기를 자주 참조하고, 또한 종종 "차용"한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코미디에서 가장 채플린과 비슷한 슬랩스틱을 한 사람은 일단 심형래가 아닐까 싶다. 심형래는 바보 연기로 유명하고 늘 "맞는" 역할을 맡았음, 또한 갖가지 유행어를 남겨 이른바 "말빨 개그"의 선구자로 인식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코미디 연기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슬랩스틱이었다고 본다. 즉 바보(심형래)와 똑똑이(임하룡)이라는 두 가지 대립항을 주연으로 삼거나, 바보(심형래)와 정상인(그 외의 여러 조연들)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그 가운데서 바보의 우둔함을 강조하는 식이다. 결코 바보가 그 자체로 바보스러움을 나타내는 경우는 없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똑같은 상황에서 혼자서만 별난 짓을 하기 때문에 바보스러운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심형래와는 약간 종류가 다르지만, 신체를 최대한 활용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김병만의 "액션 개그"도 채플린과 비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무술과 운동에 능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수시로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지만 그 동작은 하나하나 계산되었기 때문에 웃음 못지 않게 감탄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옥동자는 왜 웃기는 걸까? 일단은 그 혐오스러운 얼굴 때문에 웃기는 것이다. 가령 마빡이 이전에 옥동자가 나섰던 또 하나의 "혐오 개그"인 "사랑의 가족"을 보자. 지극히 못 생긴 두 사람에다가 박준형 (역시 미남은 아니다) 세 사람이 최대한 각자의 우스꽝스런 얼굴을 강조해 주는 표정과 분장으로 클로즈업 된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들의 "외모"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고, 그 와중에 자신들조차도 서로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키득거리고, 웃음을 참기 위해 얼굴이 새빨개지는 모습이 더더욱 우스움과 안쓰러움을 자아내며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습긴 우습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긍정적인 웃음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웃음이다. 속 시원한 웃음이라기보다는 안쓰러운 웃음이다. 정말 재미있어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웃지 않을 수 없어 웃는 웃음이다. 내 생각에는 이른바 "박준형 표" 개그가 다 그런 식이다. "우비 삼남매"를 비롯해서 박준형이 다양한 코너에서 시도하는 개그는 십중팔구 우상파괴적인 개그이고, 패러디 개그이다. "마빡이"를 박준형 표 개그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은, 옥동자나 다른 출연자들이 그야말로 "단순무식"한 마빡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 박준형은 그걸 보며 좋아하는 시청자들이나 관객을 그야말로 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힘이 빠져 헉헉대는 마빡이를 향해 "야, 담당 피디가 너 이걸로 추석특집 한 시간짜리 준비하래"라고 비아냥대는 것이나, 혹은 마빡이가 "TV에 나오는 건 5분이지만, 이거 찍을 때는 10분더 넘게 이짓 한단 말이야!" 하고 투덜대는 것 모두가 기존의 코미디/개그/방송 등등에 대한 과격한 야유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준형 표" 개그는 사실 지금까지의 방송사상 가장 특이하고 전복적인 개그인 동시에, 그 자체의 웃음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패러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독창성이 약한 개그이기도 하다. 옥동자의 개그에 대해서는 그의 주특기인 "성대묘사" 말고는 언뜻 생각나는 것이 없다. 보통 그의 "주무기"는 얼굴이지만, 사실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훌륭한 무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선배격인 정부미, 배영만, 한무, 이주일을 보라. 처음에는 충격을 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청자들이 그 외모에 익숙해지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이주일의 경우, 말년에 이르러 사업가로 성공하고 중절모에 수염까지 기르고 안경을 쓰고 나오면서부터는 그야말로 "멋진 노신사"로 인식되었음을 보라.) 사실 나는 이주일 이후로부터 죽 이어진 "외모"로 승부하는 코미디야말로 "이주일의 저주"라고 본다. 물론 이주일은 TV 시대의 첫 수퍼스타인 동시에, 악극단 시대의 마지막 수퍼스타이기도 한 과도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주일 이후에 코미디의 주류가 "연기"보다는 "외모"로 확 기울었음은 사실이다. 사실 그 이전에만 해도 (그리고 이주일이 나오고도 한동안은) 코미디의 중심은 "아이러니"였다. 어떤 정상적인 상황을 전제한 다음에 곧이어 삐딱한 상황을 보여주며, 그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프로그램은 아예 "코믹 드라마"에 가까웠고, 그 핵심 역시 "오해"로부터 비롯된 아이러니라는 전통적인 희극의 핵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외모와 연기력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아서, 내 경우에는 블랑카란 이름으로 나온 코미디언에 대해 많이 기대를 했지만, 소재 고갈인지 아니면 중소기업 사장들의 항의 때문인지 나중에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를 거의 "원시인" 취급하는 수준으로 떨어져서 그만큼 크게 실망했다. 아무리 오해와 압력이 있더라도, 그 캐릭터를 잘만 살려서 보다 풍자적인 기세로 밀어붙였다면 꽤나 공감이 갔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적어도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결코 줄어들진 않을 것 아닌가.)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 나오는 마빡이의 연기는 자학이지 결코 슬랩스틱이 아니다. 그리고 옥동자는 감히 채플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거야말로 "채플린에 대한 모독"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옥동자가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채플린을 몰라서" 그런 것일 뿐이다. 채플린의 영화를 단 한 편이라도 똑똑히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식의 무식한 발언은 하지 못할 것이다. <키드>나 <시티 라이트>를 보라. <독재자>나 <모던 타임스>를 보라. 아니면 채플린이 떠돌이 분장을 지우고 맨 얼굴로 출연한 <뉴욕의 왕>이나 <무슈 베르두>를 보라. 과연 그 어디서 옥동자와 같은 혐오 개그,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자기 신체를 학대하면서 관객의 억지 웃음을 자아낸단 말인가? 채플린은 단순히 코미디언이 아니라, 위대한 배우이며 영화감독이다. 반면 옥동자는 기껏해야 혐오스럽게 생긴 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실력 없는 개그맨에 불과하다. 그러니 뭘 모르는 사람들이여, 제발 옥동자의 개그를 평가한답시고 멀쩡한 채플린까지 바보로 만들지 말라. 그거야말로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행위이니까.

 

*** 한편으로는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같은 "슬랩스틱"을 무조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영화 <베니와 준>에서 자니 뎁이 보여준 연기를 한 번 보라고 해주고 싶다. 이 영화에서 자니 뎁은 버스터 키튼의 광팬 (맨 첫 장면에서부터 기차에서 키튼의 전기를 읽고 있다) 으로 등장해서, 곳곳에서 채플린과 키튼의 연기를 모방(가령 줄리언 무어가 일하는 식당에서 포크에 롤빵을 찍어 다리를 만들어 춤추는 장면은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에 나오는 장면의 모방이다.)하고 있는데, 최소한 이것을 보고 "뛰어난 연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채플린과 키튼의 연기가 뛰어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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